제79화 위험한 사람
강남의 고급 일식집.
이상민 장관이 복어회를 미나리와 곁들이고는 한 입 크게 먹었다.
“기가 막힙니다. 오한결 작가님도 어서 드셔보세요.”
잠시 고민하던 오한결이 랍스터를 향해 손을 뻗자, 거칠게 입을 오물거리던 이상민 장관이 그를 예리하게 쳐다봤다.
“역시 진짜 맛있는 걸 아시는군요. 스타일이 있으십니다.”
혀끝에서 부드럽게 흩어지는 랍스터를 음미하며 오한결이 말했다.
“다르게 말하면, 고집스럽다는 뜻인가요?”
“하하하. 그런가요?”
오한결이 눈을 크게 뜨고 이상민 장관을 바라봤다. 솔직한 말투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 자신의 성격과 성향을 감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걸까? 오한결은 그런 그의 모습에 무척 흥미를 느꼈다.
“장관님께서 제게 연락할 거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이상민 장관이 입을 대충 닦으며 오한결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까?’
문한국 보좌관의 보고에 따르면, 오한결 작가는 얼마 전까지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지방대 출신 예술가 지망생이었다. 보좌관의 말대로 기적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문화재단 공모전에 당당하게 입상한 후 오한결은 자신의 시대를 막힘없이 펼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독특하고 기적적인 행보가 이어질수록 보좌관의 보고서는 점점 두꺼워졌고 이상민 장관의 관심도 자연스레 증가했다.
그렇게 묵묵히 오한결의 명성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던 이상민 장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한결이 세상의 이목을 끄는 속도는 빨랐다. 완벽하다고 생각할 만큼.
혀끝으로 이빨 사이에 낀 음식물을 톡 뗀 이상민 장관이 말했다.
“오한결 작가님은 한국 예술의 미래입니다. 관련 부처 장관으로서 당연히 찾아뵙고 인사드려야죠.”
똑. 똑. 똑.
직원이 정중히 들어와 튀김 요리를 내려놓고 나갔다.
따끈한 새우튀김을 한 입 베어 문 오한결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나긋하게 말했다.
“데이비드 오 교수님이 그러시던데, 장관님 조심하라고.”
푸-!
물을 마시던 이상민 장관이 분무기처럼 물을 내뿜고 말았다.
“어이구, 죄송합니다. 이런 실례를 하다니.”
오한결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옷에 묻은 물을 털어냈다.
“진짜 위험하신 분이시군요.”
“하하하하.”
이상민 장관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오한결 작가님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솔직함은 예술가의 덕목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최고의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오한결의 따끔한 시선이 느껴지자 이상민 장관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데이비드 오 교수는 제가 아끼는 후배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예술가로, 저는 예술 행정에 몸을 담았지요. 그 친구는 그게 좀 아쉬웠나 봅니다. 제가 박사 과정 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거든요. 작가로서 불완전한 삶보단 현실을 고려한 선택을 했죠. 그래서 아직도 데이비드는 저를 배신자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오한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요?”
잠시 머뭇거린 이상민 장관이 입을 열었다.
“박사 과정이 끝나면 뉴욕에서 함께 작가 데뷔를 하자고 약속했거든요. 제가 포기하면서 뉴욕 일정이 완전히 어긋났던 거죠. 뉴욕의 미술 에이전시와 스튜디오 모두 우리 둘이 함께 간다는 전제로 전시 계약과 후원을 약속했거든요.”
오한결은 젊은 데이비드 오를 떠올렸다.
낯선 땅에서 오로지 예술을 위해 삶을 불태웠던 데이비드 오.
한국의 명문 S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에서 화려한 데뷔를 꿈꿨지만, 선배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은 예술가. 맨땅으로 헤딩하는 심정으로 떠났던 뉴욕.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던 데이비드 오 교수의 심정을 생각하니, 바로 떠오르는 건 ‘분노’였다.
“정말로 배신이었군요.”
잠깐 일그러진 표정을 짓던 이상민 장관이 억지로 웃어 보였다.
“당사자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런 거겠죠.”
“의연하시네요.”
이상민 장관이 히죽 웃어 보였다.
“꽤 오래전 일이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오한결이 물었다.
“제게 무슨 부탁을 하시려는 겁니까? 비싼 음식만큼이나 꽤 부담스러운 거겠죠?”
여유로운 얼굴로 이상민 장관이 말했다.
“나가서 좀 걸을까요?”
대로변을 따라 늘어선 고층 건물들이 강남 특유의 위압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찬 보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오한결과 이상민 장관은 인파를 뚫고 저 멀리서 번쩍이는 대형 광고판을 향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
긴 침묵을 깨고 이상민 장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오한결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무엇을요?”
“아시지 않습니까.”
오한결이 다시 걷자 이상민 장관이 재빨리 그 뒤를 따라왔다.
“문체부 장관이면 이미 성공한 삶 아닙니까? 거기서 더 나아가려고요?”
“보는 관점에 따라 그럴 수 있죠. 보통 집권당 정치인들이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되지만, 저는 민간 예술인 단체 수장 출신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항상 그 배경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저는 우리나라 예술계 부흥을 진심으로 바라거든요.”
“예술계 실세가 장관이 됐다면, 오히려 그 영향력이 더 컸을 것 같은데요. 예술 단체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가 있었을 테고요.”
“물론이죠. 하지만 입법기관의 한 축이 되는 건 또 다른 얘깁니다.”
오한결은 고개를 들고 바로 앞에서 번쩍이는 전광판을 바라봤다. 수십 번 바뀌는 빛의 색깔과 그것을 온전히 반사하는 건물의 유리 벽 때문에 눈이 시릴 정도였다.
“국회의원이라……. 그 길에 제가 무슨 도움이 될까요?”
“오한결 작가님은 존재 자체만으로 빛이 나는 분이니까요. 제 곁에 서 주세요. 그럼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장관의 말에 오한결이 걸음을 멈춰 섰다.
“저를 이용해 장관님 인지도를 높이려는 거군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겠죠?”
“제가 얻는 것은요?”
이상민 장관이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대답했다.
“보통 신인작가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과 금전적 어려움을 겪죠. 모두 해결해 드릴게요. 완벽한 작업 환경과 금전적 지원을 약속드립니다.”
오한결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이미 전 다 가졌습니다만. 농담하시는 거죠?”
불현듯 데이비드 오가 남긴 경고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한결 작가는 저처럼 모진 고난을 겪는 작가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대접받고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고 있죠. 선배님이 생각한 미끼들은 다 소용없을 겁니다.
이상민 장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든 게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분명 오한결 작가님도 원하는 게 있겠죠.”
“언젠가 그 끝자락에서 장관님을 찾을지도 모르죠.”
이상민 장관이 호기심을 보였다.
“제가 가진 권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이고요.”
오한결이 피식 웃었다.
“아마도요. 하지만 전 장관님 제안을 아직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상민 장관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처음부터 수락하면 재미없죠.”
“자신 있으신가 보군요.”
“물론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오한결 작가님과 저는 같은 부류의 사람 같거든요.”
그 말에 오한결이 잠깐 멈칫하다 말했다.
“역시 위험한 분이시군요.”
“하하하.”
* * *
모처럼 늦잠을 잔 오한결이 늘어지게 하품하며 거실로 나왔다.
맥없이 앉아 있는 어머니와 그 옆에서 어깨를 주물러 주고 계신 아버지가 보였다.
오한결이 부모님 근처로 다가와 말했다.
“어디 편찮으세요? 아버지, 제가 할까요?”
아버지가 어머니 눈치를 살피더니 나직이 말했다.
“아냐……. 너도 피곤할 텐데, 오늘은 푹 쉬어라.”
어머니가 오한결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출장 갔다 와서 제대로 쉰 적도 없잖니.”
오한결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피곤하지 않아요. 근데 어머니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아버지가 대신 대답했다.
“요 며칠 계속 답답하다는구나.”
어머니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가을이 되면 기분도 싱숭생숭하고 그러잖니. 신경 쓰지 말아라. 의사 말이 환절기 때 생기는 호르몬 변화가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구나. 이러다가 말겠지.”
오한결이 어머니 안색을 유심히 살폈다.
전형적인 계절성 우울증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우울함과 무기력증을 겪는 증상으로 환자의 83% 정도가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과 겨울에 생기는 우울 증상은 봄에 많이 완화하는 특징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니까 공원이라도 같이 돌자니까. 집에만 있으니까 더 우울해지는 거야.”
아버지의 말에 오한결이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았다. 붉은 단풍나무가 바람에 잎을 떨구고 있었다.
“어머니, 단풍 보러 갈래요?”
잠시 고민하던 어머니가 대답했다.
“생각해준 건 고마운데, 기력이 없어서 산에 올라갈 힘이 없구나.”
반면 산에 갈 생각에 흥분한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업고라도 가면 되잖아. 그러지 말고 한번 가보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기분이 한결 좋아질 거야.”
“하여간 등산 얘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니까.”
오한결이 웃으며 말했다.
“등산할 필요 없어요. 케이블카 타면 되니까.”
“케이블카? 설마…….”
“네, 설악산이요. 지금쯤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길 거예요. 단풍도 구경하고 바람도 쐬고 좋을 것 같은데요?”
산이라는 이야기에 아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바로 출발하자고!”
여전히 내키지 않은 지 어머니가 주저했다.
“사실 나야 어떻게든 가면 되지만 너희들이 더 걱정이지. 너도 피곤하고, 한수도 아직 잠들어 있고 말이야.”
“한수가 아직도 자나요?”
오한결이 터벅터벅 걸어가 동생 방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일어나! 설악산 가자!”
오한수가 이불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으악!! 피곤해! 나 좀 내버려 둬!”
동생 방으로 급히 들어간 오한결이 동생 입을 틀어막고 설명했다.
어머니의 계절성 우울증 증상과 야외 활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협조하지 않으면 천하의 불효자라는 낙인을 찍겠다는 협박까지.
오한결의 말을 전부 들은 동생이 여전히 침대에 누워 뭉그적거렸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도 귀찮아.”
베개에 얼굴을 박고 투정 부리는 동생을 향해 오한결이 말했다.
“용돈 줄게. 두둑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동생이 거실로 뛰쳐나갔다.
“어머니! 아버지! 제 꿈이 가을에 설악산 가는 거예요. 빨리 가요! 단풍 다 떨어지겠어요!”
3시간 후, 강원도.
오한결 가족이 설악산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동생이 팔을 벌리고 숨을 크게 쉬었다.
“와우! 폐가 정화되는 느낌이군. 어머니 어때요? 기분 완전 좋죠.”
어머니도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대답했다.
“그러게. 답답한 게 많이 사라졌어. 확실히 산 공기가 좋긴 좋구나.”
아버지는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젊었을 때 이 튼튼한 다리로 설악산을 누비고 다녔던 적이 있었지.”
어머니가 못마땅한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앞으론 절대 안 돼요. 등산하다 또 어디 하나 부러지려고.”
“끄응-!”
어머니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주변을 보세요, 단풍이 얼마나 예쁜지. 오늘은 눈 호강만 하고 갑시다.”
“그럽시다…….”
그때 마침 매표소에 들렸던 동생이 표를 흔들며 다가왔다.
“관광객 엄청 많아요. 표 사는 줄 만해도 백 미터는 족히 넘을 듯.”
오한결이 피식 웃었다.
“백 미터는 너무 과장 아니니?”
“아, 그런가. 그럼 구십 미터.”
“……됐다.”
오한결이 뒤돌아 부모님을 쳐다봤다.
“앞으로 계속 평지니까 힘은 안 드실 거예요. 그래도 천천히 걸어가요. 좋은 공기 마시고 울긋불긋한 단풍도 구경하면서요.”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덥석 잡았다.
놀란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젊었을 때 기분 좀 내봅시다. 한때 우리도 이렇게 손잡고 이곳에 온 적이 있잖아. 난 그때가 아직도 생생한데.”
어머니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와 나란히 걸어갔다.
묵묵히 그 뒤를 따라 걷던 동생이 오한결에게 물었다.
“그래서 용돈이 얼마야? 뭐, 형 정도 재력이면 어마어마하겠지?”
“몰라, 나중에 얘기해.”
잠시 뜸을 들인 동생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오한결을 쳐다봤다.
“배신자의 최후는 항상 좋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