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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78화 (78/202)

제78화 원대한 꿈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양 비서가 회장실을 열자, 신태진 회장과 이풀잎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오한결을 발견한 신태진 회장이 벌떡 일어섰다.

“오한결 작가! 어서 오세요.”

이풀잎도 오한결에게 다가가 가볍게 포옹했다.

“축하해! 내 친구 자랑스럽다! 이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가 됐네.”

오한결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여기서 보니까 되게 반갑네.”

“회장님이 초대해 주셨어.”

당황한 양 비서는 두 사람을 떼어 놓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오한결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오한결이 쳐다보자, 양 비서가 버벅거리며 말했다.

“회, 회장님께서 서 계셔서……. 자리로 가시죠. 작가님.”

“아, 네…….”

그 순간 이풀잎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본 양 비서는 부끄러움에 멍하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신태진 회장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양 비서? 왜 그렇게 얼빠져 있지? 자네도 어서 이리 와서 앉게나.”

“네……. 회장님!”

소파 상석에 앉은 신태진 회장이 오한결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프랑스를 발칵 뒤집어 놓으셨더군요. 작가님.”

오한결이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네요.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경고하셨다고요? 그것도 교수들을 상대로요? 하하.”

“동양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동양 미술에 대한 무지가 있더군요. 어쩔 수 없이 직접 작품을 보여줘야 했어요.”

눈을 감은 신태진 회장이 중얼거렸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위대한 작품 앞에선 어떤 이데올로기도 힘을 쓸 수 없겠죠. 그 작품이 주는 압도적 아우라에 누가 반기를 들겠습니까!”

“맞습니다. 작가는 그림으로 직접 보여주면 되니까요.”

신태진 회장이 눈을 뜨더니 묵직한 눈빛을 발산했다.

“제가 듣기론, 이미 파리 보자르 전용 미술관에 <인왕제색도>가 전시됐다고 합니다. 한국 미술계에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가 없어요.”

이풀잎이 깜짝 놀랐다.

“작품을 프랑스에 남겨놓고 왔구나. 아니, 왜?”

“아무래도 프랑스 파리에 그림이 전시된다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테니까. 지금처럼!”

“오!”

잠시 고민하던 신태진 회장이 입을 열었다.

“전 생각이 좀 다릅니다. 오한결 작가님은 퍼포먼스를 통해 그림을 완성했어요. 이미 해당 영상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시청 가능하고요. 원본 그림이 한국에 있더라도 작가님 작품을 향한 인기는 계속 올라갈 겁니다.”

오한결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원본이 갖는 상징성을 부정할 수 없어요. 무한히 복제된 디지털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만으론 결코 예술적 만족을 할 수 없거든요. 제가 원본을 없애버린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요.”

“어이구, 무슨 그런 섬뜩한 말씀을.”

이풀잎이 물었다.

“그래도 언젠가 되찾아야 하지 않겠어? 나중에 프랑스에서 반환 거부하면 어떡해?”

“그건 걱정하지 마. 이미 조건을 달았으니까.”

신태진 회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오, 역시 그랬군요. 그 조건이 뭔가요?”

“오한결 미술관에서 요청 시 반환한다!”

잠시 오한결을 빤히 바라보던 신태진 회장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

“오해하지 마세요. 무슨 대단한 조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한결 미술관 그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신태진 회장이 양 비서를 바라봤다.

“양 비서, 경기도에 미술관을 지을만한 부지를 알아보게.”

오한결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따로 생각한 계획이 있거든요. 회장님 도움은 사양할게요. 어쨌든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담되신다면 기금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 문제가 아닙니다.”

오한결이 차분히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삼각지 화랑거리의 옛 명성을 되찾고 그곳을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보다 더 유명하게 만들어 전 세계 아티스트를 위한 예술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포부.

그 계획이 완성되면 화랑거리에 오한결 미술관을 세우고,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수준을 명성을 갖게 만드는 것.

“그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제 작품을 모두 회수할 겁니다.”

신태진 회장은 오한결의 설명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꿈은 클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목표는 공상일 뿐이다.

오한결의 꿈은 실현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공상인가?

그게 한 명의 천재가 이룰 수 있는 목표이자 꿈일 수 있는가?

하지만 신태진 회장은 오한결의 미래를 믿고 싶었다. 확실한 근거에 의한 확신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치열하게 사업가로 살아온 신태진 회장의 촉이었다.

“작가님의 꿈을 위해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특별한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의지만으로 꿈을 이루겠다는 저 고집.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무도 오한결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모전에 당선되고 일주일 출장만으로 프랑스 예술계를 뒤흔든 인물 아닌가?

신태진 회장은 깊은 고민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나는 왜 오한결 작가에게 이렇게 흥미를 느끼는 걸까?’

그를 통해 자신이 못다 이룬 예술가의 꿈을 대리만족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돈 많은 기업 회장의 호기심일까? 역시 못된 늙은이의 추태밖에 안 되는 걸까.

문득 신태진 회장은 미래가 빛나는 청년 예술가의 큰 꿈을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한결 작가는 전 세계 예술의 판도를 뒤엎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예술의 메카로 만들려고 한다.

생각만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동시에 강한 질투가 느껴졌다.

신태진 회장이 고개를 들고 오한결을 눈을 바라봤다.

절대 저 나이에 나올 수 없는 지혜로운 노인의 눈빛. 마치 한 인생을 다 살아본 위대한 예술가가 있다면 바로 저런 눈빛을 가졌으리라.

“꿈을 이룰 자신 있습니까?”

“물론이죠.”

신태진 회장이 나직이 말했다.

“그 큰 꿈을 이루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때가 되면 기회를 주시죠. 작가님.”

오한결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던 이풀잎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오한결이 눈치채고 대화 주제를 바꿨다.

“석고 소묘 수업은 잘 돼가?”

그제야 이풀잎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럼, 회장님하고 양 비서님이 엄청 열심히 하셔. 벌써 석고 소묘 수업은 끝났고 이제 인물화 배우고 있어.”

신태진 회장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부끄럽네요. 그래도 매일 연습하니까 자신감이 붙긴 하더군요.”

신태진 회장이 오한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도 작가님처럼 목표가 있습니다. 가족을 멋있게 그려보고 싶거든요. 거실 한쪽에 제가 그린 가족 그림을 거는 게 꿈입니다.”

이풀잎이 두 손을 모으고 감동 받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머!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하셨군요. 너무 멋지세요, 회장님.”

너털웃음을 터뜨린 신태진 회장이 양 비서를 바라봤다.

“자네 목표는 뭔가?”

잠시 주춤하던 양 비서가 말했다.

“목표요……. 대단한 건 없는데……. 이번 기회에 미술과 친해져 보려고요. 문화생활로 미술관도 자주 가보고 싶고요.”

이풀잎이 반색하며 말했다.

“저도 미술관 좋아하는데. 저랑 같이 가요.”

양 비서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그, 그, 그럴까요.”

“네! 이번 주말 어떠세요? 미송미술관에서 특별전 하는데.”

“좋습니다!”

양 비서의 우렁찬 대답에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어서 이풀잎이 미술학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종알종알 오한결에게 말했고 모두 그녀의 재치 있는 말솜씨에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신태진 회장이 오한결에게 물었다.

“내일모레 시간 되나요?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오한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약이 있습니다.”

“저런, 아쉽군요.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나 보군요.”

“아뇨. 이상민 문체부 장관이 한번 보자고 해서요.”

“!!”

신태진 회장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이상민 문체부 장관이 왜요?”

오한결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부탁할 게 있다고 하네요.”

“그게 뭘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그래서 만나보려고요.”

이풀잎이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문체부 장관하고 밥을 먹는다고? 대박! 그분 되게 유명하신 분이잖아. 최근에 예능에도 자주 나오던데.”

신태진 회장이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최근 예능에 자주 나온다…….

‘장관께서 얼굴을 알려야 할 일이 생긴 게로구먼.’

1시간 후,

오한결과 이풀잎이 떠나자, 신태진 회장 얼굴에 그늘이 더욱 짙어졌다.

“그 뺀질이 이상민 문체부 장관. 도대체 무슨 꿍꿍일까?”

양 비서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분이 좀 그런 기질이 있죠…….”

불안한 마음에 회장실을 배회하던 신태진 회장이 갑자기 멈춰 섰다.

“왜 오한결 작가한테 접근한 걸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보자면, 최근 방송 출연이 잦은 거로 봐선 본인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소파로 돌아온 신태진 회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총선? 국회의원을 하고 싶다는 거군. 그 뺀질이, 국회의원 출신이 아닌가?”

“네, 예술인 협의회 회장 출신입니다.”

“그래, 그럼 공천을 받고 싶은 거야. 권력을 맛본 사람은 절대 그 맛을 잊지 못하거든.”

피식 미소를 짓는 신태진 회장이 말을 이었다.

“오한결 작가와 친분을 쌓아 보려는 수작인가? 성공한다면 꽤 효과가 좋을 거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고 최근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니까.”

양 비서가 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제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신태진 회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상민 장관과 겹치는 스케줄이 있나?”

다이어리를 뒤적이던 양 비서가 대답했다.

“이번 달에 국가정책포럼 일정이 있습니다. 연사 중 한 명이 이상민 문체부 장관입니다.”

“국가정책포럼이라…….”

“회장님은 매년 불참하셨습니다. 물론 초대는 항상 있었고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신태진 회장이 말했다.

“이번엔 가보도록 하지. 이상민 장관과 긴히 할 얘기가 생겼잖은가?”

* * *

EBC 회의실.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고함소리가 들렸다.

“김명호 피디! 너 제정신이야?”

김 작가와 회의를 하던 김명호 피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국장님, 갑자기 왜 그러시나요?”

국장이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오한결 작가라며!! 네가 편성 요청한 그 프로그램 출연자가!!”

최근 오한결 작가의 인기와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 김명호 피디의 어깨가 저절로 올라갔다.

“뭐, 그렇습니다. 하하.”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국장이 말했다.

“이놈이! 진작 말하지! 오한결 작가였으면 특별 편성이라도 했을 거 아냐!”

“그래서 제가 기다리라고 했잖습니까! 그리고 제가 올린 기획안에 오한결 작가가 명시돼 있거든요!”

뻘쭘해진 국장이 눈치를 살피다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암튼! 오한결 작가 출연 확정하고 와!”

“걱정하지 마세요. 예전에 약속받았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국장.

“참 답답한 놈이네. 방송국 짬밥이 몇 년인데, 구두 약속으로 저렇게 태평성대일까? 그때보다 훨씬 유명해졌잖아. 그럼 변수가 많지 않겠어?”

“!!”

“빨리 오한결 작가하고 미팅 잡아! 더 늦기 전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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