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로 들어선 오한결과 최하늘.
높은 천장에서 느껴지는 압도적 스케일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형형색색의 빛은 관광객들에게 웅장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었다.
최하늘이 천장을 올려다 말했다.
“진짜 높네요. 책에서만 보던 고딕 건축을 실제로 보다니.”
오한결도 고개를 들고 천장을 바라봤다.
“프랑스의 자랑. 현존하는 최고의 고딕 걸작이죠.”
“1804년 나폴레옹 1세 대관식을 했던 장소기도 하고요.”
오한결이 흐뭇하게 웃으며 최하늘을 바라봤다.
“많이 아시는군요.”
여전히 건물 천장에서 눈을 떼지 못한 최하늘이 말했다.
“왕 팀장님이 말해줬어요. 어찌나 잘난 척을 하던지…….”
최하늘이 고개를 내린 후 오한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빅토르 위고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배경이고요.”
오한결이 방긋 웃어 보였다.
“네, 맞아요. 이따가 소설 속 종지기가 울렸던 그 종을 보러 갈 겁니다.”
최하늘이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를 질렀다.
“오예! 엄청 기대돼요.”
오한결은 즐거워하는 최하늘에 만족하며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폭이 좁고 가느다란 창문을 통해 형형색색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건물 내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은 그 빛은 대성당 안을 성스럽고 환상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자신을 따라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있는 최하늘을 보며 오한결이 말했다.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스테인드글라스라는 거죠? 너무 예뻐요.”
최하늘의 말처럼 화려한 색채로 물들인 창이 마치 장미꽃처럼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고딕 건물의 특성상 창을 크게 낼 수 있었어요. 다행히도 이렇게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는 건축적 기술이 뒷받침된 거죠.”
최하늘이 창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머, 사람 모습이 그려졌네요. 성경에 나오는 성인들일까요?”
“그럴 겁니다. 신앙심을 위해서라도 성인들의 생애를 그리지 않았을까요?”
오한결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천천히 노트르담 성당이 주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잔뜩 즐겼다.
벽면을 유심히 보던 최하늘이 물었다.
“인물들을 조각해 놨네요. 이것도 성경 말씀인가요?”
“그렇다고 봐야죠. 그 당시 조각은 글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테니까요.”
오한결이 대성당 중앙을 가득 채운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봤다. 최하늘의 시선도 자연스레 오한결과 같은 곳을 향했다.
알록달록한 꽃잎을 균일하게 붙인 듯한 거대한 원형 창문.
최하늘은 그것의 아름다움에 심취했지만, 오한결은 새겨진 모든 문양들을 읽으며 당시 교회가 전하고자 했던 하느님 말씀을 고스란히 해석하고 있었다.
최하늘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오한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작가님은 종교가 있으세요?”
오한결의 시선은 여전히 스테인드글라스를 향해 있었다.
“아뇨. 하지만 모든 종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요.”
최하늘의 오한결의 날렵한 콧날과 다부진 입술을 보며 생각했다.
‘너무 멋진데……. 하지만 이 사람은 다가갈 수조차 없는 위치에 있는 것 같아……. 너무 높은 곳에…….’
상념에 빠진 최하늘을 깨우듯 오한결이 제안했다.
“최하늘 씨, 종탑에 올라갈 볼까요? 제가 예약했거든요.”
“좋아요!”
두 사람은 종탑으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을 올랐다. 처음엔 씩씩하게 걷던 최하늘도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너비에 놀라더니 아찔한 높이까지 오르자 긴장해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아, 운동 좀 해야지. 생각보다 체력이 너무 저질이네요.”
오한결도 숨이 차는지 크게 호흡하며 대답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저기 종탑이 보이네요!”
드디어 400개가 넘는 계단을 모두 올라 종탑에 이르자, 그림 같은 파리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최하늘이 나른한 말투로 말했다.
“저기 센강이 보여요. 클로에의 멋진 퍼포먼스가 생각나네요.”
“당당한 매력의 예술가죠.”
최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참 아름답고 매력적이죠. 그리고…… 자존감도 굉장히 높고요.”
에펠탑을 유심히 바라보던 최하늘이 말을 이었다.
“오한결 작가님 덕분에 이번 프랑스 출장은 너무 행복해요. 솔직히 해외 출장은 정말 싫었거든요. 엄청 고생하고, 작가들하고 움직이려면 이것저것 챙겨야 하고요. 저도 사람인데, 좋은 거 구경하고 맛있는 거 먹고 싶지 않겠어요?”
갑자기 말을 멈춘 최하늘이 얼굴을 붉혔다.
“아, 죄송해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오한결이 슬쩍 미소 짓고는 파리 전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도 최하늘 씨와 와서 기쁩니다. 사실 최근 작품 준비하면서 가장 의미 있었던 결과물은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거였어요. 그게 아니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 예술 활동의 원동력은 언제나 좋은 사람입니다.”
때마침 선선한 바람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분 좋아진 최하늘이 씨익 웃으며 우뚝 솟은 에펠탑을 바라봤다.
프랑스 도착한 첫날 오한결과 함께 걸었던 파리의 밤거리 그리고 파리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에펠탑 전망대. 그곳에서 봤던 아름다웠던 파리 풍경은 최하늘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행복을 주고 있었다.
아마도 평생 기억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 잊히더라도 그 따스했던 느낌은 최하늘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테니까.
밑에서 웅성대는 소리와 함께 관광객이 몰려오자 오한결과 최하늘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종’으로 향했다.
“드디어 소설 속 주인공이 울렸던 종을 보게 되네요.”
<노트르담의 꼽추>로 알려진 빅토르 위고의 작품은 수많은 사람이 작품 제목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로 명작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에 오르니 감회가 남달랐다.
오한결이 커다란 종을 살피며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외면 받았던 종지기의 삶. 그에게도 목숨 바쳐 사랑하고 싶은 여인이 있었어요. 그 사실만으로 그의 삶이 아름다웠다는 증거 아닐까요?”
최하늘의 표정이 어두웠다.
“고단했던 그 종지기의 삶이 불쌍하게만 보여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 바쳤던 종지기를 불쌍하게만 바라보는 건 옳지 않아요. 그의 삶은 누구보다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사랑이 위대한 게 아닐까요?”
“……아, 작가님 얘기를 들으니까 맞는 말 같네요. 약간 설레기도 하고요.”
“저도요.”
“…….”
노트르담 대성당 밖으로 나온 오한결과 최하늘은 근처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낡고 아담한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따스한 오후 햇살이 대성당을 돌아다니며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것 같았다.
오한결과 최하늘은 커피를 홀짝이며 근처를 지나는 관광객을 바라봤다. 모두 파리가 주는 유럽의 이색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한 듯 행복해 보였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서양 중년 부부가 오한결을 알아보고 기뻐했다.
“혹시 오한결 작가 아닌가요?”
오한결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저를 아시나요?”
“당연하죠! 텔레비전하고 인터넷에서 연일 화제인데요. 우리 프랑스인들은 훌륭한 예술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답니다.”
최하늘은 아무런 감흥 없는 오한결을 보며 생각했다.
‘본인의 위대한 업적에 저렇게 무감각하다니. 참 대단하고 멋져……. 어머, 내가 무슨 생각을…….’
오한결과 사진을 찍고 사인까지 받아간 중년 부부는 멋진 작품을 기대한다며 기분 좋게 떠났다.
최하늘이 몸을 기울인 뒤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오한결 작가님은 프랑스에서 유명인사에요.”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신 오한결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예상은 했습니다.”
최하늘이 어깨를 으쓱한 뒤 화제를 돌렸다.
“어제 파리 보자르에서 괜찮으셨어요? 교수들에게 혹시 상처받지 않았는지 걱정되네요.”
“상처요? 전혀.”
“다행이네요. 근데 제가 대학교 때 배운 바로는, 서양 사람들도 오리엔탈리즘을 비판적으로 생각한다고 하던데요.”
“맞아요.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죠.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은 지식인 전반에 존재하지만, 뿌리 깊은 의식까지 바꾸지 못했어요. 그들은 아직 동양 미학에 대한 개념조차 없을 거예요. 기껏 해 봐야, 책을 통해 접한 피상적 지식일 뿐이죠.”
“직접 보면 생각이 달라질까요?”
“그럼요. 분명 그럴 겁니다.”
최하늘의 얼굴에 근심이 아른거렸다.
“내일 오한결 작가님 퍼포먼스를 유튜브로 방송하잖아요. 괜찮겠어요? 자칫 작가님 명성에 누가 될 수 있어요. 그들이 잔꾀를 부린 거라고요. 이제라도……”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요.”
“네? 그래도…….”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최하늘은 단호한 오한결의 표정을 보고 깨달았다.
맞다. 오한결 작가는 실수 같은 걸 모르는 사람이지…….
오한결 작가가 그동안 보여준 천재적인 재능과 위대한 작품들. 최하늘은 수없이 그의 예술적 발자취를 보면서도 왜 깨닫지 못했던 걸까? 오한결 작가는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최하늘이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내일 촬영이 완벽하도록 문화재단이 적극적인 조치를 하겠습니다. 오한결 작가님 작품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꽤 실력 있는 카메라 감독이 필요할 겁니다. 저희가 준비할게요.”
“고마워요. 최하늘 씨.”
“제 일인걸요. 호호.”
“이제 슬슬 일어나 볼까요?”
잠시 거리를 거닐던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이다.
초록색 입구가 인상적인 서점으로 들어가자, 최하늘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와, 굉장히 아늑하고 옛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네요. 전 이런 곳이 너무 좋아요.”
오한결이 미소를 머금고 주변 책들을 둘러봤다.
“여기가 헤밍웨이가 생전에 자주 들렸던 책방이었대요.”
“아,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오한결의 말을 듣자마자 최하늘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책방을 훑어보았다.
헤밍웨이 시절과 다르게 서점의 위치는 옮겨졌지만 그 역사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간 두 사람은 낡은 피아노 한 대와, 허름한 잠자리를 발견했다.
“여긴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네요.”
“서점 주인은 가난한 작가들이 쪽잠도 자고 글을 쓸 수 있게 해줬다고 해요.”
오한결의 설명을 들은 최하늘이 책장에 꽂힌 책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부끄럽지만, 저도 한때 작가를 꿈꿨어요. 뭐, 제대로 써본 적은 없지만요. 이렇게 작가들의 고뇌가 담긴 곳을 오니 새삼스럽네요. 호호.”
“작가가 꿈이었군요. 그럼 선물은 정해졌네요.”
“네? 선물이요? 어머…….”
“스노우볼을 사긴 했지만 기념품 하나로는 부족할 거 같아서요. 이곳에서 책을 사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최하늘 씨 것도 하나 사고요!”
“딱 좋네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구입한 책이라니. 누구나 갖고 싶을 거예요.”
서점을 둘러보던 오한결이 어떤 책 앞에 멈춰 서자, 최하늘이 다가왔다.
“고르셨나요?”
“네.”
최하늘이 책표지를 보고 방긋 웃었다.
“어머! <어린왕자>네요.”
“개인적으로 생텍쥐페리를 좋아해서요. 어때요? 다들 좋아할까요?”
“……그럼요! 근데……. 워낙 유명한 책이라 갖고 있지 않을까요?”
오한결이 책을 펼쳐 보였다.
“프랑스어로 된 거잖아요. 소장하고 있을 리가 없죠.”
“……아, 맞네요. 호호.”
“그리고 여기서 책을 사면 스탬프도 찍어 준답니다.”
“완전 희귀 아이템이네요…….”
오한결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비싼 기념품보다 백 배 의미가 있겠죠.”
“……아, ……네.”
오한결이 몹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바람에 최하늘은 떨떠름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르지, 다들 선물을 만족스러워할지.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