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오리엔탈리즘
세미나실 연단 위로 오한결이 올라서자, 루이스 교수가 상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한결 작가님이 저의 주장을 반박하셨으니, 이제 그 이유를 들어볼까요?”
오한결도 씨익 웃으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제 주장이 합리적이라면 받아들이신다는 겁니까?”
“물론이죠.”
“좋습니다.”
루이스 교수가 비켜서자, 오한결이 연단 중앙에 서서 청중을 바라봤다.
교수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한국에서 온 젊은 예술가를 묵묵히 바라봤다.
몇몇 교수들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오한결을 노려보기도 했지만, 그는 그런 시선 따위는 가뿐히 무시한 채 방긋 웃어 보였다.
오한결과 교수들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팽팽하게 이어졌다.
이 상황을 지켜 보던 왕 팀장은 긴장감 때문에 손을 강박적으로 비벼대며 말했다.
“최하늘 씨, 문화재단 이사장님이 아시면 노발대발하시겠어요. 분명 제게 프랑스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라고 하셨는데…….”
최하늘이 곰곰이 생각한 후 말했다.
“제가 아는 신수진 이사장님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왕 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뭐라고요?”
“오한결 작가님. 본때를 보여주세요!”
신수진 이사장의 호통 치는 모습이 떠오르는 왕 팀장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긴 불같은 분이시죠.”
오한결이 스크린에 띄어진 <알제리의 여인들> 작품을 보며 말했다.
“들라크루아. 프랑스 대표 화가. 프랑스 사람으로서 들라크루아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그의 작품이 보여준 빛과 그림자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지금 이곳에 모인 분들은 저명한 교수님들이니까요.”
교수들이 웅성대자, 오한결이 잠시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지난 사조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수용할 때도 되었다는 겁니다.”
회색 베레모를 눌러쓴 고령의 교수가 손을 들고 말했다.
“물론입니다. 시대는 변했고 우리도 변할 준비가 됐지요. 하지만 당신의 분노는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군요. 정당한 의견이라면 수용할 수 있으니 우리를 설득시켜 보세요.”
오한결은 피식 웃었다.
알 수 없는 분노라고……?
동양의 신비에 매료된 들라크루아.
그가 바라본 이슬람 사회는 몹시도 낭만적이었을 것이다.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몽환적인 느낌, 뿌연 안개가 가득한 실내에 요염한 자세로 양탄자에 앉은 세 명의 이슬람 여인들.
이슬람 고유의 화려한 의상과 그들이 착용한 매력적인 장신구는 무척이나 신비스럽다.
유일하게 뒤돌아선 흑인 하녀의 모습, 선명하게 구분되는 백인과 흑인의 흑백 대비. 그리고 실내장식에서 느껴지는 적색의 조화.
두껍게 발린 물감과 이국적 장식의 선명한 묘사는 오묘한 분위기를 더욱 살려주고 있다.
오한결은 그림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겉으로 보기엔 매혹적인 동양의 문화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여인을 그린 듯 보입니다. 그 당시 서양 사람들 눈에는 동양 문화 자체가 몹시 신비스럽게 느껴졌을 테니까요.”
자신감 있는 오한결의 말에 교수들의 눈에는 적개심보다는 호기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작가의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한 문화사대주의적 표현입니다.”
다시금 회색 베레모 교수가 손을 들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리엔탈리즘!”
교수들이 웅성거리자 오한결이 잠시 침묵 후 말을 이었다.
“다들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가 발간한 <오리엔탈리즘>을 아실 겁니다. 서양은 이성적이고, 동양은 신비롭다는 미명 하에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시켰죠.”
오한결이 루이스 교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의 발표에는 오리엔탈리즘 사상이 가득합니다. <알제리의 여인들>은 이성보다 감성을 중시했고 동양의 실질적 재현이라는 표현. 베일에 싸인 여성을 그린 용기 있는 작품이자 여성 해방의 상징이라는 설명. 이렇듯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주장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침묵한 루이스 교수를 살피던 오한결이 냉정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이슬람 문화권은 다른 문화권보다 더 감성적이지 않고, 나른한 여인들의 모습이 실제 이슬람 여성을 대표하지 않으며, 남성 문화권에 숨어 있는 여성을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여성해방의 상징이 되지 않습니다.”
루이스 교수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가의 표현방식일 뿐입니다. 예술에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지양하는 게 좋아요. 오한결 작가님이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작품 해석을 지나치게 좁히고 작가의 의도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죠. 아마도 ‘동양에서 온 작가’라 그런지 선입견이 있는 것 같군요.”
자꾸 반복되는 ‘동양’ 작가라는 말!
깊이 느껴지는 선입견과 오해에 오한결의 미간이 깊이 패였다.
“정말 선입견일까요? 제가 증거를 하나 말씀드리죠. 여전히 서양인들이 동양을 찾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이성적 서양인들이 신비롭고 흥미로운 문화를 가진 동양을 체험해 보고 싶은 겁니다. 이 모든 게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한 서양의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이고요.”
오한결이 회색 베레모 교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슬람 국가를 여행한다면 무엇을 기대 하겠어요?”
회색 베레모 교수가 곰곰이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죠. 저는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그들의 문화를 보고 싶소.”
오한결이 피식 웃으며 루이스 교수를 쳐다봤다.
“어떤가요?”
“…….”
“만약 제가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프랑스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동의하시겠어요? 아, 계몽주의 사상을 거론하시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프랑스 문화를 주장하실 건가요?”
침묵을 지키던 루이스 교수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좋습니다. 논리적인 반박이었어요. 오한결 작가님 의견을 수렴해서 발표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불현듯 뿔테 안경을 쓴 교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의를 제기합니다.”
루이스 교수가 오한결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말씀해주세요.”
“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책임을 서양에게 묻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럼 처음부터 동양은 자신들의 삶의 양식을 기록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양 미술은 서양 미술과 다르게 그 수준이 높지 않아 자신들을 표현할 줄 몰랐던 거죠. 들라크루아 같이 뛰어난 서양 미술가를 통해서 그들의 생활상이 표현된 건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한결 작가 당신도 서양 미술을 하는 사람 아닌가요?”
화난 최하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왕 팀장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진정하세요. 우리가 낄 자리가 아닌 거 같아요.”
알랭이 웃으며 최하늘에게 말했다.
“그래요. 지켜봅시다. 오한결 작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최하늘이 알랭을 노려봤다.
‘어우, 얄미워!’
오한결이 뿔테 안경 교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요.”
“!!”
“동양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서양 미술이 현실적 우위를 점한 건 사실이나 그건 수준에 의한 게 아닙니다. 동양과 서양 미술은 그 출발점이 다릅니다.”
분노로 가득한 뿔테 안경 교수를 오한결이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동양은 외부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화려한 기교 따위도 필요 없었죠. 그들에게 예술은 내적인 정신 수양과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초상화란 무릇 인물의 내면과 중요한 특징을 그리는 것일 뿐, 실물을 그대로 그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뿔테 안경의 교수가 반박했다.
“그게 바로 수준 차이라는 겁니다. 서양 미술은 르네상스 이후 합리적 사고를 지향했어요. 맞아요. 서양 미술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기록하고자 수준을 높여왔죠. 그에 반해 동양은 어땠습니까? 기준을 알 수 없는 정신을 중시하며 비이성적으로 발전해오지 않았습니까?”
많은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뿔테 안경 교수 의견에 동조하자, 오한결이 다시 나섰다.
“보지 못했으니, 용감한 말이 나오는 겁니다.”
“!!”
“직접 보여드리지요. 이틀 후 이곳에서 동양화를 그려보겠어요.”
교수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몇 교수들은 한껏 기대에 부풀어 박수를 치고 말았다.
너무 놀란 최하늘과 왕 팀장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알랭은 총장을 끌어안고 기쁨의 탄성을 질러댔다.
루이스 교수가 오한결을 빤히 쳐다봤다.
“굉장한 자신감이군요. 필요한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준비해 놓겠습니다.”
“대형 붓과 먹물 그리고 화선지만 있으면 됩니다.”
고개를 갸웃거린 루이스 교수.
“그게 다입니까?”
“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오한결은 파리 보자르에 방문한 지 몇 시간도 안 돼 거대한 폭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 * *
레지던시로 복귀한 오한결 일행.
오한결, 최하늘, 왕 팀장이 1층 카페 구석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왕 팀장이 몸을 흔들거리며 말했다.
“긴장해서 지릴 뻔했어요. 작가님! 그래도 대박! 그 콧대 높은 프랑스 교수들을 눌러버리다니. 속이 뻥 뚫리네요.”
최하늘이 치를 떨면서 말했다.
“맞아요. 그 뿔테 안경 교수는 완전 노답. 어디서 오리엔탈리즘 따위를 들이대고 난리야!”
왕 팀장이 오한결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는 동양의 우수성을 주장해야 합니다. 싸우자!!”
오한결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런 이분법적 생각이 문제인 겁니다. 우열을 나눌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죠.”
왕 팀장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오한결이 말을 이었다.
“왕 팀장님, ‘옥시덴탈리즘’을 아시나요?”
잔뜩 취한 왕 팀장이 심하게 몸을 흔들어댔다.
“오! 옥시덴달리즘. 그게 뭔가요?”
오한결이 안주로 나온 치즈를 한입 베어 물고 말했다.
“서양을 적대시하고 비하하는 인식과 태도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서양은 비인간적이고 천박하고 물질적인 데 반해, 동양은 인간적이고 고상하다는 주장이죠.”
왕 팀장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마음에 드네요.”
취기가 올라 얼굴이 붉어진 최하늘이 소리쳤다.
“왕 팀장님! 그건 아니죠. 오리엔탈리즘이나 옥시덴탈리즘 모두 추방해야 할 이데올로기라구요!”
왕 팀장이 입술을 뾰족 내밀며 중얼거렸다.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최하늘이 왕 팀장을 째려보다가 남은 와인을 한꺼번에 들이켰다.
때마침, 클로에가 레지던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두 여기 있었네요.”
왕 팀장이 히죽 웃으며 손짓했다.
“클로에도 이쪽으로 와요. 오늘 재밌는 일이 있었거든요. 얘기해 줄게요.”
클로에가 테이블에 합석한 후 오한결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미 소문 쫙 퍼졌어요. 파리 보자르 교수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면서요.”
최하늘이 깜짝 놀랐다.
“어머! 벌써 소문났어요? 빠르다!”
클로에가 휴대폰을 톡톡 두드렸다.
“SNS에 누가 벌써 올렸던데요. 내일 모레 오한결 작가님이 교수들 앞에서 직접 동양화를 선보인다는 소식도요. 대형 붓을 주문했다고 하던데요.”
오한결이 와인을 들이켜고 말했다.
“퍼포먼스 좀 해보려고요. 그래야 분위기가 좀 살지 않겠어요?”
클로에가 적극적으로 몸을 기울여 오한결과 얼굴이 닿을 듯 가까이 왔다.
“저도 구경 가도 되나요?”
“물론이죠.”
얼굴이 거의 닿을 듯한 두 사람을 보며 최하늘이 치를 떨었다.
“이제 그만 하시죠. 클로에!”
클로에가 피식 웃으며 몸을 뒤로 젖혔다.
“왜 내일 모레에요? 내일 당장 보여주면 될 텐데.”
오한결이 최하늘을 쳐다봤다.
“내일은 최하늘 씨하고 노트르담 대성당 구경 가려고요. 지난번 근처를 지났는데, 자세히 못 본 게 많이 아쉽더라고요.”
최하늘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지자, 클로에가 피식 웃었다.
“어머, 데이트구나. 아니라면 나도 같이 갈까나.”
왕 팀장이 끼어들었다.
“다 같이 가서, 둘씩 짝을 맞춰 구경합시다. 나는 클로에와 함께…….”
눈치 없이 구는 왕 팀장의 말에 클로에가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난 안 갈래요. 왕 팀장님도 내일 바쁘시잖아요. 눈치 좀 챙기세요.”
“……아, 바쁜 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