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고귀하고 엄숙한 곳
서울 종로에 도착한 오한결과 최하늘은 프랑스 작가 알랭을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야외로 나온 최하늘은 분주한 도심 풍경을 둘러보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당연히 유명한 관광지로 갈 줄 알았거든요. 생각해보니 이곳이야말로 한국 고유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곳이네요. 특히 서양인인 알랭에겐 무척 신비스럽게 보일 테고요.”
“최하늘 씨는 이곳에 와봤나요?”
최하늘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저도 처음이에요. 여긴 해설사와 동행하면 좋다고 해서 선뜻 올 엄두를 내지 못했거든요. 오한결 작가님은 이곳을 잘 아세요?”
“물론이죠. 오늘 제가 그 해설사 해드릴게요.”
최하늘이 환하게 웃었다.
“어머! 역시 모르는 게 없으신 분.”
잠시 뒤, 택시 한 대가 그들 앞에 정차하더니, 알랭이 손을 흔들며 내렸다.
“안녕, 한국인 친구들. 밖에서 만나니까 새롭군요. 여긴 어딘가요? 도심 속 큰 공원인가요?”
오한결이 알랭과 악수하며 말했다.
“당신을 한국에서 가장 고요하고 성스러운 곳으로 안내할 겁니다.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아름다움이죠.”
알랭이 주변 경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기대됩니다. 무척 설레는군요. 우리의 목적지가 어딘가요?”
“‘종묘’입니다.”
오한결이 앞서고 최하늘과 알랭이 뒤따라 걸었다.
어느덧, 세 사람은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에 도착했다.
기와가 얹힌 지붕과 그것을 든든하게 받치는 붉은 기둥들.
알랭은 한국식 건축양식을 이리저리 살피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와우, 한국 전통 건축이군요. 전 이런 게 너무 좋아요. 동양의 신비가 느껴지거든요. 오늘 온 곳은 왕이 살던 궁전인가요? 프랑스에서 한국 관련 책을 봤는데, 서울에 왕이 살던 궁전이 잘 보존돼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니요. 오늘 여행의 테마는 ‘죽음의 공간’입니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알랭의 표정도 난처해졌다.
“나는 미신이나 심령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고유한 역사를 보고 싶어요.”
오한결이 말없이 외대문을 통과한 뒤 뒤돌아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알랭은 이제 한국 고유한 역사를 넘어 세계적인 건축물을 보게 될 테니까요. 어서 가시죠.”
종묘로 들어선 오한결, 최하늘, 알랭.
그들은 역대 왕과 왕비가 다녔다는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걸었고 종묘 정전 입구에 멈춰 섰다. 오한결의 안내로 남문을 통과하자 종묘 정전의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알랭이 탄성을 질렀다.
“이런!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적인 건축물입니다. 단층짜리 건물이 이렇게 크다니요. 그리고 이 웅장함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최하늘도 눈앞에 보이는 웅장한 건축물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압도하는 묘한 분위기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오한결은 경건한 자세로 건축물과 주변 경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이 바로 우리의 목적지입니다. 아주 크죠? 1층짜리 단층 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알려져 있죠.”
알랭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가로로 109미터나 되는 거대한 종묘의 정전은 크기뿐만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느낌이……. 혹시 이곳은 신전입니까?”
오한결은 종묘의 정체를 바로 알아본 알랭에게 감탄하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이 느낌은……. 그래요, 꼭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합니다. 여기서는 어떤 신들을 모시고 있나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를 모신 신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알랭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역대 왕들이요? 무척 흥미롭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듣던 최하늘이 알랭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조선은 인간의 도리를 최고로 삼는 유교 국가였어요. 그러니 선대 왕에 대한 효를 보일 수 있는 이 종묘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을 겁니다. 조선왕조 600년의 역사가 담긴 곳이지요.”
최하늘의 설명에 알랭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이 오랫동안 그대로 보존된 것이 놀랍습니다. 정말…….”
알랭은 오래도록 말을 잇지 못했다. 종묘의 오랜 역사와 신비로운 아우라는 예민한 예술적 감각을 가진 알랭에게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종묘에 불을 질렀죠. 하지만 전쟁 이후에 잿더미가 된 이곳을 다시 복원했습니다. 조상들은 종묘를 조선왕조의 근간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와우, 굉장합니다. 이곳이 바로 국가의 정체성이었군요. 놀랍습니다. 그리고 이 근처 도시 풍경은 빠른 경제 성장으로 고층 빌딩이 가득한데 이곳 종묘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니요. 그야말로 과거와 역사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알랭의 감탄에 오한결이 웃으며 그들을 ‘월대’ 위로 안내했다.
월대는 1미터가 되는 가슴 높이의 단으로 역대 왕들의 신주가 모셔진 공간 앞에 펼쳐진 거대한 마당이었다. 종묘제례 등의 행사가 치러지는 공간으로 그야말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신비로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올라와서 보니 더욱 놀랍군요!”
알랭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월대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엄숙함 그 자체였다. 아래에서 볼 때와는 극적으로 다른 느낌을 주었다.
오한결이 종묘 정전의 지붕을 바라보며 말했다.
“압도적인 크기에서 오는 웅장함! 지붕을 보세요. 매우 길고 깊은 지붕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거대한 지붕의 그림자의 묵직한 분위기가 느껴지시나요? 이 모든 게 이곳이 바로 신을 위한 건축물이라는 증거죠.”
오한결의 말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을 닮은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 밑으로 그림자가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항시 만들어진 그림자는 이곳을 더욱 신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알랭은 혼자 중얼거렸다.
“지금 제가 강렬하게 느끼는 건 극도의 차분함입니다. 살면서 이렇게 신비스러운 곳은 처음입니다.”
오한결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종묘야말로 한국 건축 예술의 상징이니까요. 진정한 예술을 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감정이죠.”
놀란 알랭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 질렀다.
“그래요, 예술!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단순히 한국에 왔으니 관광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알랭은 두 눈을 꾹 감고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타국의 역사를 호기심으로만 바라볼 생각을 하고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저의 얄팍한 접근을 예술의 길로 이끌어 주셨군요.”
오한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가 특별한 일을 한 게 아닙니다. 알랭이 종묘가 주는 예술적 가치를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던 거죠. 한국을 찾은 다른 해외 건축가들처럼요.”
알랭은 오한결의 설명에 공감하면서도 좀 전에 드러난 자신의 한계에 겸연쩍은 얼굴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오한결의 마지막 말에 호기심을 놓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혹시 다른 건축가들은 종묘를 어떻게 평했습니까?”
오한결이 막힘없이 대답했다.
“‘이같이 고요한 공간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만약 있다면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이나 있을까.’”
알랭이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우, 정말 대단한 칭찬이군요. 맞아요. 이렇게 고요한 공간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프랑크 게리 말씀이시죠? 그 구겐하임 뮤지엄과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말이에요.”
불쑥 최하늘이 끼어들자, 오한결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화려한 디자인을 선호하던 프랑크 게리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종묘를 극찬했다는 게 흥미롭죠. 심지어 종묘를 보기 위해 일부러 한국으로 가족 여행을 왔다고도 합니다.”
유명한 건축가의 이름이 거론되자 알랭이 다시금 종묘를 찬찬히 훑었다. 그에게 감상할 넉넉히 시간을 준 뒤 오한결이 덧붙였다.
“건축만으로 이렇게 엄숙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게 기적이라고 말하는 서양 건축가들도 있었죠. 특히 미술학자 빙켈만은 ‘고귀한 단순과 조용한 위대’라고 표현했을 정도였어요.”
알랭은 오한결의 말을 되뇌었다.
‘고귀한 단순과 조용한 위대…….’
“명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술적 가치와 미학을 탐구하게 하죠. 알랭은 어떤가요?”
“!!”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에 알랭이 겨우 입을 열었다.
“진짜 예술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군요. 오한결 작가님의 구체적인 설명 덕분에 이곳에서 느낀 경이로움의 비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기회를 엿보던 최하늘이 슬며시 말했다.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을 정도니까요. 종묘와 종묘제례 모두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어요. 전 세계에는 여러 신전이 남아 있지만, 신전과 제례가 함께 남은 것은 한국이 유일하답니다.”
최하늘의 얼굴에 뿌듯함이 어렸다.
“굉장하군요. 이건 전 인류가 보존해야할 보물입니다. 그런데 제례까지 남아있다니 굉장하군요. 지금은 볼 수 없는 거겠죠?”
알랭의 말에 최하늘이 허둥댔다.
“아, 아……. 그게, 종묘 제례는 일 년에 두 번만 있는 행사여서요. 그, 급한 대로 영상이라도 보시겠어요? 제가 몇 년 전에 관련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어서 잘 알아요. 음, 잠시만요…….”
잠시 후 최하늘의 휴대폰에서 종묘 제례의 우아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알랭은 당시 상황을 상상이라도 하려는 듯 음악과 함께 종묘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와우, 굉장히 오묘하군요. 현대 음악과 결이 너무 달라요.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단한 음악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겠어요.”
알랭은 최하늘에게서 온갖 자료를 받아가더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길 원했다.
종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오랜 시간의 역사를 발견하고 오한결의 해석을 빌어 그것을 역사적, 예술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숱한 역경에도 한 나라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조선이라는 나라. 그 후손들은 격변의 현대사를 거쳐 자신의 조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알랭은 그런 한국을 대단하게 생각하면서도 문화와 역사만큼은 유서 깊은 유럽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 어떠한 근거도 없었지만, 자신이 틀릴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종묘를 보는 순간, 유럽의 그 어느 건축 문화와 견주어도 예술적 문화적으로 뒤지지 않아 보였다. 아니, 오히려 단순한 건축적 외형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영적 의식을 완벽하게 보여준 점에서 조선이 더 우월한 문화적 성취를 이룬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과거 선조들의 문화와 정신을 거침없이 설명한 오한결 작가.
문화와 예술 선진국 프랑스 출신 알랭의 자만심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삼십 분 뒤 입구에서 다시 만난 세 사람.
알랭이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몹시 허기가 지네요.”
최하늘이 식당을 검색하며 말했다.
“한식 먹을까요? 아니면 양식?”
다소 아쉬운 표정을 짓는 알랭을 발견 오한결이 말했다.
“알랭, 이 근처에 전통시장이 있는 데 가볼래요?”
알랭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너무 좋습니다. 전통시장은 그 나라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니까요. 무척 기대가 됩니다.”
“출발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