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60화 (60/202)

제60화 어두운 역사

문화재단 문이 열리고 오한결이 들어서자, 재단 직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오한결 작가님, 성공적인 개인전 축하드립니다!”

최하늘이 수줍게 다가와 꽃다발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최하늘 씨 덕분에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나영 팀장이 은근슬쩍 다가와 속삭였다.

“두 사람 뭐야?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오호호.”

오한결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최하늘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왔군요. 오한결 작가님!”

신수진 이사장이 오한결을 살포시 안았다.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신수진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오한결 작가님이 반드시 성공할 줄 알았습니다.”

신수진 이사장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한 오한결이 몸을 살짝 뒤로 빼고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가 고맙습니다. 문화재단 지원 없이는 못 했을 겁니다.”

신수진 이사장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만족스러운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좋습니다. 아참! 작가님께 소개할 사람이 있어요.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그래요? 누군가요?”

“모두 따라오세요. 지금 기다리고 있으니까.”

오한결과 직원들은 이사장을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신수진 이사장이 회의실 문을 열자, 낯익은 외국인이 벌떡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신수진 이사장이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여긴 오한결 작가. 구면이지?”

외국인이 감탄의 눈빛으로 오한결을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프랑스에서 온 알랭입니다.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물론이죠.”

오한결은 알랭의 손을 잡고 흔들며 개인전 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한국의 삼각지 거리를 프랑스의 몽마르트 언덕처럼 만들려는 나의 계획을 ‘순수한 생각’이라고 표현했다.

프랑스인으로서 몽마르트 언덕에 대한 자부심을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알랭이 모르는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 그건 오한결의 천재적인 능력!

오한결이 물었다.

“아직도 제가 순수한 생각을 한다고 믿으시나요?”

“솔직히 말하죠. ‘오한결 미술관’이라……. 여전히 허무맹랑한 계획 같군요. 하지만 모름지기 작가라면 그런 꿈 정도는 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신수진 이사장이 끼어들었다.

“알랭은 오한결 작가 작품 어땠어요?”

작품이 얘기가 나오자 알랭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오한결은 그가 꽤 솔직하고 순진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정말 대단했어요.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과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 모두 대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내공을 보여줬어요. 신인 작가라는 말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작품을 보고 감히 신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직도 믿지 못하겠네요.”

신수진 이사장이 알랭에게 윙크를 했다.

“오한결 작가를 무척 좋아하는군요.”

알랭이 너털웃음을 보였다.

“물론입니다. 저는 진정한 예술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신수진 이사장이 오한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랭은 제가 프랑스 유학 때 알게 된 작가예요. 휴가를 떠난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한국에 초대했답니다. 당연히 오한결 작가 개인전 일정에 맞춰 초대한 거죠. 알랭이 오한결 작가 작품을 꼭 봐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알랭은 프랑스 파리예술가협회 회장이거든요.”

신수진 이사장이 단호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오한결 작가님께서 알랭과 함께 서울 투어를 해주세요. 모든 경비는 최하늘 씨가 처리할 겁니다.”

누가 봐도 알랭과 엮으려는 신수진 이사장의 노골적인 계획 아닌가.

오한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슨 의도인 거죠?”

“알랭이 프랑스로 출국할 때 오한결 작가님도 함께 가시게 될 겁니다. 공모전 당선자로서 첫 번째 해외 일정은 프랑스입니다. 그곳에 가면 알랭 작가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우선 서로 친해져야겠죠?”

알랭의 서울 투어를 도와주고 프랑스에서 그의 도움을 받으라는 신수진 이사장의 계획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는 법이니까.

“좋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정을 같이 할 수 없어요.”

“저희도 그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알랭 작가에게 물으니, 오한결 작가님이 추천하는 한 곳만 같이 동행하겠다고 하네요. 그럼 오한결 작가님이 직접 한국의 미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을 정해 알랭에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이사장과 한국말로 주고받아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는 알랭은 멀뚱멀뚱 비즈니스용 미소만 짓고 있었다.

‘외국인의 한국 방문이라……. 한국의 미라…….’

오한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먼저 연락드리도록 하죠.”

“좋습니다. 기대가 아주 큽니다.”

* * *

손님들로 북적대는 소갈비찜 식당.

보글보글 갈비찜이 끓어오르자 동생이 재빨리 국물을 한 입 떠먹었다.

“캬! 기가 막힌다. 빨리 먹자고요.”

오한결이 부모님 드실 갈비를 덜면서 말했다.

“더 좋은 데 가자니까. 아쉽네.”

어머니가 말했다.

“여기만큼 훌륭한 곳이 어디 있어. 동생 얼굴에 핀 웃음꽃을 봐라. 사람은 먹고 싶은 음식 실컷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한 법이야.”

시뻘건 양념을 입에 묻혀가며 꾸역꾸역 먹는 동생을 보고 오한결이 웃음을 터트렸다.

“맞네요. 최소한 한 명은 엄청 행복한 날이네요.”

어머니가 오한결이 좋아하는 달걀 반찬을 옮기며 말했다.

“너무 자랑스럽구나. 그 어렵다는 미술 개인전도 다 하고. 내 친구들도 한결이 전시가 너무 좋았다고 난리도 아니야.”

아버지가 물을 한 컵 들이켠 뒤 말했다.

“내가 뭐랬어. 한결이는 타고난 작가라니까. 어렸을 때부터 내가 알아봤지.”

오한결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요? 제가 그랬어요?”

“그럼, 너의 천재성은 뒤늦게 나온 거란다.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밖에 없어. 그나저나, 다음 계획은 뭐니? 또 작품 들어가는 거야?”

“이번에 프랑스 출장이 잡혔어요.”

푸-!

너무 놀란 동생의 입에 있던 음식 일부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우! 더러워!”

동생이 물을 벌컥 마신 뒤 허겁지겁 말했다.

“프랑스!! 대박!! 언제 가는데?”

“이번 달 안으로 가지 않을까? 아직 확정된 일정은 없어.”

“형, 완전 성공했구나. 그래, 성공할 수밖에 없지. 형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옆에서 다 지켜봤잖아. 그 길었던 지망생 시절도 이겨내고 말이야. 성공은 당연한 거였네. 부럽다…….”

동생이 뱉어 놓은 밥풀을 어머니가 휴지로 치우며 말했다.

“한수도 노력해서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 형처럼.”

동생이 조심스레 말했다.

“형…….”

“뭔데?”

“노진홍 알지? 발레하는 친구.”

“당연히 알지. 내가 연극 단원들 발레 강습비를 노진홍에게 주고 있잖아. 근데, 너 열심히 배우고 있어? 땡땡이치면 죽는다.”

“지금 엄청 연습 중이야. 곧 발레 뮤지컬도 같이 배우기로 했어.”

“잘됐네. 열심히 해봐.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있어…….”

“……?”

“형이 후원을 좀 해줘. 진홍이도 뮤지컬 안무를 짜야 하고, 우리도 연습실을 따로 빌려야 해서…… 돈이 좀 필요해. 의상 같은 건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볼 수 있겠는데, 나머지는 손도 못 대겠어…….”

오한결이 히죽 웃었다.

“알았어. 그건 내가 해줄 수 있지. 대신 멋진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

“아!! 형!! 너무 멋있잖아!!”

* *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이 열렸다.

도슨트 알바를 하게 된 최무열을 응원하고 피카소 작품도 구경하고자 오한결과 노을, 최하늘이 한가람미술관을 방문했다.

사람들이 빽빽한 전시장 입구에서 노을이 말했다.

“이렇게 큰 전시 도슨트를 한다고? 최무열 엄청 성공했네.”

최무열을 찾으려고 오한결이 고개를 빼들었다.

“무열이가 교수님한테 인정받나 보네. 이런 멋진 기회도 얻고 말이야.”

한가람미술관을 잘 아는 최하늘이 앞장섰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가 길이 헷갈려요. 아, 화장실 다녀오실 분?”

전시장 안으로 들어온 세 사람은 두리번거리며 최무열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두 시부터 작품 설명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늦었나 봐요…….”

“그럼 우리끼리 구경하죠. 돌아다니다 보면 만나겠죠.”

“아……. 무열이가 하는 설명 듣고 싶었는데.”

작품을 구경하던 오한결이 멈춰 서서 하나의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노을과 최하늘이 근처로 다가왔다.

“이거 되게 유명한 건데. 책에서 많이 봤어요.”

오한결이 말했다.

“이건 <아비뇽의 처녀들> 작품이야.”

“아……. 굉장히 독특한 그림이네요. 얼굴도 몸도 형태가 뒤틀려 있어요.”

“20세기 통틀어 찬사와 악명을 동시에 얻은 대표적 작품이지. 이 그림은 피카소가 바로셀로나 아비뇽 거리에 위치한 매음굴을 기억하며 그린 거야. 벌거벗은 여인의 도발적인 모습과 그녀들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지지 않아?”

“근데 왜 형태를 저렇게 그렸어요? 몸을 조각내서 어설프게 붙인 것 같아요.”

“피카소하면 대표적으로 입체주의가 떠오르잖아. 이 그림이 바로 그거야. 2차원에 3차원을 담는 획기적인 시도를 한 거지. 원근법을 무시하고 하나의 면 위에 다 표현하려고 했어. 이는 회화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지.”

노을과 최하늘은 작품을 자세히 살피며 감탄을 했다.

최하늘이 말했다.

“오한결 작가님하고 미술관에 오니까 너무 좋네요. 이제 작품이 보이는 것 같아요. 피카소를 왜 한 시대를 상징하는 천재 작가로 부르는지 알겠어요.”

때마침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이크를 찬 최무열이 관람객들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최무열이 오한결 일행을 보고 살짝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자, 진짜 도슨트에게 갑시다.”

최무열은 대형 그림 앞에 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학살>입니다. 한국 전쟁을 소재로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고발한 피카소 작품입니다.”

그림은 무척이나 잔인해 보였다. 왼쪽에 공포에 질린 벌거벗은 여인들과 아이들이 보였고 오른쪽에는 총을 겨눈 군인들이 서 있었다. 한국 전쟁을 소재한 작품이라서 그런 걸까? 한국인으로서 전쟁의 잔혹함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졌다.

“피카소가 이 그림을 그린 지 70년 만에 국내 전시가 가능해졌습니다. 이 그림은 파리에서도 전시를 잘 하지 않아 굉장히 보기 힘든 작품이니 잘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최무열이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1951년 완성된 작품으로 파리 살롱 드메전에서 최초 공개됐습니다. ‘게르니카’, ‘시체구덩이’와 같이 피카소 3대 반전 회화라고 불리고 있어요. 전쟁의 피해는 사회적 약자가 입는다는 메시지를 주는 작품입니다. 특히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해서 그런지 한국인으로서 이 그림을 보는 마음이 굉장히 무겁네요.”

오한결은 최무열의 설명에 빠져든 노을과 최하늘을 바라보면 흐뭇하게 웃었다.

‘무열이가 재능이 아주 많은 아이구나.’

지금만큼은 무열이를 최고의 도슨트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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