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별의 탄생
아리 미술관 입구에 정차하는 고급 세단.
차량 뒷문이 열리고 신태진 회장과 이현미 미술관장이 차에서 내리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소정 큐레이터가 허리 숙여 정중히 인사를 했다.
신태진 회장과 이현미 미술관장은 미술관에 입장하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을 보고는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한소정 큐레이터가 말했다.
“오한결 작가님 개인전 첫날인데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고 있습니다. 국내외 언론에서도 관심이 아주 많고요.”
이현미 미술관장이 말했다.
“수고했어요. 한 큐레이터는 정말 일당백이군요. 전시 기획, 홍보, 작품 설치 및 관리까지. 모든 업무를 완벽하게 하셨어요. 이번 전시가 끝나면 반드시 상응하는 조치가 있을 것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신태진 회장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전시가 무척 궁금해 기다릴 수가 없군. 오한결 작가는 지금 어디 있나요?”
“이미 가족들과 함께 전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군요. 우리도 어서 들어갑시다.”
* * *
오한결의 전시실 입구 복도.
모든 벽면은 검게 칠해져 있었고 1m마다 설치된 조명 때문에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터널 같은 복도를 지나 전시장 입구에 이르자, 대형 스크린 세 개에서 고화질의 영상이 화면 가득 나오고 있었다.
스크린 상단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별의 탄생>
첫 번째 스크린의 영상은 곳곳에 흩어진 우주의 가스, 먼지 입자들이 별의 중심부로 모여 밀도를 증가시키는 모습이었다. 압력에 의해 타는 듯한 붉은 빛의 입자들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별의 중심으로 에너지를 이동시키고 있었다.
두 번째 스크린 영상은 에너지 방출이다. 밀도가 한계점에 이르자, 핵융합이 발생하고 별의 중심부를 기점으로 에너지가 상하로 뻗어 나간다.
세 번째 스크린 영상은 중력의 균형과 별의 탄생이다. 방금 탄생한 어린 별 주위로 남아 있는 가스와 먼지들이 회전하며 원반을 형성하고 있다. 별의 자체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동안 안정적 상태로 빛과 열을 방출한다. 그렇게 별이 탄생한다.
오한결의 부모님은 <별의 탄생> 영상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가 말했다.
“별의 탄생 과정을 이렇게 영상으로 만들다니, 너무 신기하구나.”
오한결은 두 번째 스크린에서 핵융합이 발생하는 장면을 보며 말했다.
“제 작품에서 별은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우주를 구성하는 작은 단위면서도,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의 상징이에요. 평면 그림에 그렸던 작은 점을 동료 작가의 도움으로 이렇게 영상으로 만들 수 있었어요.”
동생 오한수가 물었다.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자세히 보니까, 그래픽 프로그램이 아닌 거 같아. 설마…….”
“당연히 직접 그렸지. 그림을 스캔해서 영상화한 작가는 따로 있고.”
놀란 오한수가 입을 벌린 채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오한결 작가!”
오한결 가족이 일제히 뒤돌아보자, 신태진 회장과 이현미 미술관장의 모습이 보였다.
신태진 회장이 두 손을 벌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수가, 정말 기대 이상입니다. 이렇게 영상을 이용할 줄 몰랐습니다. 페인팅 위주로 작업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서정익 작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오호라, 서정익 작가라면 천재 소리를 듣는 작가 아닙니까? 천재와 천재의 만남이라니. 이런 멋진 작품이 나오는군요. 별의 탄생이라……. 기가 막힙니다.”
아버지 오준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결아, 설마……. 저분은 명일그룹 회장님 아니냐?”
오한결이 대답하기 전에 신태진 회장이 먼저 말했다.
“이런, 인사가 늦었습니다. 명일그룹 회장 신태진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 이현미고요. 저희 부부는 오한결 작가의 열렬한 팬입니다. 정말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어요.”
이현미 미술관장이 고개를 숙이자, 아버지와 어머니도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부족한 한결이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하다니요. 오히려 자랑하셔야죠. 오한결 작가의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제가 장담하건데, 곧 오한결 작가가 세계무대에서 그 뜻을 펼치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볼 땐 이미 이 영상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 능력을 증명한 것 같으니까요.”
신태진 회장의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흐뭇하게 웃었다.
신태진 회장이 한소정 큐레이터에게 물었다.
“오늘 전시 구성이 어떻게 되나요?”
“총 4가지로 구성돼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는 방금 보신 <별의 탄생>이고요, 그 다음에는 이번 전시의 메인인 <그리움, 다시 시작> 미디어 아트 전시입니다. 전시실을 빠져나가면 문화재단 공모전 당선 원작인 페인팅 작품을 볼 수 있고요. 모든 동선에 안내원을 배치하여 관객들이 헷갈리지 않게 준비해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전시장 로비에서 오한결 작가님의 기자회견과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준비돼 있습니다.”
“미디어 아트 전시라니! 저기 보이는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면 되겠군요!”
“네, 맞습니다. 회장님.”
이현미 미술관장이 회장의 흥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소정 큐레이터, 우리에게 작품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 오한결 작가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잖아요. 방해해선 안 되겠죠. 회장님?”
아쉬운 표정의 신태진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맞지. 오한결 작가, 우리 부부는 조용히 작품 구경하고 가겠네. 나중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볼 테니까, 각오하게나.”
회장 부부는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건네고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생 오한수가 입을 크게 벌리고는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형은 밖에서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인맥이 너무 후덜덜 하잖아.”
오한결이 어깨를 으쓱하며 부모님을 쳐다봤다.
아버지가 엄지를 추켜세우며 말했다.
“멋지다, 오한결.”
복도 끝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왔다.
“오한결 작가님!”
노을, 최무열, 서정익 작가가 목에 ‘STAFF’라고 적힌 안내 명찰을 달고 나타났다.
오한결이 명찰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스탭이라니, 어떻게 된 거야?”
최무열이 흥분하며 말했다.
“관객들한테 직접 작품 설명해주는 업무야. 우리가 자원했어. 비록 보조작가로 참가했지만 그래도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본 건 우리잖아. 우리가 작품 해설에 제격 아니겠어? 이것도 아무나 안 시켜주더라고. 그래서 최하늘 누나한테 부탁 좀 했지.”
오한결이 궁금한 건 서정익 작가였다. 그의 성격상 안내 스텝을 자원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한결의 눈빛을 읽은 서정익 작가가 변명하듯 말했다.
“나도 해보고 싶었어……. 작가는 원래 여러 가지 경험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동안 너무 안 했지 뭐……. 콜록, 콜록. 왜 기침이 나지…….”
어머니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친구들은 하나 같이 선남선녀들일까. 아들을 많이 도와줬다고요.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 한 번 집으로 오세요. 식사 대접하고 싶어요.”
“넵! 오한결 작가님하고 같이 작업한 저희가 엄청난 영광이죠. 하하.”
휴대폰 통화를 마친 노을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아트화랑 홍철수 사장님하고 홍미숙 언니도 미술관에 도착했다고 하니까, 우린 그들을 마중 가봐야 할 듯. 그럼 오한결 작가님은 가족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 이따가 ‘작가와의 만남’하고 기자회견 있으니까, 그때 보자고. 절대 어디로 도망가면 안 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사람이 우르르 사라져 버렸다.
동생 오한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었다.
“형, 의외로 친구들이 많네. 아싸인 줄 알았는데.”
오한결은 복도 끝으로 멀어지는 세 사람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친구이기도 하지만, 예술가 동료들이지. 저 친구들은 진짜 멋진 예술가들이야.”
* * *
메인 전시실로 들어간 오한결 가족.
부모님과 동생은 할 말을 잃고 입을 떡 벌린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닥과 천장 그리고 모든 벽면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마치 스크린으로 도배한 방 안으로 들어간 느낌이랄까.
영상의 배경은 짙은 어둠의 우주였고 그 위로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왼쪽 벽면 스크린에는 우주의 기체와 먼지들의 집합체인 성간운이 오묘한 형태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별들 사이에 성간운의 존재는 별의 탄생과 죽음을 뜻하는 시간성을 의미한다.
오한결이 말했다.
“여기 반짝이는 모든 별은 제가 동료들과 함께 직접 그린 거예요. 제 작품에서 별은 그리움을 상징해요.”
오한결의 설명은 자연스레 삼각지 화랑거리로 이어졌다.
설명을 모두 들은 아버지 오준근이 옛 추억을 회상하듯 말했다.
“그래, 기억나는구나. 고향 친구가 서울에 갔다가 용산 근처에서 그림 하나를 샀다고 자랑한 적이 있었지. 거기가 바로 삼각지 화랑거리였나 보구나.”
어머니 박선희가 물었다.
“근데 왜 지금은 생소한 곳이 됐지? 아! 한결이 작품에서 별이 그리움이라고 했잖아. 그럼 그게 삼각지 화랑거리 사람들의 그리움인가? 옛날 화려한 시절에 대한?”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한때 미국과 유럽으로까지 작품을 수출했던 화랑거리는 1990년대부터 쇠퇴기에 접어들었어요. 저렴한 중국산 그림의 등장으로 수출길이 막혀 버린 거죠. 화가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림 시장은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렸어요.”
오한결은 현재 화랑거리의 회색 건물과 지저분한 담벼락 그리고 개성 없는 골목길을 떠올렸다. 이제 화랑거리라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 그 누구도 그곳을 보고 예술을 위한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머니가 나직이 말했다.
“그곳 상인들이야말로 정말 상심이 컸겠네. 그때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겠어.”
아버지가 말했다.
“누구나 가슴에 품은 전성기 하나쯤은 있잖아. 내가 볼 땐 삼각지 화랑거리의 옛 추억은 상인들만의 기억이 아니라 대한민국 미술계가 기억하고 싶은 화려했던 과거가 아닐까?”
오한결은 아버지 말에 감동했다.
“맞아요.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거리가 있어야 한다고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예술가를 다시금 한곳에 모을 수 있다면, 그들이 제2의 고향으로 여길만한 곳이 생긴다면 한국 예술은 충분히 발전하고도 남을 거예요.”
동생이 말했다.
“오한결 작가의 ‘삼각지 화랑거리 프로젝트’구먼.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을 상대로 경쟁할 수 있겠어?”
“물론. 할 수 있지.”
오한결이 손가락으로 별을 가리켰다.
“구슬같이 동그랗고 반짝이는 저 별은 그냥 그려진 게 아니야. 난 화랑거리 사장님들의 옛 추억을 단순히 옮기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새겨 넣기 위해 노력했어. 방법은 단순해.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느끼고 별을 그릴 때 손끝에서 그 간절함이 느껴지면 돼. 진심이 갖는 힘은 언제나 대단하거든.”
부모님과 동생은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다시금 바라봤다.
스크린 속 별들이 반짝 일 때마다 왠지 모를 울렁이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간절함. 그리움.
그리고 별의 탄생.
“밖에 페인팅 전시가 돼 있어요. 이제 그만 나가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