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친환경 작업
오한결, 노을, 최무열이 아트화랑을 찾았다.
때마침 오한결 작품에 도움을 줬던 화랑거리 사장들이 모여 있었다.
“이게 누구야! 우리 작가님 오셨구먼.”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어. 화랑거리를 주제로 한 작품이 공모전 1등을 하다니. 이건 화랑거리의 자랑 아닌가.”
“난 실물을 보고 싶은데, 오한결 작가가 좀 보여주면 안 될까?”
오한결이 살짝 당황스러워하자, 홍철수 사장이 끼어들었다.
“오한결 작가님이 곧 개인전 한다고 들었는데, 다들 조금만 기다리시게.”
오한결이 재빨리 대답했다.
“개인전에 사장님들 꼭 초대할게요. 오셔서 응원 많이 해주세요.”
모두 열렬한 박수를 보내자 오한결이 쑥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화랑거리 사장님들 덕분에 당선됐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자, 최무열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이렇게 사장님들이 모인 건 처음 봐요.”
“화랑거리가 삭막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이렇게 사장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있었네. 학생들도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말을 해보시게.”
침묵이 이어지자 김영숙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삼각지 화랑거리, 하면 뭐가 떠오릅니까? 미술 아닙니까? 하지만 누가 이곳을 미술 거리로 보겠습니까. 가장 먼저 할 일은 거리에 미술적 요소를 넣는 겁니다.”
“미술이라면, 벽화나 조각이 대표적일 텐데. 화신벽화 김일중 사장에게 부탁해볼까?”
홍철수 사장이 손사래를 쳤다.
“김 사장은 요즘 몹시 바빠. 여기 오한결 작가 덕분에 주문이 끊이질 않고 있어.”
“그럼, 오한결 작가가 해주면 안 될까? 그럼 기가 막힌 벽화가 나올 텐데.”
“무슨 소리! 오한결 작가가 요즘 얼마나 바쁜데.”
오한결이 말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작가를 추천해도 될까요? 제가 무척 신뢰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요? 그럼 너무나 고맙죠.”
오한결이 노을과 최무열을 가리켰다.
“여기 두 사람이요.”
화랑 사장들이 놀란 표정을 짓자, 오한결이 말을 이었다.
“모르셨겠지만, 두 사람은 훌륭한 아티스트입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노을은 스트리트 아트를 하고 있고, 최무열은 열정과 실력이 출중한 미대생입니다. 제가 제안을 하나 할게요. 여기 두 사람에게 조각을 맡겨보면 어떨까요?”
사장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노을과 최무열을 쳐다봤다.
“거기 두 사람도 작가였구나. 오한결 작가와 친한 걸 보니 신뢰해도 되겠는걸.”
“잘 됐군요. 오한결 작가가 추천까지 했는데 당연히 잘하겠죠.”
노을과 최무열이 굳은 얼굴로 오한결을 쳐다봤다. 오한결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였다.
노을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기회긴 한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무열이는 어때?”
“누나! 난 이번 프로젝트 꼭 하고 싶어. 실력을 증명할 기회가 온 거 같아. 그리고 누나랑 공동 작업 해보고 싶었거든. 진짜 재밌을 거 같아.”
노을이 오한결을 바라봤다.
“우리가 할 수 있겠죠?”
“물론이지. 그리고 필요하면 언제든 도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홍철수 사장이 기분 좋게 말했다.
“이야, 내가 다 기쁘구나. 두 사람 덕분에 화랑거리가 예술의 거리로 변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어.”
홍철수 사장이 다른 화랑 사장들을 향에 말을 이었다.
“어떤 방향으로 제작했으면 하나요?”
김영숙 사장이 먼저 말했다.
“메시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품에서 화랑거리의 무한한 잠재력을 느낄 수 있고, 이곳이 대한민국, 아니 세계 최고의 예술 거리라는 그런 메시지요.”
서정욱 사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단순한 게 좋아요. 꿈과 욕망이 표출된 멋진 작품이면 좋겠어요.”
오한결이 말을 더했다.
“공공성과 예술성 모두 충족해야겠죠. 여기 노을 작가는 폐자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요. 즉, 재활용 소재를 이용하는 건데, 환경을 생각하는 시대적 요구에도 맞을 겁니다.”
“폐자재라……. 흥미롭구먼. 공공성과 예술성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재료기도 하고.”
노을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최무열을 바라봤다.
“괜찮겠어? 그 소재를 사용해도?”
최무열이 환하게 웃었다.
“물론, 나는 너무 좋은데. 지용호 작가처럼 작업해도 좋을 거 같아.”
“지용호 작가?”
서정욱 사장이 호기심을 보였다.
“오호라, 지용호 작가를 아나 보군. 폐타이어를 활용해 작품 활동하는 작가지. 최무열 학생은 아는 것도 많군요.”
“아……. 학교 선배라서요. 작품을 보러 간 적이 있거든요. 솔직히 노을 누나 작품을 보면 지용호 작가 생각이 나던데.”
노을이 혼란스러워하자 오한결이 나섰다.
“내가 설명해줄게. 나도 지용호 작가를 잘 알거든.”
“역시! 오한결 작가님.”
“지용호 작가는 폐타이어로 작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아티스트야. 2007년 뉴욕 필립스경매에서 ‘상어’라는 작품이 14만 5천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억 7천만 원에 낙찰됐어. 그 이후 작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최무열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움찔하자 오한결이 말을 하라고 배려해줬다.
“내 설명이 틀리면 오한결 형님이 지적해 주세요.”
최무열은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지용호 작가는 ‘뮤턴트’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어요, 뮤턴트라는 말이 돌연변이 혹은 변종이라는 뜻이거든요. 용머리에 돼지 코를 붙이거나, 목이 긴 늑대를 표현하기도 해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과감하게 변형과 왜곡을 주저하지 않는 거죠. 현대인들의 불안과 인간에 의해 위험에 처한 야생 동물을 뜻한다고 해요. 사람들은 지용호 작가 작품을 독보적이고 강렬한 검은 조각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오한결이 말을 보탰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섬세한 근육 표현이 눈에 띄는데 그런 디테일이 긴장감과 에너지를 만들지. 작가는 모두 완벽하게 표현해냈어.”
노을이 부담을 느끼며 말했다.
“들어보니 굉장한 작가인 거 같아요. 제가 그런 비슷한 작업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할 수 있지.”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 노을이 주저하자, 최무열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누나, 이건 기회야. 우리는 할 수 있어.”
“알았어. 해볼게…….”
김영숙 사장이 엄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홍철수 사장님은 복도 많네요. 저런 착하고 예쁜 작가들이 따르니 말이죠.”
“맞아요. 제가 복이 좀 많네요. 하하.”
* * *
한소정 큐레이터가 미술관장실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현미 미술관장의 부임 후 첫 보고인 만큼 깔끔하고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똑. 똑. 똑.
“네, 들어오세요.”
한소정 큐레이터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류를 검토하던 이현미 미술관장이 쓰고 있던 돋보기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확인할 서류들이 많군요. 고생이 많았겠어요. 이렇게 업무가 많을 줄 몰랐습니다.”
잔뜩 긴장한 한소정 큐레이터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관장님. 우리 팀원들 모두 고생한 결과인걸요.”
이현미 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요. 직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복지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보고하러 온 사람을 이렇게 세워두다니. 저기 소파에 앉으세요. 저도 그리로 가리다.”
이현미 미술관장이 소파에 앉자, 한소정 큐레이터가 보고서를 내밀었다.
“오한결 작가님 개인전 진행보고입니다.”
이현미 미술관장이 천천히 보고서를 살폈다.
“작품 설치가 이미 완료됐군요.”
“어제 설치가 끝났습니다. 오한결 작가와 서정익 작가가 무척 고생했습니다. 다행히 작가들이 만족하는 수준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아무런 문제없이 완료됐다는 건 한소정 큐레이터님이 업무를 잘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전시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다음 주 금요일입니다.”
“그렇군요. 저는 이번 전시를 따분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오한결 작가님을 환영하는 특별 이벤트로 꾸미고 싶습니다.”
“네……?”
“일종의 파티인 거죠. 교양이 묻어나는 기념 전시도 좋지만, 저는 시끌벅적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즐거운 파티장에 온 것처럼 말이죠.”
한소정 큐레이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이제껏 그런 전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미술관인데…….”
“그러니까, 더 해야죠. 미술관답게 멋지고 신나게 말이죠.”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현미 미술관장이 보고서를 뒤적이며 물었다.
“그리고 홍보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
“국내외 언론사에 보도자료 보냈고요, 인터넷에 홍보 동영상을 게재할 예정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SNS를 많이 하니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요 타켓은 20대에서 30대로 합시다.”
“네? 우리 미술관은 다양한 연령대가 찾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주요 타겟일 뿐이에요. 또 모르잖아요? 나이 드신 분들도 좋아할지.”
“네. 말씀대로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수고해주세요.”
* * *
오한결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 띠링 문자 알람이 울렸다.
[최무열 : 대박 사건. 나 좀 도와줘.]
[노을 : 헐,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최무열 : 나 알바 하나 하게 생겼어.]
[오한결 : 혹시 벽화 알바는 아니지? 그럼 난 못 도와준다.]
[노을 : 어머, 벽화 알바 하는 거야? 그거 완전 꿀인데. 화신벽화 알바 했을 때가 행복했는데. 난 도와줄 수 있음.]
[최무열 : 에이, 그런 거 아냐. ‘도슨트’ 알바가 들어왔어.]
’도슨트’란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관람객들을 상대로 전시와 작품 해설을 설명해 주는 사람을 말한다.
[노을 : 어머! 어디서 하는데?]
[최무열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교수님이 추천해줬어.]
[오한결 : 이야, 정말 잘 됐다. 어떤 전시인데?]
[최무열 : 놀라지마……. 피카소 작품!]
[노을 : 어머!!! 대박!!]
[오한결 : 피카소 작품이면, 그건 전문 도슨트가 할 텐데?]
[최무열 : 맞아. 그러니까 기적이지. 나 정말 잘하고 싶어. 근데 너무 걱정돼. 벌써부터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노을 : 무열이는 잘할 거야. 똑똑하잖아.]
[오한결 : 그래, 공부하면 되지. 피카소 작품은 워낙 유명해서 참고 자료도 많을 거야.]
[최무열 : 다들 고마워. 그래서 말인데, 오한결 형님께 부탁이 있어.]
[노을 : 설마…….]
[오한결 : 설마…….]
[최무열 : 과외 좀 해줘. 오한결 형님한테 배우면 도슨트를 정말 잘할 자신 있거든.]
[노을 : 너무 부럽다. 나도 피카소 관심 많은데.]
오한결이 피식 웃으며 타이핑을 했다.
[오한결 : 알았어. 해 줄게. 노을도 같이 배우자.]
[최무열 : 나이스! 너무 고마워요. 형님!]
[노을 : 어머, 대박! 우리 언제 모여요?]
[오한결 : 도슨트 언제 하는데?]
[최무열 : 다음 주요. 제가 사실 급하게 빵구 때우는 거라…….]
[노을 : 어떡해……. 준비할 시간이 많이 없잖아.]
[오한결 : 내일 모두 아뜰리에로 와. 거기서 가르쳐 줄게.]
[노을 : 개인전 준비로 바쁘잖아요. 할 수 있을까요?]
[오한결 : 우리가 언제 시간 쫓겨 작업했어? 알잖아.]
[최무열 : 내일 바로 가겠습니다!]
[노을 : 낼 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