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성간운
아리 미술관에 도착한 오한결과 서정익 작가.
오한결의 안내에 따라 개인전이 열릴 3층 5전시실로 향했다.
5전시실에 도착하자 서정익 작가가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
“불이 꺼져 있네요. 사무실에 얘기해서 불을 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너무 어두운데…….”
오한결은 망설임 없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제 작품은 어두워야 보이거든요. 절 믿고 따라오세요.”
서정익 작가가 잠시 주춤하더니 오한결을 따라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빛 한 줄기 없는 전시실에 들어선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불안해진 서정익 작가는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려고 했다. 그걸 눈치를 챈 오한결이 말했다.
“그러지 마세요. 어두워야 합니다.”
서정익 작가가 짜증을 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혹시 저를 놀리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죠? 만약 그렇다면…….”
“제 작품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공모전 당선작이요.”
“그게…….”
오한결은 서정익 작가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서정익 작가가 움찔했다.
“지금 뭐하는…….”
“제 작품은 무한한 어둠을 품은 우주가 배경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불 꺼진 전시실에서 함께 공간을 느껴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전시는 단순 회화가 아니라 공간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로 표현할 거잖아요.”
시간이 지나자 어둠에 익숙해진 두 사람은 어렴풋이 서로의 형체를 알아봤다. 오한결이 손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제 그림 속 별들은 그리움을 상징합니다.”
삼각지 화랑거리의 역사와 그곳에서 꿈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했던 수많은 예술가의 삶 그리고 그들의 몰락. 아직도 화랑거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오한결은 빠짐없이 설명했다.
오한결의 상세한 설명을 듣던 서정익 작가는 마치 별들이 눈앞에서 반짝이는 것 같은 환상을 보았다. 서정익 작가는 오한결의 당선작을 이미 봤고, 그 그림이 주는 느낌을 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단순하고 뻔한 그림에 자신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서정익 작가는 반짝이는 환영을 지우고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이번엔 오한결의 환영이 나타났다. 그가 몹시 불편한 자세로 어두운 배경에 별의 반짝임을 하나하나 찍는 모습이 보였다.
눈을 뜬 서정익 작가가 몹시 화를 냈다.
“왜 타인의 그리움까지 신경 쓰죠? 그렇게 하면 그 사람들이 알아 주니까 그런 건가요? 인정받고 싶나요? 매우 이타적인 사람, 그게 오한결 작가의 콘셉트인가 보군요.”
오한결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아마도 그럴지도 모르죠.”
“…….”
“서정익 작가님은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외로움을 아나요? 그리운 시절과 대상이 있나요? 어둠 속 홀로 반짝이는 모든 별은 지치고 외로운 사람의 마음입니다. 전 서정익 작가님이 제 말에 깊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서정익 작가가 비웃었다.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마세요. 전 그딴 거 없습니다.”
“그래요? 근데 왜 몸을 떨고 계신가요?”
지적을 받은 서정익 작가는 더욱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만!! 그만해!! 어두운 공간에 나를 몰아넣고 그딴 감정적인 말로 혼란스럽게 하고 싶었나 보지! 절대로 그렇게 당하지 않을 거야!”
오한결이 거칠게 반응하는 서정익 작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서정익 작가님 개인전에 갔었어요.”
“…….”
“그리고 작업실에 있는 작품들도 유심히 봤고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는 잘 알 것 같더군요. 그건 처절한 외로움과 혼란스러운 정체성입니다.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에 대한 강력한 의문이었다고요.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있는데, 제가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요.”
바닥에 주저앉은 서정익 작가가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기 작품의 숨겨진 이면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작품을 통해 소리쳤지만, 한편으론 그 누구도 그 마음을 몰랐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 부끄러움과 적개심이 동시에 일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서정익 작가가 이윽고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맞아요. 솔직히 말할게요. 제가 당신을 거칠게 대했던 이유는 당신의 작품을 보면 제가 외면하고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자꾸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미치도록 싫고 도망치고 싶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그리운 나의 과거죠.”
그는 무언가를 회상하는지 긴 침묵을 지켰다. 오한결은 묵묵히 그 침묵을 버텨냈다. 마침내 서정익 작가가 입을 열었다.
“저는 가족이 없습니다. 10살 때 끔찍한 교통사고가 있었어요.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저 혼자 살아남았죠. 부모님 재산이 꽤 있어서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었어요. 하지만 내 삶은 거기서 멈춰 버렸죠. 부모님과 함께했던 과거가 너무 그립다가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게 과거 같아 몹시도 증오하고 있죠.”
오한결은 신화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서정익 작가의 작품이 생각났다. 신화는 인간의 원형으로 자신의 기원을 향한 첫 번째 발자취로 해석된다. 그리고 에곤 실레의 그림을 닮은 그의 작품들. 무척 기괴했고 사실적인 누드화 속 인물들은 팔다리가 잘려 있었다. 그건 서정익 작가가 홀로 감당하고 있는 삶의 고통이었다.
오한결은 단호하게 말했다.
“서정익 작가님은 예술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 왔어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유일한 창구였을 겁니다.”
“……그렇죠. 예술 활동이 아니었으면 저는 어떻게 됐을지도…….”
오한결은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로 벽을 비추었다.
“저와 함께 이 어둠을 밝힐 별들을 그려 봅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관객은 그것을 읽어 나가는 거잖아요. 작가님의 외로움 그리고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이 전시장에 새겨 봐요.”
잠시 후 서정익 작가가 말했다.
“좋아요. 해 보고 싶어요.”
오한결이 흐뭇하게 웃었다.
“잘됐네요. 그럼 사무실에 들러 한소정 큐레이터를 뵙고 갈까요? 개인전 방향에 대한 보고도 하고, 우리가 함께 작업할 거라는 소식도 전해 드려야죠.”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어요.”
“말씀해 보세요.”
“오한결 작가님 작품은 평면적 표현법인 회화에나 어울립니다. 단순하게 어두운 우주 배경에 별들이 반짝이는 것만으론 부족해요. 미디어 아트다운 작품이 되려면 작품을 보강해야 합니다.”
흥미를 느낀 오한결이 말했다.
“이건 어떤가요? 디지털 툴보다 손 그림이 주는 감동이 있죠. 그래서 영상으로 표현될 모든 별들을 직접 페인팅으로 그릴 예정입니다. 제 동료들과 함께요. 영상으로 구현되는 기술적인 부분은 서정익 작가님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지요.”
“그걸로는 부족해요. 오한결 작가님은 미디어 아트에 대해 잘 모르시나 봐요.”
잠시 당황한 오한결이 웃었다.
“제게 설명을 좀 해 주시겠어요?”
“미디어 아트는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움직임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시각 예술이죠. 그래서 작품의 맥락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관객과 소통이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사운드에 대한 개념도 있으면 더 좋고요.”
“시간과 공간이라……. 제 작품이 갖는 한계가 ‘시간성’이 되겠군요. 그걸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까요?”
“저는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공간이 주는 압도적 중압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생각한 연출은 거대한 스크린으로 관객을 둘러싸는 거죠. 관객은 마치 우주 한가운데 있다고 느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추가했으면 하는 게 있는데, 그건 ‘성간운’입니다. 형형색색의 우주 구름이 넓게 퍼져 흐르는 거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느리지만 여러 모양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겁니다. 이로써 시간성을 획득하는 거죠.”
오한결이 말했다.
“성간운이라면, 우주의 기체와 먼지들이 밀집한 건데……. 일반적으로 별이 탄생하거나 죽음에 이를 때 주위로 많은 먼지구름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죠. 별의 탄생과 죽음으로 시간성을 표현하자는 얘기군요.”
오한결의 지식에 놀란 서정익이 말했다.
“맞아요. 그렇게 시간성을 표현해 보고 싶어요.”
“좋습니다! 그럼, 사운드는 제가 작곡하죠.”
“네? 직접 작곡을 한다고요?”
“네. 제 작품이니까, 제가 하는 게 맞겠죠. 서정익 작가님은 서라운드 시스템을 구축해 주세요.”
* * *
오한결과 서정익 작가가 전시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향하는데, 익숙한 실루엣의 여성이 복도 끝에서 나와 그들에게 다가왔다.
“어머! 오한결 작가님 아닌가요? 그 옆은 서정익 작가고요.”
오한결이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여기서 뵙네요.”
서정익 작가는 어색한지 고개만 까딱 끄덕였다.
명일그룹 신태진 회장 아내인 이현미가 서정익 작가에게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에요. 서정익 작가님. 잘 지내셨죠?”
“네…….”
이현미가 오한결을 쳐다봤다.
“두 분이 꽤 친하신가 봐요. 꼭 붙어 있네요.”
서정익 작가는 오한결에게 마음을 열었는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서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서정익 작가가 얼굴을 붉히며 오한결과 거리를 두었다.
오한결이 말했다.
“앞으로 더 친해질 것 같습니다. 하하.”
탁. 탁. 탁.
그때 성급한 구둣발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더니, 한소정 큐레이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이현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오셨어요? 관장님.”
오한결과 서정익 작가는 몹시 놀랐다.
“미술관장님? 분명 다른 분이셨는데…….”
이현미가 말했다.
“한 큐레이터님 그렇게 말하면 두 작가님 놀라시잖아요. 그리고 아직 미술관장도 아닌데요. 다음 달에 부임하면 그때 소개해도 늦지 않을 것을.”
한소정 큐레이터가 오한결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이현미가 말했다.
“제가 두 분 팬인 거 아시나요? 정말로, 두 작가님 때문에 미술관장으로 올 결심을 했답니다. 제가 실력 있는 신인 작가들에게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스스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미술 쪽으로 꽤 오랫동안 공부했답니다. 젊었을 때는 미술관 운영 쪽으로 실무 경험을 쌓았고요.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시면 제게 말씀해 주세요. 힘껏 돕겠습니다.”
오한결이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이현미 관장님.”
이현미가 웃자, 한소정 큐레이터도 눈치껏 따라 웃었다.
“호호호…….”
* * *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오한결은 미뤄뒀던 소설책을 탐닉하고 있었다. 그는 고전을 특히 좋아했는데, 고전을 읽으면 한 시대를 이끌었던 천재작가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로 된 ‘오페라의 유령’ 원서를 읽고 있는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네.”
어머니가 과일을 들고 들어왔다.
“책 보는구나. 내가 방해했니?”
오한결은 책을 덮고 과일 쟁반을 두 손으로 받았다.
“아니에요. 그냥 쉬고 있었을 뿐이에요.”
어머니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요즘 바쁜 것 같던데, 일은 잘 되고 있고? 개인전 준비한다며.”
오한결이 흐뭇하게 웃었다.
“아주 잘 되고 있어요. 아주 능력 있는 동료를 만났거든요.”
“그때 아버지 병원에 같이 왔던 친구를 말하는구나.”
어머니는 최무열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한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다른 친구예요. 서정익 작가라고 굉장한 능력의 예술가죠.”
“잘됐구나. 우리 아들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된다니. 오늘 날씨도 좋은데, 밖에 나가보지 그러냐. 집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바깥바람도 쐬고 그래. 내가 보니까 항상 작업실 아니면 방에만 있는 것 같던데.”
오한결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좋아요! 같이 나가요, 어머니.”
그러자 어머니는 무척 당황했다.
“나랑? 왜? 친구들하고 가거라. 쉬는 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오한결이 팔을 가볍게 잡아당기자 어머니가 못 이기는 척 일어났다. 오한결이 말했다.
“오늘은 어머니 추천 장소로 갈게요. 어디를 가면 즐겁게 쉴 수 있나요?”
어머니가 못 이기는 척 웃었다.
“얘는, 하여간 못 말려. 글쎄다. 내 친구가 그러는데, 선유도가 그렇게 좋다더라. 한강 공원도 바로 앞에 있고.”
“아, 선유도! 가시죠.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