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익스트림 스포츠
급하게 택시를 타고 경부대병원에 내린 오한결과 박선희. 무채색 건물의 압도적 위압감에 두 사람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오한결이 무겁게 자리 잡은 침묵을 깨고 박선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표정한 박선희는 대답 대신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 문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쉽게 문을 열지 못하고 서성거릴 뿐이었다. 이를 답답하게 쳐다보던 간호사가 오준근 환자 병실이 맞는다고 말한 뒤 손수 문을 열어주었다.
서서히 2인실 병실 안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창가 침대에 차분히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햇살이 창을 뚫고 들어와 아버지를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너무 평화로워 보여 한적한 주말 오후 낮잠을 자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흐느끼던 박선희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몸을 휘청거리자, 오한결이 재빨리 어머니의 어깨를 부축했다.
정신을 차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다가가 울먹이며 말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다친 거야! 여보, 정신 좀 차려봐요!”
인기척을 느낀 오준근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힘겹게 눈을 뜨고 말했다.
“당신 왔어? 근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당신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오준근이 하품을 크게 하며 말했다.
“오랜만에 깊게 잠들었는데 왜 깨우고 그래? 한결이도 왔구나. 어서 오너라.”
오한결은 왼손에 붕대를 칭칭 감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봤다.
“아버지, 어떻게 된 일이에요? 병원에서는 아버지가 입원했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어 버리고, 아버지 핸드폰은 꺼져있고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병문안 온 가족들의 놀란 표정을 보고, 이제야 사태 파악한 오준근이 변명하듯 말했다.
“아, 내가 전화한다는 걸 깜빡하고 잠들어 버렸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팔이 좀 부러졌을 뿐이야.”
박선희가 황당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노려봤다.
“지금도 부러져 있는 상태인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말을 해도…….”
오한결이 오준근 팔에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어쩌다가 다치셨어요?”
“등산하다가 넘어졌어…….”
어머니가 인상을 팍 구기며 소리쳤다.
“내가 등산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게 얼마나 위험한 운동인 줄 아세요? 기어이 이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군요. 아, 너무 속상해요. 아니, 왜 경사진 곳을 올라가고 그래요? 평평하고 넓은 운동장이나 몇 바퀴 돌 것이지.”
“……등산이 왜 위험한 운동이야? 당신도 참.”
“말은 바로 합시다. 등산만 안 갔으면 이런 꼴을 당하겠어요? 어디 봐요. 많이 다쳤어요? 팔 말고 다른 곳은 괜찮아요?”
“괜찮대도……. 아아, 아파.”
* * *
아버지 소식을 듣고 학교에서 병원으로 곧장 달려온 오한수.
오한수의 심장은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병실 문을 열자, 늦은 오후의 붉은 햇살이 병실을 가득 물들이고 있었다.
창가 자리에 누워있는 아버지가 보였고 그 옆에 어머니와 형이 아버지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눈물이 앞을 가린 오한수는 차마,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천천히 침묵을 지키며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향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엥? 엥? 뭐야!”
부모님과 형은 고개를 숙이고 유튜브 개그 영상을 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동생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해. 다들?”
오한결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우하하하. 한수야 너도 이것 봐봐. 엄청 웃기다.”
오한수가 폭발했다.
“뭐야! 아버지 다쳤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데!!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서로 눈치 게임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오한결에게 물었다.
“동생한테 다시 전화 안 했니?”
“……깜빡했네요. 미안, 한수야…….”
긴장이 풀린 동생이 침상 모서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어린아이처럼 울먹였다.
“너무 놀라서, 죽는 줄 알았잖아요. 나한테 정말 이러기에요?”
오한결이 변명하듯 주절거렸다.
“다 큰 어른이 왜 울고 그래. 나도 아버지가 얘기 안 해줘서 아까 놀랐었어. 그러니까 화 풀어.”
동생이 날카로운 눈빛을 발사하자, 오한결이 입을 다물었다.
박선희가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게 다 등산 때문이에요. 위험한 운동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시는 등산 가지 마세요.”
아버지가 흥분하며 대꾸했다.
“아니, 얘기가 왜 또 그쪽으로 가. 등산이 왜 위험한데? 전 국민이 하는 운동이잖아. 얼마나 건전하고 몸에 좋은데. 나처럼 산 좋아하는 사람은 산을 주기적으로 타줘야 해요. 안 그러면 마음에 병이 나.”
오한결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안전하게만 다니면, 등산이 위험한 건 아니에요. 다음부턴…….”
어머니가 꽥 소리를 질렀다.
“어머! 등산은 이제 안 돼. 언제 넘어질지 모르잖니.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모기떼에 습격당할 수도 있어. 봐,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평소 어머니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가족의 균형을 잡아주시던 분이셨는데, 얼마나 놀라셨으면 저렇게 흥분하고 계실까. 오한결은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고 아버지께 속삭였다.
“아버지, 오늘은 어머니 말씀이 백번 맞는 거 같아요.”
“…….”
드르륵.
침상을 에워싼 커튼을 신경질적으로 치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옆 침대에 20대로 보이는 남자 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발……. 조용히 좀 해주세요. 네?”
당황한 아버지가 공손히 말했다.
“어이구, 미안합니다. 같이 쓰는 병실인데, 우리 가족이 너무 시끄럽게 굴었군요.”
어머니도 거들었다.
“어머, 다른 환자가 있는 줄 몰랐네요. 이거 너무 미안해서 어쩌죠. 가만있어보자…….”
어머니가 동생을 쳐다봤다.
“과일하고 간식 좀 사 와라. 저분하고 같이 먹을 거니까, 많이 골고루 사야 한다.”
어머니가 남자 환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호자는 언제 와요? 이따가 과일 같이 먹어요.”
“……안 먹어요.”
“…….”
청년은 눈물을 글썽이며 손에 꼭 쥐고 있던 하늘색 담요를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오한결은 청년을 지그시 바라봤다. 담요를 자신의 유일한 보호막처럼 여기는 저 청년에게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상처받은 아이의 행동과 너무나 유사해 보였다.
* * *
몇 시간 뒤, 중후한 백발의 의사가 네 명의 의료진을 데리고 회진 차 병실에 들어왔다.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는데도 불구하고 청년은 여전히 담요를 덮고 자신만의 세상에 숨어 있었다. 담당 교수인 백발의 의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남자 환자를 조심스럽게 깨웠다.
“노진홍 씨, 일어나 보시겠어요?”
때마침 병실에 들어온 남루한 차림의 중년 아주머니가 청년 곁으로 헐레벌떡 다가왔다.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좀 있어서 늦었습니다. 야야, 진홍아 언능 일어나 봐라. 의사 선생님 기다리신다.”
청년이 마지못해 뒤집어쓴 담요를 슬금슬금 내렸다. 백발 의사가 청년의 오른쪽 발목을 살포시 만지자, 통증을 느낀 청년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우리 아들 많이 아픈가요? 고칠 수 있는 거겠죠?”
백발의 의사가 신중하게 대답했다.
“발목 인대 파열이 아니길 바라야죠. 기본 방사선에선 인대 파열을 확인할 수 없고요, 내일 MRI를 찍어봐야 합니다. 그래야 발목 관절 주변 미세 손상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어요. 내일 결과 나오면 그때 얘기하는 걸로 하시죠. 어머님.”
“아이고, 어쩌면 좋나. 우리 아들 발레 하는데.”
청년이 어머니께 짜증을 부렸다.
“엄마! 창피하게 왜 그래! 나 이제 발레 안 한다고 했잖아.”
아주머니가 백발의 의사를 간절하게 바라봤다.
“수술하면 싹 고쳐지는 겁니까? 쟤가 발레 없이 못 사는 놈입니다.”
“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조건 수술하는 건 아니고요, 손상 정도에 따라, 1도, 2도, 3도, 이렇게 나눠져요. 1도는 인대가 늘어나거나 가벼운 손상 정도로 보고요, 2도는 인대 파열 증상이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3도는 완전히 파열된 건데, 수술은 3도 때만 하는 거고요. 1도, 2도는 물리치료만 받으시면 되고요. 하지만 재활치료는 무조건 다 받아야 해서, 2개월에서 최대 4개월까지는 발목 사용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 아. 그러면 거시기 3도 그것만 아니면 되죠?”
백발의 의사는 청년의 발목을 살포시 누르며 말했다.
“다행히 육안으로 볼 땐 뚜렷한 인대 파열 증상은 보이지 않네요. 내일 MRI 결과 보고 다시 얘기하시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고, 너무 감사합니다.”
아주머니가 청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들었지? 치료 잘 받고 니 좋아하는 발레 계속 해야지.”
“안 해. 안 한다고!”
청년은 소리를 꽥 지른 후 담요를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그 속으로 숨어버렸다.
청년의 돌발 행동 때문에 병실 가득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잠시 뒤 백발의 의사가 오한결 가족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오늘 응급으로 입원한 환자시군요. 오준근 님 맞으시죠?”
아버지가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선생님.”
백발의 의사가 차트를 들고 있던 젊은 의사에게 설명하라고 눈치를 보내자 꾸벅꾸벅 졸던 젊은 의사는 화들짝 놀라며 기계처럼 말을 내뱉었다.
“오준근 님은 손목 골절입니다. 오늘 기초 검사 진행 완료하였고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수술방 준비되는 대로 바로 수술 들어갈 예정입니다.”
백발의 의사가 아버지의 손목에 손을 갖다 대자, 아버지가 자지러지게 소리 질렀다.
“아아아! 선생님 너무 아파요!”
“저런, 방사선 사진도 그렇고 골절이 확실해 보이네요. 어쩌다가 이렇게 되셨어요?”
어머니가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위험한 운동을 하다가 이렇게 됐어요. 제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우, 속상해 정말!”
백발의 의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우,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시나요? 대단하시네요.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뼈가 약해져 가벼운 충격에도 골절이 올 수 있어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죠? 익스트림 스포츠가 이렇게 위험하다는 것을.”
열심히 메모하던 젊은 의사가 물었다.
“무슨 스포츠를 하셨어요? 암벽등반? 산악자전거? 전 작년에 번지점프 하다가 기절할 뻔했어요. 다시는 안 하려고요.”
어머니가 당당하게 말했다.
“남편은 등산했어요. 북한산에 자주 갔죠.”
“…….”
일순간 강렬한 침묵과 어색함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백발의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맞습니다. 60대 이상 고령에겐 등산도 매우 위험한 운동일 수 있어요. 우리 병원에도 해마다 노인 분들이 등산 도중 손목과 고관절이 골절되어 응급으로 많이 입원하시거든요. 하체에 힘이 없다 보니 하산 도중 넘어지면서 다치게 되죠.”
백발의 의사가 젊은 의사에게 물었다.
“골다공증 검사를 했나?”
“네, 교수님. 골다공증이 확인됐습니다.”
아버지가 놀라서 물었다.
“골다공증이요? 저는 제 뼈가 되게 튼튼한 줄 알았는데…….”
백발의 의사가 차분히 설명했다.
“대체로 나이가 들면 골다공증이 발생하게 되죠. 아마 아버님이 10년만 젊으셨어도 그 정도 넘어진 거로는 골절 안 됐을 겁니다. 골다공증은 뼈에 칼슘과 무기질이 빠져나가 골량이 감소하고 뼈의 미세구조가 변하면서 결국엔 약한 자극에도 골절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아버님은 골절 치료와 함께 골다공증 치료도 받으셔야 합니다.”
아버지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병원에 오래 있어야 하나요?”
“음, 수술 경과를 지켜봐야지요. 혹시 엉덩이뼈는 안 아프세요? 보통 고관절도 다치거든요.”
아버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또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만약 고관절에 이상이 있다면 병실 생활이 길어질 수 있어요.”
“…….”
백발의 의사가 젊은 의사에게 말했다.
“손목 말고도 다른 곳도 골절이 있을 수 있으니까, 꼼꼼히 살펴 검사해 보도록 해요.”
우르르 썰물처럼 의료진이 빠져나가자, 아버지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벌써 지겨워.”
한바탕 어머니의 잔소리가 예상된 오한결은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오면서 생각했다.
‘아버지가 지겨운 병실 생활을 이겨낼 수 있도록 내가 뭔가를 준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