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37화 (37/202)

제37화 아뜰리에

모던아트 박수호 기자는 멍한 표정으로 오한결을 바라봤다.

‘……뭐? 삼류 잡지라고?’

10년의 기자 생활 동안 이런 무모한 말을 뱉은 작가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신인 작가를 만났고 그들 모두 자신을 알리기 위해 기자가 듣기 좋은 말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 돌연변이 같은 작가는 도대체 무슨 용기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당당한 걸까, 무모한 걸까?

아니면 오한결 작가만이 유일하게 정답을 얘기하고 있는 걸까?

박수호 기자는 수많은 질문을 담은 눈빛을 던졌지만, 오한결은 그 눈빛을 블랙홀처럼 말없이 흡수하고 있었다.

박수호 기자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다르다. 분명 차원이 다른 작가인 게 분명하다.

박수호 기자는 얼만 전까지 SNS를 뜨겁게 달군 ‘파주 카페 거리’와 ‘부산 벽화’를 그린 작가를 추적해왔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누구의 작품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명일문화재단 공모전 수상자 명단에 ‘오한결’을 발견했을 때, 박수호 기자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홀려놨는가.

그의 실력은 독보적이고 압도적이다.

하지만 박수호 기자 역시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 봤자, 신인 작가 아닌가?’

박수호 기자는 신인 작가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인터뷰에 오한결 작가가 어떤 태도를 보이길 바랐던 걸까.

아마도 기자의 질문에 수줍게 대답하는 그런 신인다운 모습을 기대한 걸까.

오한결 작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매우 당당했고, 능숙했다. 무엇보다, 대가의 아우라가 물씬 풍겼다.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오한결 작가님께 사과드립니다. 제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졌던 것 같군요. 저의 좁은 경험과 식견만으로 예술가를 섣불리 정의 내리고 판단했습니다.”

박수호 기자가 자신의 무지함과 무례함을 사과하는 순간 ‘갑’과 ‘을’의 지위가 바뀌어 버렸다. 이제 오한결이 인터뷰의 방향키를 쥐게 된 것이다.

박수호 기자는 오한결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자신이 예술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술에 조건이란 게 필요할까? 현대 예술은 뭐든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자격을 부여하는 예술계는 정규과정을 거친 엘리트 예술가를 칭송하고 있다.

박수호 기자는 오한결의 등장으로 엘리트 예술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한국도 다양한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선진 예술 국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터뷰가 끝날 때쯤, 박수호 기자는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했다. 기자로서 가져야 할 의문과 질문을 외면한 채 살았던 답답한 삶을 이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박수호 기자가 물었다.

“가까운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까?”

오한결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한 예술가의 탄생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지지와 후원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삼각지 화랑거리’에 ‘오한결 미술관’을 짓는 게 제 목표입니다.”

박수호 기자는 ‘삼각지 화랑거리’를 듣는 순간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곳은 미군 부대 중심으로 형성된 옛 미술시장 아닌가. 그곳에 미술관을 짓겠다고?

“미술관이요?”

“네, ‘삼각지 화랑거리’를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처럼 유명하게 만들 겁니다.”

“몽마르트요?”

힘겹게 인터뷰를 마친 박수호 기자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책상에 앉은 박수호 기자는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오한결 작가라면……. 왠지 그 사람이라면, ‘삼각지 화랑거리’의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곳에 미술관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박수호 기자도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전 세계 예술가들이 꿈을 안고 한국을 찾는 모습을 말이다.

* * *

맑고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한적한 어느 날 오후.

오한결과 최하늘이 문화재단 입구 근처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며칠 전 최하늘이 오한결에게 전화를 걸어 아뜰리에를 안내해 줄 테니, 문화재단으로 오라고 말했다.

아뜰리에는 일명 ‘화실’이라고 불리는 화가들의 작업공간이다. 유명 작품의 제작 비밀을 알기 위해선 해당 작가의 아뜰리에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뜰리에는 작가에게 상당히 중요한 곳이다.

오한결이 눈앞에 있는 공원 입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곳에 살면 좋겠어요. 공원 산책도 마음껏 하고요. 작업하다 지치면 산책만큼 좋은 운동도 없죠.”

최하늘이 공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오한결 작가님도 여기서 산책 많이 하시면 되잖아요.”

“네?”

최하늘이 손가락으로 문화재단 옆 신축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저 건물 보이시죠? 네네, 바로 앞이요. 저기가 아뜰리에예요. 가깝죠.”

“아……. 그래서 문화재단 앞에서 뵙자고 하셨군요. 아뜰리에 오는 날은 문화재단으로 출근하는 것 같겠네요.”

최하늘이 입을 손으로 가리고 크게 웃었다.

“어머! 너무 재밌는 농담이다! 유머도 있으시군요. 호호호.”

“…….”

잠시 뒤 아이들이 나타나 술래잡기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행여 넘어지지 않을까 살피면서도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최하늘이 그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무척 평화로워요. 솔직히 사무실에 있는 것만큼 지겨운 것도 없어요. 오한결 작가님 덕분에 이렇게 업무시간에 바깥바람도 쐬네요.”

오한결도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저도 최하늘 씨 덕분에 모처럼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네요.”

“……어머, 정말요?”

“…….”

잠시 뒤, 시계를 확인한 최하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팀장님 마주치기 전에 빨리 아뜰리에 구경 가요.”

오한결과 최하늘은 고풍스러운 유럽 건축물 같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어때요?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멋지죠?”

로비에 들어서자, 백발의 경비원이 최하늘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하늘 씨. 오랜만이네요. 이 분이 입주하실 작가분이신가?”

“네, 오한결 작가님이세요.”

“반갑구려. 우선 지문 등록을 해야 해요. 워낙 보안이 철저해서 말이죠. 작가님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경비원 도움으로 지문을 등록한 오한결은 몇 가지 신원확인 절차를 거친 후 엘리베이터에 겨우 오를 수 있었다.

최하늘이 4층 버튼을 눌렀다.

“힘드시죠. 첫날이라 그럴 거예요. 작가님 작업실은 4층에 있어요.”

오한결이 ‘층별 안내판’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와, 수영장, 헬스장 같은 운동시설이랑 루프탑 카페도 있네요. 여긴 거의 호텔 수준이군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작가님들이 부러워요. 호호.”

오한결과 최하늘이 405호 작업실 앞에 도착했다. 최하늘이 문 앞 지문 인식기에 손을 갖다 대라고 신호를 보냈다.

오한결의 지문이 인식되자 띠리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작업실은 굉장히 넓어 보였다. 높은 천장과 햇볕 가득한 채광도 만족스러웠다. 한쪽 벽면을 따라 설치된 수납장에는 고급 미술 재료가 가득했다.

“굉장하네요!”

“작가님들이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상의 조건으로 맞춰드린 거예요.”

오한결이 수납장에 다가가 미술 재료를 살피며 말했다.

“다른 작업실도 보이던데요. 모든 작업실 크기가 같은 건 아닌가 봐요. 여기가 특별히 커 보이는군요.”

최하늘이 말했다.

“와, 그걸 아셨네요. 오한결 작가님 작업실과 바로 옆방 작업실이 제일 커요. 이사장님의 특별 지시로 그렇게 배정했습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오한결 작가님은 공모전 당선자잖아요. 이번 공모전은 문화재단 역대 행사 중 가장 중요한 행사였어요. 충분히 그 혜택을 누리셔도 될 거 같아요.”

오한결이 고개를 돌려 최하늘을 바라봤다.

“그럼, 옆 방에는 누가 있나요?”

“……그게. 서정익 작가님이요.”

“네!?”

오한결이 놀란 표정을 짓자, 최하늘 급하게 말을 이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분은 작업실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온종일 그림만 그리셔서 마주칠 일도 없어요. 저도 아리 미술관에서 서정익 작가님 얼굴을 처음 뵌 거였어요. 그만큼 외출을 안 하신다는 얘기죠.”

‘문화재단은 서정익 작가에게도 최고 수준의 아뜰리에를 제공했단 말이지.’

오한결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문화재단의 최고 후원을 받는 작가가 왜 미래에 사라져 버리는 걸까?

최하늘과 오한결은 작업실에서 나와 부대시설까지 모두 살펴봤다. 최하늘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짐은 언제 옮기실 건가요? 날짜 알려주시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오한결이 고개를 흔들었다.

“짐은 적을 거예요. 여기 작업실은 필요할 때만 올 거라서요.”

최하늘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네? 계속 집에서 작업하시려고요? 많이 불편하실 텐데요.”

“전 집이 좋아요. 가족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게 중요하거든요.”

최하늘이 감동했는지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어머……. 너무 멋져요. 다른 작가들은 바쁘다고 가족들과 연락도 안 하고 지내는데. 전 그게 항상 불만이었거든요. 연락은 아무리 바빠도 할 수 있는 건데.”

오한결이 최하늘에게 속삭였다.

“사실, 전 작업을 되게 빨리하거든요. 굳이 이런 호화스러운 작업실은 필요가 없어요.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뚝딱 그리면 되니까요. 장소보단 작업자의 의지와 능력이 중요해요.”

최하늘이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머, 진짜 천재시구나. 역시 남다르세요. 그래도 저희 아뜰리에 많이 이용해 주세요. 여기 오셔야 자주 얼굴도 뵙고…….”

“……아, 네.”

“신수진 이사장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네.”

두 사람이 건물 밖으로 오자, 최하늘이 꾸벅 인사를 했다.

“저는 문화재단 사무실로 들어가 봐야 해서요. 업무가 엄청 쌓였어요. 힝.”

“바쁘신데, 이렇게 안내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언제든지 궁금한 거 있음 연락 주세요. 작가님!”

최하늘이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문화재단 건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한결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공원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산책을 좀 해볼까.

여유로운 오후를 마저 즐겨야지!

* * *

오한결과 최무열은 9호선 국회의사당역 하차 후 국회 방향으로 걸어갔다.

잠시 뒤, 그들 앞에 푸른 돔을 올린 국회의사당 건물이 뉴스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최무열이 무척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저 건물에서 로봇 태권브이가 짠, 하고 나온다던데. 형님도 들어봤죠?”

오한결은 피식 웃고는 생각보다 거대한 국회 건물과 넓은 잔디 앞마당에 눈을 떼지 못했다.

서울시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청년 예술 사업.

‘청년 아트 페스티벌.’

행사 장소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마당’이었다.

노을은 ‘아트 페스티벌’ 참가 작가로 선정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그의 친구들은 바쁜 와중에도 노을을 축하해 주기 위해 기꺼이 행사장을 찾아왔다.

오한결과 최무열이 국회의사당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푸른 잔디가 눈앞에 펼쳐졌다. 많은 행사 부스가 보였는데, 그곳에서 온갖 종류의 기념품과 음식을 팔고 있었다.

최무열이 킁킁, 음식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이야, 이건 뭐, 완전 축제잖아. 어마어마하네.”

최무열이 폴짝폴짝 뛰며 플리마켓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오한결도 재빨리 그를 따라갔다.

휴대폰 케이스, 목걸이, 액자, 미술재료 등 온갖 상품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개성 넘치는 스케치북에 시선을 빼앗겼다. 다양한 디자인의 미니 스케치북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웅. 웅. 웅.

최무열이 붉은색 스케치북을 이리저리 살필 때,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노을의 문자였다.

「두 사람 어디쯤 왔어?」

최무열이 오한결을 바라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죠? 구경할 게 너무 많은데. 헤헤.”

때마침 푸드트럭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은근히 풍겨오자. 최무열이 이성을 잃고 소리를 꽥 질렀다.

“이 냄새는 ‘큐브 스테이크’!!! 저긴…… 들려야 해!”

배가 고팠던 오한결은 못 이기는 척하며 최무열을 따라갔다.

양손 가득 스테이크를 든 최무열과 오한결은 급한 마음에 걸음을 재촉했다. 노을이 있는 예술 전시장은 국회 도서관 옆에 공터에 마련됐다고 들었다. 워낙 국회의사당이 넓어 목적지까지 상당히 오래 걸어야 했다.

최무열이 노을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누나!!!”

작품 앞에서 서성이던 노을이 두 사람을 발견했다.

“어서 와, 이쪽이야!”

최무열이 빠른 걸음으로 노을에게 다가가 스테이크 포장박스를 내밀었다.

“배고프지? 여기 큐브 스테이크. 헤헤.”

“어머! 땡큐. 엄청 배고팠는데.”

오한결은 야외 전시장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청년 아트 페스티벌’ 답게 청년들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거대한 나무 모형에 알록달록한 풍선을 매달아 놓은 작품.

유리구슬을 붙여 뭉게구름 형상을 만든 작품.

그리고 노을의 섬뜩한 해골 작품까지.

작품 감상에 푹 빠진 오한결에게 노을이 소리쳤다.

“빨리 와서, 스테이크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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