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36화 (36/202)

제36화 모던아트

미간을 심하게 구긴 서정익 작가가 불현듯 크게 웃었다.

“하하하. 개소리. 거짓말!”

주변 사람들은 서정익 작가 반응에 당황했는지 입을 꼭 다물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한소정 큐레이터는 혹시나 작가들끼리 싸움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한결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떤 예술가의 정신세계는 무척 불안정하죠. 비평가들은 그게 예술가의 숙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남들과 다른 것을 보고 느끼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요. 서정익 작가의 작품을 보면 그가 그 숙명을 온전히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해하지 마세요, 전 서정익 작가를 칭찬한 거니까요.”

데이비드 오 교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정익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오한결 작가의 말에 동의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언짢은 표정을 짓던 서정익 작가가 꽥 소리를 질렀다.

“잘난 척하지 마. 난 당신 같은 뜨내기 작가들 많이 봤어. 학벌, 인맥으로 한두 자리 꿰차다가, 어디 협회나 단체 명함 하나 파겠지. 운이 좋으면 교수 자리 하나 얻고 기고만장할 거야. 한국 예술이 왜 발전이 없는지 알아? 진짜 예술가가 없어서 그래!”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오한결이 데이비드 오 교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죄송하지만 교수님. 교수님도 저렇게 해서 교수가 됐나요?”

데이비드 오 교수가 재밌다는 듯이 오한결에게 웃어 보였다.

“국립예술교육원 교수는 특이하게 뽑거든. 뭐, 내가 운이 좋았다고 한다면 부정하지 못하겠네. 하하.”

서정익 작가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어딜 감히! 그딴 막말을!!”

오한결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꾸했다.

“난 학벌도 변변치 않고, 인맥도 없어. 아니지! 소중한 인맥이 있구나. 아트화랑 사장님 남매, 열정적인 거리 예술가와 미대생 동생들. 그리고……. 적자를 면치 못하는 화신벽화 사장님까지. 무엇보다 진짜 인맥은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지.”

오한결이 비꼬듯이 말을 이었다.

“이런 내게 명함 하나 누가 주려나?”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트린 서정익 작가가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한소정 큐레이터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활짝 열린 사무실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데이비드 오 교수가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두 사람의 싸움이 너무 재밌어서 그만 넋 놓고 보고 말았네. 근데 서정익 작가를 너무 놀린 거 아닌가? 워낙 예민한 아이라서 말이지.”

“제가 좀 과했던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아닐세, 오한결 작가가 정확히 봤네. 서정익 작가는 몇 년 전부터 예술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어. 그래서 신화를 소재로 작업하고 있었던 거고. 그걸 정확히 짚어낸 점이 무척 놀랍구먼.”

오한결이 대답했다.

“신화는 삶의 원형이라고 하죠. 신화 속에는 사랑, 증오, 탄생, 죽음 등 인간의 삶이 깃들어 있어요. 신화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삶에 대해 처절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마도 서정익 작가는 그런 신화에 자연스럽게 끌렸을 겁니다.”

데이비드 오 교수는 오한결의 이론을 흥미롭게 듣고 말했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죠. 분명한 건, 서정익 작가는 아직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비슷한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오한결 작가는 매우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군요. 마치 경험이 풍부한 원로 작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하. 오해하지 마세요. 상당한 칭찬입니다.”

한소정 큐레이터가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예술계에서 촉망받는 오한결, 서정익 두 작가님께서 참 강렬한 첫만남을 가졌군요. 앞으로 종종 보게 될 텐데. 그때 서로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어요.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요?”

오한결이 말했다.

“무척 기대되네요.”

한소정 큐레이터가 업무용 미소지으며 말했다.

“최하늘 님, 오한결 작가님 모시고 미술관 안내해 주시겠어요? 데이비드 오 교수님과 회의 마무리하고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최하늘 재빨리 대답했다.

“네, 그럼, 먼저 가 있을게요. 작가님 가시죠.”

최하늘과 오한결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 말없이 복도를 걸었다. 최하늘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요. 서정익 작가님은 성격이 보통이 아니시던데요. 무서워서 혼났어요.”

오한결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후 말했다.

“아마도 자기방어일 겁니다. 그의 삐딱하고 공격적인 태도는 연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랫동안 다져온 습관이겠죠. 반면 그의 작품은 그런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소리치고 있어요. 꽤 흥미로운 작가입니다.”

최하늘이 오한결을 슬쩍 보면서 얼굴을 붉어졌다.

‘어머, 굉장히 생각이 깊으시구나. 멋지다…….’

* * *

명일그룹 신태진 회장 저택 앞에 도착한 오한결.

며칠 전 명일그룹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었다. 양승호 비서는 신태진 회장이 오한결 작가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식사 장소를 묻던 오한결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회장님 자택에서요?”

부담스러웠지만 거절한 핑계가 마땅히 없었던 오한결은 식사 약속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저택이 존재했구나. 으리으리한 건물 외관을 이리저리 살피던 오한결이 초인종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유럽 궁정 같은 마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집 안으로 통하는 길옆으로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해있었다.

“꽃이 참 예쁘죠. 오한결 작가님.”

꽃을 관찰하던 오한결이 차분하고 우아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이현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한결이 고개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이현미가 따스한 미소로 답했다.

“환영합니다. 작가님.”

신태진 회장이 집안으로 들어온 오한결을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이게 누군가! 오한결 작가 아닌가! 시상식 이후 처음 보는구먼.”

이현미가 흐뭇하게 웃었다.

“회장님께서 오한결 작가님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실제로 보니까 인물도 훤칠하고 아주 미남이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신태진 회장이 신나서 말했다.

“여보, 작가님 배고프겠어. 빨리 식사하자고.”

“이미 준비됐죠. 가시죠. 바로 드실 수 있을 거예요.”

세 사람이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위층에서 ‘멍멍’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오한결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복실이군요!”

오한결을 발견한 복실이가 꼬리를 마구 흔들며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 내려왔다. 오한결은 무릎을 꿇고 복실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더 예뻐졌네. 사랑받고 지내는구나. 복실아!”

이현미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복실이가 오한결 작가님 목소리를 알아들었나 봐요. 어머, 기특해라.”

꼬리를 마구 흔들던 복실이가 오현결 주위를 빙빙 돌며 맹렬히 짖었다.

왈. 왈. 왈!

회장 부부와 오한결이 식사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복실이도 졸졸 따라와 신태진 회장 다리 부근에 털썩 주저앉고는 졸린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현미가 두 명의 주방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한식 요리가 담긴 접시를 식탁에 올리고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소갈비와 잡채, 그리고 정갈하고 예쁜 음식들이 끊임없이 식탁에 놓이고 있었다.

이현미가 신태진 회장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준비해봤어요.”

“너무 맛있겠는데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현미 목소리가 들리자, 복실이가 벌떡 일어나 이현미에게 다가갔다. 이현미가 사랑스러운 손길로 복실이를 쓰다듬었다.

“복실이를 만나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마워요, 작가님. 이 아이로 인해 우리 집 분위기가 너무 밝아졌어요. 회장님도 아주 좋아하고 있답니다.”

쑥스러워하는 신태진 회장을 바라보던 오한결이 미소지었다.

“이번엔 복실이가 진짜 가족을 만난 것 같군요.”

이현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실이가 유기견이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누가 버렸을까요? 저는 절대 이해할 수 없어요.”

“유기하는 사람들은 강아지를 충동 입양하는 경향이 있어요. 외로움을 달래줄 대상으로, 아니면 그냥 예뻐서 입양하죠. 마치 물건 고르듯이 입양을 하는 거예요.”

이현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충동 입양한 사람들은 강아지가 대소변 실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물건처럼 버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해요. 매우 가슴 아픈 현실이죠.”

“저런 못된…….”

오한결이 신태진 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장님께서 전국 유기견 센터에 후원을 해주셔서, 복실이 친구들이 아주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태진 회장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튼, 제가 먼저 약속을 지킨 것뿐입니다. 하지만 유기견 센터 후원은 작가님과 한 약속과 별개로 너무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현미가 신태진 회장을 째려봤다.

“약속이요? 설마 유기견 센터 후원을 어떤 거래로 이용하신 건 아니시죠?”

“……그게. 내가 오한결 작가에게 그림을 하나 부탁했는데, 오한결 작가가 그림을 그려주는 조건으로 유기견 센터 후원을 요청했어요.”

“여보!!”

화가 난 이현미가 꽥 소리를 질렀다.

“문화재단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님께 그런 부탁을 하시면 어떡해요? 수진이가 알면 난리가 날 거예요. 그리고 유기견 보호센터 지원 조건으로 협상을 하다니요. 최근 우리 두 사람의 이름으로 매년 유기견 보호센터를 후원하기로 한 약속도 모두 그림을 얻기 위한 계획이었나요?”

당황한 신태진 회장이 말을 더듬었다.

“오해하지 마시구려. 그림을 부탁했던 때는 오한결 작가가 공모전에 당선 전이라오. 그리고 유기견 보호센터 지원은 순수한 마음에서 하는 건데……. 절대로 그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오한결이 피식 웃었다.

“사모님 너무 화내지 마세요. 회장님 말씀이 다 맞아요. 그리고 보호센터 지원 조건 제안은 제가 먼저 했답니다.”

회장이 만족한 표정을 짓자, 오한결이 말을 이었다.

“회장님, 죄송하지만 제가 개인전 준비 때문에 바빠서요. 혹시 그림이 당장 필요하신가요? 그럼 어쩔 수 없고요…….”

재빠르게 이현미가 치고 들어왔다.

“이제 빛을 보기 시작한 작가님께 절대 민폐를 끼칠 수 없어요. 그림은 추후에 그려주세요. 그렇죠, 여보?”

아쉬운 표정을 짓는 회장을 바라보며 오한결이 말했다.

“너무 늦지 않을 겁니다. 회장님.”

신태진 회장을 째려보던 이현미가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아직 식사 시작도 안 했네. 배고프겠다. 빨리 수저 들어요.”

오한결이 말했다.

“와, 정말 맛있네요.”

신태진 회장이 은근히 째려보며 대답했다.

“자네, 아직 안 먹지 않았나.”

“…….”

신태진 회장으로선 서운하겠지만, 오한결은 은근한 부담이었던 그림 제작을 늦출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간단한 식사자리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수확에 음식이 더 맛있게 보였다.

* * *

오한결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변을 살피던 오한결은 창가 부근에 앉은 정장 차림의 남자를 발견했다. 며칠을 같은 옷을 입은 듯 겉옷이 주름으로 꾀죄죄해 보였다. 삐쭉 튀어나온 옆구리살은 운동하기도 힘든 그의 바쁜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오한결이 다가갔는데도, 남자는 노트북에 얼굴을 고정한 채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한결이 말했다.

“모던아트 박수호 기자님?”

고개를 든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오한결 작가님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박수호 기잡니다.”

명함을 받은 오한결이 기자 앞자리에 털썩 앉았다.

“모던아트는 지망생 때부터 알던 잡지인데, 이렇게 인터뷰를 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오한결 작가님은 가장 핫하신 분 아닙니까. 당연히 우리가 모셔야죠.”

잠시 자리를 비운 오한결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가지고 돌아오자, 박수호 기자가 바로 말을 이었다.

“참 미스터리 합니다. 오한결 작가님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어요. 명일문화재단 공모전에 당선될 정도면, 어릴 적부터 각종 미술 대회를 석권했을 텐데 말이죠. 조사를 해봐도 수상자 중에 오한결이라는 이름이 없어요. 하늘에 뚝 떨어진 외계인 아닙니까?”

오한결이 피식 웃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럼 제가 외계인 맞나 보죠. 어떻게 아셨을까?”

“…….”

“농담입니다. 하하. 기자님이 너무 정색하시네요.”

박수호 기자가 자세를 고쳐앉고는 물을 한 잔 들이켰다.

“좋습니다. 오한결 작가님께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제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정보를 주세요. 어느 대학을 나왔고 누구 밑에서 그림을 배웠는지, 그동안의 업적도 알려주실 수 있으면 좋고요.”

오한결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간단하군요. 저는 동양예술대 서양학과 나왔고 지도 교수는 최봉구 작가였어요. 그동안의 업적이라고 하면……. 없는 것 같군요. 이번 공모전이 생애 첫 입상이라서요.”

박수호 기자가 놀라서 물었다.

“어디요? 동양예술대요? 그런 곳도 있습니까? 최봉구 작가라면 80년대 잠깐 활동했던 분 아닌가요? 에이, 말도 안 되는군요. 이번에도 농담이시죠?”

오한결이 팔짱을 끼고 대답했다.

“저는 처음부터 진실만 말씀드렸어요. 제 얘기를 모두 기사에 실으면 삼류잡지 취급을 받게 되는 건가요? 현실성이 없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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