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제주도 여행
오한결 가족을 태운 차가 제주도 서귀포시 대포동 해안을 신나게 달리고 있다.
오랜만에 답답한 도시를 벗어난 오한결 가족.
제주도의 원초적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도시 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려줄 자연의 힐링을 선물로 주는 가족 여행이었다.
수다쟁이 동생 오한수가 웬일로 말없이 바다에 시선을 두고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런 것도 잠시, 곧 오한수가 높은 고음을 질렀다.
“우와! 저게 뭐야. 되게 신기하다.”
거대한 현무암 덩어리가 절벽을 따라 곧게 솟아오른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자연의 위대한 작품을 어느 예술가가 따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은 감히 넘보지 못하는 자연의 예술성 앞에 오한결은 겸손한 마음이 들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오한수가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 후 말을 이었다.
“아, 저게 현무암 용암이 굳어서 만들어진 주상절리구나. 멋지다!”
오한결이 동생에게 물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헐, 그걸 말이라고 해? 진짜 끝내주는 해안 절경이야.”
오한수가 운전대를 잡은 채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학술 가치도 크고 경관도 수려하지.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고 말이야.”
“굉장하네. 제주도는 끝내주게 멋진 곳인 것 같아. 이번 여행 무척 마음에 들어.”
두 아들의 대화를 듣던 박선희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자동차 창문을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신선한 바닷바람이 차 안에 가득 차오르자, 한껏 기분이 좋아진 가족 모두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박선희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머, 기둥처럼 우뚝 솟아오른 모습이 꽤 멋지네. 어떻게 저런 모양이 만들어졌을까. 신기해.”
오한수가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
“아, 그거 지삿개 바위 아니에요? 용암이 갑자기 식어서 저렇게 특이한 모양이 된다나 봐요. 방금 본 건데! 와!”
오한결이 웃으며 말했다.
“한수가 적극적이네. 그래, 지적인 호기심은 뭐든 좋아. 연기에 도움 될 거야.”
“왕성한 지적 호기심은 나를 ‘연기의 신’으로 만들었지. 하하.”
“풋.”
“아! 형은 은근히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내 연극 보고도 그런 웃음을 짓다니. 사악한 악마 같으니라고.”
오한결이 웃으며 답했다.
“그래, 알았다. 미안하다. 하하.”
박선희가 크게 웃었다.
“그래! 우리 막내 연기는 정말 멋졌어. 자랑스럽다!”
웃고 떠드는 사이, 오한결 가족은 목적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한결은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 차량에 놀랐다.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무척 많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행하며 즐기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은 너무 일에만 매달렸나 보네…….’
가장 먼저 차에서 내린 오한수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기 아이스크림 가게 있다. ‘한라봉 아이스크림’이래.”
오준근이 오한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역시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는 법이지. 가자, 하나 사줄게.”
한라봉 아이스크림은 먹음직스러웠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위에 한라봉으로 만든 퓨레가 잔뜩 올라가 있었다. 새콤한 퓨레가 달고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만나니 꽤 별미를 자랑했다.
오한수가 수저로 잔뜩 퍼 입안에 넣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와, 진짜 맛있다. 주상절리보다 아이스크림 때문이라도 여길 다시 와야겠어.”
오한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구, 내가 졌다.”
오한결이 대표로 입장권을 끊은 뒤, 가족 모두 주상절리대로 이어지는 길을 가볍게 걸어갔다.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잘 정비된 길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오한결은 이제야 제주도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이게 얼마만의 휴가인가.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삶은 간단한 산책 외 모든 야외 활동에 대한 의지를 꺾어 버렸다.
찰싹. 찰싹. 규칙적으로 들리는 파도 소리.
그리고 청정한 제주도 공기와 은근한 바다 내음.
가족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몹시 소중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별것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한결에게는 이 평범한 여유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던 귀중한 삶의 결과물이었다.
앞서 걷는 부모님이 뒤로 동생과 오한결이 나란히 걷고 있다.
모두 말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며 오랜만에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따뜻한 침묵이 오한결의 가족 사이를 메웠다. 그들은 침묵을 통해 진정한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가족의 모습이야.’
주상절리를 찾은 다른 관광객들도 한껏 자연풍경과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와! 엄청 큰 물고기다!”
“여기 조개도 있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산책길 중간중간에 놓인 조형물들에 관심을 보였다.
아이들이 우르르 떼를 지어, 물 위로 펄쩍 뛰어오른 모양의 물고기 조형물과 거대한 소라 껍데기 조각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저 멀리 보이는 주상절리보단 바로 앞에 보이는 조형물에 더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잠시 뒤 야자수가 하나둘 보이더니 제주도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더욱 짙어졌다. 아이들의 흥미도 곧 그리로 옮겨갔다.
오한결은 주변 풍경이 추후 작품 제작에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머릿속에 저장했다. 더불어 가족들의 행복한 미소도 눈에 열심히 담았다.
드디어, 주상절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주상절리의 모습이 뚜렷해지자 박선희가 감탄했다.
“정말 굉장하구나. 이게 모두 화산 활동 때문이라고?”
오한결은 절벽을 따라 굳건하게 솟은 검은 대나무 모양의 현무암 덩어리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상상했다.
먼 옛날, 제주도에서 화산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를.
현무암 용암이 제주도 해안에 끊어 넘치고. 바다와 만난 용암은 거대한 수증기와 열기를 내뿜으며 해안가 일대를 뿌연 안개로 잠식한 모습을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각형 모양의 현무암 기둥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지금의 제주도 주상절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비록 상상이지만, 오한결은 용암을 내뿜는 자연의 야생적 모습을 시각, 후각, 촉각적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오한결이 주상절리를 집중해서 보고 있는 걸 발견한 아버지가 아들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쉬엄쉬엄 하려무나.”
정신이 번뜩 든 오한결이 미소지었다.
“네, 그럴게요.”
주상절리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박선희와 오한수가 손을 흔들고 있다.
“빨리 와! 사진 찍어야지.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원 없이 사진을 찍은 오한결 가족은 다소 지친 표정으로 차로 돌아왔다.
박선희가 시원한 물을 마시고 물었다.
“한결아, 다음 일정은 어디야?”
“다음은 힐링 장소로 이동합니다.”
“거기가 어딘데?”
“섭지코지!”
오한결이 운전하는 동안, 가족들은 모두 피곤한지 머리를 창가에 기댄 채 잠에 푹 빠져 있었다.
‘오랜만에 야외 활동을 해서 모두 피곤한가 보네.’
오한결이 천천히 차를 몰며 가족들이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잠시 뒤, 눈을 뜬 오한수가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바라봤다.
“우와, 저기가 섭지코지야? 엄청 멋지네.”
“제주도 동쪽에 여러 관광 코스가 있는데 그중 으뜸으로 꼽힐 정도야.”
어느새 잠이 깬 오준근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성산일출봉이 바로 보이는구나.”
성산일출봉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멀리서 봐도 그 거대한 사발 모양의 분화구가 무척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그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자연의 압도적인 웅장함을 자랑한다고 알려졌다.
오한결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쉽게 이번 여행에는 성산일출봉 방문은 없어요. 다음을 기약할게요…….”
“괜찮아, 다음에 또 오자꾸나.”
괜찮다는 아버지의 말에 오한결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래, 또 오면 되지.’
섭지코지 주차장에 도착한 오한결 가족은 잠깐의 낮잠으로 기력을 많이 회복했는지 활기찬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오한결이 앞장서며 주변을 둘러봤다.
기막힌 해안 절경이 눈 앞에 펼쳐지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코앞에 보이는 성산일출봉의 웅장한 모습에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완만한 경사의 산책로 역시 무척 여유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오한결이 뒤돌아서 말했다.
“굉장히 낭만적이죠?”
동화 속 주변 풍경을 만끽하던 박선희가 말했다.
“너무 예쁘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티비에서 보던 외국 같구나.”
오준근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며 걸었다.
“그러게요. 와! 진짜 멋지다!”
오한수가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기암괴석이 있는 풍경을 보며 산책할 수 있는 섭지코지는 꽤 낭만적인 관광 코스였다.
“어머머, 저거 올인 하우스 아니에요?”
드라마를 좋아하는 박선희가 낯익은 건물을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물었다. 언덕 위로 보이는 드라마 촬영지의 모습이 마치 유럽의 옛 성같이 근사하게 보였다.
“올인이라니, 옛날 생각나네. 참 재밌게 봤었는데.”
오준근이 감상에 젖는 사이, 그 옆으로 다가온 박선희가 남편의 팔짱을 끼고 방긋 웃었다.
부모님의 데이트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오한수가 슬그머니 오한결 옆으로 다가왔다.
“형 덕분에 부모님이 너무 즐거워하시네. 땡큐.”
섭지코지를 산책하듯 둘러본 오한결 가족은 잠시 벤치에 앉아 드넓은 푸른 바다를 바라봤다. 때마침 해가 지려는지 저 멀리서 붉은 빛이 푸른 하늘을 밀어내고 있었다.
어느덧 시원하던 바람은 조금씩 서늘해지고 있었다.
오한결 가족은 즐거운 표정으로 멋지게 가족사진을 남긴 뒤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한수가 터벅터벅 걸으며 물었다.
“아, 지치네……. 오늘 일정은 끝난 거지?”
“네. 맛있는 저녁 식사만 남았어요.”
오한수가 어린아이처럼 펄쩍 뛰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최고의 여행이었어. 내일도 엄청 기대되는걸!”
“내일은 아버지가 일정을 짰어.”
모두 오준근에게 이목을 집중하자, 오준근이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내일도 기대해. 오늘보다 조금 힘들겠지만.”
불안한 표정으로 오한수가 물었다.
“아버지 설마…….”
오준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우뚝 솟은 한라산을 바라봤다.
“내일은 한라산 등반할 거다. 가볍게 산책 정도로 생각해도 좋아. 무리할 생각은 없으니까.”
북한산 추억이 떠오른 오한결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난도 코스를 생각하신 건 아니시죠?”
“걱정하지 말아라. 찾아보니까 6.8km 정도구나.”
“!!”
“‘어리목 탐방로’로 정했다. 윗세오름까지 2시간, 남벽분기점까지 3시간. 어때 평이하지?”
박선희가 오한수의 등을 쳤다.
“이놈아, 엄마도 거뜬히 하는 등산을 왜 안 하려고 하냐? 한수가 힘들어하면 내일 엄마가 업고라도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어머니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낀 오한수가 소리쳤다.
“무슨 소리! 내가 등산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일 진정한 등산인의 면모를 보여주겠어!!”
계획대로 즐거운 여행을 보내고 있는 오한결 가족.
오한결은 가족들과 함께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