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28화 (28/202)

제28화 모듬 생선구이

오한결은 분명 노을을 작품을 보고 바니타스 정물화를 떠올렸다. 그것은 ‘공허, 헛된, 가치 없음’을 상징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한결은 해골 모양의 노을의 작품에서 희망이 보인다고 했다. 최무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형님! 제 눈에는 전쟁 피해자들의 해골을 무덤처럼 쌓아 놓은 것 같은데요. 노을 누님의 작품은 솔직히 무시무시해 보여요.”

노을이 희열을 느끼며 피식 웃었다.

“역시 오한결 작가님 대단해요! 그래서 이번 작품 제목은 <희망>이야.”

최무열이 어깨를 으쓱하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야? 미술은 너무 어려운 거 같아.”

오한결이 노을을 바라봤다.

“무열이한테 설명해 줄래? 나의 직감이 맞는지 궁금하네.”

“알았어!”

노을이 최무열을 향해 돌아서더니 상냥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 작품을 위해 심리 이론을 공부했어.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해 알아냈지.”

“양가감정?”

“정신분석학에서 인간은 두 가지 대립하는 심리상태가 공존한다고 말해. 간단하게 말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과 죽고자 하는 마음 같은 거야. 더 설명하자면 사랑과 미움, 분노와 용서, 적대감과 화해, 허무함과 충만함 등이 있지.”

“그 말은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은 동시에 살고자 하는 마음을 나타낸다는 거야?”

노을이 기뻐서 박수를 쳤다.

“오! 맞아. 그래서 나의 작품이 희망이 되는 이유야.”

“어려워……. 솔직히 확 와닿지 않아…….”

오한결이 보충 설명을 했다.

“양가감정을 이해할 때 인간의 삶의 진짜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 무열이가 뜨거운 열정으로 작품을 준비 중이지만, 반대로 미치도록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너무 어렵고, 예술이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그렇지?”

“……그건 인정. 마음이 왔다 갔다 하고 있어…….”

“한편으론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멋지게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같이 생기는 거야. 포기하고 싶은 커다란 욕망은 결국 완성에 대한 처절한 갈망으로 볼 수 있지.”

“……음.”

“그리고 노을 작품 색을 봐봐. 노을이 쌓아 올린 해골은 층별로 각기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어. 색이 가진 상징을 읽을 수 있어야 해.”

이번엔 노을이 설명을 이었다.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해골 층은 검정이야. 즉, 바니타스 본연의 상징인 죽음과 허무를 뜻해. 그리고 두 번째 층은 초록이야. 치유와 평화 그리고 긍정을 상징하지. 마지막으로 파랑! 그건 희망이야.”

최무열이 작품을 꼼꼼히 살피며 말했다.

“그러니까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은 양가감정으로 보면 삶이라는 뜻이고. 해골이 쌓인 저 피라미드는 삶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 거다? 그리고 층별로 나뉜 색은 죽음, 치유, 희망 순으로 이어지는 거네.”

노을이 환호성을 질렀다.

“맞아! 역시 무열이는 머리가 좋다니까! 호호.”

“누나 미안한데. 솔직히 좀 억지스러운 듯한 느낌이 드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오한결은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려고 냉큼 입을 열었다.

“노을은 자신의 작품에 수많은 상징을 남겨 놓았어. 관객인 우리는 그것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면 되는 거야. 그게 현대 예술의 감상법이야.”

“노을 누나가 숨겨 놓은 그 상징을 다르게 해석해도 되는 건가?”

“당연하지! 작가가 제시한 방향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어. 어디로 가든 그건 우리 마음이니까.”

노을이 웃으며 말했다.

“난 이 작품에 만족해. 그동안 작품을 통해 내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하려고만 했어. 그게 솔직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한결 작가님이 1차원적인 방법이 아닌 시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법을 알려줬고 처음으로 상징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봤어. 해석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달라지는 작품 말이야.”

최무열이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너무 개념 없이 말해서 미안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랬네…….”

노을이 상냥하게 최무열의 등을 두들겼다.

“기분 하나도 안 나빴어. 신경 쓰지 마!”

오한결이 물었다.

“이 작품 어디에 전시할 거야? 꼭 전시되는 모습 보고 싶어.”

노을의 꿈을 꾸듯 간절하게 말했다.

“때마침 서울시에서 ‘젊은 거리 예술가들 축제’를 한다지 뭐야. 거기 지원해보려고. 만약 선정되면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전시될 거 같아. 아, 떨려. 나 붙었으면 좋겠어.”

최무열이 소리쳤다.

“무조건 될 거야! 내가 기도해 줄게!”

“무열의 기도라면 무조건이네. 호호.”

* * *

명일문화재단 이사장실에 앉아 있는 신수진 이사장.

공모전 마감 날 얼핏 스친 그림이 눈에 아른거려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한눈에 봐도, 분명 특별한 그림이었어.’

신수진 이사장은 런던대학교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버지인 신태진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어려서부터 최고의 미술 이론 교육을 받고 자랐다. 수많은 명작을 직접 보고 예술가들을 접한 덕분에 진정한 예술을 알아보는 ‘촉’을 기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해외 예술 작품을 볼 때만 작동하던 그 ‘촉’이 엊그제 한 청년의 작품에 작동했다. 그것은 몹시 놀랍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아주 대단한 작가가 지원한 모양이군. 됐어! 이번 공모전은 반드시 성공할 거야!’

신수진 이사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똑. 똑. 똑.

노크 소리에 눈을 뜬 신수진 이사장.

“들어오세요.”

이나영 팀장이 두꺼운 서류를 들고 조심스레 들어왔다.

“지난주 마감한 공모전 접수 결과 보고드리겠습니다.”

“아, 그래요. 무척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이나영 팀장이 서류를 이사장 앞에 놓으며 보고했다.

“아시다시피, 신인과 기성작가 상관없이 모집했습니다. 당선자에 대한 대우가 좋다 보니 예상했던 대로 지원자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총 2,500점의 작품이 접수됐습니다.”

“좋습니다. 접수 작품들은 모두 어디에 보관 중인가요?”

“창고에 보관 중입니다.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전문가들이 최적의 온도, 습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특이 사항이 있는데요.”

이나영 팀장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현재 10명이 작품을 제출하고도 참가 포기 의사를 밝혔습니다.”

“네? 왜죠?”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다른 공모전에 제출하려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쪽 공모전은 경쟁률이 높으니까요. 아, 그리고 그들 모두 작품 반환을 요청했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작품을 돌려보낼까요?”

신수진 이사장이 고민 후 말했다.

“아니요. 그건 안 됩니다. 만약 돌려주게 되면 심사 도중 작품을 달라고 하는 요구가 빗발칠 겁니다. 일단 접수했으면 모두 심사한다고 안내하세요. 작품 제출까지는 본인의 의사지만 심사 여부는 문화재단 재량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10 작품 모두 심사하는 거로 안내하겠습니다.”

신수진 이사장이 물었다.

“심사는 블라인드로 진행하는 거죠?”

“네, 말씀하신 대로 심사위원들은 작가 정보를 알지 못합니다.”

“좋습니다. 심사 일정은요?”

“1차 심사는 약 한 달간 진행하고 최종 10개의 작품을 선정하게 됩니다. 2차 심사는 1개의 당선작을 뽑는 거고요. 2차 심사 일정은 심사위원들이 워낙 바쁘셔서 아직 일정은 미정입니다.”

“알겠습니다. 특이 사항 있음, 바로 보고 주세요.”

이나영 팀장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기……. 이사장님.”

“네?”

“명일그룹 비서실에서 접수 결과를 공유해달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신수진 이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참 이해할 수가 없네! 비서실이면 회장님 지시를 받고 움직일 텐데……. 회장님은 왜 공모전에 관심을 가지는 거지?’

“일단 안 된다고 하세요.”

“……그게, 회장 비서실 전화라 거부하기가 쉽지 않아서요.”

“그럼 전화 오면 절 바꿔주세요. 제가 직접 상대하죠.”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이나영 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 * *

그 사이, 오한결 가족은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제주도 하늘이 오한결 가족의 방문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오한결이 캐리어를 잠시 세워두고 말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요. 뻥 뚫린 하늘을 보니까, 그동안 스트레스가 확 사라지네요.”

선글라스로 멋을 낸 오한수가 말했다.

“와! 멋지다. 굉장히 이국적인 풍경인데. 첫 제주도 여행치곤 아주 운이 좋아.”

박선희가 한숨을 쉬었다.

“니들 어렸을 때 몇 번 왔다니까. 왜 기억을 하나도 못하는 거야? 에휴…….”

오준근이 박선희의 짐을 대신 들며 말을 보탰다.

“아이들 아장아장 걸을 때 왔는데 기억을 어떻게 할까? 쟤들한텐 이번이 첫 제주도 여행으로 기억될 거야. 내가 사업만 잘 했어도 자주 왔을 텐데…….”

“여보, 여기까지 와서 우울 모드 할 거예요?”

“…….”

공항 앞 신호등에 멈춰선 오한결이 가족에게 말했다.

“우선 렌터카 빌리고요. 바로 식사하러 갑니다.”

오한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식사 메뉴는?”

“모듬생선구이!”

“좋았어!”

오한수가 운전대를 잡고 공항 근처 생선 구이집으로 차를 몰았다.

늦은 점심이라 그런지 식당에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시끌벅적한 것보다 조용히 식사하는 것을 선호하는 오한결 가족은 기분 좋게 점심 메뉴를 살펴보고 있었다.

“모듬 생선구이 주세요. 음료수도 같이요.”

배가 고팠는지 밑반찬을 꾸준히 먹던 오한수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생선구이가 나오자 환호했다.

“대박, 종류도 엄청 많구나.”

식당 아주머니께서 인자한 웃음을 지으셨다.

“왼쪽부터 갈치, 민어, 삼치, 가자미예요. 매우 신선한 재료로 구웠으니까 맛있을 거예요.”

오준근이 젓가락으로 갈치살을 집더니 오한결과 오한수의 밥 위에 올려놓았다.

“둘 다 수고가 많았다. 너희는 정말 자랑스러운 아들이야.”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가슴이 뭉클해진 오한결과 오한수는 밥을 듬뿍 수저에 올리고는 입에 넣었다.

“너무 맛있어요!”

박선희가 잔에 음료수를 따르며 물었다.

“한결아, 공모전 결과는 언제 나와?”

“대략, 한 달은 소요될 거예요. 심사 작품이 많을 테니까요.”

“아이고, 심사도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 그 많은 작품을 다 보려면 말이다.”

오한수가 입에 가득 음식을 넣고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

“에이, 전문가는 척 보면 알죠. 아마 한 작품 보는데, 일 분도 안 걸릴걸요.”

“정말? 그래도 모두 고생해서 그린 걸 텐데. 꼼꼼히 좀 보지. 안타깝다.”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박선희에게 오한결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심사위원들은 전문가니까 그게 가능한 거겠죠. 아무리 빨리 봐도 좋은 작품은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박선희가 방긋 웃었다.

“그렇겠지? 엄마는 심사위원들이 한결이 작품을 아주 오랫동안 관찰했으면 좋겠어. 얼마나 고생해서 그린 건지 잘 아니까.”

오한수가 툴툴거렸다.

“고생은 했죠. 마지막 날 택시 타고 무슨 추격전 벌이듯 했으니까요. 영화 한 편을 찍었다니까요.”

오준근이 그때를 추억하며 웃었다.

“난 그날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던지. 접수 못 할까 봐 조마조마했어.”

오한결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네요. 무리한 작업 방식이 원인인 것 같아요.”

박선희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림이 무척 독특하던데, 뭘 그린 거야?”

“삼각지 화랑거리를 추억하는 작품이에요.”

“삼각지 화랑거리? 거기가 어디지?”

“제가 자주 가는 화랑이 있는 곳인데요. 역사가 꽤 깊은 곳이죠. 사실 저의 예술 안식처이기도 하고요.”

“그래? 궁금하네. 어떤 곳인지.”

“나중에 그곳에 미술관을 지어 볼까 해요. 앞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하.”

오한수가 투덜대며 말했다.

“미술관은 솔직히 오바 아닌가.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지만, 너무 커도 안 돼.”

박선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한결이가 미술관 지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느낌이 그래. 우리 아들 화이팅!”

끝없는 수다와 웃음소리가 이어지고 드디어 모두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오한결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자자, 다들 일어나세요. 오늘 일정 소화하려면 바쁩니다.”

오한수가 호기심을 보였다.

“다음 목적지는 어딘데?”

“주상절리대.”

“오호, 들어는 봤는데, 그게 정확히 뭐지.”

“가보면 알아!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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