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23화 (23/202)

제23화 생각하는 사람

복실이가 종종걸음으로 앞서가고 신태진 회장과 이현미가 그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복실이가 주인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멈춰 뒤돌아보자, 이현미가 행복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이렇게 강아지랑 산책하는 노후를 꿈꿨는데, 드디어 꿈을 이뤘네요. 털 날린다고 애완동물을 싫어했던 당신이었는데, 무엇이 우리 회장님을 바꿨을까요? 호호.”

신태진 회장이 강아지 목줄을 넘겨받고 말했다.

“진짜 예술가를 만났거든. 복실이는 그가 준 소중한 선물이야.”

“그렇군요.”

이현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신태진 회장이 말하는 진짜 예술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파주 그림을 직접 보고 상당히 놀랐으니까. 아직도 가끔 눈을 감으면 그림이 내뿜는 예술적 아우라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신태진 회장이 불현듯 멈춰 서자, 복실이가 놀라 표정으로 신태진 회장 곁으로 조르르 다가와 몸을 비볐다.

“당신도 알잖아. 내가 젊었을 때 꿈이 예술가였던 거. 난 진심으로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다고.”

“……제가 말렸잖아요. 꼭 회사 물려받으라고.”

“그랬지.”

“당신은 나를 원망하나요?”

“아니, 전혀. 난 아버지의 회사를 한국 최고의 회사로 키워냈어. 예술의 길을 선택했다면 그저 그런 작가가 됐겠지. 난 경영을 하는 게 맞았어. 당신은 옳았던 거야.”

“아니에요. 당신은 예술을 택했어도 훌륭한 작가가 됐을 거예요. 너무 그렇게 단정 짓지 말아요. 미안하니까.”

“아니, 오한결 작가의 작품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나는 나를 잘 알아. 나의 예술적 한계는 명확해.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오한결 작가의 꽁무니도 못 쫓아갈 거야.”

“…….”

복실이가 끙끙거리며 산책하자고 보채자, 이현미가 목줄을 받아들고 걸어나갔다.

“당신이 키워 낸 예술가만 해도 상당하잖아요. 서로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죠.”

신태진 회장이 억지로 밝게 말했다.

“그래, 그거야 말로 돈 많은 늙은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당신도…….”

복실이가 꼬리를 흔들며 앞서 달리자, 신태진 회장과 이현미는 한동안 말없이 강아지를 따라 빠른 걸음을 걸었다. 잠시 뒤 이현미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힘들어라……. 저기 벤치에 잠깐 앉읍시다.”

신태진 회장과 이현미가 끙하는 소리를 내며 벤치에 앉자, 복실이도 배를 깔고 휴식을 취했다. 두 사람은 공원에서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을 여유롭게 바라봤다.

이현미가 복실이를 손으로 쓰다듬자, 신태진 회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복덩이가 들어왔네.”

복실이가 몸을 일으켜 이현미를 빤히 쳐다보고는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이렇게 사랑스런 아이가 유기견 보호소에 있었다고요? 눈물이 나네요.”

“우리나라 유기견 보호소 환경이 너무 열악하더라고. 이것도 오한결 작가 덕분에 알게 됐어. 다행히 임원들의 반대 없이 명일그룹이 전국 사설 유기견 보호소에 사료값을 후원하기로 했지. 이것도 최소한의 조치일 뿐, 앞으로 갈 길이 멀어.”

“어머 잘됐네요. 오한결 작가는 참 훌륭한 사람 같아요. 나도 빨리 만나 보고 싶네요.”

“이번에 명일문화재단 공모전에 나올 건 가봐.”

“아……. 그래서 당신이 수진이를 회사로 불렀군요.”

신태진 회장이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

“수진이를 부른 건…….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한 거라니까.”

이현미가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가로지르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절대로 오해사는 행동은 하지 마세요. 걔가 워낙 융통성이 없어서 청탁한다고 오해할 거예요.”

“……수진이 만큼 소신과 능력 있는 사람은 드물잖아. 수진이가 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어서 다행이긴 해…….”

이현미가 고개를 돌려 굳은 표정의 신태진 회장을 바라봤다.

“수진이를 믿는다면서, 왜 불안해하세요?”

“워낙 예술계가 편 가르기를 심하게 하잖아. 공정한 심사가 이뤄져야 할 텐데 말이지.”

“수진이라면 분명 공정하게 만들 거예요. 우리 딸 실력을 못 믿어요?”

신태진 회장이 피식 웃었다.

“맞아. 우리 신수진 이사장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공정하게 만들 거야.”

이현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한 바퀴만 더 돌고 갈까, 복실아?”

복실이가 꼬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왈, 왈, 왈.”

* * *

한편, 최무열은 굳은 표정으로 조각상을 다듬고 있었다.

‘아……. 이게 아닌데.’

다시 온 힘을 다해 조각상 표면을 정교하게 다듬으며 형태를 고쳐보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일그러진 최무열의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도저히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답답한 마음에 끌을 내려놓고 창가로 다가가 학교 캠퍼스를 바라봤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뭐가 그렇게 재밌고 좋은지 연신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최무열의 표정이 더욱 굳어져 갔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최무열은 결심한 듯 휴대폰 꺼내 전화를 걸었다.

“형님, 지금 H대 작업실인데요. 이틀째 집에 못 가고 이러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작품을 봐달라는 거야?”

“네! 냉정한 평가를 부탁드려요!”

한 시간 뒤 오한결이 H대 작업실 문을 천천히 열자 어두운 안색의 최무열이 보였다. 언제 잠을 잤는지, 푸석푸석한 얼굴이 몹시 안쓰러웠다.

“무열아!”

“오, 나의 구세주! 오셨군요.”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단번에 최무열이 만든 인체 조각상이 눈길을 끌었다. 최무열의 정교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솔직히 오한결도 그의 실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실력을 얻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조각상을 살펴봤다.

고뇌에 찬 조각상의 표정이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돼 눈길을 사로잡았다.

“솔직히 너무 놀랐어. 대단한 실력인데.”

최무열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만졌다.

“아……. 고마워요.”

“조각상의 표정을 보니 고민이 많은 사람 같네. 이런 사실적 묘사는 최근 들어 처음 보는데.”

“현대인을 고뇌를 표현해 봤어요. 아마도 지금 제 얼굴하고 많이 닮아 보이죠? 하하.”

오한결이 조심히 손을 뻗어 조각품의 정교한 질감 표현을 만져봤다.

“학교 과제로 만든 건가?”

“네, 맞아요. 이번 주에 제출해야 해요.”

오한결이 뒤돌아 최무열을 바라봤다.

“무열이도 이 정도면 만족하는 눈치인데. 왜 나를 부른 거지?”

최무열이 잠시 머뭇대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네, 맞아요. 작품은 잘 나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아무리 고민해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도요.”

“상당히 익숙한 작품이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최무열이 대답했다.

“솔직히 참고했어요. 제가 단테의 ‘신곡’을 좋아하는데, 로댕이 그걸 참고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잖아요. 저도 로댕처럼 작업해보고 싶었어요…….”

“신곡이라…….”

중세 이탈리사 시인 단테의 장편 서사시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후 세계를 중심으로 한 단테의 여행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을 통해 정치적, 윤리적, 종교적 문제를 고민하던 단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오한결이 생각에 잠긴 뒤 말을 이었다.

“로댕의 <지옥의 문>에 고뇌하는 인간 조각상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지.”

“역시! 오한결 형님은 모르는 게 없네요.”

갑자기 최무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찜찜할까요.”

오한결은 고개를 돌려 최무열의 작품을 다시 바라봤다.

“무열아,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작품이 되지는 않아. 화려한 테크닉으로 잔뜩 멋을 부린 작품이 최고의 예술 작품이 되지 않는 것처럼.”

“그게 무슨…….”

“분명, 무열이가 조각한 이 작품은 상당히 정교해. 멀리서 보면 진짜 사람 같다니까. 가까이서 봐도 놀랍긴 마찬가지고. 하지만 나도 무열이처럼 똑같이 느껴. 아, 이건 아직 부족하다. 예술적 영혼이 스며들지 못했구나.”

오한결의 말에 충격받은 최무열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전 진짜 예술가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오한결이 주변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존 작품을 답습하는 것만으론 예술적 완성도를 기대할 수 없어. 작품을 봤을 때, 작가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상상이 되어야 하거든.”

오한결이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위대한 작품에는 작가의 치열한 고민이 들어있는 법이야.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게 뭔지, 관객이 어떻게 생각할지 등 작가 스스로 충분한 준비가 돼 있어야 해.”

“……어려워요. 그게 무슨 말이죠?”

“왜 예술가가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어?”

최무열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듯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냥 미술이 좋아서 시작한 거예요. 제가 가진 게 성실함밖에 없어서, 입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고요. 이제 그 한계가 나타나고 있어서 슬프네요.”

오한결이 최무열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

“안타깝지만, 현대 예술은 성실함을 버렸거든. 이제 그건 작가에게 무기가 될 수 없어.”

최무열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분명 교수님께서 성실한 작품에 점수를 많이 주신다고 했는데…….”

“물론 학교 과제니까. 당연히 성실함을 보겠지.”

오한결이 인자한 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성실함이 필요 없는 건 ‘개념 미술’을 말하는 거야. 아직 무열이가 작품 방향성을 정하지 않았겠지만, 추후 어떤 예술을 할지 스스로 정해야 할 날이 올 거야. 너무 성실함에 자신을 가둘 필요는 없어. 혹시 모르지. 무열이가 개념 미술에 재능을 보일지.”

최무열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개념 미술……. 얼핏 들어봤는데. 정확히는 잘…….”

오한결이 칠판에 다가가 분필을 들고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회화는 끝났다.’

콕. 콕. 분필로 칠판을 두드리며 오한결이 말했다.

“누가 한 말일까?”

입을 굳게 닫은 최무열을 바라보며 오한결이 말했다.

“뒤샹이 말했어. 그가 생각하는 예술은 머리로 하는 예술이었지. 더는 기술력이 중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사고력으로 하는 예술, 즉 생각하는 미술을 의미하지.”

“그래서 뒤샹은 변기가 예술 작품이라고 우겼군요. 하지만 아직도 전 이해를 못 하겠어요. 그게 진짜 예술 작품인가요?”

“충분히 이해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미술 작품인 건 사실이야. 하지만 관객은 그 이상한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어. 일명 ‘무의미의 미술’이라고 하지.”

“관객의 역할이 중요하군요.”

“맞아. 관객은 작품이 지닌 특성을 해석하고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는 거지. 더는 관찰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된 거야. 이제 전시장은 관객의 생각 놀이터가 된 거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은 최무열이 물었다.

“근데, 왜 하필 변기를 선택한 거죠.”

“뒤샹의 마음이지.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

“그것을 레디 메이드(Ready-made)라고 하지. 이제 예술은 예술가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린 거야. 공산품의 기능은 사라지고 예술가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거지.”

최무열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단순하게 멋지게 보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작품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고민조차 하지 않았네요. 저는 밤새 성실하게 작품을 만들면 예술가가 될 기회를 잡을 줄 알았거든요.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네요.”

“아주 정교한 조각품도 당연히 훌륭한 예술품이야. 하지만 작가의 혼이 담겨 있어야 하겠지. 그건 작가의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문제야.”

최무열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는 웃어 보였다.

“큰일이네. 내일모레까지 작품 제출해야 하는데.”

오한결이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작가로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의외로 쉽게 답을 얻을 수도 있어.”

“그렇겠죠……? 이제부턴 손이 아닌, 머리로 예술을 해야겠어요. 하하.”

“나중에 완성되면 보여줘, 궁금하네.”

“아……. 그건 좀 고민해 볼게요. 하하.”

“……어쨌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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