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양념 갈비
오한결의 질문에 대니 최는 당혹스러움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왜! 신태진 회장은 이런 듣보잡 작가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거지!’
대니 최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얼굴을 붉혔다.
신태진 회장은 말릴 생각 없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개성이 뚜렷한 두 작가의 만남이라. 과연 누가 더 우위를 점할까.’
오한결은 미세하게 꿈틀대는 신태진 회장의 심적 변화를 눈치챘다. 의도가 너무 뻔하지 않은가. 명일그룹 후원을 받는 예술가를 평가해 달라는 신태진 회장의 속내는 결국 오한결을 평가하고 싶은 의도였을 것이다.
오한결은 신태진 회장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
‘회장님! 자만심만 가득 찬 어리석은 예술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옳은 것인지 보여줄게요.’
신태진 회장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오한결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오한결이 고개를 돌려 성난 표정의 대니 최에게 말했다.
“하나 물어보죠. 뒤샹은 1917년 뉴욕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변기를 <샘>이라는 작품명으로 출품했어요. 하지만 그 당시에 예술계는 뒤샹의 작품을 예술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죠. 왜 그랬을까요?”
“당연하죠. 그건 누가 봐도 이상했으니까요.”
“대니 최 씨 작품도 마찬가지죠. 누가 봐도 이상합니다.”
대니 최가 불쑥 화를 냈다.
“뭐라고요! 제 작품은 예술이고. 뒤샹 작품은 단순한 변기에 지나지 않아요!”
오한결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본인의 작품이 뒤샹의 변기보다 낫다는 얘깁니까?”
“……그게 아니라.”
“방금 말했잖아요. 본인의 작품은 예술이고, 뒤샹의 작품은 변기일 뿐이라고. 하지만 대니 최 씨의 작품은 아직 아마추어 작품일 뿐이지만, 뒤샹의 변기는 예술사에 기록된 시대를 앞선 예술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죠.”
오한결이 풀이 죽은 대니 최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예술가는 예술 작품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작품에 예술성을 부여하고 있어요. 대니 최 씨의 작품이 예술품이 될지는 그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대니 최가 주저하며 말했다.
“신태진 회장님 같은 분이겠죠. 사람들은 작품이 비싸게 팔릴수록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믿으니까요.”
“아마도 재력가들의 취향을 무시할 수 없죠. 하지만 진짜 권력자들은 ‘예술계’입니다.”
예술계 이야기가 나오자 신태진 회장이 흥미롭게 지켜봤다.
“정확히 예술계가 하는 일이 뭔가요?”
오한결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예술계는 주관적으로 제도와 관습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게 예술 작품에 ‘자격’을 부여하고 있죠. 변기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예술계가 변기 그 자체가 갖는 물리적 속성이 아닌, 선택된 변기가 예술로 간주될 수 있는 사회적 ‘관습’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널린 게 변기지만, 뒤샹이 예술 작품으로 선택한 그 변기만이 예술이 되는 결과를 낳았죠.”
오한결이 멍한 표정의 대니 최를 바라봤다.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죠. 예술계가 대니 최 씨의 작품을 보고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너무 앞선 대니 최 씨의 작품에 예술 작품으로서 ‘자격’을 부여하지 않은 거죠. 그럼 대니 최 씨의 작품은 화장실에 설치된 변기와 다르지 않은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거죠. 하지만 희망을 놓아선 안 됩니다. 뒤샹의 작품도 처음에는 예술계가 예술로서 인정하진 않았으니까요. 예술계도 시대적 흐름을 거절하지 못했어요.”
거의 울먹이는 대니 최를 본 신태진 회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오한결 작가님, 너무 짓궂은 장난은 하지 마세요. 뒤샹의 파격적인 작품과 엄연히 다르지요. 그건 개념 미술 아닙니까? 기존 예술 개념과 다르게 작품을 제작할 때 아이디어 과정 자체를 예술로 생각하는 현대 미술 개념이잖아요. 그래서 변기를 예술 작품으로 생각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변기가 예술 작품이 될 자격을 얻는 거고요.”
신태진 회장이 온화한 미소를 오한결에게 보내며 말을 이었다.
“너무 그러지 마시고 대니 최에게 격려 한 번 해주세요. 오한결 작가님.”
오한결이 대니 최의 시선을 피해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니 최 씨의 그림은 추상미술 형태의 예술 작품입니다. 몬드리안이 이런 말을 했죠. ‘아름다운 감정은 대상의 외형에 방해받는다. 그래서 대상은 추상화돼야 한다’고요. 대니 최 씨의 작품은 전형적인 추상화로서 작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작품으로 볼 수 있어요.”
오한결이 ‘이제 됐나요?’ 하는 표정으로 신태진 회장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니 최가 안도하는 표정으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 우울한 날이었어요. 나도 모르게 이젤에 앉아 캔버스를 검게 칠하고 있었죠. 그게 나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저는 가끔 그런 식으로 색을 통해 제 마음의 그을음을 토해내곤 했어요. 저만의 소통 방식이죠.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빨강, 파랑, 흰색 등 원색의 물감들이 검은 배경에 별처럼 뿌려져 있는 거예요. 그때 느낌이 왔어요. 아, 나의 마음이 색으로 구현됐구나. 이게 나의 마음이구나.”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니 최 씨의 작품이 전형적인 추상화라는 걸 말해주네요. 현대 예술은 재현을 포기했어요. 색과 형태라는 형식 요소를 없애고 미적 정보만 남게 됐죠. ‘도대체 이건 뭘 그린 거죠?’ 라고 묻는 게 실례가 되는 예술이 된 거죠.”
신태진 회장이 대니 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한결 작가님이 대니 최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자신의 작품이 예술계에서 받아들일지, 그런 걱정은 하지 마라. 예술을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도 없을뿐더러, 시대마다 그 기준이 달라지는 게 예술이잖니.”
살짝 민망해진 오한결이 어깨를 으쓱 올리자, 대니 최가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대니 최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자신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것 같은 저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타고난 재능과 스포트라이트를 즐겼던 자신을 이렇게 당황하게 하다니.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작품이 예술계에서 부정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 번도 어떤 게 진짜 예술 작품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대니 최는 오한결의 날카로운 조언 덕분에 자신의 예술적 세계가 다시 재편되는 경험을 한 것 같아 한 편으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까 싶었다.
오한결이 물었다.
“근데, 한국말보다 영어가 편하시면 제가 영어로 말할까요?”
“……NO. 모국어가 한국어임.”
“…….”
* * *
띠링. 띠링.
두꺼운 ‘동양미술사’ 책을 빠르게 읽어가던 오한결이 단체 대화방 알림을 듣고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최무열: 봉사활동 갈 사람?」
「노을: 갑자기 봉사활동?」
「오한결: 뜬금없긴. 자세히 얘기 좀 해봐.」
「최무열: 학교 졸업하려면 일정 시간 사회봉사활동을 해야 하거든. 그래서 내가 고민해 봤는데, 미술 특기를 살려서 봉사활동 하면 어떨까 해서.」
「노을: 미술 특기? 근데 무열이 학교 봉사활동을 왜 우리가 같이해? 이상하잖아…….」
「최무열: 그렇긴 한데……. 벽화 봉사활동을 계획했거든. 다 같이 하면 재밌을 거 같아서. 어때 신나지 않아? 오랜만에 우리 뭉치는 거야!」
「노을: ……재밌을 거 같긴 한데. 여전히 좀 이상하긴 함. 호호.」
「오한결: 나쁘지 않네. 우리 모두 벽화 알바생이잖아. 의미는 있겠다.」
「노을: 맞다. 우리 모두 화신벽화 알바생이네.」
「최무열: 그럼 하는 거다?」
「노을: 미안한데 취지는 좋지만, 나 바쁜데…….」
「최무열: 누나!!! 이러기야!!」
「노을: 작품 준비 중이란 말이야…….」
「최무열: 한결 형님. 한 마디 해줘요.」
최무열의 적극적인 요청에 잠시 당황한 오한결이 피식 웃었다.
‘그래, 형님이 도와준다. 무열이가 이렇게 애원하는데!’
「오한결: ……그게. 색다른 경험을 통해 영감도 얻는 거니까. 벽화 봉사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노을: 그런가……. 좋았어!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해보자고.」
「최무열: 나이스!! 그럼 다음 주로 일정 잡을게요!」
「오한결: 잠깐, 내 친구들도 초대하면 안 될까?」
「최무열: 오! 나야 좋죠! 근데 누구?」
「오한결: 미대 동기들. 이번 기회에 소개해 주고 싶어서.」
* * *
강남의 고급 한정식 식당에 다소 긴장한 듯 조용히 앉아 있는 오한결 가족.
박선희가 영롱하게 빛나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어머, 여기 굉장히 비싼 곳인데, 괜찮겠어?”
오한결이 반지르르 윤이 나는 갈비를 하나 집어 박선희 접시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비싼 곳 아니에요. 걱정하지 말고 드세요.”
오한수는 반짝이는 눈으로 정갈한 음식들을 눈에 담고 있다.
“음식은 눈으로 먹는다고 했어. 절대로 이 때깔을 잊지 않을 거야.”
오한결이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사진을 찍던가.”
“아, 맞다! 사진 찍으면 되는구나.”
오한수가 허둥대자 가족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오준근이 물었다.
“한결아, 오늘 무슨 날이야? 우리가 뭘 놓쳤나 싶고. 살짝 불안하네.”
오한결이 양념이 짙게 밴 갈비를 오물오물 씹으며 대답했다.
“지난번에 엄마가 갈비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요. 그래서 예약했죠. 맛있는 곳으로.”
박선희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머……. 그걸 기억하고 있었니? 아무리 그래도 여긴 과하지 않니……?”
오한결이 웃으며 말했다.
“때마침 저도 갈비가 너무 먹고 싶었어요. 크게 의미 두지 마세요.”
“엄마가 해주면 되는데……. 비싼 돈 쓸 필요는…….”
“엄마!!”
오한수가 입안 가득 음식물을 씹으며 웅얼거렸다.
“이제 적응될 때도 됐잖아. 한결 형은 달라졌어. 부자가 된 게 분명하다고. 우리는 형이 사주면 그냥 먹으면 돼. 아무런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단 말이지. 먹는 게 남는 거라니까. 난 이번 일은 형이 잘한 거라고 생각해.”
“……뭐래.”
오한수가 강렬한 눈빛을 발산했다.
“형! 더 비싼 곳도 괜찮아. 주저하지 말고 질러 버려!!”
오준근이 오한결에게 윙크하며 말했다.
“아빠도 한결이가 잘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겠구나. 고맙다.”
박선희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도 참…….”
종업원이 바싹하게 튀긴 새우를 갖고 들어오자 가족 모두 자연스레 침을 꿀꺽 삼켰다. 오한수가 재빨리 낚아채 한입 깨물자 바삭 소리와 함께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옴메! 너무 맛있다!”
“야! 부모님 먼저 드시라고 해야지.”
“괜찮아. 잘 먹는 거 보니까. 기분 좋은데 뭘.”
“들었지? 철없어 보이는 행동도, 다 계산된 거라니까.”
“……뭐래.”
이후 몇 번의 코스 요리가 더 나왔고 가족 모두 맛있는 음식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지만 식사 도중 박선희 얼굴에 어두운 표정이 문득 스치자, 오한결이 평소와 다른 어머니 모습이 걱정돼 물었다.
“엄마, 걱정거리 있어요?”
“아니……. 그게.”
걱정이라는 말에 오한수가 놀라 물었다.
“……뭐야? 엄마 빨리 말해봐.”
오준근이 박선희를 빤히 쳐다봤다.
“여보, 아까 얘기한 그 문제 때문이야?”
“맞아요. 마음이 편치 않네요.”
박선희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한 달에 한두 번 지인이 운영하는 ‘사설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거든. 대부분 유기견 보호소가 그렇듯 그곳도 후원금으로 운영되는데, 최근 후원자를 못 만나서 재정적으로 너무 어려워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유기견 모두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지 뭐야. 강아지들하고 정이 많이 들었는데……. 너무 슬프구나.”
급기야 박선희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오준근이 급히 휴지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오한결이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몰랐네요. 그동안 봉사활동을 다니셨군요.”
“처음에는 잠깐 도와주려고 갔는데, 그 천사 같은 강아지들이 눈에 밟혀서 발길을 끊을 수가 있어야지. 너희들한테 굳이 밝힐 만한 대단한 일도 아니었고.”
“그래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요, 대단해요.”
오한결이 존경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자 박선희는 고개를 저었다.
“에휴, 점점 후원이 줄어들어서 이제는 사료 구입 값도 없다는구나. 어쩌면 좋니.”
오한수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도 안락사는 너무 심했다.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후원이 끊긴 보호소는 더는 시설을 운영할 돈이 없을 게 분명해요.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에요.”
박선희가 다시 눈물을 훔쳤다.
“강아지들을 편히 보내주는 것밖에 없는 건가…….”
오준근이 박선희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를 했다.
잠시 뒤, 우울한 침묵을 깨고 오한결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떻게?”
“명일그룹이면 충분하겠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