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옥탑방 작업실
오한결과 최무열이 커다란 과일 상자를 한쪽씩 들고 힘겹게 골목을 걸어가고 있다.
“무열아, 이 골목 확실해?”
“형님! 아니, 작가님! 걱정하지 마세요. 인터넷 지도로 확인했어요.”
“빨리 가자, 이러다가 늦겠어.”
최무열이 혼자 중얼거렸다.
“노을 누나는 좋겠다. 한결 작가님이 작품도 봐주고. 나도 좀 봐주지. 학교 숙제 밀렸는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두 사람이 골목을 돌자 멀리서 노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야, 여기!!”
고개를 들자, 붉은 벽돌 주택 옥상에서 노을이 손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땀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는 최무열이 씨익 웃었다.
“맞죠? 제 말이?”
오한결과 최무열이 옥탑방 문 앞에 과일 상자를 힘겹게 내려놓자, 노을이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뭘 이런 걸 사와! 그냥 오지.”
최무열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서 너무 좋아하는 티 내는 거 아냐?”
“그랬나? 하하. 근데 안에 든 건 뭐야?”
“귤.”
“오……. 오.”
“……뭐지, 그 반응은?”
노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나 귤 엄청 좋아해. 밥 대신 귤 먹을 정도라니까. 정말 고마워! 잘 먹을게.”
최무열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일관하자 노을이 시선을 회피했다.
오한결은 옥탑방 주변을 둘러봤다. 널찍한 안마당이 무척 인상 깊은데, 그곳에 온갖 식물을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평상이 중앙에 놓여 있었다.
오한결이 평상에 걸터앉고 말했다.
“여기 괜찮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옥탑방 같은데. 낭만적인 요소들이 많아.”
노을이 수줍게 웃었다.
“그치? 내가 그거 때문에 계약했다니까. 옥탑방의 낭만이라고 할까?”
최무열이 땀을 닦으며 끼어들었다.
“그럼 우리도 드라마처럼 평상에서 치킨이나 먹어 볼까?”
“너 배고프구나?”
“응, 현기증 나려고 함.”
최무열의 반응에 오한결과 노을이 크게 웃었다.
“나는 배가 안 고파서. 한 마리면 되겠지?”
최무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두 마리.”
“콜! 우선 먹고 하자고!”
잠시 뒤 최무열이 좋아하는 매운맛 치킨이 도착하자, 모두 평상에 둘러앉아 위생장갑을 끼고 닭 다리를 하나씩 들어 올렸다. 최무열이 치킨을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
“근데 닭 다리가 되게 많네. 나는 두 개 오면 누가 먹어야 할지 고민했는데.”
오한결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럴 줄 알고 콤보로 시켰다. 많이 먹어라.”
“콤보는 닭 다리만 주는 거야? 신기하네.”
노을이 웃으며 말했다.
“닭 다리와 날개만. 그래서 한국에서 분쟁 없는 식사가 가능해졌지.”
모두 말없이 치킨에 정신을 집중했다. 허겁지겁 치킨을 먹던 최무열은 양념이 매웠는지 헥헥 거리며 콜라와 물을 연신 들이켰다. 오한결과 노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식사를 모두 마치자 노을이 두 사람에게 작업실을 안내했다.
“작업실이 좀 지저분하지? 청소한다고 했는데, 한계가 있네…….”
오한결은 깡통, 타이어, 철제 공구 등 온갖 폐기물이 곳곳에 널려있는 모습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꽤 거친 소재를 다루는구나. 멋진데!’
최무열이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헐, 누나 작업 스타일은 굉장히 거친가 보네. 신선한데.”
오한결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재료 중 깡통 하나를 집어 들고 살폈다.
“재료들 상태가 좋네.”
“발품을 많이 팔았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모은 거라니까.”
최무열이 손으로 뭔가를 툭 쳤는지, 와장창 소음이 작업실에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쏘리~ 마이 미스테이크~!”
오한결이 또르르 굴러온 깡통을 주우며 물었다.
“노을의 작품 주재료가 이 깡통이구나. 유난히 작업실에 많은 걸 보니.”
“역시, 한결 작가님은 바로 아는구나.”
“내가 뭘 도우면 좋을까?”
“작품 구상을 한 게 있는데,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일단 밖으로 나가자. 여기 더 있다간 무열이가 뭔가를 부술지도 모르겠어.”
* * *
오한결과 노을, 최무열은 나란히 평상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동네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때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세 사람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지어졌다.
노을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봉우리를 응시하며 말했다.
“난 이곳이 좋아. 옛날 골목 특유의 향수가 있어.”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오니까 알겠어. 노을이 어떤 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지. 왜 거리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지를.”
최무열이 평상에 철퍼덕 누워버렸다.
“나도 노을 누나처럼 자유롭게 예술을 해봤으면 좋겠다. 요즘 과제에 치여 살고 있는데, 정말 이게 도움이 될까 싶어. 교수의 취향에 맞춰야 하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이제는 모르겠어.”
노을이 최무열을 바라보며 웃었다.
“정답은 없어. 그렇지, 한결 작가님?”
오한결이 웃었다.
“맞아. 정답은 없어. 매번 새로운 시도로 기존의 질서를 깨는 게 예술이잖아. 예술을 알아야 예술을 하는 시대는 끝났지. 현대예술은 기존의 예술을 파괴하는 거니까. 절대로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다고 미대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야. 나도 미대를 나왔고 말이지, 에헴. 생각이 작가를 만들지, 학교가 작가를 만들지 않아.”
노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가끔 무열이가 부러워. 교수도 동료도 없이 혼자 작품 활동하면 항상 불안하거든. 맞게 가고 있나. 이렇게 해도 되나. 누군가의 조언도 필요한 시점이 있더라고.”
오한결이 노을이 바라보는 살짝 윙크했다.
“그래서 우리가 왔잖아. 이제부터 우리가 교수와 동료가 되어 줄게.”
노을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버렸다. 최무열이 노을을 보고 키득거리며 말했다.
“뭐지! 이 장면은! 얼레리꼴레리!”
노을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최무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나 좀 따라와. 작업 중인 작품 가지고 오게!”
노을과 최무열이 조심스럽게 피라미드 모양의 깡통 작품을 작업실에서 들고 나왔다. 아직 고정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조금만 흔들려도 무너질듯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다섯 개 층으로 이뤄진 깡통 작품은 각 층마다 원색으로 강렬하게 채색돼 있었다. 오한결은 팔짱을 끼고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노을이 불안한지 슬쩍 말했다.
“아직 미완성이야…….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르는데, 막상 표현하려고 하면 항상 막혀. 더는 진행하질 못하겠어.”
작품 앞에 쭈그려 앉은 오한결이 거친 붓 터치로 파란색을 칠한 깡통을 유심히 바라봤다.
“각 층마다 깡통 색이 다르네. 색에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구나.”
노을이 긴장한 듯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층별로 쌓은 건,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의미해. 사람들이 외면한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계급을 표현한 작품이야.”
때마침 바람이 거칠게 불어오자 깡통 작품이 쓰러질 듯 흔들렸다. 하지만 모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작품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오한결이 오랫동안 침묵하자, 최무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미완성이라 뭐라 말하기 조심스럽네. 작품을 만들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가곤 하니까. 노을 누나의 시도는 굉장히 좋은 거 같아. 작가는 사회에 비판적 시선을 가져야 진짜 작가지.”
오한결이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무 1차원적인걸. 몹시 단순해.”
오한결의 직언에 노을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노을은 작가잖아. 감각적이고 시적인 언어가 필요해 보여.”
“시적인 언어?”
“아무래도 예술은 예술 법칙에 맞는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지. 작가가 자신만의 언어로 작품을 표현하겠다고 한다면 그 점도 존중해야겠지만, 관객과의 소통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감각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노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표현법이 단순하다고 생각하긴 했어. 하지만 모르겠어. 그게 왜 잘못이지?”
조용히 대화를 듣던 최무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계층사회를 표현하고자 깡통을 피라미드로 쌓은 것은 너무 단순한 표현 방식같아. 수많은 작가가 이미 시도한 방식이기도 하고.”
오한결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무열이 말이 맞아. 내가 말한 시적인 언어란 결국, 작품을 통해서 은유와 상징 등 여러 요소를 보여줘야 하는 거야. 그래야 예술적 가치가 생기는 거고.”
노을이 풀이 죽은 얼굴로 작품을 쳐다봤다.
“힝, 정말 대책이 없는 것 같아. 내가 예술할 자격이 있을까.”
오한결이 노을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난 노을이 굉장히 용기 있는 작가라고 생각해. 사회적 현상을 바로 보려는 노력, 소외된 계층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서 세상에 경종을 울려 보겠다는 그 시도는 아무나 못 하는 거니까.”
어느덧 강렬했던 한낮의 태양이 기울자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오한결이 말을 이었다.
“작가가 작품에 치열한 고민을 할수록 전달력이 생기는 거야.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작품에 빠져들게 되는 거고. 이해할 수 없는 예술 작품 앞에서 진한 감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작품이란 이처럼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
오한결이 노을에게 방긋 웃어 보였다.
“예술의 모든 표현에서 ‘그냥’은 없어. 반드시 시의 언어로 전달되어야 해.”
잠시 세 사람은 말이 없었다. 오한결은 물끄러미 먼 곳을 바라보는 노을을 보며, 그녀가 작가로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붉은 물감이 번지듯 하늘이 물들고 있었다. 잠시 뒤 별이 반짝이는 밤이 찾아올 것이다.
고민하던 노을이 벌떡 일어섰다.
“그래! 나도 진짜 실력을 보여주겠어! 한 편의 저항시가 되도록 말이야!”
노을의 말에 최무열이 크게 웃었다. 그 많은 시 중에서도 저항시라니, 딱 노을 누나다웠다. 최무열이 평상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깨달음을 얻다니 부럽다. 나도 언젠가 한결 작가님께 조언을 들을 수 있겠지…….”
노을의 눈이 반짝였다.
“아, 행복해! 오늘만큼은 아무도 부럽지 않아. 호호.”
오한결이 붉은 태양 빛의 강렬한 에너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 전망이 너무 로맨틱한데. 이대로 노을이 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어야지.”
노을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야, 놀리지 마.”
최무열이 미친 듯 웃었다.
“누나! 정신 차려. 한결 작가님이 말하는 노을은 누나가 아니잖아. 하하하.”
노을이 부끄러운지 작업실로 들어가면서 외쳤다.
“맥주 좀 가져올게. 우리 한잔해야지!”
* * *
“아버지!! 같이 가요!”
오한결이 꾸역꾸역 산을 오르다가 결국에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생수를 꺼내 벌컥 들이켰다.
“한결아, 넌 확실히 운동 부족이다.”
주말 아침, 오준근이 방문을 똑똑 노크하더니 갑작스레 등산을 가자고 했다. 비몽사몽인 오한결은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대충 알겠다고 말한 뒤 다시 잠들어 버렸다. 그렇게 한 시간 뒤 잠이 깬 오한결이 거실에 나오자 아버지가 등산 장비를 들고 씨익 웃었다.
“아버지는 체력도 좋으세요. 어떻게 그렇게 쉬지도 않고 올라가시죠…….”
오준근이 오한결 옆에 앉고는 숨을 골랐다.
“나야 수시로 등산하니까. 이제는 익숙해진 거지.”
그 말을 들은 오한결이 몹시 놀랐다.
“네? 등산을 자주 하셨어요?”
말없이 방긋 웃는 오준근을 보며 오한결은 불현듯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는 혼자서 등산을 자주 오셨구나. 산을 통해 자신의 혼란스러운 삶을 위로받았던 걸까.
‘그동안 아들과 얼마나 등산을 하고 싶었을까.’
눈시울이 붉어진 오한결이 힘차게 다시 일어섰다.
“제가 사실 등산을 좋아해요. 안 해서 그렇지. 하하.”
오준근도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래? 한결이가 등산을 좋아할 줄이야. 이거 오늘 재밌겠는데.”
“얼마나 남았어요? 한 30분 정도?”
“아니, 백운대까지는 갈 거야.”
오한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아버지!! 거긴 북한산 등산코스 중에서도 제일 힘든 곳이잖아요! 거길 우리가 어떻게 가요?”
“그러니까 이렇게 장비를 챙겨왔지. 사실 나도 처음 도전하는 코스야. 하하.”
오한결의 얼굴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아버지, 우리가 정상에 갈 수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현실을 인정하는 게…….”
오한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오준근이 재빨리 산을 타기 시작했다.
“빨리 와라, 아들! 쉬면 더 힘들어!”
오한결이 고개를 들자, 가파른 돌계단이 끝없이 펼쳐진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