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1화 (11/202)

제11화 시골파전

“야! 박수호 기자! 정신 안 차려?”

김재진 팀장이 회의실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박수호 기자에게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재밌는 게 SNS에 올라와서요.”

“이 자식이! 지금 그거 볼 때야? 지난번에 말한 스티븐 인터뷰는 어떻게 됐어?”

“그게……. 갑자기 연락이 안 돼요…….”

“뭐? 그럴 리가 없는데. 모던아트 기자라고 문자 남겨. 바로 연락 올 거야.”

“소문에 클럽에서 아주 산다고 하던데요.”

“스티븐이 한국에 언제 왔지?”

“대략 일주일 좀 됐죠.”

“음……. 좀 더 연락을 기다려보자. 스티븐 그 자식 분명 모던아트와 단독 인터뷰 약속했단 말이야. 지난 몇 년간 거지 같은 전시도 좋다고 빨아준 게 누군데. 배신하면 예술계에서 매장해 버리면 돼. 우리 그 정도 힘 있잖아. 알지?”

“좀 더 기다려볼게요. 클럽이 지겨워지면 연락하겠죠…….”

“이삼 일만 지켜봐. 그리고 나한테 결과 보고 해!”

“……네.”

박수호 기자가 김재진 팀장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히 말했다.

“‘파주 카페 거리’에 작품이 전시됐나 봐요. 사람들이 작품 사진을 SNS에 올리고 있는데, 반응이 장난 아니에요. 우리가 한번 취재해 보면 어떨까요?”

김재진 팀장이 박수호 기자를 노려봤다.

“돈 안 되는 거에 신경 끄고, 시간 있으면 전국에 있는 클럽은 다 뒤져서라도 스티븐 찾아내! 이번 주까지 그놈 인터뷰 따고 사진도 제대로 찍어와야 한다. 그래야 이번 달 월급 나올 테니까. 알았어!!”

“……네.”

김재진 팀장이 회의실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박수호는 여전히 <사자의 서>와 <파주 카페 거리>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분명 느낌이 오는데. 대박 느낌이…….’

* * *

오한결이 낯익은 골목에 접어들자 낡고 지저분한 ‘시골파전’ 간판이 보였다. 세상 모든 것을 열정만으로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철부지 대학생 시절. 그 당시 청춘의 희로애락을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의 장소였다.

오한결이 2층으로 올라가 가게 문을 열자 구석진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그를 반갑게 맞아줬다.

이풀잎이 꽃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친구! 얼굴 보기 넘 힘드네. 누님 안 보고 싶었는가?”

차승현이 주먹으로 오한결의 어깨를 툭 쳤다.

“짜식, 졸업하고 그림 그린다며. 고생한다. 얼굴이 반쪽이네.”

오한결이 맞은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전들 한 거 보니까, 잘 지내고 있나 보네. 하하.”

차승현이 뻥튀기를 바사삭 씹으며 말했다.

“근데 무슨 파전이야? 맛있는 거 먹자니까.”

“추억의 음식 아니냐. 얼마나 그리웠는데.”

“맞아, 학교 다닐 때, 돈 생기면 파전 먹으러 왔잖아. 우리한텐 파전은 피자만큼 위대한 음식이야.”

오한결이 침을 꿀꺽 삼켰다.

“맞아. 이것도 추억인데. 솔직히 그리웠어.”

차승현이 짓궂은 표정으로 오한결을 쳐다봤다.

“얼~. 뭘 그리워했을까나. 혹시 둘이 사귄 거 아냐? 헤어진 연인과 파전집 재회라. 가슴이 지글지글하는구먼.”

오한결이 콧방귀를 끼며 대응했다.

“으이구, 아직도 그렇게 철없이 사냐.”

이풀잎이 강냉이를 씹으며 건조하게 말을 보탰다.

“승현이는 철 들면 굶어 죽어. 쟤 레크레이션 강사 됐어.”

“오 진짜? 완전, 어울리는데. 개그맨하고 싶어 하더니, 사람들 즐겁게 해주는 데 능력이 있나 보네. 잘 됐다.”

차승현이 쑥스러운 듯 손을 휘저었다.

“지금은 뭐, 경력 쌓는다고 생각하고 일하는 거지. 반드시 개그맨 될 거야!”

차승현의 진지한 표정에 모두 빵하고 웃음을 터트린 뒤 오한결이 이풀잎에게 물었다.

“넌, 취업했어?”

“응, 입시 미술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쳐.”

“오, 이풀잎 선생님. 잘 어울린다.”

이풀잎이 방긋 웃었다.

“맞아. 미술강사가 적성에 잘 맞는 거 같아. 아이들도 너무 귀여워.”

차승현이 불쑥 끼어들었다.

“너 성격 더러운 거 학생들도 알아? 잘 숨겨라, 순수한 영혼들 상처받는다.”

“야!!”

오한결이 손을 쭉 뻗어 두 사람을 말렸다.

“둘 다 그만해! 하여간 변한 게 없어. 싸움은 나 없을 때 하도록!”

소란을 듣고는 주방에서 아주머니가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어머!! 이게 얼마 만이야? 예술대 학생들 맞지? 다들 어떻게 지냈어?”

“아주머니 미모는 여전하시네요.”

“어머!! 농담이 지나치네. 호호호.”

차승현이 손을 뻗어 오한결을 가리켰다.

“여기 한결 작가님만 아티스트고요. 우린 그냥 아무개 직장인이에요.”

식당 아주머니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어머! 한결 학생! 너무 멋져요. 항상 응원할게요!”

오한결이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아직 지망생이지만, 곧 좋은 소식 있을 겁니다. 하하.”

아주머니가 두 손을 모으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다들 잘살고 있구나. 옜다 기분이다! 파전 무료로 줄게요! 맘껏 들어요.”

오한결과 친구들이 환호를 지르자 아주머니는 엄지척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 * *

맛있는 안주와 걸쭉한 막걸리를 연신 마셔대는 오한결과 친구들. 제법 취기가 올라왔는지 모두 얼굴이 붉은 홍당무가 됐다.

이풀잎이 실실 웃으며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다.

“요즘 SNS에 올라온 작품인데, 일명 ‘파주 미술’이라고. 이집트 미술하고 반고흐 작품을 오마주한 거 같은데……. 후기 보면 장난 아니야. 숨은 고수래. 흐흐.”

오한결이 순간 움찔했다.

“그래……? ‘파주 미술’ 괜찮네…….”

차승현도 휴대폰을 뒤적였다.

“소문에 외국 작가라던데. 한국 작가 중에 이런 실력을 보유한 작가가 있나?”

이풀잎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야, 서정익 작가래. 너희도 알지 한국이 낳은 천재 작가. 얼굴도 천재래…….”

오한결은 궁금하면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재라는 칭호를 받는 작가를 자신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서정익 작가? 그게 누구지?”

“야! 너는 미술하는 놈이 정말 몰라? 한국형 현대예술의 대가로 불리잖아. 심지어 우리보다 어려. 국립예술교육원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까지. 엄청 유명해.”

오한결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근데 왜 내가 몰랐지?”

“……뭐 아무렴 어때. 오랜만에 셋이 뭉쳐보자. 파주 미술 보러 갈래?”

오한결이 잠시 망설인 후 대답했다.

“그게, 나는 굳이 찾아가서 볼 필요가 없긴 한데…….”

“……왜, 바쁜가 보네. 근데 하루만 시간 내줘라. 응?”

오한결이 태연하게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그거 내가 그렸거든.”

“…….”

“…….”

오한결이 방긋 웃으며 물었다.

“뭐지, 이 반응은?”

차승현이 턱을 괴고 눈을 흘겼다.

“무슨 반응을 기대했을까나. 정말 믿으라고 한 말은 아니지?”

오한결이 어깨를 으쓱했다.

“믿는 건 본인 자유니까. 이해해.”

“…….”

드르르. 드르르.

오한결의 휴대폰이 테이블 위에서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낯선 번호임을 확인한 오한결은 주머니 속에 휴대폰을 집어넣어 버렸다.

“왜 전화 안 받아?”

“모르는 번호라서. 광고겠지.”

“그래, 받지 마. 나도 광고 전화 엄청 와. 술이나 마시자.”

아주머니의 공짜 안주로 오랜만에 과식한 오한결과 친구들. 차승현이 볼록 튀어나온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우, 배불러. 우리 자리 옮길까?”

“노래방 갈까? 우리 예전에 노래방 자주 갔잖아!”

웅웅웅, 웅웅웅.

휴대폰 진동이 오한결 주머니에서 계속 울려대자, 차승현이 걱정했다.

“야, 계속 전화 오네. 받아봐. 급한 전화면 어쩌려고.”

“됐어. 모르는 전화는 안 받아. 노래방이나 갑시다!”

때마침, 가게 문이 벌컥 열리고 명일그룹 신태진 회장과 양승호 비서가 들어왔다. 가게에 있는 모든 손님이 신태진 회장의 아우라에 눈을 떼지 못했다.

“오한결 작가가 누군가요?”

놀란 차승현이 오한결을 쳐다봤다.

“야, 너 찾는다. 저 할아버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이풀잎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멍충아!! 명일그룹 회장님이잖아.”

“!!”

오한결이 손을 천천히 들었다.

“할아버지, 제가 오한결인데요.”

신태진 회장이 천천히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오호, 그 유명한 오한결 작가군요. 반갑습니다. 명일그룹 신태진 회장이오.”

오한결이 당당하게 그의 악수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를 아시나요?”

“그럼요! 그나저나 왜 전화를 안 받으시나? 나를 애가 달게 만들었어요. 이런 느낌 오랜만인데. 하하.”

오한결은 살짝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아서요. 그래도 만날 사람은 결국 어떻게든 만나게 되겠죠? 저를 이렇게 찾아오신 것처럼요.”

“오호라, 마치 내가 찾아올 걸 예상했다는 말 같은데.”

오한결이 어깨를 으쓱 올렸다.

“그건 아닙니다. 솔직히 회장님은 예상 밖이라 서요. 찾아온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신태진 회장이 자신 앞에서 당당한 오한결을 지그시 바라봤다.

“차차 알게 되겠죠. 그나저나 보통 청년이 아니구먼. 매력 있어요.”

이풀잎과 차승현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오한결이 웃으며 말했다.

“혹시 노래방 좋아하세요?”

* * *

새벽 1시. 살며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온 오한결. 가족 모두 잠이 들었는지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오한결은 아무도 깨지 않게 조심스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한결이 침대에 털썩 주저앉고는 한숨을 쉬었다.

‘젊어서 체력이 좋을 줄 알았는데……. 에휴, 운동 부족인가.’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해 보는데, 불쑥 ‘신태진 회장’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휴대폰을 집어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입력했다.

신태진.

명일그룹 회장.

중소기업이었던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기적의 남자.

성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웠던 위대한 기업인.

모든 것을 이룬 남자. 하지만 어릴 적 꿈은 예술가였다는 그의 인터뷰.

신태진 회장은 최근 미술 서적을 집필했다.

‘신태진 회장과 함께하는 미술여행’

책표지 디자인이 유독 눈에 띄는데, 화가 분장을 한 신태진 회장이 대형 붓을 들고 세계지도 위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오한결이 피식 웃었다.

‘독특한 양반이네. 아, 그러고 보니,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한국에 세계적인 미술관을 짓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게 명일그룹에서 추진한 거였지…….’

드르르. 드르르.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진동에 오한결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

‘아, 김일중 사장. 시간 몇 시인데…….’

잠시 망설이던 오한결이 전화를 받았다.

[한결 작가님. 늦은 밤에 미안하게 됐네. 급한 일이 있어서……. 에헴.]

“……사장님. 무슨 일이신지.”

[……방금 명일그룹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어. 오늘 그 유명한 신태진 회장님이 직접 한결 작가님을 찾아갔다고 하던데 진짜야?]

“왔었죠. 그거 때문에 이 시간에 전화했어요?”

[그거 때문이라니! 이건 엄청난 사건이라고!]

“뭐, 재밌게 놀았어요. 같이 노래방도 가고. 하하.”

[노래방? 설마 내가 아는 그 노래방?]

“네……. 사장님이 아는 그 노래방이요.”

[……아, 이젠 어지러워. 쓰러질 거 같아.]

오한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데 비서실에서 무슨 일로 사장님께 전화했나요?”

[회장님의 특별 지시래. 한결 작가님이 모르는 전화는 죽어도 안 받는다고……. 그래서 내게 연락한 것 같아. 내일 명일그룹 회장실로 한결 작가님을 초대했어.]

“그건 이미……. 노래방에서 안 간다고 거절했는데요.”

[으악! 이건 어명……. 아니, 회장님 명령이야.]

“아, 그게……, 꼭 가야 하나요?”

[명일그룹에서 화신벽화에 직접 부탁한 일이야! 이건 가문의 영광이라고!]

어느새 졸음이 쏟아진 오한결은 겨우 눈을 뜬 채 힘겹게 말을 이었다.

“네……. 네. 알았어요. 가보도록 해볼게요.”

[역시! 한결 작가님 멋져!. 그럼 몇 시에 만날까?]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을 한 오한결이 눈을 감고 겨우 말했다.

“으……. 혼자 갔다 오면 안 될까요…….”

[대체 내게 왜 이러니……. 그러지 말고……. 여보세요?]

피곤을 이기지 못한 오한결은 전화기를 손에 쥐고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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