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7화 (7/202)

제7화 좋은 동료

‘파주 카페 거리’ 사장들이 모두 모인 자리.

최근 갑작스러운 손님 증가로 기분이 좋은지 모두 환하게 웃고 있다.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남성이 흥분하며 말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평소보다 배는 늘었었어요. 이러다가 우리 모두 부자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분수대에 그려진 이집트 그림 덕분에 이곳이 유명 관광지가 됐습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우리에게 보물 같은 그림입니다. 인터넷에서도 난리에요.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파주 카페 거리’가 항상 순위권에 있다고요.”

무척 말라 보이는 남자가 침착하게 말했다.

“일시적인 현상 아닐까요?”

회색 베레모를 쓴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 진정한 예술 작품의 힘은 일시적이지 않아요. 더군다나 그 작품은 단순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파주 카페 거리’를 대표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을 만들려고 하잖아요.”

붉은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말했다.

“이번에 ‘화신벽화’ 김일중 사장을 다시 봤어요. 이렇게 큰일을 해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근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화신벽화’라면 우리와 작업을 많이 했잖아요, 절대로 그런 수준의 작품을 그릴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말이죠.”

“소문에 의하면 작가가 젊었다고 하던데요. 실력자를 영입했나 봐요.”

“오호, 그래서 김일중 사장이 자신 있게 이번 프로젝트를 맡겠다고 한 거군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박민용 파주시장께서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벽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아시지 않습니까. 작품이 실패하면 앞으로 파주시는 우리 카페 거리에 문화 정책을 추진할 명분이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럼 원칙대로 갑시다. 시청 문화정책과 김 과장의 말대로 공개입찰로 해요! 어차피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뒤에서 이러고 있는 걸 알면, 시청에서도 가만있질 않을 거예요.”

구석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던 남자가 묵직하게 말을 꺼냈다.

“절대로 그건 안 됩니다. 공개입찰 시 담당 공무원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업체를 뽑을 겁니다. 아직도 그들을 믿습니까? 우리는 3년 전 그때를 잊어선 안 됩니다. 완전 삼류 화가를 데리고 와서는 엉망으로 작업하고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작품 성공이 카페 매출로 이어질 텐데, 이번에는 무조건 실력자를 뽑아야 합니다.”

회색 베레모를 쓴 남자가 음흉하게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화신벽화 사장이 카페 사장 중 한 명이라도 벽화에 실망하면 돈을 안 받겠다고 했으니. 우리에게 상당한 기회 아닌가요?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잠시 뒤 붉은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소리쳤다.

“김일중 사장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겨 봅시다. 실패하더라도 우린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호호.”

“그렇게 합시다. 분수대 수준의 그림만 나와준다면 공무원들도 어쩌지 못할 겁니다. 일단 SNS에 소문이 쫙 깔리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무척 기대되는군요. 대한민국에서 카페 거리 하면, ‘파주’가 생각나도록 해 봅시다.”

* * *

오한결이 침대에 편히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단체 채팅방 초대’ 문자가 휴대폰 화면에 떴다.

「노을 님이 오한결 님을 단체 대화방에 초대합니다. 수락하겠습니까?」

무심코 수락 버튼을 누른 오한결.

우측 채팅방 참가자 리스트에 노을과 최무열이 보였다.

「노을: 반가요, 한결 작가님.」

「최무열: 와우, 대박. 오한결 작가님이당.」

「오한결: 안녕하세요……. 근데 제 번호를 어떻게 아셨죠?」

「노을: 김일중 사장님이 알려주심. 혹시, 저희가 불편하면…….」

「오한결: 아뇨. 괜찮아요. 역시 젊은 사람들이라 친화력이 좋네요.」

「노을: 젊은 사람……. 하하. 말투가 좀 이상한데. 넘 진지해서 그런가…….」

「최무열: 미래에서 타임머신 타고 넘어온 거 아냐. 하하.」

오한결은 최무열의 농담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뭐지, 저런 농담은 불편하다고…….

「노을: 야, 재미없거든!」

「최무열: 쏘리……. 오늘 오한결 작가님은 뭐했어요?」

「오한결: 가족하고 영화 보고 저녁도 먹고……. 방금 집에 들어왔어요.」

「노을: 와우! 부러워요! 우리 가족은 모두 바쁘니까, 점점 서먹해 지고 있음.」

「최무열: 난 중2 때부터 아버지하고 대화가 없음. 슬프네. 하하…….」

「노을: 대박! 사춘기를 잘못 겪었네. 그건 좀 심하다.」

「최무열: 근데, 작가님 나이가 어떻게 돼요? 난 21살이고, 노을 누나는 23살.」

「오한결: 음……. 26살.」

「노을: 아, 오빠네요. 우리한테 말 놓으세요!」

오한결이 피식 웃으며 채팅을 이어갔다.

‘꼬맹이들이 귀엽네.’

「오한결: 근데, 내게 할 말이라도?」

「노을: 친해지려고 연락해봤어요. 하하.」

「최무열: 요즘, 노을 누나랑 오한결 작가님 얘기밖에 안 해요. 역대급 실력자!」

「노을: ‘사자의 서’가 지금 SNS에서 난리 났잖아요. 아시죠?」

「오한결: 뭐, 그렇다고 들었어. 난 SNS를 안 해서.」

「노을: 왜요? 세상과 소통 좀 하세요.」

오한결은 ‘살아 보니, 예술가의 진정한 소통은 오직 작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라고 적었다가 바로 지웠다. 굳이 조언할 필요가 있을까. 때가 되면 그들도 다 알게 될 텐데.

「최무열: 맞아요. 작가님은 꼰대 같은 느낌이 너무 강해요. 교수님하고 얘기하는 것 같다니까.」

「오한결: 그런가? 하하. 혹시 두 사람 나중에 시간 돼? 벽화 작업을 할 거 같은데. 보조할 사람이 필요해서.」

「노을: 와우, 당연하죠!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최무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 됐습니다! 부아앙~!」

오한결이 최무열의 장난에 피식 웃었다.

「오한결: 고마워. 큰 힘이 되겠어. 벽화 작업할 때 보자고.」

「노을: 넹.」

「최무열: 넹넹.」

단체 채팅을 마친 오한결이 미소를 지었다.

‘좋은 동료를 만난 것 같은데.’

* * *

「한결 학생, 시간 좀 내줄 수 있나?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홍철수 사장의 연락을 받은 오한결이 아트화랑으로 향했다.

화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홍철수 사장과 홍미숙 그리고 김일중 사장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오한결은 가볍게 인사하고 그들 곁에 앉았다.

홍미숙이 태블릿 PC를 오한결에게 보여줬다.

“이것 봐, 지금 한결 학생 그림이 인터넷에서 난리야.”

김일중 사장이 오한결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오한결 작가님 작품들 인터넷에 올릴까? 화신벽화 홈페이지 이미지 게시판이 있는데, 거기에다가 올려도 되고. 아니면 메인페이지 공지사항에 올려줄 수도 있어. 난 뭐든 해줄 수 있어! 말만 해!”

홍철수가 피곤한 표정으로 김일중에게 말했다.

“김 사장……. 한결 학생 좀 그만 귀찮게 하게나.”

김일중이 뻘쭘한지 마른기침을 몇 번 하더니 오한결을 보고 방긋 웃었다.

오한결은 그 모습을 보고 본인도 피식 웃고 말았다.

“김일중 사장님은 정말 한결같네요.”

김일중이 웃으며 대답했다.

“한결같다니! 그럼, 이제 나는 김한결인가. 우하하.”

김일중 사장의 ‘아재 개그’에 모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자연스레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잠시 뒤 홍철수가 입을 열었다.

“한결 학생을 부른 이유는 말이야…….”

긴장해 침을 꿀꺽 삼키는 김일중 사장이 눈에 들어왔다. 뻔하지 않은가. 벽화 때문일 것이다.

“벽화 관련해서 부르신 건가요?”

홍철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선, 이 말을 먼저 하겠네. 난 한결 학생의 결정을 절대적으로 존중해. 다만, 김일중 사장이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서로 오해 없도록 자리를 마련했네.”

오한결도 동의했다.

“잘됐네요. 저도 할 말이 있었어요.”

오한결이 김일중 사장을 쳐다봤다.

“많이 서운하셨나 보네요.”

“아니……. 솔직히 오한결 작가님 덕분에 비싼 벽화도 하는 거니까. 할 말은 없는데. 그래도 말이지…….”

오한결이 김일중 사장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제가 2억 정도가 필요해서요. 8:2는 어떠세요? 그러면 사장님께 할당된 금액이 6천만 원 정도가 되겠네요. 그 정도면 회사 운영비로 사용하기 충분할 거예요.”

“갑자기? 오 마이 갓! 하느님 맙소사! 천지신명이시여!”

홍철수가 놀라 물었다.

“김 사장, 괜찮나?”

김일중이 울먹이며 대답했다.

“형님, 오한결 작가님은 천사가 맞아요. 난 정말 한 것도 없는데……. 사실 회사가 너무 어려워서 걱정이 많았어요. 우리 두 알바생 알바비도 제때 못줄 뻔했는데…….”

홍철수 사장과 홍미숙이 감사의 눈빛을 보내자, 오한결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근데 이렇게 하는 게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고요. 어쨌든 홍철수 사장님과 누님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너무 미안하고 고맙네. 한결 학생.”

감사하다고 말해놓고선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김일중에게 오한결이 말했다.

“사장님 오늘 차 가지고 오셨어요?”

“……어, 근처에 있지.”

“우리 집으로 가시죠. 그림을 좀 옮기려고요.”

“오 그림! 근데 어디로?”

“파주 카페 사장들하고 협상하려면 무기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협상?”

“사업비를 더 올려 받아 볼게요. 따라오시죠.”

“!!”

김일중 사장이 자동차 키를 챙겨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버리자, 오한결이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참 재밌는 분이네요.”

홍철수가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결 학생…….”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화신벽화가 어려워지면 홍철수 사장님께서 대출을 받아야 하잖아요.”

“아니, 그걸 어떻게…….”

“전 지금 당장 2억만 있으면 돼요. 돈이야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하면 넘칠 텐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

* * *

오한결 방에 들어선 김일중 사장. 수많은 습작이 산처럼 쌓인 모습을 보고 기겁하는데……. 세상에, 이렇게 열심히 노력했구나. 근데, 습작 수준이 영 별로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작품을 구경하던 김일중 사장이 한 작품 앞에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건……. 수준이 다르잖아!”

오한결이 약간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최근에 그린 작품이에요. <균형과 기울기 그리고 색채>라고 지었어요.”

김일중 사장이 황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무 간결하고 단순해. 그런데 왜 나의 가슴이 뛰는 걸까.”

오한결이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도 그릴 수 있는 작품이죠.”

김일중 사장이 슬픈 눈으로 말했다.

“아니! 절대로! 난 그럴만한 재능이 없다고!”

오한결이 책상에 걸터앉고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왜죠? 이렇게 단순한데. 반듯한 자를 대고 몇 번 선을 그으면 돼요.”

“똑같이 그릴 순 있겠지. 하지만 그런 그림은 절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거야.”

“글쎄요. 자신을 믿어보세요. 사장님.”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네, 얼마든지요.”

“……한결 작가님 말이 맞아. 나도 한때는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어.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극적인 단순화를 통해서 본질을 보려고 해보세요.”

김일중 사장은 눈을 감고 오한결의 말을 되뇌었다.

‘본질을 보라고…….’

젊었을 때 가졌던 예술에 대한 열망. 하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어떤 걸 놓쳤던 걸까?

오한결은 이렇게 단순한 그림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눈을 뜬 김일중 사장이 소리쳤다.

“아! 그렇구나. 세상의 본질은 형체의 복잡함을 벗어나, 단순한 날 것 그대로일 수도 있겠구나.”

“맞아요. 거기에 저는 기울기를 적용해, 완벽한 수평과 수직에서 오는 균형에 긴장감을 더했죠. 피에트 몬드리안과 저의 차이점이라고 할까요.”

“그 네덜란드 화가 말이군. 내겐 몬드리안보다 오한결 작가님이 더 대단해 보이는데.”

“하하. 별말씀을.”

김일중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잠시 시간 좀 줄래? 그림 좀 더 감상하고 싶어.”

“파주 가려면 서둘러야 해요.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에요.”

“잠만! 예술적 영감을 너무 오랜만에 느꼈거든. 천천히 내가 이 감정을 소비할 시간을 줄래? 부탁할게, 제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