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화 (1/202)

제1화 다시 한번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떠나고 만다!”

거칠게 캐리어를 끌며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오한결이 혼자 중얼거렸다.

울분으로 가득 찬 오한결이 고개를 드니,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길, 날씨는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지방대 출신이었지만, 예술에 열정을 쏟으면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수없이 도전한 공모전에 보란 듯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기계가 된 듯 그리고 또 그렸지만, 심사위원들은 그의 그림에 예술적 재능이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모니터 화면에 ‘예선 탈락’ 문구를 확인한 오한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길! 내 그림을 제대로 보긴 한 거야?’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지하로 내려가고 있을 즈음, 심란한 표정의 아버지가 오한결을 지옥으로 보내버렸다.

사업이 부도났구나. 너도 밥벌이해야 하지 않겠니? 이제 되지도 않는 미술 때려치우고 정신 차렸으면 좋겠구나.

서운한 마음이 든 오한결은 부모님과 경제적 문제로 대립했고, 그렇게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때마침, 미대 선배인 김진영에게서 연락이 왔다. 뉴욕에 작은 식당을 열었는데, 같이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었다.

오한결은 충동적으로 그 제안을 수락하고 급하게 짐을 꾸려 인천공항으로 왔다. 가족에게는 성공하면 연락하겠다는 쪽지만 남긴 채로.

상처뿐인 예술가 지망생은 그렇게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뉴욕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나름 고상하게 그림만 그렸던 삶을 살아서 그런지, 식당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손님은 왕이다’라고 생각한 진영 선배는 손님들에게 비굴할 정도로 굽실거렸다. 하지만 그 진상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건 오한결 자신이었다.

퇴근 후 더러운 숙소에 가면 벌레들이 친구 하자고 덤벼들었고, 이웃에 사는 외국인들은 24시간 내내 힙합 음악을 틀고 고성을 질러댔다.

“시끄러워! 제발! 잠 좀 자자!”

하지만 오한결이 내뱉는 한국말은 그들의 고성에 묻혀버렸다.

몸과 마음이 유난히 힘들었던 어느 날.

술을 진탕 마신 오한결이 타임스퀘어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휘청거리는 몸을 추스르고 고개를 드니, 사방에서 번쩍이는 대형 광고판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불빛에 취한 오한결은 억눌렀던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세상을 원망했다. 왜 노력한 자가 이렇게 실패를 맛봐야 하는 걸까.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낸 세상이 문제였고, 오한결 자신은 그 비정상적인 세상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채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웃고 떠드는 관광객을 지나칠 때마다 그들의 밝은 표정을 보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니, 황금빛의 존재가 성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이 술에 취해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떠봐도 여전히 황금빛의 무언가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용기 내 가까이 간 오한결은 그가 황금색으로 몸을 칠한 ‘행위 예술가’임을 알아봤다.

‘그래, 뉴욕은 예술의 도시였지.’

멍하니 황금 예술가를 바라봤다. 동상처럼 서 있는 예술가 앞에서 오한결은 갑자기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다.

황금 예술가는 돈과 명예 등 속물적 속성에 구애되지 않는 순수한 예술가처럼 보였다. 자신만의 예술을 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황금이 되어 빛나는 것 같았다.

오한결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자신은 예술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예술로 성공한 삶을 살고 싶었던 걸까. 후자였다면 어쩌면 자신의 실패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오한결은 자신의 실패 원인을 알 것만 같았다.

툭. 툭. 툭.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자, 정신이 번쩍 든 오한결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리고 숙소를 향해 뛰어갔다.

그러면서도 오한결은 틈틈이 뒤를 돌아봤다. 황금빛 예술가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비를 맞고 있었다. 오한결은 황금빛 예술가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알아봤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끼익!

멍하니 길을 걷던 오한결 앞에 택시가 급정거했다. 분노에 찬 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고함을 질렀다.

“당신 미쳤어? 앞을 보고 걸어야지! 사고 나면 누구 인생 망치려고 그래!”

“……죄송합니다. 이미 제 인생은 망한걸요.”

“난 안 망했어!!”

* * *

20년 후.

오한결은 아내 진태희와 함께 갖은 고생 끝에 ‘오’s 식당’을 열었다.

장사는 잘 됐다. 한류는 더욱 거세졌고 그 덕분에 손님도 파도처럼 밀려왔다.

오랫동안 꿈꿨던 성공한 식당 사장이 됐는데도, 공허함은 짙어지고 극심한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아내의 권유로 찾은 정신과 의사는 오한결에게 ‘중년의 사춘기’라는 말과 함께 건전한 취미활동을 권했다.

하지만 우울증의 진짜 원인은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됐다.

우연히 미술관에 방문한 오한결은 그림 앞에서 극심한 발작 증세를 보였다.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급기야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것이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미술에 대한 미련은 없어지거나 작아진 게 아니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억눌린 채 더욱 커져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식당 직원들과 연말 파티를 마치고 잔뜩 취한 오한결이 아내를 먼저 집으로 보내고 홀로 뉴욕 시내를 걸었다.

타임스퀘어 근처에 이르자, 때마침 눈이 오기 시작했다.

함박눈은 어느새 도시 전체를 뒤덮었고, 도시는 새하얀 눈의 나라로 모습을 바꿔갔다.

하얀 도시 배경 위로 타임스퀘어 전광판들이 화려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20년 전, 오한결을 매료시킨 그 광고판은 지금도 변함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으며 발걸음 재촉하던 그때, 문득 잊고 살았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황금빛 예술가.

두리번거리며 황금색 행위 예술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직도 있을까. 20년이나 지났는데, 설마 있겠어. 아니야. 그라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예술가로 살고 있을 거야. 그는 나와 다르게 진짜 예술을 했던 사람이잖아.’

하지만 온통 흰 눈으로 덮인 세상에 황금빛 예술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호기심이었을까, 취기가 만든 용기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오한결도 황금빛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걸까.

오한결은 인적이 드문 구석에 자리를 잡고 행위 예술가 흉내를 내 보았다.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턱을 치켜든 채, 당당하게 포즈를 취했다.

자세가 잡히자 자신감이 상승했다. 그를 짓누르던 우울감도 사라져 가뿐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20년 전 황금빛 예술가처럼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잠시 뒤 사람들이 웅성대며 모여들기 시작했고, 몇몇 관광객들은 휴대폰으로 오한결을 찍어댔다.

찰칵, 찰칵!

주변이 부산스러워지자, 무아지경에 빠졌던 오한결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제야 오한결 주변으로 모여든 호기심 가득한 군중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술기운이 줄어들자 상당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쪽팔렸다.

오한결은 얼굴을 가린 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끼익!

쾅!

노란 택시가 오한결을 정면으로 들이박자, 멀리 날아간 오한결이 아스팔트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여전히 함박눈은 쏟아지고 있었고 바닥에 누운 오한결의 몸 위로도 서서히 눈이 쌓여갔다.

택시 기사는 911에 전화를 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어서 와주세요! 아 글쎄, 눈을 가리고 도로로 뛰어들었다니까요!”

오한결 근처로 다가온 택시 기사가 몹시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 그때 그……. 당신이 결국 내 인생을 망쳤어!”

* * *

“여보, 제가 누군지 알아보겠어요?”

오한결이 병상에서 눈을 뜨자, 아내가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오한결은 교통사고 후 일주일간 혼수상태였다. 의사는 머리를 다쳐 회복이 힘들 수 있다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자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남편이 깨어나기만 한다면, 이제라도 그의 꿈을 응원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남편이 술만 먹으면 포기했던 예술가의 꿈을 노래했고, 시간 날 때마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아내는 깨어난 오한결을 측은지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경찰에 의하면 남편은 타임스퀘어에서 행위 예술가 흉내를 낸 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남편의 기행을 이해해 보기로 했다. 얼마나 예술이 하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근데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건가, 행위 예술을 하고 싶은 건가?

사고 이후, 오한결에게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끊임없이 두통에 시달리던 오한결의 머리가 맑아졌다. 그러더니 눈과 귀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시청각 정보가 머릿속에서 폭풍을 일으켰고 이내 잠잠해지기를 반복했다. 며칠의 적응 기간을 거치자 비로소 예전처럼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오한결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보이는 것을 사진처럼 그려낼 수 있었고, 읽은 책도 모조리 암기할 수 있었다. 미술관에 방문한 오한결은 뒤로 까무러칠 뻔했다. 그림에 시선을 두자, 화가의 모든 작업 과정이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재연되었다. 작가의 고민과 예술에 대한 진정성이 그대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병에 걸린 게 아닌가 싶어, 아내에게 능력을 고백했다. 아내가 따스하게 손을 잡아 주며 말했다.

“병원 가서 검사해 봐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다행히 병원은 정상이라고 판정 내렸다. 의사는 일시적인 사고 후유증일 수 있으니, 과하게 두뇌를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

근데, 그게 가능한가?

이렇게 멋진 능력이 생겼는데!

오한결은 밤낮없이 그림을 그렸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해줬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봐요.”

어느 날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오한결 곁으로 백발의 노인이 다가왔다. 그림을 가까이에서 본 노인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인재를 왜 예술계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그는 세계적인 미술평론가 마이클 폴이었다.

55세의 오한결. 드디어 작가로 데뷔했다.

* * *

70세가 된 오한결.

뉴욕시는 세계적인 예술가인 오한결를 위해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오한결 미술관’을 개관했다.

할리우드 배우, 유명 스포츠 스타, 정치인 등 모든 셀럽이 개관식에 앞다퉈 참석했다. 개관식은 뉴욕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언론은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멋진 행사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행사 주인공인 오한결은 우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기자의 질문 때문이었다.

“작가님의 재능은 타고난 건가요? 아니면 부모님의 창의적 교육 덕분인가요?”

질문을 받은 오한결은 순식간에 부모님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20대 때 부모님과 다투고 충동적으로 뉴욕에 온 오한결은 그동안 그들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관계가 계속 소원해지고 있었지만 성공하면 연락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급기야, 동생 결혼식 이후 부모님과 동생하고 완전히 연락이 끊겨버렸다.

50대 중반에 오한결이 작가가 된 후, 뒤늦게 그들과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의 부고 소식과 동생의 싸늘한 목소리만이 들려왔을 뿐이었다.

작가로서 성공할수록 그들을 저버렸다는 죄책감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었지만 오한결은 공허함으로 괴로웠고 결국 미소를 잃어버렸다.

행사 도중 오한결은 거리로 나와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어느덧 타임스퀘어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오한결이 휴대폰을 들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그들이 없는 나의 성공은 ‘거짓’이고 ‘부끄러움’이었어. 내게 당신마저 없었다면 무의미한 삶을 살았을 거야. 미안하고 사랑해!”

“여보……. 이번 생에는 저와 행복했으니, 다음 생엔 꼭 부모님께 효도하세요.”

“정말 다음 생이 있을까?”

“그럼요. 제가 방금 기도했거든요. 저를 믿어요.”

우르르 쾅!

갑자기 엄청난 섬광이 뉴욕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 * *

띠리리 띠리리~♬

요란스러운 휴대폰 벨소리에 오한결이 눈을 떴다.

이젤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분명, 타임스퀘어에 있었는데……. 여긴 어디지? 꿈인 건가.’

마지막 공모전 출품 작품이 눈앞에 있었다. 현대 예술의 정점을 찍고 돌아온 그에게 20대의 치기 어린 그림은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이러니 공모전에 떨어졌지.’

엉터리 구도에 조화롭지 않은 색채, 덕지덕지 바른 유화가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공모전 심사위원도 그것을 개성이라기 보단 미숙함이라고 평가했을 것이다.

씁쓸한 미소를 짓고 주변을 살폈다.

오한결은 이곳이 어딘지 단번에 알아챘다. 20대 예술가 지망생 시절, 작업실로 쓰던 오한결의 방이었다. 한쪽 구석에 산처럼 쌓인 작품들이 보였다.

‘정말 열심히 했구나.’

하지만 결과를 잘 알고 있던 오한결이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무심코 거울 앞에 섰다.

설마 했지만, 막상 20대 중반의 얼굴이 보이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두 손으로 따귀를 때려보고 볼을 꼬집어 봤다. 통증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당황도 잠시, 이내 통증은 반가움으로 변했다.

‘뭐야! 예술가 지망생으로 돌아온 거야? ……정말로 다시 기회를 얻은 건가? 여보…….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해요. 당신이 준 기회 꼭 제대로 살려볼게. 그리고 내가 뉴욕에서 당신을 찾을게.’

이번에는 한국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겠구나.

상황을 빨리 인정하고 나자, 활력이 온몸에서 솟구쳤다.

오한결이 붓을 들었다.

당장 화폭에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그림을 그려 넣고 싶었다.

“다시 시작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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