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도는 장갑차-32화 (32/42)

〈 32화 〉 ­ 6. 시체에 남은 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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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시체에 남은 흉터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어색한 분위기였다.

팬텀은 자신이 말 실수라도 했나 싶어 토끼처럼 주변을 둘러봤다.

에탕다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팬텀을 응시했다.

그러나 따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운을 띄운 것은,

“거절한다.”

역시 베르쿠트였다.

“잠깐만, 너무 칼 같은데? 진정해. 이유라도 들어볼 수 있잖아?”

나는 베르쿠트를 진정시키며 타협점을 모색했다.

“…웃기는군. 퀘스트를 할 생각이 있냐고 물은 건 수리온 네 녀석이잖아. 우리의 임무가 뭔지 잊은 건 아니겠지.”

베르쿠트가 나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그, 그건 그렇지만….”

나는 따로 할 말이 없어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우리의 임무는 탈영병 토벌이다.”

베르쿠트가 짧게 단언했다.

그러면서 차가운 눈으로 팬텀을 쳐다봤다.

“팬텀 네가 탈영병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유력한 용의자인 것만큼은 사실이야. 하지만 신관의 말마따나 여기서 즉결 처분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너를 일단 길드로 압송하겠다.”

베르쿠트가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MP­412 REX 리볼버로 손을 가져갔다.

“압송… 인가요….”

팬텀이 작은 목소리로 베르쿠트의 말을 되새겼다.

“하아…. 이제야 좀 말을 알아 듣네요. 뭐… 저 녀석을 잡아갈 수 있을런지나 잘 모르겠지만….”

람피리데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 잠깐만요…! 저는 반대거든요?!”

에탕다르가 고집을 부리며 팬텀의 앞을 막아섰다.

“…….”

팬텀이 조용히에탕다르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무슨 소리야. 정신 차려, 에탕다르. 우리는 이 퀘스트를 끝내야 돼.”

베르쿠트가 차분한 목소리로 에탕다르를 설득했다.

“이대로 가면 팬텀이 토벌된다고요?!”

에탕다르가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 렇지…? 아마? 일단은 탈영병 토벌 퀘스트니까….”

나는 에탕다르를 쳐다보며 퀘스트의 내용을 상기했다.

“토벌이라면 분명 죽이는 거잖아요…! 그건 너무해요…! 저는 그런 거 용납 못해요….”

에탕다르가 묵묵히 팬텀을 비호했다.

“그래. 만약 팬텀이 우리 퀘스트가 지목한 탈영병이 맞다면, 군법에 의해 사형당하겠지.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어. 인간은 모두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우리가 받은 것은 토벌 퀘스트다.

현상수배로 치면 생사불문, Dead Or Alive 다.

그야말로 흉악범들에게나 붙는 신분이다.

물론 토벌의 대상이 될 정도라면 그 잘못이 중차대한 경우다.

이번 퀘스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탈영병 토벌이라고 적혀 있어서, 그저 탈영이 문제의 전부인 것만 같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다수의 모험자를 살해한 혐의 또한 뒤섞여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웃기네요. 태어나서 처음 만난 던전 지박령 따위가 죽든, 말든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가요? 에탕다르.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예요.”

람피리데가 에탕다르에게 공격적으로 말했다.

“다, 당신은 사람 죽이는 걸 취미생활처럼 하니까 그렇죠…! 이 살인마!”

악에 받친 에탕다르가 람피리데를 물어 뜯듯이 말했다.

“…….”

람피리데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가,

“하아아아….”

곧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얼음장 같은 눈동자로 에탕다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 뭔가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에탕다르가 잠시 뒷걸음질쳤다.

람피리데는 여전히 에탕다르를 매섭게 노려봤고,

에탕다르는 겁을조금 먹고 람피리데의 눈길을 슬쩍 회피했다.

그 순간,

“엇….”

에탕다르의 미간 사이에 곧장 총구가 놓였다.

순식간이었다.

로즈우드를 연상케 하는 단아한 인상의 권총.

람피리데의 Unica 6 자동 리볼버였다.

“…내 취미 생활이 살인이었으면 너는 이미 죽었어.”

칼로 자르는 듯한 시퍼런 목소리였다.

람피리데의 푸른 눈동자가 에탕다르를 서늘하게 쳐다봤다.

“라, 람피리데…! 일단 진정해…!”

깜짝 놀란 내가 람피리데를 만류했다.

그녀라면 정말로 에탕다르를 쏴버릴 것 같았다.

“으구으으윽….”

에탕다르가 분하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

하지만 람피리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누, 누구는… 누구는… 가만히 있을 줄 알고요…!!”

에탕다르가 자신의 스태프를 꺼내서 반격하려 들었다.

아무리 봐도 무리수였다.

설령 에탕다르가 아크메이지라고 하더라도 눈 앞의 총알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흥….”

아니나 다를까 람피리데가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리볼버의 총구로 에탕다르의 이마를 꾸욱 눌러 밀었다.

“으와아앗…!”

균형을 잃은 에탕다르가 뒤로 넘어졌다.

“으우으읏…. 아야야야야….”

엉덩방아를 찧은 에탕다르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차라리 고양이 새끼를 가지고 노는 게 더 재밌겠네요.”

람피리데가 권총을 거두어 다시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듀퐁 라이터로 불을 피운 그녀는 삭막한 표정이었다.

“후우우….”

그렇게 그녀는 한 동안 담배를 태우는데 집중했다.

그러다가 문득 팬텀을 보면서 방긋 웃었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쌈질이나 처하고 있어야 되나요? 던전지박령?”

그녀는 언제나 웃을 때 더 살벌하다.

“앗! 그… 죄, 죄송합니다….”

팬텀이 기가 죽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 알아 들었으면 저 년 몸뚱아리에다 구멍이나 몇 개 뚫어가지고 빨리 철수해요. 이 축축한 던전에 조금이라도 더 있다간 온 몸에 곰팡이가 필 것 같으니까.”

람피리데가 담배 꽁초를 내다 버리며 우리를 재촉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곁눈질을 했다.

팬텀을 처리하라고 눈치를 주는 것이다.

“아, 알았어…. 젠장…. 어쩔 수 없군.”

나는 결국 람피리데의 압박에 못 이겨 팬텀에게 다가갔다.

슬금슬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베르쿠트도 따라 나섰다.

“…미안하다. 괜히 상황이 더 복잡해졌군.”

베르쿠트가 나에게 조용히 사과했다.

“너가 미안해 할 일은 아니야. 나한테 미안해 할 일도 아니고.”

나는 베르쿠트를 다독인 뒤,

팬텀을 마주봤다.

“…그렇게 됐으니까 널 연행하겠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

“…….”

팬텀이 입을 꾹 다문 채 내 시선을 피했다.

“게임은 끝났다. 협조 부탁하지.”

베르쿠트는 최대한 평화적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팬텀은…

“…못 간다고 했잖아요.”

여전히 던전 안에 갇혀있었다.

팬텀이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 봤다.

“그만해. 폭력을 쓰고 싶지는 않아.”

나는 단호하게 그녀를 설득했다.

“저도… 폭력은….”

팬텀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팬텀은 조금 슬픈 얼굴이었다.

그녀의 어깨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체리색 눈동자에 쓸쓸함이 매겨졌다.

언제라도 눈물이 흘러 넘칠 것만 같았다.

“팬텀….”

베르쿠트가 애잔한 시선으로 팬텀을 쳐다봤다.

그녀는 팬텀을 압송해야 한다.

아까까지만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팬텀을 납치하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팬텀을 눈 앞에 두고,

실제로 그녀를 ‘토벌’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자,

베르쿠트는 은근히 마음이 약해진 듯했다.

“미안하다….”

하지만 임무는, 임무.

베르쿠트는 강인한 군인이고 임무 완수에 대한 책임감도 유별나다.

타겟을 코 앞에 두고 놓치는 미련한 실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군인에게 있어서 개인의 감정 따위는 거세되어야 할 물건이다.

베르쿠트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감정을 추스른 뒤,

팬텀을 똑똑히 쳐다봤다.

“다시 한 번 경고한다. 순순히 협조하지 않는다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너를 압송하겠다.”

“저는… 저는… 아직……”

팬텀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때부터였다.

팬텀의 작은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주먹에서 검은 마력이 불길하게 새어나왔다.

그녀가 딛고 선 땅 위로 검붉은 마력이 화마처럼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팬텀의 슬픈 눈동자가, 은은하게 붉은 빛을 띄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명백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베르쿠트가 자신의 MP­412 REX 리볼버를 만지작거렸다.

그녀가 안전장치를 격발로 맞추었다.

언제든지 팬텀을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아,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장갑차를 잘 뒤져 보면 소총이나 수류탄 정도는 나올 것이다.

그러나 고작 그런 장난감 가지고 저 둘을 말리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는 것부터가어리석은 선택지다.

그래봤자 나도싸움에 휘말릴 뿐이다.

“미워하지 마라….”

베르쿠트가 리볼버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녀가 권총 홀스터의 버클을 풀어헤쳤다.

고정 클립을 해제했다.

천천히 적의 용태를 살폈다.

잠시 얼어붙은 공기가 흘러지나갔다.

베르쿠트는 팬텀의 눈동자를 조용히 관찰하다가,

순식간에 리볼버를 뽑아들었다.

그녀의 묵직한 권총이 무감정하게 팬텀의 머리통으로 향했다.

단단한 방아쇠에 전의가 담겼다.

격발 해머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총알이 폭발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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