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3. 지상 작전 길드
* * *
“어… 저기… 저 쪽은… 일행 분?”
나라온이 람피리데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부끄럽지만 제 일행입니다.”
왜 부끄러움은 항상 나의 몫인가?
“뭐예요…. 서로 아는 사이인가요? 귀찮게 됐네요….”
람피리데가 페도라를 벗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문득 나라온과 눈이 마주쳤고,
“허, 헉….”
나라온은 순간 얼어붙었다.
그러기를 잠시,
“미, 미, 미, 미소녀다아아…!!”
눈동자를 반짝이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라온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그녀가 람피리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그 시선이 조금… 음란했다….
솔직히 말해서 제법 변태 같은 눈매다.
소원을 빌어 애써 미소녀의 모습을 얻었는데, 외모가 안타까울 정도다.
“어… 에엑?”
그 천하의 람피리데도 이번 만큼은…
“언니이이이이~~!!”
조금 긴장했다.
“으와아아앗…!!”
나라온이 카운터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그러고선 멋대로 람피리데의 품에 안겼다.
“아앗! 자, 잠깐만요…! 우, 우리 어디서 봤던가요? 사기꾼 씨?”
“당연하죠~ 만났고 말고요~”
“도, 도대체 어디서요? 아! 그… 혹시 멜키트 성회나… 우스틴스키 성회에서… 오셨나요…?”
당황한 람피리데가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나라온의 정체가 떠오를 리 만무했다.
왜냐면 나라온은 정교회가 아니라,
대한민국 육군에서 왔으니까.
“저희는 바로 이곳, 운명에서 만난 거예요오오오~!! 꺄아아아아~!!”
나라온이 여중생처럼 꺄아꺄아거리며 람피리데에게 들러붙었다.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저런 놈의 본체가 근육맨 오타쿠 중대장이라니….
“…안 부끄럽습니까?”
낮게 깔린 목소리로 나라온을 비아냥거렸다.
“닥쳐~ 죽인다아~?”
나라온이 람피리데의 품에 안겨 생글생글 웃었다.
행복에 젖은 얼굴로 나에게 살해 협박을 했다.
“으아아… 좀 떨어져주세요…. 너무 붙어 있으면 처형을 못 한다고요…?”
람피리데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나라온을 떼어내려 했다.
떼어내려는 이유가 좀… 이상하다.
“생각보다 내부는 멀쩡하군.”
뒤따라 들어온 베르쿠트는 내부를 탐색하고 있었다.
길드 내부는 조금 지저분하고 오래되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없었다.
평범한 카페테리아 형태의 길드다.
“와… 엘프잖아? 확실히 판타지는 판타지구나~”
나라온이 베르쿠트를 보고 감탄했다.
나도 엘프를 처음 봤을 때는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그녀도 아마 똑같은 심정이리라.
그런데… 나라온은 그 도가 좀 지나쳤다.
그녀는 베르쿠트의 곁으로 총총 다가가더니,
갑자기 엘프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위로 들어올렸다가, 아래로 내렸다.
옆으로 쭈욱 늘였다가 안으로 쏘옥 접었다.
베르쿠트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엘프한테 어마어마한 실례다.”
그녀가 낮게 으르렁거렀다.
“앗, 죄, 죄송해요. 아하하하하…!! 대머리도 신기하다고 다짜고짜 머리를 만지면 싫어하니까요!”
음…. 비유가 좆같군.
“종족 차별 발언이다….”
“대머리 차별 발언이야!”
나라온이 베르쿠트를 가리키며 선언했다.
그래…. 중대장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탈모 증세가 있었지….
그러니까 나라온의 껍데기는 은발 미소녀라도,
알맹이는 탈모 근육맨 혐오 씹덕 아저씨가 하와와거리고 있는 것이다.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역겹네요.”
나는 솔직한 감상을 표현했다.
“하아~ 우리 리온이가 아직 상황 파악이 잘 안 됐나 본데에~”
그러자 나라온이 내 어깨에 손을 척 얹으며 말했다.
“정통 미소녀 프리스트! 쿨뷰티 엘프 저격수! 다음은 뭐야…! 로리 아크메이지라도 나오는 거냐!! 아아앙?!”
그녀가 질투에 찬 눈동자로 나를 험악하게 노려봤다.
“저기이….”
그 때, 에탕다르가100만 실링퀘스트의벽보를 들고 나를 힐끔 올려다봤다.
그녀의 등 뒤에는… 마법사임을 증명하는 초중폭염의마력집중식스태프 액조세가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이 더러운 도둑놈!! 처녀막강도새끼!! 여기서 역겨운 건 너라고!! 잘도 이런 예쁜 애들만 모아서 순결을 후려처먹으셨겠다!! 도대체 무슨 약점을 잡은 거야!! 이 악덕 포주 성매매꾼기둥서방 새끼야!!”
나라온이내 멱살을 붙잡고 거칠게 윽박질렀다.
“흐이이익…!”
그 모습을 보고 에탕다르가조금 움츠러들었다.
“걱정마!! 로리마법사 아가씨!! 이 쓰레기는 내가 제거할 테니까!! 꿈의 미소녀 4인팟을 내가 만들 테니까아아!! 우효오오오! 죽어라 수리온!! 당장 나랑 바꿔!! 바꿔어어!! 꽃밭에 꼬추는용서 못해!!”
나라온이내 목을 조르며 그렇게 주장했다.
“크으으윽…!! 뭐,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약점을 잡힌 건 오히려 내 쪽이라고요…!”
억울하다!
나는 빚만 60억인데!
이것들은 겉만 예쁘장하지 알맹이는 성질 더러운 인간 형태의 폭발물들이란말이다!
예쁜 쓰레기들이 그렇게 부러우면 빨리 가져가!
“뭐? 약점? 무슨 약점?”
그제야 나라온이손아귀에서 힘을 조금 풀었다.
“켁켁…! 쿨럭! 크으윽…! 우리는 600만 실링의빚이 있다고요…. 쟤네들이랑잘못 얽혀서 빚이 생긴 데다가 못 갚으면 성상파괴범으로처형당해요! 바꾸고 싶으시면 바꾸시던가!”
“어…….”
나라온이순간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600만 실링이라는단어를 들은 그녀는,
조용히 카운터로 되돌아가더니,
“반갑습니다! 고객님! 지상 작전 길드의 접수원나라온입니다아~! 퀘스트접수하러 오셨나여어?”
태세를 전환하였다.
그녀는 갑자기 발랄한 접수원이되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뻔뻔하지 않습니까?”
나는 기가 막혀서 나라온을빤히 쳐다봤다.
“내 미소녀 판타지 라이프를빚으로 끝낼 수는 없잖아?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나 같이 귀여운 초절정미소녀는 어디론가잡혀가서 나쁨나쁨당할지도몰라!”
나쁨나쁨은또 뭔데?
“참나…. 그래서 이딴이상한 길드에서카운터나 지키고 있는 겁니까?”
“어허! 이상한 길드라니! 미소녀와아르바이트는 꿈의 조합이잖아! 바이트~ 바이트~ 하면서 달려가는 거 꼭 해보고 싶었어!”
애교 부리지 마세요. 역겨워서 SAN 수치가 떨어지잖아요.
“아르바이트였습니까….”
거 참, 해보고 싶은 것도 많으시네요.
“응! 시급 9.5실링! 길드장님이예쁘다고 더 얹어줬어! 이런 게 미소녀의 특, 권, 아니겠어? 데헷!”
그녀가 바보 같이 웃으며 윙크했다.
…이미 내 SAN 수치는 핀치에몰렸다.
“하긴…. 저처럼 땡크떨어뜨리는 능력이나 받느니, 차라리 미소녀가 되는 게 더 낫기는 하겠네요.”
장갑차를떨어뜨리다가 괜히 빚만 늘었다.
“으으~ 땡크라니~ 소름이야! 무식해! 구닌냄새 나! 그거 완전~ 기본 옵션인데!”
“…기본 옵션?”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잠깐만요! 생각해보니까 저는 피스키퍼가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리는 방금 처음 들었거든요? 중대장님은어떻게 미소녀가 된 겁니까?”
“하하하~ 리온두참~ 멍청하긴~ 너랑 나랑 처먹은 짬밥 그릇 수가 같니? 납부한 군인 연금에 따라 혜택도 다른 거지, 뭐~ 꼬우면군대 빨리 왔어야지~”
“아니, 죽어서도 짬밥에 차이를 둬요? 이 놈의 군대는 진짜 더러워서 내가…”
“저기이… 퀘스트….”
그 때, 에탕다르가조용히 다가와서 카운터를 기웃거렸다.
100만 실링퀘스트의벽보로 얼굴을 슬쩍 가리고 나라온을올려다 봤다.
에탕다르는나라온을조금 경계하는 모습이다.
“오웃! 마법사 아가씨! 어때! 우리 이딴 더러운 꼬추새끼는 재껴두고 언니랑 저기 가서 수돗물이라도 한 잔 할까?”
“수돗물이요…?”
에탕다르가동그란 눈동자로 나라온을올려다봤다.
“응! 커피는 50펜스인데 결제하시겠습니까?”
나라온은수전노였다.
거기서 또 돈을 받아처먹어요?
“으엑… 됐어요….”
에탕다르가기겁을 하며 뒷걸음질쳤다.
“그래서, 대화는 끝났나요? 리온? 이제 처형하면 되죠?”
곁에서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람피리데가리볼버를까딱거렸다.
“언니이이이이이~~!!”
“으와아아아악!”
람피리데는괜히 나섰다가 또 나라온에게껴안아졌다.
“…형편 없는 길드로군. 이런 곳에서 정말 100만 실링퀘스트를주기는 하는 건가?”
베르쿠트가묵묵히 강평했다.
말마따나… 이 길드는 척 봐도 개판이었다.
접수원이라는인간부터 개판이다.
세상그어느 접수원이남의 엘프귀를 가지고 놀아요?
“그래. 아무리 봐도 사기 같으니까 돌아가자, 베르쿠트.”
딱 봐도 사기꾼 집단이다.
게다가 나라온은피곤한 사람이다.
저딴 접수원을고용하는 길드가 멀쩡할 리 없다.
나는 여기서 빠져나가야 되겠어.
“아~ 잠깐…! 잠깐만! 가지마아아아~!”
베르쿠트와나는 길드에서 나가려 했다.
그런 우리를 나라온이뒤늦게 불러세웠다.
“뭡니까? 이번엔 또 무슨 부조리를 하려고요?”
“퀘스트! 줄게!”
나라온이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싫습니다.”
거절했다.
“아 왜애애애애~~ 이번 파티한테도 거절당하면 길드장님한테혼난단 말이야~~”
너는 좀 혼나야 될 것 같은데요.
“애초에… 여긴 뭐하는 길드입니까? 전혀 신뢰가 안 가잖아요.”
이름부터 수상하다. 지상 작전 길드…?
“흐후후후…! 여기가 뭐하는 길드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나라온이카운터 위로 뛰어올랐다.
뭔가 연극이라도 하려는 걸까?
“가자.”
알 게 뭐냐.
나는 뒤돌아섰다.
“으와아아아악…! 멈춰! 멈춰어어어…!!”
나라온이애절하게 나를 불러세웠다.
“으우으으윽…. 옛정을생각해서 모험자등록이라도 해주고 가라아…….”
나라온이글썽거리며 나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속지 마라. 저건 탈모 아저씨다.
탈모 아저씨인데… 그래도…
은발 미소녀가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으니…
“하아아…. 알았어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쩐지… 일말의동정심이 고개를 들었다.
“리온…. 여기는 아무리 봐도 사기꾼 집단이다. 개인정보를 제공하면 바로 보이스피싱을당할 거라고. 너는다짜고짜 엘프귀나 만지는저 정신 나간 접수원한테구글 기프트카드라도 사주고 싶은 거냐?”
베르쿠트가나를 뜯어말렸다.
“중대장이 그럴 사람은 아니야….”
나는일단베르쿠트를진정시켰다.
…나라온이이상한 사람이긴 해도 사기꾼은 아니다.
오히려 본인이 사기를 당할 팔자다.
사이비 약팔이를무지성으로믿어버리곤 했으니까.
“미, 믿어주는구나아…!”
나라온이감동하여 내 두 손을 꼭 붙잡았다.
“다시 한 번 묻겠는데요…. 여기는 뭐 하는 길드입니까?”
“아, 흠! 흠! 그래! 그럼 소개하지! 지상 작전 길드로 말할 것 같으면! 황제 폐하께서 직접 소유하시고, 기사군의직속 지휘 아래, 정교회가인도하여 삼권융합을 완성한 65년 역사의 태스크포스용병 길드입니다!”
“아~ 줄여서 사기꾼 집단인가요?”
에탕다르가정곡을 찔렀다.
“아니야아아! 정식 등록된 길드라고오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군. 황제 폐하와 기사군, 정교회는서로 견제하고 있다. 그 셋이 서로 힘을 합쳐 만든 길드라고?”
베르쿠트가의심스런눈으로 나라온을쳐다봤다.
“후후! 언제까지 견제만 하고 있을 건가요! 갈등이 지나치다고 판단한 65년 전 연합 제국 입헌 과두총의회에서는작전길드령일부개정안을발의하여 세 가지 세력을 전부 아우르는 태스크포스용병 길드를 창설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게 지상 작전 길드인가요?”
“정답!”
나라온이내 얼굴을 정면으로 지목했다.
일단… 그녀의 설명은 그럴 듯하다.
카운터에 전시된 등록증과 법안 서류도 전부 진짜 같다.
하지만… 수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후우…. 언제까지 이 사기꾼의 말을 들어줄 건가요? 후딱후딱 처죽이고가산이나 몰수하죠?”
이 신관은 정말 퀘스트를받으러 온 게 맞을까?
아니나 다를까, 의심 많은 람피리데가시니컬하게답변했다.
그녀는 심드렁하게 의자에 앉아 손톱이나 정리하고 있었다.
“언니이이이이…”
나라온은또 한 번 람피리데에게안기려다가,
“흐이이이익…!!”
이번에는 걷어차였다.
“그런 얕은 수작에는 더 이상 안 당해요.”
“너무해애! 너무해애애애! 걷어찼어! 걷어찼어어어!!”
나라온이얻어맞은 뺨을 붙잡고 울먹였다.
그런 그녀를 위로하는 것은,
“저기… 접수원언니이….”
오직 에탕다르뿐이었다.
“흑흐흐흑…. 로리마법사 아가씨…….”
나라온이에탕다르에게의지하려 했다.
그러자,
“게으름 피우지 말고 빨리 퀘스트접수나 해주세요. 저 시간 없거든요? 주식시장 마감이 3시 30분이라고요. 알기나 해요?”
에탕다르가나라온의얼굴에 벽보를 들이밀었다.
원래 에탕다르는싸가지 없는 꼬맹이다.
에탕다르에게위로를 바랐다면 유감이다.
“앗…, 아… 네에에….”
나라온이묵묵히 벽보를 받아들었다.
그녀는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 되었다.
“빨리빨리!”
그 와중에 에탕다르가나라온을재촉했다.
“아, 알았어요!”
그 독촉을 못 이겨 그녀는 허겁지겁 카운터로 되돌아왔다.
나라온은,저 새끼들 순 싸이코패스아니냐며 내심 투덜거렸다.
그러다가 측은한 시선으로 나를 한 번 쳐다봤다.
저건… 600만 실링의빚을 쳐다보는 눈동자다.
…불쾌한 시선이었다.
“하아…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구만~”
나라온이신세를 한탄하며 벽보의 내용을 확인했다.
“어… 이건…….”
나라온의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탈영병 토벌 퀘스트. 보상금은 100만 실링. 허름한 벽보다.
나라온은거기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 듯했다.
“이 퀘스트… 진짜 할 거야?”
그녀가 눈을 고양이 같이 치켜 뜨고 되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