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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215화 (215/219)

00215 9-9.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

9-9.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로얄로더를 타고 높은 창공으로 날아오른 로엘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신이 바위를 하나하나 조립하여 만든 듯한 절경이 로엘의 발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절경을 감상할 틈도 없이 로엘의 눈에 다수의 병력이 포착되었다.

고르오스 군이었다.

아폴로의 부대와 합류했는지 얼핏 보기에도 2만 5천은 되는 병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최후의 협곡이 워낙에 가파르고 좁은 길뿐이라 부대를 분할하고 있었다.

2천 명 단위로 부대를 쪼개 최후의 협곡 각 길목으로 보내는 중이었다.

마왕군이 들어가려는 길과는 정반대의 루트에 고르오스 군이 빽빽하게 들어서기 시작했다.

로엘이 아래를 보는 사이 로얄로더가 전방을 보며 말했다.

“저쪽 정찰대도 참 고생이 많구만.”

정찰을 하기 위해 날아오르고 있던 고르오스 측 가고일들이 로얄로더를 보자마자 부리나케 도망갔다.

보통 정찰대끼리는 서로 적군이라도 인사하며 지나치는 경우가 빈번했다.

특히 마계처럼 비행 정찰이 대부분인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상대가 로엘과 로얄로더다 보니 꽁지 빠지게 도망친 것이었다.

로얄로더는 도망치는 가고일을 보며 웃다가 문득 아래를 보았다.

“주인아, 저쪽에 고르오스가 있는데 어쩔까?”

고르오스는 히드라에 타서 이동 중이기에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로엘도 히드라를 발견하곤 문득 베나티아를 떠올렸다.

‘내가 브레스 쏘면 되지 않아?’

오랜만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훗.”

“뭐 웃을 만한 일이라도 있었나?”

“별로. 브레스나 준비해. 칼자루를 쥐고도 휘두르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이번에는 무리야. 협곡에 브레스 쏘면 여파 때문에 아군 진로에 낙석이 떨어질 걸?”

“그것도 그렇군.”

“히드라를 상대하는데 주력하겠어. 바람의 방향이 아군 쪽으로 불고 있어. 히드라가 독연기라도 내뿜으면 싸우기도 전에 중독되어 버릴 거야.”

“그럼 히드라는 네게 맡겠어. 먼저 낚아채서 협곡 바깥에서 싸워. 일대일 싸움에서 지진 않겠지?”

“날 뭘로 보고!”

로얄로더는 자신감을 드러내 보이며 고르오스와 히드라가 있는 곳을 향해 급강하하였다.

///

로엘이 고르오스를 보고 있던 것처럼 고르오스도 로엘을 보고 있었다.

4인방이 없기에 4성급 부대장들이 대신 부관 역할을 맡아 고르오스의 의중을 물었다.

“로얄로더가 계속 이쪽을 주시 중인데 어떻게 할까요?”

“너희들부터 앞으로 전력질주해라. 곧 떨어질 거다.”

“네? 무엇이 떨어......”

4성급 부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히드라 아래에서 걷던 병사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로얄로더가 온다!”

4성급 부대장이 깜짝 놀라 넘어질 뻔했다.

고르오스의 말대로 로엘과 로얄로더가 급강하는 중이었다.

“혼자서 온다고? 마왕이 직접?”

의아함과 황당함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4성급 부대장과 달리 고르오스는 당연하다 여겼다.

“이기는 법을 아는 자로군. 힘을 가지고 안전을 도모하는 건 2류의 발상이지. 승리는 위험의 연장선이라는 걸 잘 알고 있군.”

4성급 부대장은 얼른 히드라에서 내려가 병력을 앞으로 이동시켰다.

그랜드 마스터급끼리, 대형 괴물들끼리 싸우는데 끼어들고 싶어 하는 자는 없었다.

로얄로더가 떨어지는 지점에는 곧 고르오스와 히드라만 남게 되었다.

하강하던 로얄로더의 머리 위에서 로엘이 뛰어내렸다.

로엘은 낙하하는 속도를 그대로 이용하여 고르오스의 머리 위에 마검을 내리쳤다.

고르오스는 마검의 주변에 일렁거리는 강대한 마기를 감지하며 팔을 위로 들었다.

보랏빛 비늘에 강대한 마기가 알알이 깃들면서 로엘의 마검과 경합했다.

파지지직!

드래그나 일족의 드래곤스케일은 안티에너지 마법진처럼 마기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로 상대해야하는 건 마검이 지닌 근본적인 예리함뿐이었다.

마검이 아무리 예리하다 한들 아디만티움과 같은 강도를 지닌 드래곤스케일을 마기 없이 베어내는 건 무리였다.

고르오스는 로엘과 경합을 이루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대면은 처음이로구나. 상상했던 것과 달리 여리여리하군.”

로엘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고르오스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쪽은 상상했던대로의 모습이군.”

“어떤 모습을 상상했나?”

“약골.”

“하하하! 이 몸을 약골이라 칭할 수 있는 자는 네놈을 뿐일 게다.”

“약골인 걸 증명할 수 있는 것도 나뿐이겠지.”

싸움에 임하면서 마검이 로엘의 감정에 반응하여 침식화를 진행했다.

마검의 마기가 삽시간에 로엘의 팔을 휘감았다.

고르오스는 로엘의 팔이 검게 물드는 것을 보며 조롱하듯 말했다.

“마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군. 빠르게 승부를 내주마.”

“두렵나 보지?”

“미친놈과 싸우고 싶진 않으니까.”

고르오스가 거칠게 로엘의 마검을 떨쳐냈다.

로엘은 뒤로 펄쩍 뛰어 히드라의 머리에서 내려갔다.

밀렸다기 보단 일부러 뛴 느낌이 강했다.

고르오스는 왜 로엘이 뛰어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위에서 로얄로더가 급강하하면서 발톱으로 히드라의 몸통을 움켜잡았다.

로얄로더는 히드라의 몸을 붙들고 날아올라 최후의 협곡 바깥으로 내던졌다. 그리곤 본인도 히드라와 싸우기 위해 최후의 협곡 바깥의 너른 들판으로 날아갔다.

고르오스는 히드라가 내동댕이쳐지기 전에 바닥에 착지했다.

협곡의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로엘과 고르오스가 대치하였다.

“각개전투라면 이길 거라 생각했나?”

“부대끼면서 싸우는 건 싫어서 말이지.”

“차라리 난전으로 몰고 가는 게 나았을 거라 여기게 될 게야.”

“도움 청할 곳이 없어 조급해지기라도 했나 보지? 그만 나불거리고 덤벼라.”

로엘과 고르오스는 누가 먼저라도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최후의 협곡 일각에서 두 괴물이 맞붙으면서 굉음이 메아리쳤다.

///

쿠르르!

협곡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굴란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 소리는......”

굴란트와 함께 이동하던 데킬라가 예상이라도 한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왕님과 고르오스가 벌써 맞붙기 시작했군.”

“이쪽은 아직 이동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괜찮을지.”

“고르오스도 바보가 아니니 부하들을 불러다 모으는 짓은 하지 않았을 걸세. 지금 소리가 그 증거지.”

“우리도 빨리 이동해야겠군요.”

“그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데킬라의 시선이 가파른 길 너머에 고정되었다.

건너편에서 아폴로의 부대가 오고 있었기에.

호리병 모양으로 둥근 형태를 지닌 넓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양측 병력이 대치했다.

서로 병력을 분할했기에 각각 이끌고 있는 병력은 2천에 불과했다.

모처럼 넓은 공간에서 맞닥뜨리게 되었지만 싸우게 된다면 수장 대결이 될 게 분명했다.

데킬라는 굴란트의 등을 떠밀었다.

“지금은 자네가 돌격대장이니 앞장서게.”

굴란트는 쌍두마를 몰아 먼저 호리병 모양의 공간에 들어섰다.

상대측에서도 아폴로가 단신으로 공간에 들어서며 응수했다.

“마왕군 소속의 굴란트라 한다. 피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만 마왕님은 너그러운 분이시니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폴로는 코웃음을 쳤다.

“훗, 마계 대륙을 지배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분은 고르오스 님뿐이니라.”

“이미 마왕의 표식을 지니고 있는 분이 버젓이 계시는데 어디서 망발을 지껄이느냐?”

“그쪽이야 말로 살고 싶다면 항복해라.”

“이놈. 같잖은 말로 나의 충성심을 자극하는구나.”

“충성심? 진정으로 충성에 대한 의미를 아는 자는 나밖에 없는데 어디서 충성을 입에 담느냐?”

“오냐, 그리 말한다면 붙어보자. 내 앞에서 충성심을 논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군. 전군 돌격하라!”

“우리도 돌격이다! 먼저 넓은 공간을 점해야 한다!”

굴란트와 아폴로가 동시에 돌격명령을 내리면서 양측 병력이 호리병 형태의 공간을 선점하기 위해 돌격했다.

양측 병력이 2등분 하듯 호리병 형태의 공간에 가득 들어차면서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공간의 중앙에선 굴란트와 아폴로가 맞붙었다.

아폴로는 굴란트의 타입을 사전에 알아보았었다.

‘놈의 주특기는 육체 타입의 타격 흡수. 정신 타입의 능력을 쓰면 스스로 무너지겠지.’

아폴로가 가진 고유능력 중 정신 타입에 해당하는 능력을 골라 활용하려 했다.

그런데 굴란트의 뒤에 따라붙던 데킬라가 눈빛을 번뜩이며 외쳤다.

“온다! 정신 타입의 최면 형태 공격일세! 눈을 마주치지 말게!”

데킬라가 볼 수 있는 건 위험도에 의한 색깔 구분뿐이지만 그 색깔과 색깔이 퍼지는 파장에 의해 상대의 타입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막 아폴로가 감각반전의 효과를 지닌 고유능력을 발휘했지만 굴란트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 통하지 않았다.

가볍게 정신 타입의 공격을 피해낸 굴란트는 쌍두마에서 뛰어내려 무작정 아폴로에게 부딪치려 했다.

무식할 정도의 육탄공격에 당할 아폴로가 아니었다.

아폴로의 하반신을 이루고 있는 크리스탈 놀이 앞발로 굴란트를 내리쳤다.

굴란트는 날아가다 말고 앞발에 얻어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으허! 이거 참... 좋은 아픔이군.”

“공격을 받아야만 공격할 수 있다. 그게 너의 한계지. 반격조건이 충족되기 전에 죽여주마.”

아폴로의 두 팔이 검 형태로 변하였다.

겉보기엔 육체 타입의 고유능력으로 보이나 찌르면 찔린 상대에게 무력감을 심어주는 정신 타입의 고유능력이었다.

허나 그 또한 데킬라에 의해 간파 당했다.

“정신 타입의 효과를 주입하는 검일세! 찔리지 말게!”

굴란트가 옆으로 구르면서 검이 바닥에 박혔다.

아폴로는 굴란트보다 데킬라가 더 성가심을 알곤 데킬라를 향해 검을 뻗었다.

“너부터 없애야겠구나.”

데킬라는 식칼 형태의 아디만티움 단검을 뽑아 아폴로의 검을 옆으로 밀쳐내며 거리를 벌렸다.

차캉!

“좀도둑에게 당할 정도로 어수룩하진 않다네.”

“망할!”

“그보다 내게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옆으로 굴렀던 굴란트가 다시 일어나 아폴로에게 부딪쳐왔다.

아폴로는 상체로 반격할 틈이 없어 하체의 놀을 부려 또 한 번 앞발로 굴란트를 튕겨냈다.

튕겨나간 굴란트는 고통을 매우 반겼다.

“흐흐흐, 좋구나 좋아. 좀 더 때려주지 않겠나?”

“이, 이런 미친 변태 새끼를 봤나!”

“동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군. 충성심이란 칭찬만을 원하는 게 아니라 고통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냐에서 시작하지. 아닌가?”

“미친 소리! 충성은 주군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마음이다!”

굴란트는 무릎을 살짝 굽힌 후 가볍게 뛰어오르며 지금까지 흡수한 타격을 기운으로 전환하여 주먹에 모았다.

주먹에 기운을 일렁거리나 싶더니 굴란트가 아폴로의 하반신의 놀 머리에 주먹을 내리 꽂았다.

투웅!

바위를 때린 듯 묵직한 타격음이 울려 퍼지더니 놀의 이마에 금이 갔다.

금이 간 부분은 점점 더 넓어지면서 아폴로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그와 동시에 굴란트가 옆으로 물러섰다.

굴란트가 서있던 자리로 데킬라의 단검이 날아들면서 아폴로의 미간에 박혔다.

빠각!

능력이 아무 많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아폴로가 펼친 졸전이 그 증거였다.

굴란트는 아폴로의 미간에 박힌 단검을 뽑아 데킬라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충성심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녀석이었군요. 그렇지요?”

“자네의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만......”

“어느 정도만? 전부가 아니고요?”

잠깐 뜸을 들인 데킬라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자, 사소한 건 넘어가고 얼른 남은 병력을 처리하세나. 이러고 있을 틈이 없네.”

굴란트는 다소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느긋하게 있을 틈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전투에 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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