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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206화 (20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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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가장 안전한 곳?

폭스의 땅을 정리한 로엘은 라이프트리를 타고 서쪽으로 나아갔다.

라이프트리의 기다란 뿌리를 이용한 기동력은 어지간한 기마대보다 뛰어났다.

덕분에 며칠 걸리지 않고 로드리고의 땅에 도달할 수 있었다.

로엘은 로드리고의 땅으로 들어서며 카에라의 땅에서 보내온 소식을 전해 받았다.

“고르오스가 막 노이즈 산맥을 넘었다는군. 부대를 4개로 쪼갰고 그 중 하나가 벌써 요새 하나를 돌파했다는 소식이야.”

굴란트가 한숨 내쉬며 근심을 드러냈다.

“예상보다 너무 빠릅니다. 첫 패전은 누구에게 당했다고 합니까?”

“카잔의 부대. 아폴로란 자와 함께 움직이는 중이라는군.”

“폭스의 데스나이트 부대를 격파한 루키로군요. 강한 건 확실하지만 너무 빠릅니다.”

“카에라도 바보는 아닐 테니 뭔가 계획하고 있겠지. 그보다 스랄스에게서 연락은?”

“아직 없습니다.”

로엘은 전투 중도 아닌데 마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어느새부턴가 생긴 버릇이었다.

자그마한 움직임이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로엘 본인조차도.

“혹시 모르니 일정을 조금 앞당기지. 라이프트리 속도는 더 이상 못 올리니까 루트를 바꾸자고.”

로엘은 회의탁자에 펼쳐진 지도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지도 위의 장기말에 손을 뻗었다.

나무 모양의 장기말을 로드리고의 땅 중심부로 움직였다.

라이프트리를 이동시킬 경로를 의미하는 움직임이었다.

“위험지대를 피해 가려는 건 취소하고 일직선 돌파로 가자. 그러면 로드리고가 있는 룬카렘까지 가는 일정을 사흘 정도 줄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변경된 루트에는 오스쿠바 성이 있습니다. 거긴 베네타보다 더 견고한 성벽을 지니고 있지요. 어쩌면 우회해서 가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견고한가?”

“사흘쯤은 쉽게 날려먹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참나, 오래된 성인데도 그리 견고할 수가 있는 건지 원. 어떤 토르가 만든 건지 얼굴 한 번 보고 싶군요.”

굴란트가 괜히 성 건축가를 탓하고 있던 중 데릭마이어가 슬그머니 외팔을 들었다.

“내가 만든 성일세.”

“...”

“...”

“...”

장내에 묘한 공기가 감돌았다.

굴란트는 있지도 않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척하며 헛기침을 했다.

“음흠흠, 너무 뛰어난 실력을 가진 토르라 한 번 뵙고 싶다. 뭐 그런 말이었지요.”

“그런 거라 치고 넘어가주지. 그나저나 마왕님. 오스쿠바 성으로 곧장 가시지요.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봐.”

“오스쿠바 성을 지을 때 아도로스가 견고한 건 물론이고 안티에너지 마법진까지 설치해달라고 했었지요. 설계는 완벽하게 했는데 중간에서 현장업자 몇 명이 이익 부풀리려고 안쪽 돌 상당수를 빼먹었습니다.”

“재공사는 하지 않았나?”

“허허, 알아차렸을 땐 이미 반역 준비 중이었으니까요.”

“부실공사라는 거군. 부실공사를 해도 견고한 성으로 이름을 떨쳤다는 건 좀 어폐가 있는 것 같다만.”

“빼낸 돌은 안티에너지 마법진을 구성하는 돌입니다. 그거 조금 뺐다고 흔들릴 정도의 설계는 하지 않았죠. 업자들 입장에선 벽이 부실하면 횡령 사실을 들키니까 중요한 부분은 그대로 이행했을 겁니다.”

마법진을 형성하는 돌이 상당수 빠졌다면 안티에너지 효과가 약해졌을 거다.

공성전 때 자주 쓰는 하급 마법은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변경된 루트가 빠른데다 훨씬 뚫기 쉽기까지한데 뭘 망설이겠는가.

로엘은 라이프트리가 놓인 룬카렘 부분을 보며 마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루트를 변경하지. 오스쿠바 성을 관통해서 룬카렘까지 가도록.”

///

로드리고는 룬카렘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의 기분은 상당히 좋아진 편이었다.

고르오스가 뇌신의 창을 선뜻 내주었기 때문이었다.

뇌신의 창이 있다면 로엘을 상대로도 해볼만하다 여기고 있었다.

뇌신의 창은 트라이던트의 형상에 3개의 창날 끝은 전부 번개의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력의 결정체가 순수한 번개의 힘으로 이루어진 물건이라 보면 되었다.

로드리고는 뇌신의 창을 들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뇌신의 창이로구나. 이것만 있으면 나 또한 그랜드 마스터급의 힘을 낼 수 있는 건가.”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이게 나의 전부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마왕에게 속고, 끝내 고르오스에게 빌붙어 얻어낸 게 고작 이 무기 하나뿐이란 말이다!”

황홀했던 표정은 구겨진지 오래였다.

다닐루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될지 몰라 합죽이 마냥 입을 꾹 다물었다.

폭스가 당한 이후로 줄곧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마왕에겐 충분한 힘이 있다는 게 입증된 셈이었다.

마왕에게 붙었다가 다시 고르오스에게 붙고, 마왕이 그걸 비웃듯이 무력을 과시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한 졸장부가 서있는 게 아닌가.

이전보다 한 경지 위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기개를 잃은 자가 빠지게 되는 가장 안 좋은 상태였다.

다닐루는 언제 또 로드리고의 기분이 나빠질까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다닐루의 어색함을 덜어주기라도 하려는지 병사가 들어와 보고를 전했다.

먼저 보고를 들은 다닐루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마왕군의 라이프트리가 우회하지 않고 오스쿠바 성으로 곧장 다가오고 있다 합니다.”

“재미있는 보고로군. 조금도 방향을 틀 기미가 안 보이나?”

“거기까지는 확실하게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뭘 해도 오스쿠바 성이 뚫릴 일은 없어. 마왕측도 그 정도는 알겠지. 왜 정면으로 오는 걸까?”

“뚫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로엘 그 작자의 행동만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어. 뉴아츠에서 당한 걸 잊지는 않았겠지?”

다닐루는 뉴아츠에서 폭스군을 쳤던 걸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런 식으로 교란작전을 펼칠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이번 진격도 교란작전을 위한 포석일지도.”

“라이프트리를 이용한 대규모 이동인데 포석의 요소가 있을까요?”

“누가 라이프트리의 이동루트가 곧 마왕군의 이동루트라 정했지?”

“아! 라이프트리를 미끼삼아 이목을 끌려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우회루트 쪽 요새들의 상황은?”

“지금 위험지대 정리를 마친 참입니다.”

“좋지 않군. 어차피 마왕을 상대로는 활성화의 핵을 못 써. 역으로 갖다 바치는 꼴이 되어버리겠지. 우회루트에 있는 모든 요새에 전해라. 활성화의 핵을 오스쿠바 성에 모아놓으라고.”

“네!”

“그리고 출정 준비를 해놔라. 마왕측이 어느 우회루트를 타느냐를 보고 정면대결에 나서겠다.”

로드리고는 뇌신의 창을 꽈악 쥐며 전의를 불태웠다.

전의를 태우는 연료는 기개가 아니라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

로드리고의 예상과 다르게 마왕군은 라이프트리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오스쿠바 성에 도착했다.

일반 성과 다른 게 있다면 성벽이 올록볼록한 물결 모양이었다.

외벽 안쪽에서 내벽이 지지대 역할을 맡고 있어 견고함을 더해주는 형태였다.

라이프트리 위에서 데릭마이어가 성벽 중 한 곳을 가리켰다.

“성벽 가장 왼쪽 자리가 약한 곳입니다.”

같은 가지 위에 앉아 있던 로얄로더가 예정대로 마기를 끌어올렸다.

“주인아. 브레스 쏠까?”

로엘은 무심한 눈빛으로 가지런히 쌓인 성벽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로엘의 눈에는 그저 무너뜨려야 할 장난감 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무심한 눈빛에 준하는 무미건조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부숴버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로얄로더의 입에 마기가 모이며 한 덩어리로 응축되었다.

응축된 마기는 여러 덩어리로 나뉘어 연이어 쏘아졌다.

먼저 날아간 부분이 안티에너지 마법진을 상쇄시켰고 뒤이어 적중한 브레스가 단숨에 성벽을 허물어뜨렸다.

한 곳이 무너지자 다른 부분의 안티에너지 효과도 사라지면서 무너진 부분이 점점 넓어졌다.

성벽이 무너지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고, 브레스가 폭발하면서 굉음은 몇 배로 증폭되었다.

콰앙! 콰르르르! 콰앙!

라이프트리 위에서도 머리가 딩딩 울릴 정도인데 지상은 오죽하랴.

성벽 위에 있는 로드리고 군은 물론 성 안쪽에서도 완전히 난리가 났다.

로엘은 숨통 트일 시간조차 주지 않고 바로 공격에 나섰다.

“라이프트리, 병사들을 아래로 내려. 그리고 로얄로더 너는 나와 함께 적진 한가운데로 간다.”

“또 한가운데야? 항상 피곤한 역할만 맡게 되는구만.”

“투정인가?”

“크흠, 그럴 리가 있나. 자자, 꼬리 타고 올라와.”

로얄로더에 올라탄 로엘은 성벽 너머로 날아갔다.

성벽 안쪽에서는 로드리고의 병사들이 우왕좌왕거리고 있었다.

오스쿠바 성을 지키는 4성급 부대장부터 말단의 병사들까지 전부 정신이 없어 진형조차 잡지 못했다.

설마 단숨에 성벽이 무너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신적 타격이 상당했다.

그 와중에 로얄로더까지 넘어오고 있으니 더욱 공황에 빠졌다.

4성급 부대장은 우왕좌왕하다가 로엘부터 해결해야겠다고 판단했는지 병력을 불러 모았다.

“뚫린 곳은 외벽, 내벽 위의 남은 병사들이 맡아라! 나머지는 로얄로더를 막으러 와라! 얼른 모여!”

로엘은 공중에서 로얄로더의 머리를 발로 탁탁 두드렸다.

“급강하.”

“거참 발끝으로 두드리지 말라니까.”

“급강하.”

“네네, 내려갑니다. 떨어지지나 마십쇼~.”

로얄로더는 급강하하여 모여드는 로드리고 군 정중앙에 떨어졌다.

몇몇 이들은 로얄로더의 발밑에 깔렸고, 급강하하며 생긴 후폭풍 때문에 겨우겨우 잡혀가던 진형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졌다.

로엘은 흙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닥으로 향해 뛰어내렸다.

손은 벌써 마검의 손잡이에 가있었고 착지할 즈음엔 뽑혀있었다.

땅바닥에 착지한 로엘은 번갯줄기가 번쩍이는 걸 감지했다.

공격이 날아든 순간은 찰나였지만 로엘은 반사적으로 마검을 휘둘러 번개공격을 걷어냈다.

가라앉는 흙먼지 사이에서 로드리고 군 4성급 대장 및 3성급 대장들이 번개마법을 쏘아낸 것이었다.

로드리고의 땅답게 자연 타입 번개의 능력을 지닌 자들이 제법 되었다.

“틈을 주지마라! 어차피 적은 혼자... 아니 둘이다! 마왕과 로얄로더란 허울 좋은 직위에 겁먹지마라!”

로엘은 일부러 무형검을 쓰는 대신 손등을 내밀었다.

마검으로 증폭된 마기를 한껏 활용하여 그림자군단을 소환했다.

로엘이 가진 마기는 1400년 치.

마검의 효과로 2배 증폭되어 임시로 2800년 치가 되었다.

로엘은 그 중 700년 치를 할당하여 1400명의 그림자군단을 소환하였다.

더 소환할 수도 있지만 공간의 한계로 인해 적정인원만 소환한 것이었다.

4성급 부대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던 600명의 로드리고 군은 그림자군단에게 둘러싸인 꼴이 되었다.

로엘은 역으로 둘러싸여 갈팡질팡하는 로드리고 군에게 말했다.

“아직도 2명으로 보이나?”

로드리고 군 전원이 너나할 것 없이 입만 뻐끔거렸다.

그들이 당황하는 것과 로엘이 기다려주는 것은 별개였다.

로엘은 흥미 없다는 듯 검을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신호에 맞춰 그림자군단의 참격이 성 안 가득 퍼져나갔다.

///

오스쿠바 성은 폭스 군과 싸움보다 훨씬 수월한 과정을 거쳐 함락하였다.

무엇보다 그림자군단의 힘이 컸다.

폭스와 싸울 때는 그림자군단이 여우불에 타버리기 때문에 상성상 사용하지 않았지만 오스쿠바 성 함락 때는 아낄 필요가 없었다.

로엘은 포로들을 전부 포박하여 격리시켜놓고 데킬라로 하여금 부상자를 파악하라 일러두었다.

더하여 타유아가 오스쿠바 성을 너머에 마녀 고양이를 보내 정찰을 다녀오게 했다.

마녀 고양이가 복귀했는지 타유아가 다가와 로드리고 군 본대의 상황을 알렸다.

“로드리고 군의 본대가 다가오고 있어요. 뒤늦게 출발한 것 같아요.”

“이상할 정도로 대처가 늦군.”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가 직진한 걸 미리 전해 들었을 텐데 말이죠.”

“우회할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모양이지. 병사들에게 긴장 풀지 말고 재정비를 해두라고 말해둬.”

타유아와의 대화가 끝나갈 즈음 오스쿠바 성 안을 탐색하던 굴란트가 멀리서 로엘을 불렀다.

“마왕님! 대박입니다! 사령부 안에서 대량의 활성화의 핵이 나왔습니다!”

“그래? 그리로 가지.”

굴란트 쪽으로 걸어가는 로엘의 뒷모습을 보던 타유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로엘의 오른쪽 손바닥에 검은 반점 같은 것이 돋아나 있었기에.

마검의 침식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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