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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204화 (204/219)

00204 9-4. 끈이 이어지다 =========================

“여기 주민은 아니신가 봐요?”

“마왕군 소속일세. 바문에게 볼일이 있어 들렀다네. 설마 아직까지 바문이 위험지대를 전부 정리하지 않았을 줄이야.”

스랄스란 이가 고르오스 군 소속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외지인이냐는 질문을 날린 건데 있는 일 없는 일 모두 말하고 있었다.

메이아가 자기소개를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스랄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게 이상한가?”

“네?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거짓말이 서투르구먼.”

“음, 얼굴에 쓰여 있기라도 한가요?”

“뭐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닐세. 정마융합을 쓸 수 있는 자를 의심할 정도로 삐뚤어진 성격은 아니라서 말이지.”

메이아는 순간적으로 고삐를 놓칠 뻔했다.

힐터만 보고 바로 정마융합을 떠올린 게 틀림없었다.

“정마융합을 알고 계세요?”

메이아가 정마융합을 익히기 전에 정마융합을 쓰던 자는 샤이어밖에 없다.

어떻게 스랄스가 정마융합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스랄스는 의아해할 것 없다는 듯 말했다.

“샤이어 님이 은퇴하시기 전에 나와의 술자리에서 몇 번이고 언급하셨던 방법이지. 샤이어 님의 제자가 맞느냐?”

“엄밀히 말하면 제자라고 할 수 있겠죠.”

“샤이어 님은 잘 계시고?”

“고르오스의 땅에 있는 북쪽 숲에서 지내고 계셔요.”

“흠, 그렇군. 그나저나 그쪽은 무슨 일로 바문의 땅에 들어온 건가?”

샤이어와 아는 사이인데다 마왕군 소속이라면 어려워할 게 없었다.

카에라와 마왕이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는 메이아도 들었으니 오히려 협력해야 하는 관계였다.

“전 메이아라 해요. 사정이 있어서 고르오스 군에 붙잡혔다가 탈출했죠. 지금은 카에라의 땅으로 돌아가려고 바문의 땅을 경유하는 중이었어요.”

“메이아? 잠깐, 메이아라......”

“왜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아!”

스랄스가 갑자기 메이아의 몸에서 손을 떼고 손뼉을 친 탓에 뒤로 넘어질 뻔했다.

메이아가 급히 한 손으로 스랄스의 로브를 잡아당긴 덕에 떨어지는 것만은 면했다.

스랄스는 떨어진 뻔한 것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

“자네 설마 인간이자 왕의 시중으로 일했던 그 메이아인가?”

“그걸 어떻게 아세요?”

“허! 살아있었군. 다행일세. 마왕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걸세.”

“저기,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 설명 좀 해주실래요?”

“자네 모르는 건가? 엘리오스 킨 로엘, 그 분이 바로 신임 마왕님이란 말일세!”

“네?”

로엘이 마왕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말에 메이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왕 소식을 그리 자주 접했는데 설마 그 마왕이 로엘이었을 줄이야.

뒤이어 메이아는 현재 로엘이 메이아의 죽음에 분노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카에라 역시 실습 나갔다가 죽은 아이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전해 들었다.

메이아는 같이 실습을 했던 학생들이 전부 죽었다는 말에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카잔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군요.”

“뭐라 할 말이 없구먼.”

“위로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니까요.”

피지도 못한 꽃들.

만개하기도 전에 봉오리가 잘려나간 안타까움을 무엇에 비교하리.

하지만 눈물은 짓지 않는다.

흐르는 눈물은 봄에 맺힌 고드름의 물방울이면 충분하다.

스랄스에 말에 의하면 이제 와서 전쟁을 무르기엔 서로 간의 골이 너무 깊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메이아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스랄스 씨는 폐하의 명령을 받고 온 거죠? 무슨 명령이었나요?”

“도와줄 생각인가?”

“또 뼈가 어긋나면 곤란하시잖아요.”

“훗, 그렇긴 하군. 난 지금 아주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네. 북쪽의 바문, 야나몬, 테네시스를 설득하는 임무지.”

“그럼 바문이란 자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네요.”

“뛰어가는 것보단 훨씬 빨리 도착할 수 있겠군. 부탁 좀 하지.”

메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문의 땅 중심지인 싱골라로 향했다.

///

호수를 끼고 있는 도시 싱골라.

싱골라에 위치한 바문의 저택에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묵빛 갑옷을 입은 고르오스 군 4인방 중 1인 론메일이었다.

바문은 론메일의 요구를 듣곤 이마를 짚었다.

“스랄스의 뼈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면 불가침 조약을 맺어주겠다 했나?”

“파격적인 조건이지요.”

“생각할 시간을 주게.”

“마계 7기둥의 일각을 맡고 계신 바문이시여. 저는 지금 협상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즉답을 해주십시오.”

론메일은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마스크 헬름 사이로 붉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대놓고 전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바문이 호통을 치려했으나 바문의 부하들이 먼저 나서서 바문을 설득했다.

“바문 님. 알려주시고 불가침 조약을 맺으셔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지 마라. 마계 통일을 노리는 고르오스가 불가침 조약을 끝까지 지킬 거라 생각하느냐?”

“이전의 침공을 잊으셨습니까? 그 압도적인 힘이 다시 밀려들어오면 이번에야 말로 몰살입니다!”

바문은 알고 있었다.

불가침 조약은 허울뿐이라는 것을.

고르오스 측은 목적만 달성하면 바로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깰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저항하기에는 가진 힘이 너무나도 미약했다.

이전 침공 때 당한 마을 및 도시들은 아직 복구작업조차 못하고 위험지대 돌파 횟수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무엇보다 바문의 부하들 모두가 고르오스 측에 트라우마에 가까운 공포심을 안게 되었다.

바문의 부하들 안에서 고르오스는 거의 파괴신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바문의 부하들은 일제히 두 손을 모으며 애원하듯 간청하였다.

“뼈 하나로 평화를 살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것입니다. 고르오스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마족을 위해서, 부질없이 묻힌 불쌍한 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은 싸워선 안 됩니다.”

“바문 님! 선처를!”

이미 분위기는 승낙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론메일은 붉은 눈을 번뜩이며 쐐기를 박았다.

“부하들이 참 충심이 깊군요. 주민의 안녕을 바라는 이들의 마음을 거부하셔야 되겠습니까?”

바문으로선 분명 장내에 부하들이 가득한데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바문은 소리 없이 한숨을 길게 내뿜으며 겨우 입을 떼었다.

“스랄스의 뼈는 부유거북 위에 있네.”

///

메이아와 스랄스는 최대한 위험지대를 피하면서 달려 싱골라에 도달했다.

싱골라는 호수를 중심으로 원형 도시를 이루고 있었고, 바문의 저택은 호수 중심에 있는 작은 섬에 있었다.

섬으로 들어가려면 조각배를 타고 가야만 했다.

메이아와 스랄스는 조각배를 탈 수 있는 나루터로 갔다.

스랄스는 힐터에서 내려 나루터에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에게 말을 붙였다.

“바문 님을 만나러 온 스랄스라고 하네. 배를 띄워주지 않겠나?”

“스랄스? 어디서 오셨습니까?”

“렌던에서 왔네.”

“렌던이면 마왕군! 마왕군 소속 간부 스랄스 님이시군요. 당장 바문 님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병사들은 바문의 허락을 받기 위해 조각배를 타고 섬으로 넘어갔다.

그동안 메이아와 스랄스는 나루터에서 대기하였다.

메이아는 힐터가 마물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진짜 노루인 양 풀 뜯는 시늉이라도 하라 했다. 그러면서 바문에 대해 물었다.

“바문이란 마족은 어떤 마족인가요?”

“성격만 따지면 상당히 강직한 편이지. 무력도 나쁜 편은 아닌데 하필 자리를 잡은 곳이 고르오스의 땅과 인접해 있어 세력을 불리지 못하고 그대로 약소세력이 되어버렸다네.”

“그렇다면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네요.”

“확신할 순 없지만 기대는 하고 있네. 자네가 합류함으로서 서서히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기도 하고.”

더불어 바문의 땅에 스랄스의 뼈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잘하면 전성기 때의 무력을 되찾을 수도 있었다.

각 목적을 달성하려면 일단 바문부터 만나야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섬 쪽에서 조각배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떠난 건 한 척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5척이 돌아오고 있었다.

각 조각배에는 바문의 부하들과 병사들이 한가득 타고 있었다.

스랄스는 조각배에 탄 자들을 훑어보며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메이아, 힐터에 올라타보게.”

메이아도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기에 바로 힐터에 올라탔다.

마중 나오는 것치곤 병사가 너무 많았고, 조각배에 탄 이들마다 무기를 꽉 쥐고 있는 것이 꼭 두 사람을 잡으러 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안은 곧 현실이 되었다.

메이아만이 힐터에 올라탔음에도 불구하고 바문의 부하들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놈들이 눈치 챘다! 얼른 나루터에 배를 대라!”

혹시 몰라 도망과 대기의 경계선에 있는 행동을 취했는데 상대는 도망으로 인식했다.

처음부터 잡으러 올 생각이었던 것이 증명되었다.

스랄스는 메이아에게 손짓을 하였다.

“우리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확인했으니 됐네. 내려오게.”

메이아는 힐터에서 내려오며 부리나케 노를 젓는 바문의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제압할까요?”

“앉아서 당하는 것보단 그쪽이 낫지 않겠나?”

메이아가 정령왕 에너지를 물씬 뽑아내어 물의 상급 정령 아쿠리스를 소환했다.

정령왕 에너지를 얻은 순간 상급 정령을 소환할 조건은 갖춰져 있었었다.

부족한 건 마기운용 센스가 아직 미숙하다는 점이었는데 그 부분은 정마융합을 배우며 눈에 띠게 향상되었다.

아쿠리스를 소환하자 허공에 물로 이루어진 여성이 나타났다.

운디네가 물로 이루어진 소녀의 모습이라면 아쿠리스는 아가씨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아쿠리스에게 정령왕 에너지를 나눠준 만큼 메이아의 몸 일부가 물의 정령과 같은 모습을 띠었다.

메이아는 물이 되어 일렁이는 오른팔을 조각배를 향해 내밀며 말했다.

“아쿠리스! 저들을 제압해!”

아쿠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나 싶더니 두 팔을 위로 들었다.

그러자 호숫물이 크게 솟구치면서 조각배를 뒤집었다.

거기에 물속에선 물기둥이 일어나 바문의 부하 및 병사들을 띄워 올렸다.

마족들의 몸이 물기둥의 물살에 반쯤 빠져들었을 즈음 물이 얼면서 얼음기둥이 되었다.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조각배에 타고 있던 전원이 얼음기둥에 하반신이 갇혀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고르오스 군 침공 때 주축들이 전부 전사했다지만 그래도 50명에 달하는 병력을 단숨에 제압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메이아도 마나 익스퍼트급은 된다 할 수 있었다.

스랄스는 얼음기둥에 갇힌 바문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대화를 하러 온 자에게 대뜸 공격이라니 바문의 땅도 수준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군.”

“아무 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라. 우린 다른 땅과 다르게 고르오스의 땅과 가장 가까운 곳이란 말이다.”

“바문 님은 정녕 이쪽과 대화할 생각이 없으신가?”

“없으시다! 그러니 세 치 혀로 우릴 현혹시킬 생각 말고 돌아가라!”

“물러날 테니 한 가지만 묻지. 고르오스 측에서 누군가 찾아오기라도 했었나?”

“그래, 찾아왔다. 론메일이 직접 찾아와서 모든 이야기를 끝마쳤으니 그쪽과는 할 얘기가 없느니라!”

4인방 중 한 명인 론메일이 왔다는 말에 스랄스가 표정을 달리했다.

물러나겠다고 말한 스랄스였으나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빙판 위에 올라섰다.

“메이아, 호수를 얼려서 길을 만들 수 있겠나?”

“네. 기운 소모가 심하겠지만 가능은 할 거예요.”

“부탁하지.”

얼음기둥에 갇힌 바문의 부하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놈! 약속이 다르지 않느냐!”

“미안하게 됐군. 갑자기 시간싸움이 되어버려서 말일세.”

스랄스는 아쿠리스가 만들어주는 얼음길을 따라 걸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론메일이 직접 왔다 이건가. 바문의 땅에 내 뼈가 있다는 게 사실인가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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