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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201화 (201/219)

00201 9-3. 술이 있고 안주가 있더라 =========================

로얄로더가 우리를 건드릴 때마다 오색계들이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자니 심심해서 오색계를 놀려먹고 있는 것이었다.

죽어버린 몸으로 음식을 먹겠나, 고기를 먹겠나.

그렇다고 시체용의 몸으로 병사들 사이에 어울려 춤을 추겠나.

심심풀이 삼아 놀리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툭! 툭!

“꼬록꼭꼭!”

“니들 병아리는 없냐? 하긴 이 저택에 사는 몹쓸 놈이 다 가져가지? 한 번 혼내줄까?”

“꼬꼭!”

“안 돼, 이 자식들아. 누구 대가리 날아가는 꼴 보고 싶냐? 그놈 성질이 얼마나 더러운데.”

오색계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혼자 1인 2역을 하며 노는 로얄로더였다.

괜히 로엘의 뒷담을 해보았다가 누가 듣나 싶어 은근슬쩍 주변을 돌아보기까지 했다.

누가 보면 과거 마계 대륙을 누비던 그 로얄로더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로얄로더가 소심하게 구는 것만 봐도 로엘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우리를 건드리던 차에 로얄로더의 손가락에 약간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그 탓에 닭장이 크게 흔들리면서 오색계가 펄쩍 뛰게 되었다.

둥지 안에 고이 놓여 있던 오색계의 알 중 에메랄드 알 하나가 닭장 사이로 굴러떨어지나 싶더니 로얄로더의 발치에 치여 멀리 튕겨져 나갔다.

튕겨나간 알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나뭇가지 아래로 떨어졌다.

“우왓! 떨어지면 안 돼!”

알 하나가 수 천 샤온에 달하는 비싼 물건인지라 로얄로더는 큰일났다 싶어 급히 팔을 뻗었다.

떨어지는 알을 떠받치려던 것이 엉겁결에 동작이 커져서 손끝이 가까운 탑 꼭대기를 스치고 말았다.

우르르!

탑 꼭대기 부분이 로얄로더의 발톱에 긁히면서 맥없이 떨어져나갔다.

로얄로더는 날개를 펼쳐 라이프트리에서 뛰어내렸고 떨어지는 건물 잔해를 두 손으로 받쳤다.

다행히도 안에 아무도 없어 다친 이는 없었다.

다만 탑 꼭대기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소음 때문에 아래에서 마족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로얄로더는 건물 잔해를 저 멀리 던져버리며 몰려던 마족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하필이면 탑에 번개가 떨어지다니 오늘 운세 한 번 끝내주는군. 안 그래?”

베드릭스의 주민들은 로얄로더가 왜 탑을 무너뜨렸는지 그리고 왜 번개 탓이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지도층끼리의 문제라 생각할 뿐이었다.

‘높으신 분들끼리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

마족들에게서 반응이 없자 로얄로더가 재차 번개를 강조하였다.

“무너진 건 번개 탓이야. 맞지?”

“아하하, 네 그렇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죠.”

“그럼 그런 걸로 하고 넘어가기다?”

“그걸론 마왕님이 납득하지 않으실 걸요?”

“우씨, 누구야? 번개가 떨어졌다니... 응? 타유아냐?”

딴지가 날아든 방향을 보니 바구니를 들고 있는 타유아가 서있었다.

갈아입을 옷을 들고 오던 차에 로얄로더의 행동을 모두 본 것이었다.

타유아는 되도 않은 변명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로얄로더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참고로 그 위치 연회장 창문에서 보이는 위치예요.”

“...”

“혼날 걸요.”

“피할 방법은 없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주실 분이니까 나중에 솔직하게 말하세요.”

“끄응, 어쩔 수 없군. 오색계 알도 하나 분실했는데 그것도 용서해주려나.”

타유아는 마침 성벽 안쪽에 조성된 수풀 사이에 녹색 구슬이 떨어진 것을 보고 그것을 주워들었다.

“떨어뜨린 게 이거예요?”

“오, 다행이다. 거기 떨어졌었군.”

“이건 제가 마왕님께 전해드릴게요.”

“전해주는 참에 잘 좀 말해줘.”

“그러죠 뭐.”

타유아와 로얄로더는 자신들의 대화가 주변에 들리고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대화를 마무리하며 헤어졌다.

///

내단이 정제되는 동안 잠깐 식사하러 내려왔던 뎁라이트는 안색이 새파래졌다.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던 탑 꼭대기가 무너져 내린 게 아닌가.

뎁라이트는 무너진 탑 주변에 몰려 있는 마족들에게 사정을 물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로얄로더가 라이프트리에서 내려오다가 탑 꼭대기를 무너뜨렸습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습니다.”

베드릭스의 주민들이야 피해자가 없으니 별 일 아니라 여기고 있지만 뎁라이트는 아니었다.

준비해놓은 내단이 건물과 함께 통째로 날아간 셈이다.

사고현장을 본 순간 뎁라이트는 바넷사의 호통과 자신이 져야 할 책임부터 생각하였다.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때 같이 마법진을 그렸던 유령여우 한 명이 다가와 몰래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는 초록색 구슬이 올려져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내단은 확보했습니다.”

질려 있던 뎁라이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잘했네. 하마터면 크게 경을 칠 뻔했구먼. 미리 확보해두었었군.”

“그건 아니고 탑 아래쪽 수풀에 떨어진 것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정제가 끝난 건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에메랄드 같은 광택을 지니고 있군. 정제는 끝났네. 성으로 돌아가서 필립 님께 내단을 전해주게나.”

“네.”

탑 꼭대기가 무너지기 전에 가까스로 정제가 끝난 모양이었다.

뎁라이트는 광택만으로 내단이 완성되었다 판단하여 필립에게 전해주라 하였다.

지시를 받은 유령여우는 뎁라이트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성을 향해 달려갔다.

///

한편 연회장 안에서 담소를 나누던 이들은 탑이 무너지는 소리 때문에 깜짝 놀랐다.

로엘은 창문 너머로 로얄로더가 사고 친 것을 확인하며 일어났다.

“우리 쪽 시체드래곤이 일을 저질렀군. 이쪽에서 수습하도록 하지.”

필립 역시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로얄로더가 무너뜨린 탑 꼭대기에선 내단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립으로선 한시라도 빨리 내단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기에 자신이 가겠다고 하였다.

“아닙니다. 마왕님은 편히 계십시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이거 미안하게 됐군.”

“괜찮습니다. 보아하니 잔해가 떨어지진 않은 것 같으니 탑 안에 있던 자만 파악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필립은 냉큼 연회장에서 나와 탑으로 향하려 했다.

때마침 성에 들어선 유령여우가 필립을 발견하곤 다가왔다.

유령여우는 웃옷을 살짝 젖혀 안주머니에서 초록색 구슬을 비춰보였다.

“필립 님, 내단은 무사합니다.”

안절부절 못하던 필립은 내단이 무사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였다.

“한순간 가슴이 철렁했어. 정제단계에 들어섰다고 들었는데 정제는 끝났나?”

“끝났습니다. 뎁라이트 님께 직접 확인을 받았으니 이제 흡수만 하시면 됩니다.”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는군.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안 그래도 중간에 연회장을 빠져나올 변명거리가 필요했던 참이었다.

탑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빠져나왔으니 내단을 흡수할 시간은 충분했다.

필립은 그대로 별관으로 자리를 옮겨 내단을 흡수하고자 했다.

별관에서도 특히 구석진 방에 들어가 내단을 손으로 쥐었다.

먹어도 되고 내단 안에 있는 기운만 흡수해도 되는데 필립은 두 가지 중 후자를 택했다.

흡수를 위해 손에 쥔 내단에 자신의 마기를 불어넣은 순간.

필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봐, 이거 상태가 이상한데?”

“이상하다고요?”

“안에 아무런 기운도 없어. 정말 내단이 완성된 거 맞아?”

“그럴 리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당장 뎁라이트 님을 불러오겠습니다.”

“당장 불러와! 내가 이때를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

일련의 소동과 관계없이 연회장 안의 분위기는 계속 유지되었다.

필립이 떠나면서 말상대를 잃은 로엘은 굴란트를 불러다 술잔을 나누었다.

굴란트도 한 주량 하는지라 빠르게 술과 안주가 사라져 갔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와중에 로엘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절제 없이 연회를 즐기는 척하면서도 모든 상황을 눈으로 포착하고 있었다.

필립이 자리를 뜬지 어언 15분 째.

다른 유령여우 일족은 완전히 취해서 눈이 풀렸지만 바넷사만이 불안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중이었다.

뭔가 준비를 하긴 했는데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다.

로엘은 바넷사가 자리를 뜰 때에 맞춰 굴란트로 하여금 그녀를 미행하게 할 생각이었다.

굴란트도 미리 언질을 받았기에 언제든지 취기를 방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또 한 번 술잔이 비워지던 차에 라이프트리에 갔었던 타유아가 돌아왔다.

타유아는 로엘에게 다가서선 바깥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로얄로더가 닭장 가지고 장난치다가 오색계 알을 흘렸데요. 그거 집으려다 탑 꼭대기 부분을 무너뜨렸어요.”

“피해상황은 어떻지?”

“다친 사람은 없어요. 나중에 제대로 사과한다니까 너무 혼내지는 말아주세요.”

“고려해보지.”

“그리고 떨어진 오색계의 알은 제가 주웠어요. 제가 계속 가지고 있을까요?”

“아니, 내가 쓰도록 하지.”

“쓴다고요?”

“오색계의 알이 생각보다 맛이 일품이라더군.”

이미 오색계의 알에 흠집이 잔뜩 나있어서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많이 훼손되었다.

현재로선 돈이 궁한 것도 아니니 하나쯤은 시식해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보석주에 오색계의 알.

이보다 호화로운 술자리가 있을까.

로엘은 타유아에게서 초록색 구슬을 전해 받아 입에 넣었다.

구슬 외부는 보석처럼 단단했으나 신기하게도 타액이 섞이자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내 곧 보석이 녹아내리면서 청명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박하를 먹은 듯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건 좋은데 들은 것과 달리 맛은 없었다.

맛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맛이랄까.

무기물을 먹은 느낌이었다.

그런가 싶더니 로엘의 몸 안에서 강렬한 기운의 불씨가 피어났다.

로엘은 몸 안에서 수백 년 치의 기운이 한꺼번에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헛숨을 토해냈다.

“흐억!”

로엘이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이자 연회장의 모두가 술기운이 달아난 듯 표정이 얼어붙었다.

걔 중에서 굴란트가 가장 먼저 벌떡 일어나며 로엘의 안색을 살폈다.

“마왕님! 괜찮으십니까!”

로엘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타유아가 먼저 로엘의 상태를 확인하곤 굴란트를 밀쳐냈다.

“다가오지마! 마기호흡을 하시는 중인 것 같아!”

“갑자기 왠 마기호흡?”

“몰라. 오색계의 알에 대량의 기운이라도 담겨 있었겠지.”

로엘의 몸 주변으로 마기의 기류가 피어나왔다.

최소 수백 년 치에 달하는 마기가 흘러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굴란트와 타유아가 장내의 마족들을 통제하는 가운데 바넷사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오색계의 알에 기운이 있을 리 없어. 설마 내단을 먹을 건가? 하지만 왜 마왕 측에 내단이 흘러들어간 거지? 어째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4성급 부대장들은 베드릭스를 두르고 있는 강 너머에서 대기 중이었다.

각 지방에서 이끌고 온 병력을 한데 모아 언제든지 진격할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필립이 내단을 섭취하고 술에 취한 마왕을 칠 때 신호를 보내주기로 했었다.

신호에 맞춰 마왕군 호위대를 처리하고 술에 취한 병력을 치기로 계획을 짜놓았었다.

대기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베드릭스로부터 다량의 돌덩이가 날아들었다.

쿵! 쿠웅!

탑의 잔해로 보이는 돌덩이는 매복하고 있는 지점 앞쪽에 떨어졌다.

병력피해는 없었지만 갑작스런 돌세례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4성급 부대장들은 떨어진 돌덩이를 살피며 저희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하늘에서 돌이 떨어지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베드릭스에서 날아왔어. 문제라도 생긴 걸까?”

“누가 병사를 보내 확인해봐.”

모여 있던 병력에서 병사 몇 명을 뽑아 베드릭스로 보내보았다.

보냈던 병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복귀하여 상황을 알렸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로얄로더가 탑 꼭대기를 무너뜨려 이쪽으로 던졌다고 합니다.”

“이유를 몰라? 이유를 알아내야 할 것 아니더냐.”

“현장에 있던 주민들에게 물어본 결과 마왕군 간부인 타유아와 심상치 않은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사실대로만 말하면 마왕이 용서하느니 마느니 하는 대화였다 합니다.”

“사실대로라니.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탑을 무너뜨리는 과감한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더불어 그 잔해를 정확하게 대기 중인 병력 앞에 던졌다는 건 4성급 부대장들에게 맛보기로 위협을 한 게 틀림없었다.

4성급 부대장들의 가설에 신빙성을 더하는 보고가 이어졌다.

“게다가 지금 성 안의 연회장에선 마왕이 대량의 기운을 얻어 마기호흡 중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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