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199화 (19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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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술이 있고 안주가 있더라

로엘이 폭스의 목을 베었다는 소식은 마계 대륙 전체에 퍼졌다.

1만의 병력을 이끌고 천천히 남하 중이던 로드리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폭스가 그리 쉬이 당하다니. 제 아무리 상대가 마왕이라 한들 폭스도 보통내기가 아니거늘.”

견원지간이라곤 해도 폭스의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하던 로드리고다.

최근 게인하르트에게 밀렸다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고르오스 군에 인재가 많고 병력의 질이 높음과 동시에 보급 측면에서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게인하르트에게 밀릴 때도 병력은 잃을지 언정 본인을 비롯한 폭스 군 주축들은 무사했었다.

그런 그가 단 한 번의 전투로 목숨을 잃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로드리고는 로엘이 무력만 갖춘 게 아님을 알곤 심히 고민에 빠졌다.

“무작정 병력으로 누르려 드는 건 좋지 않겠어. 다닐루는 어떻게 하고 있지?”

“실수였다고는 하나 폭스 군을 친 것 때문에 관계가 악화될 걸 염려하여 뉴아츠에서 대기 중이라 합니다. 그리고 라이프트리가 렌던을 떠나 마왕군 본대를 따라다닐 예정이라 합니다.”

“병력을 분산시키기 힘든 만큼 사각 자체를 없애려는 모양이군. 유일하게 파고들 틈은 라이프트리밖에 없겠어.”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십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로드리고는 심사숙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고르오스에게 전령을 파견해라.”

“무슨 내용을 전하라 할까요?”

“뇌신의 창을 달라고 요구하도록.”

“으음, 확실히 뇌신의 창이 있다면 로드리고 님은 물론 새로 구성한 라이트닝 부대도 힘을 얻겠지만 고르오스가 창을 쉬이 내줄까요?”

뇌신의 창.

번개의 정령왕이 골드 드래곤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번개 속성 최강의 마법무기였다.

번개 속성의 마나를 지닌 자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한 번 쥐면 상대를 재로 만들어버릴 때까지 마기 공급을 멈추지 않는 무기이기도 했다.

로드리고 쯤 되는 자가 뇌신의 창을 쥔다면 그랜드 마스터에 필적하는 힘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뇌신의 창은 현재 고르오스의 개인 수집창고에 있다.

마계 대륙에 존재하는 각종 진귀한 무기를 수집하는 게 고르오스의 유일한 취미였기 때문이다.

과연 고르오스가 자신의 수집품을 로드리고를 위해 내줄지 의문이었다.

그 부분에 관해선 로드리고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내줄 거다. 우리 쪽 선봉대가 뉴아츠에 들어서면서 난 마왕의 자격을 잃었어. 거기에 마왕은 가차 없이 폭스를 베었지. 좋으나 싫으나 고르오스 측에 붙어야 하니 전력상승을 위한 무기 하나 정도는 내줄 수밖에 없을 게야.”

로엘이 폭스를 벰으로서 협상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로엘은 고르오스를 마음 편히 치기 위해서라도 로드리고를 정리하려 들 것이다.

지금은 공격할 때가 아니라 땅에 머무르며 방어를 해야 할 때였다.

현재로선 고르오스가 먼저 카에라를 무너뜨리느냐, 로엘이 로드리고를 먼저 무너뜨리느냐의 싸움이 되었다.

적어도 로드리고는 호락호락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수성전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겠지.”

현 로드리고의 땅에 속하는 땅에 있는 각 요새는 데릭마이어란 자의 손길이 닿은 요새들이었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데다 각종 함정이 즐비하다.

당대 최고의 토르가 지은 성벽이니 마왕군이 몰려오더라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데릭마이어 본인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절대로 뚫릴 리 없을 터.

로드리고는 진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뇌신의 창을 받아올 전령을 파견했다.

///

폭스를 벤 로엘은 폭스의 땅으로 진입하기 앞서 정리에 나섰다.

먼저 항복한 포로들 중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자는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고르오스 군과의 싸움 이후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억지로 끌려온 자가 제법 되기에 남은 병력은 대다수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남은 자들은 생계를 위해 병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기에 호봉을 그대로 이어받아 마왕군에 편입하였다.

그 숫자를 헤아리니 1천에 달하였다.

거기에 전투로 죽은 이 중 성한 시체를 골라 시체술을 활용하여 병력에 더했다.

새로 추가된 언데드 병사가 또 1천에 달하여 따로 언데드 부대를 편성하였다.

새로 만들어진 언데드 부대의 지휘는 굴란트에게 맡겼으며 굴란트는 기존의 흑마법 부대를 부대장 삼아 언데드 부대를 이끌었다.

원래는 스랄스가 적격이지만 북쪽으로 떠났으니 그가 돌아올 때까지 임시직으로서 맡기로 하였다.

얼추 정리가 끝나갈 무렵, 한 가지 사안을 놓고 마왕군 내에서 회의가 벌어졌다.

폭스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관련된 문제였다.

폭스가 속한 일족인 유령여우 일족이 보석을 가져와 폭스의 시체를 내어달라고 요청해왔기 때문이었다.

현재 유령여우 일족에서 최고 연장자인 바넷사란 늙은 여인이 로엘 앞에서 두 손을 모으며 간절히 청하길.

“마계의 그 누구보다도 고귀한 존재이시여. 부디 아들의 시신을 정식절차를 거쳐 처리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불효만 일삼던 아이지만 그래도 자식은 자식인지라 고이 보내주고 싶습니다.”

로엘의 시체술을 사용하면 폭스를 리치로 만들어 마왕군의 일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마나 마스터급 리치의 가세는 고르오스 군과 싸워야 하는 마왕군에게 큰 전력이 되어줄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시신을 넘긴다 하여 유령여우 일족이 제대로 장례를 치를지 의문이었다.

유령여우 일족 역시 언데드 생성에 능한 일족이니 폭스를 리치로서 되살릴지도 몰랐다.

그걸 아는 굴란트이기에 턱뼈를 달그락거리며 청을 물리라 간언하였다.

“시신을 내주어선 안 됩니다. 제대로 장례를 치를 거란 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직 폭스의 땅에 널리 퍼져 있는 각 4성급 부대장들은 마왕님을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싸움을 감안하면 반드시 리치로서 활용해야 합니다.”

“가혹한 말씀이십니다. 어미가 자식 다루는 마음을 어찌 그리 곡해하십니까. 값을 치르기 위해 아들의 무게만한 보석을 수레에 싣고 왔습니다. 더불어 폭스의 땅 각 요새를 지키는 4성급 부대장들에게 베드릭스로 집합하라 하였습니다. 반드시 그들을 설득하여 마왕님을 위한 수족이 될 수 있게 할 터이니 이 불쌍한 여인네의 작은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한 쪽에선 안 된다고 말하는 굴란트가, 한 쪽에선 울면서 두 손으로 모은 채로 무릎을 꿇는 늙은 여인이.

로엘은 양측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시신을 돌려주지.”

굴란트와 바넷사 사이에서 희비가 교차했다.

“안 됩니다, 마왕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로엘은 타유아에게 고갯짓을 하여 폭스의 시신을 돌려주라 일렀다.

깨끗한 천으로 덮여 있는 폭스의 시신을 앞에 두고 바넷사는 통곡을 금치 못했다.

통곡에 있어 로엘을 향한 원망은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패권다툼으로 서로 간에 생사가 갈리는 건 당연지사.

폭스가 마계 7기둥이 된 시점부터 이미 바넷사는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리라.

난세를 살아가는 아들을 둔 부모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결과였다.

바넷사는 선뜻 시체를 내준 로엘에게 감사를 표하며 폭스의 시신을 가지고 돌아갔다.

바넷사가 돌아간 이후에 굴란트가 아쉬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돌려보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다못해 폭스의 땅 4성급 부대장들의 맹세를 받고 돌려주는 게 낫지 않았겠습니까?”

로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늘이 무너진 기분일 텐데 거기에 구름을 드리워서야 되겠느냐.”

로엘의 말에 천막 안의 모든 간부들이 고개를 떨구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넷사가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유령여우 일족이 찾아왔다.

찾아온 이는 로엘에게 베드릭스로 입성할 것을 권했다.

렌던과 폭스의 땅 경계에서 베드릭스까지의 거리는 나흘 치.

그 안에 폭스의 장례를 끝내고 정식으로 로엘을 맞이하겠다고 한다.

폭스를 따르던 4성급 부대장들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니 딱 알맞은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로엘은 시간에 맞춰 베드릭스로 가겠다고 답하였다.

///

바넷사는 쌍두마 6마리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바쁘게 베드릭스로 향했다.

베드릭스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바넷사의 물기 젖은 눈매가 점점 치켜 올라갔다.

어느덧 슬퍼하던 표정은 무덤덤하게 바뀌었다.

바넷사의 맞은편에는 두 명의 유령여우가 앉아있었다.

한 명은 6개의 꼬리를 지닌 청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바넷사와 마찬가지로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소년은 폭스의 시신을 싣고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어머니, 의외로 쉽게 폭스의 시체를 빼내셨군요.”

사내의 이름은 필립.

폭스의 이복형제이었다.

폭스의 아버지에겐 두 명의 처가 있었는데 그 중 정실은 바넷사였고, 다른 한 명은 첩이었는데 폭스는 첩의 아들이었다.

필립 역시 상당한 재능의 소유자였는데 폭스에게 가려져 족장 및 마계 7기둥의 자리를 폭스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바넷사 입장에선 첩의 자식인데다 재능 또한 친아들보다 뛰어난 폭스가 항상 못마땅했었다.

그러던 차에 폭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폭스의 보석방을 탈탈 털어 그 시체를 빼내온 것이다.

왜냐고?

당연히 폭스의 시체를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바넷사는 언제 슬퍼했냐는 양 얼굴의 눈물자국을 닦아냈다.

“어미인 척 호소했더니 쉽게 내주더구나.”

“마왕에겐 여러 모로 고마워해야겠군요. 밉살스런 아홉 꼬리를 죽여둔데다 시신까지 내주었으니까요.”

“그러게 말이다.”

필립 역시 폭스가 못마땅했던 건 마찬가지였기에 폭스의 죽음을 반가워하고 있었다.

바넷사는 웃으려다 말고 정색하며 필립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직 일이 끝난 게 아니니 조심하자구나.”

“네, 어머니.”

“뎁라이트.”

뎁라이트라 불린 유령여우 일족의 가신 중 한 명이 고개를 숙이며 부름에 응했다.

“말씀하십시오.”

“베드릭스에 도착하자마자 추출작업을 시작해. 그리고 폭스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대량의 술을 준비해놔.”

“어떤 술을 준비해둘까요?”

“취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알겠습니다.”

여우일족의 혼령술 중에는 능력 이식이라는 기술이 있다.

갓 죽은 시체에만 걸 수 있는 기술로 시신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기운을 뽑아내어 산 자에게 이식하는 기술이다.

바넷사는 폭스가 가진 350년 치의 마기와 여우불 능력을 필립에게 줄 생각이었다.

필립의 능력에 폭스의 능력이 더해진다면 필시 그랜드 마스터급까지 노릴 수 있었다.

거기에 항복을 가장하여 마왕군을 대접한 후 뒤통수를 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필립이 그랜드 마스터급에 오름과 동시에 마왕의 목까지 친다면 단번에 마계의 강자로 이름을 떨칠 수 있으리라.

아들이 이름을 널리 떨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바넷사가 가진 유일한 목적이었다.

“아들아, 추출한 기운을 이식할 수 있도록 내단을 만들어야 하니 나흘만 참거라.”

“크크, 어머니. 수도 없이 많은 시간을 기다려왔는데 나흘쯤 못 기다리겠습니까. 차질 없이 진행해주십시오.”

///

로엘은 렌던에서 라이프트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라이프트리가 도착하자마자 그 위에 올라타서 베드릭스로 향했다.

베드릭스로 가는 길에 몇 개의 견고한 관문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각 관문의 4성급 부대장들은 이미 베드릭스로 떠난 후라 부관들이 길을 터주었다.

말이 길을 터주었다는 거지 라이프트리가 관문을 지나가지 못해 성벽을 우회하여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프트리의 긴 뿌리로 성큼성큼 이동하여 예정보다 하루 일찍 베드릭스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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