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196화 (196/219)

00196 9-1. 정마융합 =========================

“정령으로 마물을 부린다는 말씀이신가요?”

“쉽게 말하면 그리 되겠지.”

“정령왕 에너지의 최종목표가 마물을 다루는 거라니.......”

“허허, 믿지 못하겠느냐?”

“믿지 못 한다기 보단 정령이랑 마물의 이미지가 정반대라서 상상이 안 된다고나 할까 의외라고나 할까.”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느니라. 현재 넌 정령왕의 에너지를 적당한 비율로 습득하여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렷다.”

“네. 맞아요. 나무의 정령왕 에너지를 중심으로 비율을 맞췄어요.”

“하위 정령들이야 정령왕의 에너지가 상위 에너지라 여러 속성이 합쳐져 있어도 따르겠지만 정령왕은 다르지. 정령왕은 모든 정령왕 에너지가 섞여 있는 에너지를 공급받길 원하지 않는단다. 지금 방법으로는 정령술의 최종목표인 정령왕 소환에 이르지 못하지. 나 역시 원래는 나무의 정령왕과 불의 정령왕, 두 정령왕을 다룸으로서 마계 7기둥으로 활약했었단다. 은거 이후 이 방법을 발견하곤 정령왕 에너지를 받아들였다가 이도저도 아닌 처지가 되었지.”

이미 정령왕을 다룰 수 없게 된 시점에서 전 속성 정령왕 에너지는 한계가 명확한 기술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제해결을 위해 샤이어는 은거생활을 유지하며 방법을 찾아보았고, 연구 끝에 정마융합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정령왕 에너지는 모든 속성을 담고 있는데다 현존하는 기운 중에 가장 자연 상태에 가까운 기운이기도 하지. 마물도 엄밀히 말하면 마계의 자연현상의 일부이니 정령을 융합함으로서 부릴 수 있게 되더구나.”

정마융합의 최고 장점은 최소 두 가지 타입을 지닌 마물을 부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물에 융합시키는 정령의 속성이 그대로 마물에게도 부여되었다. 예를 들어 룬이라 불린 괴물곰은 육체 타입인데 불의 정령을 융합시키면 육체 타입인데도 자연 타입의 불 속성을 지니게 되는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마융합을 한 마물은 활성화 기간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위험지대의 규칙에서 자유롭게 된다고 할 수 있었다.

터줏대감에 정마융합을 걸어 부리게 되면 그 터줏대감은 위험지대에서 제외되고 위험지대는 새로운 터줏대감을 만들어낸다.

결론적으로 정마융합은 위험지대의 마물을 빼내오는 기술이었다.

한 번 정령 에너지를 부여하면 죽을 때까지 따로 기운을 공급할 필요가 없었고, 다룰 수 있는 숫자에 제한이 없는데다 소환술을 통해 소환한 것이 아니라서 역소환의 리스크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위험부담이라 할 만한 점은 강한 마물일수록 막대한 정령왕 에너지가 든다는 점, 정마융합 때 마물이 지닌 원초적인 증오가 술자에게 흘러들어와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킨다는 점이었다.

전자는 수련을 통해 극복해야 하나 후자는 걱정할 게 없었다.

이 방법을 익히기 위한 전제 조건을 생각해보라.

기본적으로 욕심이 없어야만 정령왕 에너지를 취할 수 있으니 후자는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설명을 마친 샤이어는 아직 붕대가 감겨 있는 메이아의 발을 쳐다보았다.

“아직 발이 나으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텐데 나을 때까지 정마융합이나 배워보는 건 어떠냐?”

“가르쳐주시게요?”

“허허, 말년에 정마융합 전제조건을 충족하는 아이가 내 앞에 도달했지 않느냐. 놀지 말고 소일거리라도 하라는 하늘의 뜻이겠지.”

기술을 전해줌에 있어 거리낌이 없는 샤이어였다.

샤이어도 정령왕 에너지 소유자라는 건 메이아와 마찬가지로 욕심이 없는 자라는 것.

도움을 줌에 있어 대가를 바랄 리가 없었다.

메이아는 힘이 모자란 나머지 카잔을 따라나서야 했던 것을 떠올리며 결의를 다졌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제게 정마융합을 가르쳐주세요.”

///

한편 렌던에선 스랄스가 북쪽을 향해 떠난 상태였다.

로엘은 행운을 빌며 스랄스를 떠나보냈다.

그 직후에 곧바로 폭스 군과 로드리고 군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마왕님, 폭스 군과 로드리고 군이 렌던으로 접근해오고 있다 합니다.”

“두 군대의 정확한 위치와 병력은?”

“폭스 군은 1만의 병력이 남았으며 그 중 4천 명을 선봉대 삼아 폭스가 직접 이끌고 오는 중입니다. 로드리고 군은 1만 5천의 병력에 5천 명을 선봉대 삼아 다닐루가 직접 이끌고 오는 중입니다. 로드리고 본인은 남은 병력 중 1만의 병력만 따로 이끌어 이후에 합류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렌던 북쪽에서는 폭스의 선봉대가, 렌던 서쪽에서는 다닐루의 선봉대가 오고 있는 중이었다.

먼저 도착하는 건 폭스 쪽이라고 한다.

현재 렌던의 병력은 고작 3천 명.

그나마도 절반은 훈련기간이 짧아 조직력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렌던의 수비대장인 굴란트가 나름대로 방책을 내놓았다.

“폭스 군이 먼저 도착할 테니 그들부터 쳐야 합니다. 각개격파를 하지 않으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로엘은 고개를 저어 굴란트의 방책을 부정했다.

“폭스 군이 먼저 도착한다 한들 바로 공격 해오진 않을 거야. 다닐루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지. 둘 다 도착한 후에 수를 써도 늦지 않아.”

“어째서 입니까?”

“둘 다 피해는 최소화하고 싶을 테니 서로의 병력을 화살받이로 쓰고 싶겠지. 아직 두 군대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는 점. 그 점을 이용하자고.”

“생각해두신 계책이라도 있으십니까?”

“있으니까 한 말 아니겠어? 그리고 동쪽 바다에 다녀와야겠어.”

현재 로엘의 머릿속에는 이 전쟁의 초반기세를 잡을 계책이 상당수 준비되어 있는 참이었다.

마왕군 간부들은 로엘이 전쟁을 마음먹은 시점부터 여러 가지 상황을 상정해왔다는 걸 알곤 이의 없이 로엘의 계책을 따르기로 하였다.

///

폭스는 4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렌던을 향해 남하하였다.

게인하르트에게 부탁하여 물러날 때 시체를 처리하지 말아 달라 부탁했었다. 게인하르트가 요청을 받아들여 전투 이후에 남은 시체를 재활용해 데스나이트 부대를 재건한 폭스였다.

폭스의 주변에는 50명의 데스나이트가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렌던 북쪽 경계선에 선 폭스는 가시나무 숲 너머로 거대한 나무가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폭스는 선봉대에 정지명령을 내리며 경계선 부근에서 대기했다.

“라이프트리를 시체나무로 만들었다더니 정말이었군.”

정찰을 나갔던 폴레이츠가 돌아와선 폭스와 똑같은 소리를 했다.

“폭스 님, 정말로 라이프트리를 시체나무로 만들어놨습니다.”

“그건 여기서 봐도 아는 사실 아니더냐. 그걸 정찰했답시고 보고하나?”

“끄응, 죄송합니다.”

“그 외에 알아낸 사실은 없느냐?”

“마왕이 지금 라이프트리를 떠나 자리를 비운 상태라 합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로얄로더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로얄로더는 얼마 전에 스랄스를 태우고 동쪽 바다로 떠났다고 합니다.”

“흐음, 뭘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군.”

“마왕군은 라이프트리 위에 있어서 공략하기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어떻게 공략할까요?”

“다닐루의 선봉대는 도착했나?”

“이제 사막지대를 지나고 있다 합니다. 렌던 서쪽경계에 도착하려면 사흘쯤 더 걸릴 겁니다.”

“제길, 우리더러 먼저 싸우라고 일부러 늦게 오는 모양이군.”

폭스가 속으로 다닐루를 욕하는 사이 데스나이트 몇 명이 폭스의 천막 앞으로 다가왔다.

데스나이트들은 진흙을 덕지덕지 묻힌 스켈레톤 한 마리를 끌고 왔다.

“스켈레톤 한 마리가 몰래 렌던을 벗어나 북서쪽으로 향하기에 포획했습니다.”

“렌던에서 스켈레톤을?”

폭스는 잡아온 스켈레톤을 살펴보았다.

들키지 않게 진흙을 묻히고 마기를 지우는 팔찌를 차고 있었다.

스켈레톤의 두개골 안쪽에는 돌돌 말린 종잇조각이 들어있었다.

누가 봐도 몰래 파견되어 이동 중이던 전령으로 보였다.

폭스는 스켈레톤의 두개골 안에 있는 서신을 꺼내어 펼쳐보았다.

서신에는 이리 적혀 있었다.

[다닐루여. 미리 상의했던 대로 뉴아츠를 너머로 병력을 보내겠다. 폭스 군과 합류하는 척하며 마왕군과 함께 폭스의 목을 치도록. 카에라는 예정대로 동쪽 해안에 병력을 파견하여 남하할 테니 후방 공격은 걱정마라. 일이 끝나면 약속대로 폭스의 땅을 그대에게 줄 터이니 반드시 첫 기습을 성공시키길 바란다.]

로드리고가 마왕과 내통 중인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거래에 폭스의 땅이 걸려 있음을 확인한 폭스는 서신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분개했다.

“로드리고 이놈. 다시 마왕과 손을 잡은 건가.”

“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이릅니다. 전령이 파견된 시점이 너무 절묘합니다. 게다가 이리 중요한 서신을 한낱 스켈레톤 따위에게 운반시킨 것도 이상합니다. 이간질을 위해 일부러 스켈레톤에 서신을 쥐여 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확인한다는 것이냐? 다닐루를 불러다 물어보면 놈이 순순히 진실을 토해낼 거란 보장이라도 있느냐? 게다가 카에라까지 준비 중이라 하지 않느냐. 자칫 잘못하면 3면에서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단 말이다.”

스랄스가 로얄로더를 타고 동쪽 바다로 떠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로얄로더로 하여금 카에라 군을 지원하여 후방을 완전히 무너뜨릴 생각일지도 몰랐다.

폴레이츠는 폭스가 너무 앞서 나가는 게 아닐까 걱정하였다.

“만약 이 서신이 사실이라 가정해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마왕 입장에선 고르오스를 치려면 마계 7기둥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합니다. 굳이 로드리고와 결탁하여 폭스 님을 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멍청한 놈. 이미 배신한 마당에 설득이고 뭐고 필요하겠느냐. 마왕은 나보다 로드리고가 더 유용하다 여겼기에 그놈만 집중적으로 설득한 것이란 말이다. 내 땅을 미끼삼아서!”

“하다못해 확인만이라도 해야 합니다. 속은 거라면 이보다 낭패일 순 없습니다.”

대놓고 다닐루를 잡아다가 물을 순 없으니 따로 계책이 필요했다.

폭스는 고민 끝에 방책을 생각해냈다.

“병력 1천을 따로 뉴아츠로 보내서 잠복시켜둬라. 정말로 마왕군이 지나가면 급습해서 패퇴시키고 고르오스에게 로드리고의 배신을 알리면 그만이니라.”

“동쪽 해안을 타고 올 카에라 군은 어떻게 할까요?”

“본대에게 알려 동쪽 해안으로 방향을 바꾸라 전하도록. 카에라 군따위는 6천의 병력이면 충분할 거다.”

폭스의 명령에 따라 폭스 군은 모든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

렌던을 잠시 떠나 동쪽 해안에 도달한 로엘은 이마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마나를 머금은 블루오션이 그 형체를 드러내며 푸른빛을 발했다.

로엘은 일렁이는 파도를 향해 블루오션의 권능을 사용했다.

“타지에서 머무는 리바이어던들아. 내 부름에 응해라.”

발치까지 밀려오던 파도가 점점 거칠어지면서 발목을 적셨다.

거칠어진 파도 사이로 리바이어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바이어던 무리는 사냥 중이었는지 입에 물고 있는 물고기를 집어삼킨 후에야 로엘을 바라보았다.

“꺼억꺼억~.”

로엘은 수면을 드나드는 리바이어던 무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해줘야 할 일이 있어.”

“꺼억?”

“당장 폭스의 땅 동쪽 해안으로 가줘. 그리고......”

로엘의 입에서 폭스의 땅 동쪽 해안에서 해야 할 일이 조곤조곤 흘러나왔다.

세세하게 지시를 내린 후, 로엘이 확인 차 질문을 날렸다.

“지시대로 할 수 있겠어?”

리바이어던 무리는 할 수 있다는 의미로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어 수면을 강하게 내리쳤다.

터엉!

“꺼억!”

“꺼억꺼억!”

로엘은 튀어 오르는 물기둥 사이에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북쪽을 향해 검지를 치켜 올렸다.

“여러 의미로 시원한 대답이군. 가라, 가서 폭스의 본대를 쓸어버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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