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191화 (191/219)

00191 8-10. 마검  =========================

8-10. 마검

메이아는 부목을 댄 다리를 살짝 들었다.

“간신히 움직일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그거 다행이구나. 붕대를 갈자구나.”

“제가 할게요. 스스로 할 수 있어요.”

“허허, 다쳤는데 무리하지 말 거라. 괜히 무리했다가 덧나기라도 하면 몇 배는 더 누워 있어야 한단다.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쉬렴.”

노인이 메이아의 오른발에 감긴 붕대를 풀고 찬 수건으로 다리를 닦은 후 약초물을 들인 새 붕대를 감았다.

노인의 이름은 샤이어이며 강을 타고 떠내려 온 메이아를 구해준 자였다.

카잔의 추격대를 뿌리치기 위해 계곡에 빠진 것까진 좋았는데 그 뒤에 급류에 휘말려 바위에 다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운디네의 도움을 받아 익사하는 것만은 면했지만 오른쪽 다리에 금이 가서 멀리 도망치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카잔의 추격대는 메이아가 급류에 휘말려 익사했다 여겨 추격을 멈춘 덕에 살 수 있었다.

기력이 다해 물가에 쓰러져 있는 메이아를 샤이어가 발견하여 자기 집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샤이어는 다친 메이아를 위해 골절에 좋은 약초를 구해다 주었으며 다 나을 때까지 머물러도 좋다고 해주었다.

메이아는 새 붕대를 감아주며 일어나는 샤이어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할지.”

“허허, 적적하던 차에 말동무가 생긴 것만으로도 기쁘단다. 어려워 말고 내 집처럼 편히 쉬 거라.”

“정말 감사합니다.”

“어허, 그러지 않아도 된데두. 그나저나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 듣지 못했구나. 어렵지 않으면 이야기해주지 않으련?”

“저는요......”

메이아가 말을 꺼내려다 말고 망설였다.

물살을 타고 흘러내려오면서 카에라의 땅이 아닌 고르오스의 땅으로 흘러들어왔다는 것 정돈 메이아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샤이어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정체를 안 순간 등을 돌릴 수도 있기에 망설인 것이었다.

샤이어는 메이아의 고민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를 안심시켜주었다.

“허허, 널 고르오스에게 넘길 일은 없으니 안심하거라. 난 그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일개 늙은이란다.”

“생각을 읽는 능력이라도 있으세요?”

“뭘 생각을 읽는 능력이랄 것까지야. 강 상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알면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지.”

메이아가 떠내려 온 강 상류에 카잔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는 것.

강물에서 강변으로 빠져나올 당시 쫓기는 자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는 것.

이 두 가지만 봐도 고르오스의 군대에 쫓기는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고르오스의 땅에서 살아가는 자가 고르오스의 군대에 쫓기는 자를 숨겨준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모르는 상태에서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메이아를 발견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도 도와주었다.

메이아는 샤이어에게 해가 될까 싶어 걱정부터 앞섰다.

“걸을 수 있게 되면 바로 떠날게요.”

“무리할 거 없대두. 내 집처럼 편히 쉬어라 했잖느냐.”

“혹시라도 추격대가 절 찾아내기라도 하면 할아버지까지 위험에 휘말리게 되요.”

“허허허! 난 또 뭐라고. 그런 거라면 걱정 말거라.”

“네?”

의아해하는 메이아를 위해 샤이어가 인자한 미소를 띠며 납득할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미 은퇴하긴 했다만 명색이 마계 7기둥 서열 2위였던 내가 다친 아이 하나 못 돌보겠느냐.”

카에라로부터 이전 세대의 마계 7기둥이 얼마나 강한지 들은 메이아다.

설마 자신을 구해준 이가 그 중에서도 2번째로 강한 자였다는 게 놀랍기 따름이었다.

메이아는 뒤늦게 샤이어가 대단한 인물임을 깨닫고 높은 톤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네?”

///

로엘과 타유아는 로얄로더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중간에 야나몬의 땅에 사는 이들이 로얄로더를 발견하긴 했으나 지나가도록 놔두었다.

마계 7기둥 중에서도 약체에 속하는 야나몬으로선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로엘은 렌던으로 돌아가기 앞서 카에라의 땅에 들렀다.

메이아를 죽인 범인에 대한 조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카에라에게 경과를 묻자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마왕님의 생각대로 범인은 고르오스 군이었어요. 카잔이 데스나이트 부대를 격파할 때 세웠던 진영에서 실습 숙소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다수의 인원이 오간 흔적이 발견되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시체술이라도 걸어보려 했는데 훼손이 심해서 거기까진......”

카에라가 눈을 질끈 감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아직 피지도 못한 아이들이 죽은 후에도 심한 취급을 당했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죽은 아이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결사의 의지를 다진 상태였다.

비단 분노하고 있는 건 카에라 뿐만이 아니다.

노이즈 산맥에서 벌어진 일은 카에라의 땅 전체에 퍼졌고, 카에라의 땅에 있는 모든 주민들이 카에라의 결단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엘은 조사단이 가져온 정보를 하나하나 훑은 후 입을 열었다.

“카에라, 타 마계 7기둥에 의해 피해를 입을 경우 대응절차는 어떻게 되지?”

“인간계랑 크게 다를 것 없어요. 공식적으로 항의부터 하죠. 하지만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대부분 전쟁으로 이어져요.”

“공식항의는 마왕군 측에서 행하는 걸로 하지.”

“저야 마왕님이 나서주시면 든든하지만 공식적으로 피해를 입은 건 저니까 저쪽에서 납득하지 못할 텐데요.”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하지.”

“알겠습니다. 고르오스 측과 접촉하는 건 마왕님께 맡기겠습니다. 전 저대로 싸울 준비를 갖춰놓을게요.”

카에라와의 대화를 마친 로엘은 테이블 위에 정리되어 있는 각종 자료를 챙겨 로얄로더에 올랐다.

///

한편 폭스는 고르오스의 땅에서 게인하르트에게 패해 자신의 땅까지 후퇴한 상태였다.

강을 끼고 진영을 세워 게인하트르의 진격을 막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참호를 파고 정찰대가 드나드느라 바쁜 차에 후방에서 소식이 날아들었다.

폭스는 꼬리 끝에 혼령불이 일어날 정도로 분개하였다.

“뭐? 마왕이 로얄로더를 이끌고 지나갔다고?”

소식을 전하러온 북쪽 경계의 경비병이 흠짓하여 어깨를 들썩였다.

“그, 그리고 카에라가 전쟁 준비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마왕이 카에라와 접촉한 모양입니다.”

폭스는 로엘이 줄곧 카에라와 접촉하려 했던 것을 떠올렸다.

“역시 카에라와 손을 잡을 생각이었던 거군. 인간계로 돌아가고 싶었다는 건 핑계고 우릴 소모품 삼은 다음 카에라와 함께 움직일 생각이었던 거야.”

“믿을 만한 정보통에 의하면 고르오스를 치기 위함이라 합니다.”

“어찌됐든 우릴 소모품으로 쓰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지 않느냐! 이리 되지 않기 위해 마왕 측이 통과하지 못하게 하라 했거늘 어찌 막지 못한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마왕이 상어섬의 광물을 캐기 시작해서 거기에 집중하고 있을 줄......”

“상어섬의 광물을 캐기 시작했다고? 어억, 뒷골이야. 난 상어섬에 있는 광물을 쓰지도 못했는데 마왕은 쓸 수 있다고?”

옆에 서있던 폴레이츠가 냉큼 달려와 폭스를 부축하려 했다.

“폭스 님! 괜찮으십니까?”

“건들지마라! 제길, 어찌 이리 하나하나 전부 꼬인단 말이냐.”

“그래도 지금은 게인하르트와의 전투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놈과의 싸움에 집중한다 한들 승산이 적다는 게 문제란 말이다. 설마 고르오스가 게인하르트에게 사신 4인방 중 두 명을 더 붙여주었을 줄이야.”

고르오스 군에는 마계 7기둥 바로 아래급이라 불리는 힘을 가진 이가 4명 있었다.

지략의 흡혈귀 페네르치.

진법의 달인 게인하르트.

강완의 거인 그라마.

흑갑의 광전사 론메일.

게인하르트만 해도 폭스와 상성이 좋지 않아 성가신데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다른 사인방 두 명까지 함께 하고 있어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4인방 중 3명이 폭스 쪽으로 왔으니 로드리고라도 전진해야 하는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아폴로와 카잔이란 신예까지 발굴한데다 고르오스 본인마저 한 단계 경지가 오른 상태라 로드리고도 밀리는 중이라 들었다.

마왕의 판결권한을 등에 업어 기세등등하게 전쟁을 일으키긴 했다.

허나 판결을 쓰기도 전에 패할 것 같은 예감이 진하게 풍겨왔다.

‘이대로 가다간 전멸을 면하지 못하겠어. 로드리고와 합류해서 렌던에 한 번 들러야겠군. 마왕의 의중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싸우는 건 위험해.’

카에라와 접촉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접촉하여 둘이 손을 잡은 지금 마왕의 의중을 다시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정말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만이 필요한 건지, 아니면 그것은 핑계일 뿐이고 마계 정복을 꿈꾸고 있는 건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

로얄로더를 타고 렌던으로 돌아온 로엘은 렌던의 저택이 아닌 라이프트리 위로 올라갔다.

라이프트리 상부에 위치한 넓디넓은 나뭇가지 위에선 새로운 저택 건설이 한창이었다.

드워프에 준하는 실력을 지닌 토르들을 총 동원해서 만들고 있기에 벌써 절반 이상 완성된 상태였다.

로엘은 이미 완성된 본채 안에 들며 새로 만든 왕좌에 몸을 앉혔다.

로엘의 뒤를 따라 마왕군 간부들이 들어와 양쪽에 각각 일렬로 섰다.

스랄스와 굴란트는 로엘이 로얄로더를 타고 온 것에 의문을 품었다.

“저기 마왕님, 로얄로더를 타고 돌아오셨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고르오스가 나의 적이 되었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고르오스의 군대가 내 소중한 이를 죽였다.”

로엘은 카에라의 땅에 메이아가 있었으며 그녀가 고르오스 군에 의해 살해당한 사실을 전했다.

말을 듣는 내내 굴란트와 스랄스, 데킬라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애도의 의미를 담은 행동이기도 했지만 그와 별개로 세 마족 역시 로엘의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스랄스는 사정을 듣곤 로엘의 말을 정리하였다.

“마왕님께선 고르오스를 칠 생각이신 거군요.”

“곧 행동으로 옮길 예정이지.”

“로얄로더가 가세했다곤 하나 고르오스 군과는 아직 격차가 많이 납니다. 기존의 4인방 외에도 아폴로와 카잔이라는 신예를 발굴해냈다더군요. 그들 모두 마나 마스터급으로 추정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고르오스 본인은 그랜드 마스터급의......”

“스랄스.”

“네.”

“곧 북쪽 혼돈의 대지 주민들이 도착할 거야. 그리고 남쪽 혼돈의 대지에도 들릴 생각이고.”

“흐음, 그러면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출 수 있겠군요. 병력을 솎아내면 3천 명 정돈 추가할 수 있을 겁니다.”

“각 마족들에게 맞는 장비를 갖추려면 얼마나 걸리지?”

“저택을 만든 이후에 토르들을 전부 대장간에 투입하면 한 달 내에 모두 갖출 수 있을 겁니다.”

“폭스와 로드리고가 그때까지 버텨줄 가능성은?”

“버티는 것에 주력하면 버틸 수는 있을 겁니다만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마왕님의 참전의사를 그들이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이미 폭스와 로드리고는 로엘이 로얄로더를 갖추고, 카에라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거다.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만 원한다 했었는데 갑자기 방향을 바꾼 셈이다.

폭스와 로드리고의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달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생각하여 등을 돌려도 상관없다.

막아서는 것은 모두 베어버리면 그만이기에.

메이아의 죽음으로 인해 로엘은 가슴 속에 검을 품게 되었다.

극단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듯한 날카로운 검이.

다른 이들의 극은 로엘의 극에 비하면 무디기 짝이 없으리.

마왕군 간부들도 상황을 이해했겠다 로엘은 멈출 틈 없이 다시 움직이고자 했다.

“남쪽 혼돈의 대지에 다녀오겠다. 이번에는 굴란트, 네가 따라오도록.”

드디어 로엘의 곁을 보좌할 수 있게 된 굴란트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두 손을 모았다.

“마왕님의 기대에 응할 수 있게 성심성의껏 보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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