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0 8-9. 로얄로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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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다음 산을 넘었을 즈음엔 아침이 되어 있었다.
로엘은 타유아가 소환한 질풍고양이를 타고 산을 내려가며 전방에 펼쳐진 풍경을 훑었다.
마왕의 허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혼돈의 대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혼돈의 대지는 그 이름에 걸맞게 땅과 하늘을 잇는 높은 모래폭풍이 연이어 몰아쳤고, 땅은 푸석푸석하게 말라 너른 벌판 전체가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누군가가 살 수 있을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산을 내려와 혼돈의 대지에 발을 들이자 몇 개나 되는 모래폭풍이 로엘 쪽으로 몰려왔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모래폭풍으로 추정되었다.
모래폭풍이 다가오던 중 로엘의 손등에 있던 마왕의 표식이 반응하였다.
마왕의 표식에서 희미한 빛이 나오나 싶더니 모래폭풍이 해소되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마왕의 표식이 없는 자를 밀어내는 마법 방어 장치였던 모양이다.
모래폭풍이 해소되면서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로엘은 흙먼지 사이로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타유아, 저것들은 뭐지?”
“아마 혼돈의 대지에 사는 자들일 거예요.”
“이런 땅에서도 사는 자가 있는 건가.”
“엄밀히 말하면 혼돈의 대지에서만 살 수 있는 자들이죠. 전 마왕님에게 추방당한 혈통들이에요.”
아도로스가 마계를 다스릴 당시 대규모 반역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도로스에게 제압당한 후 추방당한 자들이었다.
당시 아도로스는 반역자들이 혼돈의 대지에서 나오지 못하게 저주의 샘물을 추방자들에게 먹였다.
혼돈의 대지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저주의 샘물을 먹으면 평생, 자자손손 주기적으로 대지의 흙을 먹어야만 했다. 반역자들은 살기 위해 흙을 입에 털어 넣어야 했으며 그 저주는 그들의 자손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마계 대륙에서 잊혀진 존재이자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
혼돈의 대지 주민들이 로엘에게 다가왔다.
썩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들은 로엘을 아도로스로 착각했는지 모래폭풍이 걷히자마자 공격해왔다.
“수십 년의 원한을 풀 때가 왔다!”
“죽어라, 아도로스!”
마기가 깃든 무기 및 마법 등이 로엘을 향해 쏟아졌다.
옆에 있던 타유아가 화들짝 놀라 방어형 고양이들을 소환하려 했지만 필요 없는 행동이었다.
로엘이 바로 반응하여 발검을 행했기에.
로엘의 손이 검 손잡이에 닿나 싶더니 어느 순간 검은 뽑혀진 채로 반대쪽에 도달해 있었다.
마기가 900년 치를 돌파하면서 로엘의 움직임 또한 더욱 더 빨라진 것이었다.
발검의 궤적은 뒤늦게 그려졌으며 무형검의 기운이 겹겹이 흩어지면서 검격이 되었다.
검격은 날아드는 공격을 상쇄하다 못해 관통하여 주민들을 가격하였다.
로엘이 검격의 위력을 조절했기에 주민들은 전투불능 정도의 가벼운 부상만 입게 되었다.
주민들은 각자 무기가 부서진 반동으로 저린 손을 부여잡거나, 팔뚝이나 옆구리 등의 상처부위를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허나 그들이 지닌 매서운 눈초리는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로엘은 혼돈의 대지 주민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아도로스로 보이나?”
혼돈의 주민들이 로엘을 자세히 살피더니 손등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표식은 마왕만이 가질 수 있는 것. 네가 아도로스가 아니면 누가 아도로스란 말이냐.”
아무래도 추방자들의 후손들인 것 같았다.
아도로스를 아는 자들은 이미 눈을 감은 것 같고, 그 후손들이 꾸역꾸역 살아남아 복수의 때를 기다려온 모양이었다.
후손들은 아도로스의 모습을 모르니 마왕의 표식만 보고 로엘에게 덤빈 것이었다.
로엘은 아디만티움 검을 도로 넣으며 추방자들의 오해를 풀었다.
“난 엘리오스 킨 로엘. 신임 마왕이며 너희들이 말하는 아도로스는 예전에 죽었어.”
“아도로스가... 죽어? 그게 사실인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그쪽은 신임 마왕이고?”
“이제 서로 상황파악은 된 것 같군. 길을 터라. 로얄로더에게 볼일이 있어 들렀을 뿐이야.”
추방자들과 검을 나눌 이유는 없기에 용건을 정확히 밝히며 그들 사이를 지나치려 했다.
추방자들은 길을 터지 않고 그 자리에서 두 손을 모아 말을 높였다.
“새로운 마왕이시여.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단순한 오해였지.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으니 용서할 것도 없어.”
“마왕님의 넓은 아량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만 저희를 저주의 족쇄에서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로엘은 지나치려다 말고 추방자들을 둘러보았다.
혼돈의 대지의 흙이 육체를 갉아먹고 있는지 몸 곳곳에 피멍과 같은 반점이 가득했다.
살기 위해서 대지의 흙을 먹어야 하고, 대지의 흙을 먹으면 육체가 상하는 악순환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로엘은 아까 추방자들이 로엘에게 날렸던 공격의 수준을 떠올렸다.
수준은 마나유저 중급에서 상급 수준 정도였나.
저주만 아니었다면 꽤 쓸 만한 자들이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은?”
로엘이 해주 방법을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탁한 건 마왕만이 저주를 풀 수 있기 때문이리라.
추방자들은 갈라진 피부가 벌어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환히 웃었다.
“저주의 샘물을 다시 마시면 됩니다.”
“그뿐인가?”
“저주의 샘물은 혼돈의 대지 안쪽에 있습니다. 다만 아도로스가 결계를 둘러놓아 마왕의 표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혼돈의 대지 안에 있는 저주의 샘물에 투명한 결계를 둘러놓았다고 한다.
아로도스는 추방자들에게 최고의 형벌을 내린 셈이었다.
빌어먹을 저주를 풀 방법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있는데 그것을 취할 수 없는 것.
목마른 자를 묶어 놓고 그 앞에서 물병을 흔드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저주를 풀어주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그냥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병력이 필요하다.
전쟁도 마다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금 취할 수 있는 건 모두 취해둬야 했다.
“너희들 저주를 풀면 갈 곳은 있나?”
“네? 저주를 풀 수 있는 것만 생각하느라 거기까진 생각해두지 않았습니다.”
“저주를 풀어줄 테니 내 밑으로 오도록. 받아주지.”
“아, 거기까지 배려해주시다니... 마왕님의 은혜에 미처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필요한 병력을 마치 배려하듯이 말하여 그들 스스로 하여금 따르게 만드는 로엘이었다.
밑으로 오라는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태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로엘은 감사를 거듭하는 추방자들 사이를 걸으며 로얄로더가 있는 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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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로스가 사라진 이후 줄곧 잠들어 있던 로얄로더는 얼마 전에야 잠에서 깬 참이었다.
사라졌던 마왕의 표식이 다시 나타났음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조만간 올 마왕을 맞이하기 위해 마물을 먹으며 힘을 회복해둔 상태였다.
로얄로더는 기다리던 이가 왔음을 느끼곤 앞발을 세우며 몸을 일으켰다.
찾아온 이의 모습을 확인한 로얄로더가 녹색 눈동자를 번뜩였다.
“다른 이의 육체를 차지한 아도로스더냐, 아니면 그 머저리가 죽고 다른 녀석이 온 것이더냐.”
로얄로더를 앞에 둔 로엘은 과연 용이라 불릴만한 존재임을 느꼈다.
베나티아가 싸우고 싶은 욕망만을 품고 있으면 이번 분위기를 지니지 않을까 할 정도로 상당한 기백이 풍겨 나왔다.
더불어 아도로스를 동등한 존재인양 취급하는 것에서 단순히 마왕의 전유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왕의 상징 중 하나이자 파트너에 해당하는 존재가 바로 로얄로더인 것이다.
로엘은 마왕의 표식을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새로운 마왕 엘리오스 킨 로엘이다. 널 취하러 왔지.”
“하하, 솜털 보송보송한 애송이가 당돌하기도 하구나. 내가 따르라면 따르는 소환수처럼 보이더냐.”
“마왕의 권리에 널 부리는 권리도 포함되어 있는 걸로 안다만?”
“부릴 기회를 가질 권리이겠지. 나 로얄로더는 강자에게 따른다는 마계 초기의 규칙을 품고 있는 용이니라. 날 부리려면 그에 준하는 힘을 가졌음을 증명해보아라.”
즉, 자신을 부리려면 강자인 걸 증명해보라는 것이었다.
깨어난 직후 마물을 먹으며 힘을 회복한 건 마왕에게 더 강한 전력이 되기 위함이 아니었다. 마왕의 강함을 측정하기 위해 스스로의 힘을 불려놓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오면 바로 부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만 예상이 빗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엘은 개의치 않고 곧장 검을 뽑았다.
“어느 정도로 베어내면 날 따를 거지?”
“하하하! 목이라도 벨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아도로스조차 내 날개를 베는 것이 고작이었거늘.”
“목을 베여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할 수 있다면 해보 거라. 목 한 번 베인다고 드러눕는 육체는 아니니라.”
“그럼 사양 말고 가도록 하지.”
로얄로더는 로엘의 움직임을 주시하였다.
일견 느긋한 눈길로 보일 수도 있다만 작은 움직임 하나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관찰하는 중이었다.
로엘이 아디만티움 검을 뽑나 싶더니 뽑는 속도에 가속도를 붙여 단번에 휘둘렀다.
마기를 쓰지 않고 제자리에서 휘두른 게 전부였다.
로얄로더는 로엘이 자신을 놀리는 거라 여겼다.
“신임 마왕이여. 날 우롱할 생각이라면 용서치 않겠다. 제대로 싸워라.”
으르렁거리며 노기를 드러내는 로얄로더였다.
로얄로더가 화를 내고 있건만 로엘은 도리어 검을 검집에 넣는 행동을 취했다.
로엘이 한 거라곤 허공에 검을 휘두른 후에 다시 검집에 넣은 게 전부였다.
로얄로더가 분노하며 로엘을 다그치려 할 때, 로엘이 로얄로더의 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목이나 다시 붙이시지.”
“음?”
로얄로더의 목뼈 중앙의 마디 하나가 깔끔하게 분리되나 싶더니 거대한 두개골이 아래로 떨어졌다.
쿠웅!
로얄로더의 두개골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보이지 않는 검에 잘린 듯 깔끔하게 분리되었다.
로얄로더는 머리가 분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었다.
목이 잘린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더니 사실이었다.
로얄로더는 땅바닥에 머리가 박힌 채로 아가리를 뻐끔거렸다.
“이 내가 공격을 볼 수조차 없었다니.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냐.”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로엘이 로얄로더의 콧잔등에 발을 얹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복종을 강요하고 있었다.
로얄로더는 본인이 마계에서 손꼽히는 괴물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지금부로 그 생각을 접어야만 했다.
분리된 몸이 떨어진 두개골을 들어 올려 잘린 단면끼리 닿게 하였다. 그리고 가진 마기를 이용해 절단면을 붙였다.
로얄로더는 시선을 로엘의 발밑에 둠으로서 복종의 자세를 갖췄다.
“아까 한 말을 철회하마. 새로운 마왕이여. 나 로얄로더는 감히 그대의 힘을 의심한 것을 사과하며 앞으로 그대의 날개가 될 것을 맹세하겠다.”
로얄로더를 손에 넣은 로엘은 그대로 혼돈의 대지 안쪽까지 들어가 저주의 샘물을 두르고 있는 결계를 해제하였다.
저주의 샘물을 마신 혼돈의 대지 주민 5천명은 저주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로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로엘과 타유아는 먼저 로얄로더를 타고 남쪽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5천명의 주민들은 인원을 나누어 순차적으로 남하하기로 하였다.
로얄로더와 5천명의 주민을 확보한 로엘은 남쪽으로 되돌아가기 앞서 타유아에게 말을 붙였다.
“타유아, 남쪽 혼돈의 대지에도 추방자들이 있나?”
“이곳보다 훨씬 많은 자들이 있어요.”
로엘은 로얄로더의 등 위에 올라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들도 확보해둬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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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오스의 땅 동쪽에 위치한 어느 울창한 숲 속.
숲 속에는 돌을 쌓아 만든 소박한 집 하나가 있었다.
집구석에 위치한 방 안의 침상 위에는 다리에 부목을 덧댄 여인 한 명이 앉아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윤기 넘치는 머릿결을 쓸어 넘기고 가던 중 노인 한 명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몸은 좀 어떠냐, 메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