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9 8-9. 로얄로더 =========================
8-9. 로얄로더
사망자 3천, 요새 한 개 소멸.
고르오스와 로드리고의 본대끼리 부딪친 후에 생겨난 결과였다.
폭스와 동맹을 맺고, 마왕의 판결권한까지 등에 업고 있기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 여겼었다.
무승부로만 끌고 가도 된다 여겨 유리하다 여겼는데 무승부는커녕 패배의 예감만 짙게 감돌았다.
로드리고는 고르오스의 땅에 넘어갔다가 되러 자신의 땅 깊숙한 곳까지 퇴각했다.
협곡을 끼고 있는 요새의 성벽 위에서 로드리고가 붕대를 감은 채로 서있었다.
고르오스와 단 3합을 겨루었을 뿐인데 팔뚝이 뜯겨나가는 중상을 입었다.
로드리고는 고르오스의 강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괴물 같은 놈. 이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져 있었어.”
옆에선 로드리고의 측근인 다닐루가 서있었다.
다닐루도 전투 중에 페네르치에게 당해 한쪽 날개가 없어진 상태였다.
단 한 번의 전투로 다닐루는 물론 로드리고 군의 전의가 맥없이 꺾여버렸다.
“고르오스의 별동대가 본대와 합류하여 이곳 협곡으로 똑바로 오고 있다 합니다.”
“좁은 지형에서 활성화의 핵으로 놈들을 막을 수밖에 없나. 우리쪽 활성화의 핵 보급은 어떻게 됐느냐? 2개가 모자라다 들었다만.”
활성화의 핵은 다음 위험지간 활성화 시기가 되면 없어진다.
그래서 후방에선 계속 위험지대를 강제정지 시켜 전방으로 활성화의 핵을 전달해줘야 했다.
어제 활성화의 핵이 도착했는데 원래 와야 할 양보다 두 개가 적게 도착했다.
다닐루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물어물 보고를 올렸다.
“그게 말입니다. 뉴아츠의 마물들이 주변 위험지대에 가세해서 강제정지가 늦어지고 있다 합니다.”
“뉴아츠가? 뉴아츠는 마왕에게 넘겨준 땅 아니더냐.”
“보급부대가 가져온 소식입니다만 마왕이 뉴아츠의 라이프트리를 시체나무로 만들어 통째로 렌던으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
로드리고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의문을 표했다.
“라이프트리를 옮겨갔다고?”
“네. 시체나무로 만들어서 가져갔습니다.”
“라이프트리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느냐?”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허참,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런데 왜 라이프트리를 렌던으로 옮긴 거지? 뉴아츠의 위험지대를 비워두면 이쪽 보급이 원활해지지 않는다는 건 마왕도 알 텐데?”
“마왕은 이쪽의 승리와 패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죠?”
“일단 눈앞의 적에 집중하자구나. 피로 인장을 찍은 계약서까지 썼으니 판결권한으로 지원해주는 것만큼은 아직 유효하다. 이대로 밀리면 판결권한마저 이용하지 못 해.”
겉으로는 태연함을 유지했지만 로드리고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폭스 쪽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밀리고만 있다 한다.
여차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할지도 몰랐다.
‘고르오스가 항복한다고 봐줄 녀석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방책을 생각해두긴 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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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의 땅으로 진입한 고르오스는 페네르치로부터 새로운 보고를 전해 들었다.
“마왕이 카에라와 접촉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특보랍시고 들고 왔는데 고르오스의 반응은 싱겁기만 했다.
“잡것들끼리 만난 것까지 내게 보고 해야 하느냐?”
“뿐만 아니라 마왕이 남쪽의 렌던으로 돌아간 게 아닌 북쪽으로 향했다는 정보까지 들어왔습니다. 북쪽 혼돈의 대지로 가서 로얄로더를 깨우려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페네르치. 자잘한 부분은 네가 알아서 하라 했을 텐데?”
“자잘한 부분이 아니라 여겼습니다. 로얄로더는 마물을 먹는 용이잖습니까.”
“지금 내가 쳐야 할 목은 로드리고와 폭스의 목이니라. 힘이 모자라 먼 길을 걸어가는 신출내기 마왕까지 신경 써야겠느냐?”
“죄송합니다. 신임 마왕도 염두에 두어야 된다 생각하여......”
“놔두어라. 어차피 로드리고와 폭스의 목을 친 후에 치면 그만이니.”
공들여 심어놓은 첩자들이 물어다준 정보다.
고르오스가 페네르치에게 핀잔을 주는 거야 늘상 있는 일이지만 이번 원정길만큼은 하나하나가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막 고르오스의 밑에 들어온 아폴로와 카잔이 은근히 페네르치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 뒤늦게 본대에 합류한 카잔이 히드라의 머리 위에 올라왔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고르오스 님. 분부하신대로 폭스의 데스나이트 부대를 격파하였습니다.”
“수고했다. 이끌었던 부대를 그대로 이끌고 부대 중심에 서도록.”
“감사합니다.”
카잔은 두 손을 모으며 히드라의 꼬리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페네르치도 뒤따라 내려왔는데 카잔이 그를 보며 히죽거렸다.
“또 고르오스 님께 한 소리 들으셨습니까?”
“입 다물어라, 카잔. 죽여 버리는 수가 있다.”
“크크, 무섭기도 하셔라.”
“네 녀석이야 말로 승전보가 들린 지 꽤 된 걸로 아는데 왜 이리 늦었지?”
“이래봬도 바쁘게 달려온 겁니다.”
페네르치는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카잔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마라. 지금이 고르오스 님께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으나 카잔에겐 핀잔이나 듣는 늙은이의 몸부림이라 여겨 대충 흘려들었다.
“네네, 조심하겠습니다.”
///
로엘과 타유아는 북쪽 혼돈의 대지로 가기 위해 카에라의 땅 북쪽에 있는 야나몬의 땅에 들어갔다.
현 마계 7기둥 중 서열 5위에 해당하는 야나몬의 땅은 영토의 8할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더불어 위험지대가 가장 적은 땅이기도 했다.
위험지대가 적은 만큼 주민을 지키기 위한 성벽도 적기에 통과해야 할 관문이 적었다.
로엘과 타유아는 끝없이 나타나는 산을 넘어 북쪽으로 나아갔다.
마을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보니 의도치 않게 노숙하는 일이 잦아졌다.
원래는 타유아가 노숙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노숙에 익숙하지 않아 실수가 많았다.
타유아는 부싯깃에 부싯돌 불씨를 튀기면서 난처해했다.
“어? 어라? 왜 불이 안 붙지?”
로엘이 타유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줘봐.”
부싯돌을 건네받은 로엘은 몇 번 부싯돌을 튀겨 불씨를 만들었다. 그리곤 부싯깃을 두 손으로 모아 입김을 불어넣어 불을 피워 삼각형으로 쌓은 나뭇가지 사이에 넣었다.
여름이라지만 산의 밤은 상당히 싸늘했다.
로엘은 모닥불에 수통을 올려 전나무 잎 몇 개를 넣어 간단하게 차를 끓여 마셨다.
후룩, 후루룩
타유아도 로엘이 끓여준 차를 마시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이럴 때일수록 타유아가 옆에서 잘 보좌해줘야 하는데 로엘의 무거운 분위기를 휘감고 있다 보니 긴장되어 자꾸만 실수가 늘어났다.
타유아는 몸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울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마왕님. 제가 모자라서......”
“신경 안 쓰니까 담아두지마.”
“네. 더 노력할게요. 저기, 오늘은 제가 계속 불침번을 설 테니까 마왕님을 푹 주무세요.”
“그럴 거 없어. 밤새면 이동할 때 효율이 떨어져. 절반씩 서도록 해.”
딱 잘라 말한 로엘은 먼저 자기 위해 나무기둥에 등을 기대곤 검은 안고 잤다.
위험지대가 아니라 딱히 경계할 대상도 없건만 로엘은 항상 날이 서있었다.
타유아의 실수를 어려움 없이 보완해주거나 간간이 배려해주는 것은 여전했으나 대하기 어려워진 것만은 확실했다.
타유아는 선잠을 자는 로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랄까.
가만히 보고 있자면 단순히 분노만 품고 있는 게 아니라 그 근원에 슬픔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상처 입은 맹수 같다고나 할까.
이토록 강한 자건만.
그 모습은 자꾸만 보호본능을 자극하였다.
다만 타유아로선 그의 상처를 감싸주긴커녕 자극하기만 하는 게 될 것 같기에 함부로 다가설 수가 없었다.
아직 타유아에겐 로엘의 수려한 외모 속에 감춰진 드센 이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모닥불이 꺼지지 않게 나뭇가지를 드문드문 넣어주고 있던 때.
타유아의 기다란 귀가 쫑긋 세워졌다.
더불어 자고 있던 로엘도 눈을 떴다.
“들리나?”
“네, 멀리서 무언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확인해봐.”
멀리서 다수의 생물체가 산기슭의 땅을 두드리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타유아는 고양이를 몇 마리 소환하여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가 돌아오더니 타유아의 귀에 대고 울음소리를 내었다.
“냐~ 냐~.”
“응. 정말이야? 알겠어.”
“뭐래?”
“마물 20마리 정도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어요.”
“여긴 위험지대가 아니었지 않나?”
“근처 위험지대에서 생성된 마물이겠죠. 고양이들이 말하는데 우리를 인지하고 덤벼오는 게 아니라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 같았데요.”
“높은 지대로 이동해서 확인해보자고.”
로엘과 타유아는 모닥불을 끄고 배낭을 챙겨 산 정상을 향해 뛰어갔다.
산 정상 부근의 탁 트인 바위 위에 올라서니 반대편 산 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마물 무리가 보였다.
여러 종류의 마물이 한데 섞여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듯 내달리고 있었다.
마물은 기본적으로 같은 부류가 아니면 뭉쳐 다니지 않는다.
같은 부류가 아닐 때는 저희들끼리 물어뜯는 경우도 생긴다.
그걸 무시하고 한데 섞여 내달릴 만큼 겁에 질려 있단 뜻이었다.
로엘은 마물의 경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곤 자신의 위치와 대조하였다.
“부딪칠 일은 없겠어. 지나가게 놔두자.”
“무엇에 저리 겁먹은 걸까요? 보통 마물이 겁먹는 일은 없는데.”
두 사람은 금방 마물들이 겁에 질려 도망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산 너머에서 무지막지한 크기의 용이 날아드는 게 아닌가.
용은 몸이 뼈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녹색 일색의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으며 필요한지 의문인 찢어진 날개 피막을 달려 있었다. 날개의 피막이 찢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데엔 어려움이 없어보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베나티아의 드래곤 모습일 때의 크기와 비슷했다.
로엘은 뼈로 이루어진 용을 보자마자 시체 드래곤 로얄로더임을 알아차렸다.
“저게 로얄로더지?”
타유아는 너무 오랜만에 로얄로더를 본 터라 그 위용에 놀라 한 박자 뒤에야 대답을 하였다.
“맞아요. 저게 로얄로더예요. 잠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일어나 있었군요.”
산 너머에서 나타난 로얄로더는 날개를 퍼덕이며 능선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가오리가 물고기를 낚아채듯 넓적한 아가리를 벌려 마물 무리의 꽁무니를 훑었다.
삽시간에 마물 한 마리가 로얄로더의 송곳니에 걸쳐 입 안으로 삼켜졌다.
같은 짓을 몇 번 반복한 로얄로더는 마물의 대부분을 삼키곤 배가 부른지 기다란 포효를 내질렀다.
“쿠워어어어!”
마물의 힘을 흡수하기라도 했는지 로얄로더의 뼈마디에서 짙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마계에서 유일하게 마물을 먹이로 삼고 있는 존재.
로얄로더의 위용을 미리 목격하게 된 로엘이었다.
로얄로더는 로엘과 타유아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산 너머로 도로 날아 가버렸다.
아직 포효의 여운이 남은 가운데 로엘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이제 산 하나만 넘으면 혼돈의 대지인가 보군.”
“바로 넘어가시게요?”
“다시 자는 건 그른 것 같지 않아?”
“그렇긴 하죠.”
로엘과 타유아는 아직까지도 메아리치고 있는 로얄로더의 포효 속에서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