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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186화 (186/219)

00186 8-6. 닿지 않는 곳으로 =========================

학생들이 소환한 머든들이 땅에 손을 박아 넣으며 땅의 정령에너지를 부여했다.

그러자 카잔 발치에 있는 땅이 들썩거리는가 싶더니 흙으로 뭉쳐진 가시가 솟아났다.

십 수 개의 가시가 카잔의 몸을 꿰뚫으려 하였다.

카잔은 옆으로 몸을 날리며 오목한 검을 휘둘렀다.

오목한 검 끝에 맺혀 있던 메이아의 3속성 기운이 솟아나던 가시 위에 쏟아지면서 공격을 상쇄하였다.

동시에 카잔의 부하들이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양옆으로 퍼졌다.

정면에는 카잔이, 양쪽 측면에는 그의 부하들이 자리를 잡았다.

방에서는 기껏해야 카잔의 부하는 2~3명일 줄 알았는데 막상 전부 나오고 나니 숫자가 20명에 달했다.

실전경험이 풍부한 4성급 부대장들을 상대로 일개 학생들이 당해낼 리 없었다.

학생들은 분발하여 중급 정령을 부렸지만 카잔의 부하들은 손쉽게 머든의 공격을 격파하며 접근해왔다.

삽시간 학생들에게 접근한 카잔의 부하들이 가차 없이 주먹이나 무기의 뭉툭한 부분을 휘둘렀다.

퍽! 투퍽!

“우욱!”

“안 돼! 이것들아 놓지 못해?”

“시끄러워 죽겠군.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잡히라고.”

메이아도 7마리의 전 속성 정령을 전력으로 부려보았지만 카잔 한 명을 상대하기도 벅찼다.

“쉐이드!”

어둠의 중급 정령 쉐이드로 카잔의 주변을 둘러싸 시야를 제로로 만들었건만 카잔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태연하게 걸어왔다.

카잔은 메이아가 날린 후속공격을 오목한 검으로 빨아들이며 말했다.

“통하지 않는데도 참 열심히도 하는군. 주변을 둘러보아라. 저항하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보이지 않느냐?”

메이아는 카잔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으면서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생들 중 몇 명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 카잔의 부하들에게 끌려가고 있었고, 나머지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무리하게 기운을 끌어올려 정령화가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최소한... 최소한 이들만큼은 무사히 돌려보내고 싶었다.

모두가 험한 꼴을 당할 바엔......

메이아는 결의를 다지며 7마리의 중급 정령으로 하여금 뒤로 물러나라 하였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으며 카잔을 향해 말했다.

“저 혼자 감당하겠어요. 나머지 분들은 돌려보내주세요.”

학생들이 메이아의 말에 화들짝 놀라 그녀를 말리려 했다.

“안 돼, 메이아! 차라리 죽을 때까지 함께 싸우겠어.”

“여긴 무덤으로 삼는 한이 있더라도 널 버리고 갈 순 없어.”

“아직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혼자 짊어지려 하지마!”

카잔은 메이아의 얼굴을 보곤 더욱 흥분되는지 히죽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매서운 눈빛과 울 것 같이 일그러진 입술.

분노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여성의 얼굴이 그가 가진 정복감을 자극하였다.

“눈물겨운 장면이군. 좋다, 네 년이 남는다면 다른 계집들을 보내주마.”

카잔의 부하들이 굳이 그럴 필요 있냐는 듯 어리둥절한 눈길을 보냈다.

카잔은 손을 휘저어 그들의 불만을 억눌렀다.

“이 년들은 정령화가 되더라도 끝까지 싸울 거다. 차라리 여기 이 계집을 취하는 게 낫겠지. 상당한 특등품이 제 발로 와주겠다는데 거절할 필요가 있겠느냐.”

“쩝, 대장만 재미 보기 입니까?”

“불만인가?”

“뭐... 대장이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전 속성 정령을 다루는 계집아. 이름이 뭐더냐.”

“메이아예요.”

“좋은 이름이군. 메이아, 다른 계집들은 보내줄 테니 이리 오너라.”

“제가 바보로 보이나 보죠? 다른 분들을 먼저 돌려보내주세요.”

메이아가 항복한 후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에 먼저 보내 달라 하는 것이었다.

카잔은 부하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카잔의 부하들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길을 터주었다.

학생들이 뒤에 열린 길과 홀로 서있는 메이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가지 않고 끝까지 싸우려고 두 발을 어깨너비로 벌려 버티려 했으나 메이아가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얼른 크루다이로 가세요.”

“하지만......”

“얼른요!”

메이아가 다그치고 나서야 학생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겨우 옮겼다.

메이아는 손을 흔들어 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현장에서 멀어져 갔다.

그녀들이 붉은색 위험지대로 들어가면서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고개를 돌리고 있던 메이아에게 카잔이 다가와 그녀의 목 뒤를 쳤다.

투퍽!

“어억!”

학생들만이라도 구했다는 생각에 잠시 방심한 틈을 타 카잔이 메이아를 기절시켜버렸다.

카잔은 기울어지는 메이아의 몸을 잡으며 어깨에 들쳐 멨다. 그리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계집들을 쫓아가서 재미 보고 오너라. 질질 짜느라 방심하고 있을 테니 정령화 걱정 없이 놀고 올 수 있을 거다.”

아쉬움에 잠겨 있던 카잔의 부하들은 웃음을 흘리며 좋아라 하였다.

“크크, 놀래키지 좀 마십시오. 정말로 그냥 보내는 줄 알고 실망했잖습니까.”

“자, 놀고 오자고. 계집들 발걸음으론 얼마 못 갔을 거야.”

“다녀오겠습니다, 대장.”

카잔은 부하들 중 한 명을 남겨 시체처리 방법을 전해두었다.

“즐긴 이후에 숙소 안의 늙은 계집 시체랑 계집들 시체를 노이즈 산맥 남쪽 루트 중앙 근처에 버려둬라. 데스나이트 부대의 이동루트였으니 폭스의 군대가 계집들을 죽인 것으로 보일 거다.”

“단순히 즐기러 온 게 아니었군요.”

“겸사겸사 이용하는 거지. 난 먼저 진영으로 돌아가마.”

카에라와 폭스를 이간질시키기 위한 방책까지 일러둔 후에야 몸을 돌리는 카잔이었다.

카잔은 메이아를 들쳐 업은 채로 자신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진영을 향해 움직였다.

///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메이아가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빛바랜 천막의 윗부분이 보였다.

일어나자마자 뒷목이 뻐근한 것이 느껴졌다.

“여긴... 아!”

잠시 동안 멍하니 있던 메이아는 정신을 잃기 전의 일이 떠올라 주변을 경계했다.

천막 안에는 폭스가 메이아의 자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는지 의자를 돌린 채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옷매무새가 그대로인 걸로 보아 자는 동안 건드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카잔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야 일어났군.”

“당신이 기절시켰군요. 제가 순순히 따라간다고 했을 텐데요?”

“혹시나 싶어서 말이지. 편하게 왔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좋게 보이고 싶었다면 우리들 앞에 나타나지 않으셨어야죠.”

“크크, 이 상황이 되어서도 강한 척이라니 점점 마음에 드는군.”

“학생들은 확실히 돌려보내주셨죠?”

카잔은 벌써 부하들이 일처리를 마친 후라는 걸 알고 있지만 태연하게 거짓을 말했다.

“물론이지. 약속은 지키는 주의라고.”

메이아도 일어났겠다 카잔은 슬슬 기다렸던 일을 벌이고자 하였다.

“자, 이제 시작하지. 스스로 벗도록.”

차근차근 메이아를 굴복시켜 완전히 곁에 두고 싶었다.

카잔의 눈은 옹이구멍이 아니다.

메이아만한 인재가 얼마나 드문지 알고 있었기에 확실하게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두고 싶었다.

그를 위한 첫 걸음으로 모든 것을 스스로 행하도록 지시하였다.

메이아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는가 싶더니 이내 결심을 한 듯 표정을 달리했다. 그리곤 대담하게 카잔의 앞까지 다가와 양팔을 좌우로 벌렸다.

“직접 하세요.”

“난 스스로 벗으라 했을 텐데?”

“하고 싶으면 직접 하라고 했을 텐데요?”

의도가 틀어진 것 때문에 카잔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카잔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려는 메이아의 태도에 감탄하며 몸을 일으켰다.

“질기군 질겨. 보통 이쯤 되면 순응할 법도 한데 말이야.”

“...”

아무 말도 없이 양팔을 벌린 채로 가만히 있는 메이아였다.

카잔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메이아의 상의 단추에 손을 대었다.

단추가 하나하나 풀리면서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메이아는 속살에 열이 오른 공기가 닿는 것을 느끼며 카잔의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기절하기 전에 붙어본 결과 카잔의 눈은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이 닿지 않는 사각이라면?

메이아는 카잔의 시야 바깥까지 뻗어놓은 양손에 정령 에너지를 담았다.

7가지 속성 중에서 가장 강한 강도를 지닌 땅의 정령 에너지를 한껏 부여했다.

메이아의 양손이 돌로 변하면서 곧게 뻗은 손끝이 하나의 석제 검이 되었다.

메이아는 단추를 푸느라 여념이 없는 카잔의 등을 향해 손을 힘껏 내리꽂았다.

푸욱!

기습은 성공했다.

그 증거로 카잔의 등에서 피가 튀었다.

손끝에서 전해져오는 감촉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기습 자체는 성공했으나 메이아가 가진 근력이 모자라 손이 깊숙한 곳까진 닿지 않았다.

카잔은 등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등을 펴며 분노를 토해냈다.

“크악! 이 빌어먹을 계집년이!”

열이 머리끝까지 뻗쳐올랐는지 대번에 손등을 휘둘러 메이아의 얼굴을 후려치려 했다.

메이아는 처음부터 얌전히 당할 생각은 없었기에 실피드를 소환하였다.

“실피드!”

실피드를 소환함과 동시에 정령 에너지를 전부 바람의 속성으로 변환시켜 본인 스스로도 몸을 바람으로 변환시켰다.

메이아의 몸이 바람으로 변하면서 카잔의 손등이 얼굴이 있는 부분을 관통하여 지나갔다.

메이아 혼자라면 얼마든지 도망칠 자신이 있었기에 자신 있게 자신만 잡혀온 것이었다.

“실피드! 밀어내!”

실피드가 바람을 뿜어내 카잔을 공격하였다.

카잔은 천막 기둥에 걸어놓은 볼록한 검으로 거센 바람을 역으로 밀쳐냈다.

밀쳐낸 바람이 메이아의 몸을 천막 바깥으로 밀어냈다.

메이아 입장에선 카잔이 바람에 밀려나도 좋고, 바람을 튕겨내도 그 바람을 타고 천막 바깥으로 나가면 되니 어느 쪽이든 이득이었다.

바람을 타고 천막 틈새로 빠져나온 메이아는 바람의 정령 에너지를 유지한 채로 수풀 사이를 향해 뛰어갔다.

마침 순풍이 불어온 순풍과 합류하여 빠른 속도로 진영을 벗어났다.

뒤에선 카잔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메이아를 잡으라고 난리였다.

“계집이 도망갔다! 잡아와라! 당장 잡아오란 말이다!”

삽시간에 추격대가 형성되어 메이아가 도주하는 방향으로 쫓아오기 시작했다.

메이아는 정령 에너지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제 아무리 순도가 높다한들 아직 메이아는 중급 정령사 수준에 불과했다.

추격전이 길어지면 불리한 건 메이아였다.

‘어디로 가야 하지? 길을 전혀 모르겠어.’

밤중인데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기절해 있어서 온통 처음 보는 지형지물뿐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안전한 곳을 찾는 건 무리였다.

최소한 추격대의 추격만큼은 뿌리쳐야 했다.

가까운 곳에서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메이아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있는 힘껏 뛰었다.

수풀 사이를 뚫으며 달리다보니 폭포가 떨어지는 높은 절벽 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높이는 10미터쯤 될까.

아래에는 제법 넓은 연못이 있었다.

추격대는 기운을 감지하고 있는 능력자라도 있는지 바람으로 변한 메이아를 끊임없이 쫓아오는 중이었다.

“저쪽이다! 앞은 폭포이니 그 년도 도망가지 못했을 거다!”

우물쭈물거릴 틈이 없었다.

“부탁해요, 운디네.”

메이아는 운디네를 소환하여 바람 대신 물의 정령 에너지를 몸 안에서 활성화시키며 냉큼 폭포 아래로 뛰었다.

운디네 마냥 몸이 물로 변한 메이아가 한 송이의 유리꽃처럼 떨어졌다.

수면에 부딪치기 직전에 운디네가 물기둥을 일으켜 수면보다 높은 위치에서 메이아를 받아내었다.

덕분에 메이아는 몸 상하는 일 없이 물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

풍덩!

메이아가 빠진 폭포는 계곡을 타고 강까지 이어져 있었다.

단, 카잔의 진영은 노이즈 산맥 서쪽 능선에 위치해 있었으며 폭포 역시 서쪽을 향해 흐르는 물이었다.

그를 알지 못한 채 메이아는 카에라의 땅이 있는 동쪽이 아닌 고르오스의 땅이 있는 서쪽을 향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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