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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185화 (18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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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닿지 않는 곳으로

노이즈 산맥 근처의 샤프란 아카데미 실습숙소.

이번 실습은 땅 속성 정령술 수업의 일환으로 온 것이기에 인솔자는 퀘이넨 교수였다.

퀘이넨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오늘 성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 협력전투는 매우 좋았어요. 다들 마물과의 전투에는 익숙해진 것 같네요.”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늘로 실습 3일차다.

정령술을 배운 이래 처음으로 개인전투, 집단전투를 해본 것이라 첫 날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실전은 수련과 달리 돌발상황의 연속이었고, 이미지 했던 것보다 마물은 훨씬 더 강하고 날렵했다.

유사시엔 퀘이넨 교수가 구해준다곤 하지만 언젠가는 혼자서도 해내야 하는 일이었기에 집중하느라 평소의 몇 배나 더 피로가 쌓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흘 만에 익숙해진 건 전부 얼마 전에 편입한 한 여인 덕분이었다.

퀘이넨 교수는 끝자리에서 조용히 식사 중인 메이아를 바라보았다.

“특히 메이아 양은 매우 훌륭했어요. 모든 속성의 정령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메이아는 빵을 입에 넣으려다 말고 고개를 꾸벅였다.

실습에 참가할 명단을 짤 때만 하더라도 메이아를 포함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을 했던 퀘이넨 교수다.

전 속성 중급정령 소환이 가능하다곤 하나 정령을 다룬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조금 더 수련을 쌓은 뒤 실전을 겪게 할지, 실전으로 감각을 단숨에 끌어올릴지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다.

결국 후자가 옳은 선택이었던 셈이었다.

메이아는 실전에서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배운 것을 응용하여 상황을 잘 풀어나갔다.

힘을 지니게 되면서 차분함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다른 학생들도 메이아 덕분에 몇 번이나 위기를 넘겼기에 그녀를 인정하고 있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끝났고, 학생들은 숙소에 마련된 공용 샤워실에서 샤워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이층 침대가 줄지어 놓여 있는 방 안에서 학생들끼리 도란도란 잡담을 나누었다.

밤중의 수다 또한 실습의 묘미이기도 했다.

땅의 정령술 학생들은 메이아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말을 붙였다.

“인간계에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유리구두를 남기고 온다는데 사실이야?”

“아냐아냐. 독사과를 먹고 숲에 누워 있으면 원하는 이상형이 찾아와서 키스로 깨워준다고 들었어.”

“빨간 두건을 쓰면 늑대가 잡아먹으러 온다며? 진짜야?”

인간계에 대한 이상한 지식만 잔뜩 가지고 있는지 메르헨스러운 질문이 난무했다.

메이아는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전혀 아니예요. 여러분이 말한 것 전부 지어낸 이야기랍니다.”

“에이, 전부 지어낸 이야기였어? 인간들은 전부 로맨틱하게 지낸다고 여겼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네.”

“하지만 메이아는 충분히 로맨틱한 걸? 얼핏 들었는데 인간계의 황제를 사랑하는데 신분 차이 때문에 바라만 보고 있었다며?”

어디서 새어나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모두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메이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연애담 하나로 와아와아, 꺅꺅거리는 소녀들처럼 말이다.

메이아는 분위기에 휩쓸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저 같은 게 나서면 괜히 폐하만 난감해질 거예요.”

“무슨 소리야. 샤프란 아카데미 자연관 최고의 수재면 누구한테도 안 꿀린다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맞아맞아. 키도 크고 몸매도 좋잖아. 얼굴도 이만하면 충분하지. 푸석푸석한 머리랑 피부만 해결하면 엘프 저리가라 할 만큼 예뻐질 걸?”

“내 샴푸 줄게. 이제부턴 머리랑 피부도 관리하는 게 좋겠어.”

“나도 내 미용 약초 줄게!”

“나도나도!”

메이아가 잘되길 바라면서 가진 미용용품을 아낌없이 건네주는 학생들이었다.

메이아는 자신의 사물함이 미용용품으로 가득 차는 것을 보며 난감해했다.

“안 주셔도 되는데......”

“싫어. 안 받는다 해도 줄 거야.”

“줄 거지롱.”

혀를 낼름 내밀며 친근하게 달라붙는 학생들의 행동에 메이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후훗, 받을 테니까 다들 목소리 조금만 낮추세요. 이러다 퀘이넨 교수님께 혼나겠어요.”

“아차, 올라오는 발소리 들린다. 혼내러 오나봐.”

학생들은 서둘러 침대 속으로 들어가자는 척을 했다.

복도 쪽에서 들려오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메이아도 학생들을 따라 자는 척을 하려 했으나 발소리 사이에 잡음이 섞여 있는 것을 감지했다.

퀘이넨 교수의 신음 섞인 목소리였다.

“다들... 도망......”

잡음에 가깝던 소리는 문이 벌컥 열리면서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퀘이넨 교수가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겨우 문을 열고 들어와선 말하길.

“다들 도망치세요. 얼른......”

화악하고 풍겨오는 혈향과 퀘이넨 교수의 처참한 몰골에 학생들이 전원 비명을 질렀다.

“꺄악! 교수님!”

“무슨 일이세요! 교수님! 교수님!”

“여러분... 도망을 쳐야... 해요.”

몇몇 학생들이 퀘이넨 교수를 부축하려고 침대에서 내려섰으나 그 전에 검 하나가 퀘이넨 교수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왔다.

퀘이넨 교수의 등을 찌른 검이 비틀리면서 퀘이넨 교수가 검붉은 피를 왈칵 쏟아냈다.

“쿠헉!”

“꺄악!”

퀘이넨 교수를 찌른 자가 검을 뽑으며 방 안에 발을 들였다.

유백색의 눈을 지닌 마족이었다.

그 뒤로 수 명의 남성 마족들이 따라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유백색의 눈을 지닌 마족, 카잔은 퀘이넨 교수의 시체를 발로 차서 옆으로 걷어내며 방 안의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카잔의 눈동자가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늙은 년이 있길래 실망했는데 젊은 것들도 충분히 있구만.”

“카잔 님, 먼저 고르시지요. 저희는 남는 년들로 즐기겠습니다.”

“남는 년은 없을 거다. 전부 맛볼 생각이니까.”

“에이, 그러지 말고 좋은 건 나눠드시지요. 과식하시면 탈납니다.”

“한 번씩 맛보면 너희에게 차례를 넘기마.”

“어쩔 수 없군요. 그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음담패설이 난무하는 것만 봐도 학생들을 어떻게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저 퀘이넨 교수의 죽음에 겁을 먹어 비명만 질러댔다.

그 와중에 메이아만이 가까스로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메이아는 잠옷 위에 가디건을 걸치며 들어온 이들을 살펴보았다.

바깥에서 퀘이넨 교수가 그들을 막아서며 전투를 벌였는지 카잔이라 불린 자의 몸에만 흙이 묻어 있었다.

퀘이넨 교수는 흙의 상급 정령을 다룰 수 있다.

마나유저로 따지면 마나유저 상급에 이르는 수준이다.

큰 소란 없이 퀘이넨 교수를 제압했다는 건 적어도 마나 익스퍼트 수준의 실력자란 뜻이었다.

카잔뿐만 아니라 그의 수하로 보이는 자들도 상당한 실력자들로 추정되었다.

메이아는 상대가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7속성 중급 정령을 하나씩 소환했다.

“전 속성 중급 정령 소환.”

메이아의 앞에 7마리의 중급 정령이 생겨났다.

카잔이 메이아의 움직임을 감지하곤 검날을 혀로 핥으며 히죽거렸다.

“저항하려는 아이가 있구나. 저항하는 년을 찢어 벗기는 것도 신선한 맛이 있어서 좋지.”

“당신들은 누구신가요. 여긴 카에라의 땅에 속한 시설이에요.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고년 참 목소리 한 번 앙칼지구나. 그 목소리로 신음 한 번 내보련?”

“더 이상 모욕하면 참지 않겠어요!”

“네 년에겐 선택할 권한이 없다는 걸 모르는가 보구나.”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에요.”

메이아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각 속성의 중급 정령을 따로 움직였다.

먼저 나무의 정령이 나무바닥에 뿌리를 내리며 융합하여 두터운 벽이 되었다.

카잔 무리와 학생들을 격리시킨 메이아는 당황하는 학생들을 다그쳤다.

“다들 정신 차리세요! 모두 힘을 합쳐야만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요!”

메이아의 말에 그제야 학생들은 울먹거림을 멈추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네 말이 맞아. 울고만 있는다고 저들이 물러나진 않아.”

“모두 싸우자. 퀘이넨 교수님의 복수를 해야 해.”

“메이아를 중심으로 뭉쳐!”

겨우 정신을 차린 학생들이 메이아를 중심으로 진형을 갖추었다.

메이아는 좁은 곳에선 적들이 더 유리하다 여겨 바람의 중급정령에게 지시를 전했다.

“실피드, 이 진형 그대로 바깥에 옮겨주세요.”

바람의 중급 정령 실피드가 하늘거리는 바람의 로브를 펄럭이며 진형의 뒷부분에 있는 자들부터 차례로 바깥에 옮겨주었다.

그때 전방에서 카잔이 검으로 나무의 정령을 베어내며 열린 틈으로 걸어 나왔다.

“이 아저씨는 술래잡기를 좋아하지 않는단다. 베어버리기 전에 순순히 이리 오너라.”

메이아는 대답 대신 물의 중급 정령과 번개의 중급 정령을 다뤘다.

“운디네! 베이스!”

운디네가 먼저 대량의 물을 쏟아냄과 동시에 베이스가 검은색 전류를 흘렸다.

카잔은 두 개의 검 중 검 끝이 볼록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검을 휘둘렀다.

“크하하! 재롱잔치 한 번 거하게 하는구나!”

전류가 흐르는 물덩이가 검 끝에 닿는가 싶더니 역으로 튕겨 나오며 메이아와 여성 마족들을 덮쳤다.

여성 마족들은 절반의 마기를 끌어올려 땅의 중급 정령을 소환하곤 자신의 몸 절반의 돌덩이로 만들었다.

땅 속성은 물 속성과 번개 속성에 강하기에 어느 정도 버텨내긴 했다만 아주 데미지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물덩이가 메이아를 비롯한 여성 마족들을 휩쓸며 모든 이가 창밖으로 밀려났다.

오로지 메이아만이 전신을 땅 속성으로 변환시키며 충격 없이 창문 바깥의 바닥에 떨어졌다.

메이아는 바위로 변한 몸을 원래대로 돌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미리 실피드를 통해 빠져나온 이들이 땅의 중급 정령 머든을 소환해 떨어지는 여성들을 받아내주었다.

메이아는 자신이 소환한 실피드의 도움을 받아 산들바람을 타고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그녀가 나온 3층 창문 안에서 카잔이 고개를 내밀었다.

카잔은 3층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서슴없이 뛰어내렸다.

메이아는 그가 내려오면 위험하다는 걸 알기에 공중에서 요격하려 했다.

‘방금 검 끝이 볼록한 검을 댔을 때 모든 공격이 튕겨나갔었어. 검이 튕겨 내는 효과를 지닌 게 분명해.’

상대의 검이 공격을 튕겨 내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면 튕겨낼 수 없는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메이아는 어둠의 중급 정령 쉐이드에게 눈길을 주었다.

박쥐 모습의 정령이 몸을 확장시키더니 넓은 그림자로 카잔의 얼굴을 감쌌다.

어둠의 정령이 가진 블랙다운 기술 때문에 카잔의 시야는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그 틈을 타서 불, 바람, 나무의 중급 정령이 3개의 방향에서 각자 공격을 실시했다.

불은 나무와 바람을 연료 삼아 더욱 커진다.

세 가지 속성이 카잔을 중심으로 맞닥뜨리면서 효과가 증폭되리라.

카잔은 마치 자신에게 다가오는 공격이 보이기라도 하는 양 다른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검 끝이 오목하게 파인 검이었다.

카잔이 오목하게 파인 검을 휘두르자 세 방향에서 날아들던 공격이 오목한 검 끝에 빨려들어갔다.

검 끝이 볼록한 검은 밀어내는 능력을, 검 끝이 오목한 검은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는 것이었다.

카잔은 블랙다운이 펼쳐진 공간에서 빠져나오며 검 끝에 모인 3가지 속성의 기운을 보았다.

“전 속성 정령을 다루는 정령술사인가. 잠깐 먹고 버릴 간식 정도로 생각했다만 생각을 고쳐야겠군. 이딴 시골에서 이만한 여자를 만날 줄이야.”

“여전히 불쾌한 말만 골라서 하는군요.”

“계속 앙칼지게 말해 보거라. 곧 굴복시켜 줄 테니.”

메이아가 전 속성 중급 정령을 사방으로 퍼뜨림과 동시에 학생들이 땅 속성 중급 정령을 소환하였다.

20여 마리에 달하는 중급 정령이 일제히 카잔을 향해 공격을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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