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4 8-5. 데리러 가야해 =========================
8-5. 데리러 가야해
카에라의 땅 동쪽 바다에 있는 해안바위 위.
툭 튀어나온 바위는 근방 마을 사람들만 아는 낚시포인트였다.
바위 위에선 토박이 여인 한 명이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인은 새벽부터 나온 터라 늘어져라 하품을 해댔다.
“흐아암~, 오늘은 입질이 영 좋지 않네.”
바람은 없는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파도가 거칠었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별안간 바위 아래의 물속에서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왔다.
여인은 풀려있던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거품이 올라오는 곳을 응시했다.
“거품? 웬 거품이래?”
거품 주위로 물살이 강하게 요동치더니 거대한 몸집의 상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쏴아아!
갑자기 튀어나온 거대 상어 때문에 여인은 깜짝 놀라 낚시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에그머니나!”
나타난 상어는 로엘의 명을 받아 서신을 전하러 온 리바이어던이었다.
리바이어던은 조련 받은 돌고래마냥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지느러미를 파닥거렸다.
말이 파닥이지 리바이어던쯤 되니까 지느러미를 파닥일 때마다 물살이 크게 일렁거렸다.
리바이어던은 입을 쩌억 벌려 잇몸 앞쪽에 있는 유리병을 전해주려 했다.
여인은 리바이어던이 입을 벌리는 걸 잡아먹으려는 걸로 착각하여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엄마야~, 마족 살려~.”
서신을 전해주려던 리바이어던은 멀어져 가는 여인을 보며 허망하게 지느러미를 파닥였다.
“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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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줄 마족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리바이어던은 5번이나 시도한 끝에 겨우 서신을 전해줄 수 있었다.
리바이어던이 가져다 준 서신은 근방 마을 촌장을 통해 크루다이로 전해졌다.
크루다이에 있던 카에라는 서신이 담긴 유리병을 전해 받고 그 내용을 읽어 내렸다.
편지를 모두 읽은 카에라는 밝은 표정을 지었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좋은 소식이군요.”
유리병에 ‘카에라에게’라고 적힌 발신인 불명의 서신이 온 것 때문에 카에라의 측근들은 많은 걱정을 하였다.
리바이어던이 있는 상어섬은 폭스의 소유이니 폭스의 수작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막상 서신을 읽은 카에라가 좋은 소식이라 하니 그 내용이 궁금해졌다.
“누가 보낸 서신입니까?”
“렌던의 마왕이 보낸 서신이에요. 신임 마왕이 인간이었어요.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네요.”
“신임 마왕이 인간이었다고요? 그렇다는 건 메이아가 찾는 인간이......”
“그래요. 인간계의 황제였다더니 마계에 와서도 왕위에 앉은 모양이네요.”
“믿어도 될까요? 상어섬은 폭스의 소유잖아요.”
“그 부분도 서신에 적혀 있었어요. 얼마 전에 상어섬을 양도 받았다고 하네요. 당장 신임 마왕에게 답장을 보내야겠어요. 서신을 전해준 리바이어던은 아직 남아있나요?”
“답장을 받아오란 명령을 받았는지 아직 동쪽 바다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신임 마왕이 꼼꼼하게 전부 신경을 써놓은 것 같네요. 아참, 메이아에게도 소식을 전하고 싶은데 그녀는 언제쯤 돌아오죠?”
시리어스 클래스에 합류한 메이아는 붉은색 위험지대 강제정지에 참가하는 실습을 나간 참이었다.
시리어스 클래스 쯤 되면 붉은색 위험지대를 돌며 실전경험을 쌓기 시작한다.
메이아의 입학시기를 생각하면 굉장히 빨리 실습을 시작하게 된 셈이지만 실력만 놓고 보면 충분했다.
카에라는 메이아가 찾던 이를 발견한 것이 기뻐 얼른 그녀에게 이 소식을 들려주고 싶었다.
카에라의 측근 중 스칼라가 메이아가 간 곳을 알려주었다.
“노이즈 산맥 부근에 있는 곳에 갔으니까 돌아오려면 일주일 쯤 걸릴 거예요.”
“그런가요? 메이아 양이 돌아왔을 때 이 소식을 들으면 굉장히 기뻐하겠네요.”
“메이아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밀어줘야겠죠. 일단 마왕에게 답장을 보내야겠군요. 서신을 써서 줄 테니 바로 동쪽 해안에 가져다주세요, 스칼라.”
“넵! 얼른 써주세요!”
///
로엘은 상어섬의 보르뎅으로부터 리바이어던이 물고 온 답장을 전해받았다.
답장에는 이리 적혀 있었다.
[서신 전해 받았습니다, 마왕님.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을 물으셨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돌아갈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대신 작은 물건 하나 정도는 인간계에 보낼 수 있긴 합니다. 사용하실 수 있게 준비해놓을 테니 이쪽으로 와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메이아란 아이를 데리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마왕님을 매우 보고 싶어 합니다.]
서신을 본 로엘은 몇 번이고 서신 밑부분을 다시 읽었다.
인간계로 물건을 보낼 수 있다는 부분보다 메이아가 있다는 부분만 눈에 들어왔다.
생각지도 못한 소식인지라 믿을 수가 없어 자꾸만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메이아가 왜 마계에 있는 거야?’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메이아가 카에라의 땅에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로엘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굴란트가 손을 모으며 서신의 내용을 물었다.
“카에라가 뭐라고 하덥니까?”
“인간계로 이어지는 길은 없다는군. 대신 물건 하나쯤을 보낼 방법이 있다고 적혀 있어.”
“물건? 물건 하나 보내는 걸로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은데요.”
굴란트의 옆에 있던 스랄스가 혀 차는 시늉을 내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쯧쯧, 물건이라도 보낼 수 있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나보군. 이리 멍청해서야 원.”
“그럼 알고 있는 놈이 설명해보시지.”
“카에라에게 서신을 보낸 것처럼 인간계에도 서신을 보내면 되지. 인간계에서 서신을 전해 받으면 그쪽에서도 마계로 통할 방법을 찾아볼 거 아닌가.”
“아하! 그런 방법이!”
“마왕님. 점점 방법이 보이는군요. 다시 리바이어던을 통해 서신을 보내시지요.”
리바이어던을 통해 인간계로 보낼 서신을 전하는 것이 가장 편했다.
로엘도 평상시 같으면 리바이어던을 통해 보냈을 거다.
그러나 카에라의 땅에 메이아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로엘은 직접 카에라의 땅으로 가서 인간계로 서신을 보내고 메이아를 데려오고 싶었다.
메이아가 어떤 경위로 마계에 오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로엘의 일에 휘말린 것만은 확실했다.
그녀를 데리러 가야한다.
“내가 직접 다녀오도록 하지.”
“네? 하지만 카에라의 땅으로 가려면 폭스의 땅을 거쳐야 합니다. 폭스가 지나가지 못하게 할 텐데요.”
폭스는 로엘이 카에라와 손을 잡으려고 하는 줄 알고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는 중이었다.
카에라의 땅으로 향하는 루트의 위험지대를 강제정지 시키지 않고 방치해놓았다. 그리곤 위험 및 로엘이 오면 강제정지활동에 지장이 생긴다는 핑계를 대며 막아서고 있었다.
강제정지활동이라는 게 활성화의 핵과 직결되는 부분이라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됐다.
자칫 잘못하면 폭스가 위협을 느껴 고르오스와의 싸움에서 발을 빼면 로엘도 곤란했다.
카에라가 가진 수단은 기껏해야 서신 한 통을 보낼 정도다.
마왕의 서고에 인간계로 통하는 길을 뚫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 이상 폭스와 로드리고는 좀 더 고르오스와 싸워줘야 했다.
이 상황에서 로엘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위장해서 다녀오겠어.”
“위장이라 하심은?”
“뭐든 좋아. 상인이든 용병이든 시종이든 어떤 형태로든 위장해서 건너가면 돼.”
“마왕님께서 굳이 그리 하실 필요가......”
“가야 해. 반드시 데리고 와야 할 사람이 있거든.”
반드시 직접 데리러 가야하는 사람이 있다.
로엘은 카에라의 땅에 가서 전송할 서신을 써서 챙기곤 위장할 준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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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과 시종, 용병 중에서 고심하던 로엘은 결국 용병으로 위장하기로 했다.
예전에 마나대회 때 용병으로 분장한 경험이 있고, 위장할 수 있는 직업 중에서 가장 활동폭이 넓어 의심을 덜 받는 직종이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갈 자로는 이번에야 말로 굴란트가 자신을 데려가 달라 했지만 로엘은 타유아를 데려가기로 하였다.
스랄스와 같은 해골 타입의 리치는 눈에 띄고, 굴란트도 몸집이나 성격 면에서 은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굴란트는 이번에야 말로 자신이 따라가고 싶었기에 재고를 요청했다.
“마왕님, 또 타유아 입니까? 제가 따라가게 해주십시오. 저 역시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엘이 평소와 사뭇 다른 진지함을 내비치며 차갑게 말했다.
“굴란트. 이번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말하지 않았나?”
로엘의 밑에 들어온 이후로 이토록 로엘이 정색한 적이 있었던가.
굴란트는 본래 로엘이 가진 왕의 위엄에 짓눌려 저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아 주제넘게 군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알면 됐어.”
마계의 용병차림은 인간계의 용병차림과 별다를 게 없었다.
다만 용병에 대한 대우는 인간계와 조금 달랐다.
인간계와 다르게 마계에선 따로 의뢰를 중계해주는 용병 길드가 없었다. 용병 길드가 없다는 건 용병의 등급을 평가할 시설이 없다는 거고 실제로 마계에는 용병 등급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마계에선 좋은 혈통, 강한 힘을 가지고도 홀로 다니길 좋아하는 부류가 많았고 그들도 용병으로 분류되었다.
즉, 용병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경시하지 않는 편이었다.
로엘과 타유아는 용병으로 보일 법한 여행복과 로브, 검 한 자루와 5천 샤온의 경비를 챙긴 후 출발에 나섰다.
라이프트리가 있기에 위험지대 강제정지는 걱정 없었고, 다녀오는 사이에 마왕 저택 건설 및 이사를 끝내놓으라 일러두었다.
은밀하게 진행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라이프트리의 주민은 물론, 렌던의 주민들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않았다.
오로지 굴란트, 스랄스, 데킬라만이 비밀을 품은 채로 로엘이 렌던에 있는 것처럼 꾸며 세간의 이목을 숨기기로 하였다.
용병차림을 한 로엘과 타유아는 조용히 렌던 북쪽 관문을 통과하여 가시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묵묵히 가시나무 사이를 걷는 로엘.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가던 타유아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다.
“저... 마왕님. 반드시 데리러 가야할 사람이라 하셨는데 누구인가요?”
“...”
대답 없이 묵묵하게 걷기만 하는 로엘이었다.
로엘에게서 유쾌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껴왔던 타유아는 로엘의 바뀐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아 어색함에 잠겼다.
얼마쯤 걷던 중에 앞서 걷던 로엘이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내 옆에서 고생만 했던 아이. 그녀를 데리러 가야해.”
타유아는 로엘의 말투에서 애잔함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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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의 선봉대이자 기동력 하나만큼은 대륙 제일에 속하는 데스나이트 부대.
데스나이트를 포함한 3천의 병력이면 어지간한 요새 하나 정도는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데스나이트 부대가 격파 당했다.
노이즈 산맥의 산기슭에서 고작 1500명에 불과한 병력에게 말이다.
카잔은 겹겹이 쌓여 있는 데스나이트의 파편 위에 서서 히죽거렸다.
“폭스의 정예병이라 해서 기대했더니 싱겁기 짝이 없구나.”
그 많은 병력을 베었건만 카잔에겐 상처 하나 없었다.
눈동자가 없는 유백색의 눈은 포로로 잡은 200명의 폭스군 쪽으로 향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이들로 선별된 선봉대 병사들이건만 카잔의 눈길에 공포를 느껴 바들바들 떨었다.
고르오스가 어마어마한 괴물 루키를 발굴해냈다.
카잔이 싸우는 모습을 본 터라 그의 말도 안 되는 무력에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카잔은 재미있는 놀이라도 떠올린 듯 히죽거리며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포로들의 밧줄을 풀어줘라.”
“네.”
카잔의 병사들이 포로들의 밧줄을 풀어주었다.
포로들은 자신들을 풀어주나 싶어 화색을 띠었다.
그러나 풀려난 그들에게 떨어진 말은 잔혹 그 자체였다.
“서로를 죽여라. 마지막에 살아남은 한 놈만 살려주마.”
그러면서 자신의 검 중 하나를 포로 사이에 던져주었다.
무기가 없는 포로들에겐 카잔이 던진 검만이 유일한 무기가 되는 셈이었다.
무기만 쥐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대폭 상승할 게 분명했다.
서로 눈치를 보던 중 한 포로가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익!”
그제야 전우애고 뭐고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포로 전부를 지배했다.
포로들은 검을 뻗으려는 자부터 덮쳐 발로 마구 짓밟았다.
“죽여! 이 놈부터 죽여!”
“어딜 혼자 살려고!”
“저 놈도 검을 쥐려 한다! 죽여 버려!”
그 뒤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방금까지 동료였던 자들이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고 발버둥치고, 검 한 자루를 둘러싸고 추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카잔은 포로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락을 향해 떨어지는 것을 즐거운 듯 구경하였다.
“낄낄, 타인이 무너지는 꼴은 언제 봐도 즐겁구만.”
카잔이 즐겁게 살육현장을 관람하고 있을 때.
도주병들을 처리하러 나선 추격대가 돌아왔다.
“카잔 님, 도주병을 남김없이 처리했습니다.”
“수고했다. 너희들도 자리 잡고 구경하도록 해.”
“또 포로들로 장난을 치고 계셨군요.”
“불만인가?”
“아뇨, 이것 때문에 제가 카잔 님의 부대에 지원했잖습니까.”
“낄낄낄, 뭘 좀 아는군.”
“그런데 도주병을 처리하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동쪽 능선 너머의 붉은색 위험지대에서 계집들이 돌아다니더군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을 것 같은 보고에 카잔이 나머지 검의 검날을 혀로 핥았다.
“그거 좋군. 몇 명만 날 따라와라. 오랜만에 재미 좀 보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