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9 8-2. 착각은 민심을 싣고 =========================
이토록 기운을 흠뻑 써본 적이 언제던가.
숨을 고르던 로엘은 시험 삼아 명령을 내려 보았다.
“아래에 있는 주민들을 위로 올려놔.”
라이프트리가 변색된 나무팔을 아래로 뻗어 손바닥 위에 주민들을 태웠다.
손바닥 너비가 어찌나 넓은지 한 번에 약 200명의 인원을 옮길 수 있었다.
가고일의 바구니가 아닌 라이프트리의 손을 통해 올라온 뉴아츠 주민들은 하나 같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와아! 라이프트리가 다시 되살아났다!”
“마왕님이 우리를 위해 라이프트리를 되살려주셨어!”
“모두 마왕님을 찬양해라! 마왕님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라이프트리의 가지 위에 올라올 때마다 만세소리가 점점 더 우렁차졌다.
고막이 간지러울 정도의 함성 속에서 로엘은 문득 아래를 보게 되었다.
아래에서 눈에 띄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기에 시선이 저절로 아래로 향한 것이었다.
쿠구구구!
주민들을 모두 옮긴 라이프트리가 땅을 헤집고 뿌리를 지표면 바깥으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땅 속에 박아놓은 뿌리를 땅 위로 끄집어 올리고 있었다.
마치 늪에서 탈출하려고 몸을 비트는 사람처럼 말이다.
아래에서 뿌리를 끌어올리고 있건만 라이프트리의 가지 위는 흔들림 한 점 없이 평온했다.
나무기둥이 워낙에 굵어 가능한 일었다.
최고점 300미터는 분명 높은 높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라이프트리의 나무기둥은 굵었기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뿌리를 들어 올린 라이프트리는 이동할 수 있는 형태가 되었다.
원래 뿌리도 움직일 수 있는 구조였는데 땅의 양분을 흡수하느라 땅 속에 뿌리를 뻗고 있었던 거였다. 시체나무가 되면서 양분을 흡수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뿌리를 들어 올린 것이었다.
로엘은 아래로 향해있던 시선을 위로 올렸다.
‘이동이 가능한데다 위에서 살 수 있다라......’
나뭇가지마다 공터처럼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 위에 지은 집은 라이프트리의 나뭇가지에 기둥을 박아 넣었고, 경작지는 지상에서 퍼온 흙을 오랜 기간에 걸쳐 파낸 사각형 모양의 흠 사이에 깔아두어 안정감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라이프트리는 몸집이 큰 만큼 나뭇잎도 크고 질긴 편이었다. 죽은 후에도 금방 낙엽을 떨구지 않는 나무인지라 여전히 많은 나뭇잎이 남아있었다. 거대한 나뭇잎은 시체나무가 되면서 함께 변색하여 높은 강도를 지닌 천연 성벽이 되어주었다.
로엘은 라이프트리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타유아.”
“네, 부르셨어요?”
“렌던이랑 라이프트리 위의 면적을 비교하면 어디가 더 넓지?”
“글쎄요. 이용가능한 면적을 계산해봐야 알 것 같아요.”
“눈대중으로 봐도 이쪽이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나뭇가지 위를 전부 개발하면 렌던보다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잠깐만요. 설마 이 위에서 지내겠다고 말씀하려는 건 아니죠?”
“왜 아니겠어? 이거 하나면 위험지대 문제 전부 해결돼.”
라이프트리를 되살렸으니 뉴아츠의 위험지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 셈이었다.
그러나 로엘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라이프트리를 렌던 쪽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라이프트리와 주민을 통째로 옮겨버리면 뉴아츠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렌던 주변의 위험지대 3개를 라이프트리로 정리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타유아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여겼다.
“효율로 따지면 나쁘진 않네요. 그런데 여길 비우면 곧 위험지대 3회룰이 적용될 텐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기껏 받은 땅인데 3회룰로 다시 빼앗기는 건 아깝다 여겨 한 말이었다.
타유아와 달리 로엘은 전혀 아깝지 않다 여기고 있었다.
“활성화의 핵 하나 있고 없고에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어. 어차피 전쟁은 우리가 아니라 폭스와 로드리고가 하고 있으니까 상관없겠지.”
“뭐 렌던의 주력은 마왕님이시니까 상관없겠네요. 일단 주민들 의향을 물어볼게요.”
“그리 해줘. 가기 싫다는 걸 억지로 데려갈 순 없으니까.”
물어본다고는 했으나 주민들이 내놓을 대답은 뻔했다.
이미 로엘에게 매료된 뉴아츠 주민들은 아예 데려가 달라고 역으로 부탁해올 정도였다.
삶의 터전은 그대로 유지되는데다 앞으로 더욱 도시의 규모가 커질 텐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로엘은 라이프트리를 부려 동쪽으로 향했다.
“라이프, 렌던으로 가자.”
“그런데 왜 라이프라고 불러요?”
“라이프트리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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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던의 마왕 저택 안에선 스랄스와 굴란트가 마주 앉아 시체나무를 깎고 있었다.
까득까득
아저씨 두 명이서 마주 앉아 아디만티움 단검으로 시체나무를 깎는 풍경.
어딘지 모르게 애잔한 느낌이 흘러나오는 풍경이었다.
굴란트가 깎아 놓은 시체나무를 옆에 놓아두며 대뜸 말을 꺼냈다.
“스랄스. 뉴아츠 쪽에 태풍이 들이닥쳤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잘 도착하셨겠지.”
“마차가 날아갔으면 어떻게 하지?”
“타유아가 무거워서 날아갈 일 없어.”
“걱정 되니까 확인해보러 다녀올게.”
“꼼수 부리지 말고 할당량 채워.”
“쳇.”
아직 깎아야 할 시체나무가 한참 남아있었다.
굴란트는 자리에 도로 앉아 아직 깎지 않은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러면서 다시 대뜸 말을 꺼냈다.
“오래 앉아있으니까 엉덩이 아프지 않냐?”
“아플 엉덩이가 있어야지 아프던가 하지.”
“잠시 쉴까?”
“좀 진득하게 앉아서 작업하면 안 되겠나?”
“지겨워서 그렇지. 너는 벌써 마왕님이랑 출장 다녀왔고, 타유아는 지금 따라간 상황이잖아.”
“마왕님 명령으로 남았으면 맡은 일은 제대로 해야지.”
“끄응, 그건 그렇다만......”
아저씨 두 명이서 소득 없는 잡담을 이어가던 중 스랄스의 손이 멈췄다.
스랄스는 있지도 않은 귓바퀴에 손을 가져다대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소리는 무슨. 너나 얼른 작업 계속 해. 나 보고는 일하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이번에는 자기가 쉬고 앉았네.”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무슨 소리 들리는데?”
“아까부터 무슨 소리가 들.......”
드드드득!
핀잔을 주려던 굴란트가 손을 멈추었다.
정말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떤 거대한 존재가 몸을 끌고 있는 듯한 소리였다.
조용히 해야 겨우 감지할 수 있던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졌다.
거대한 무언가가 렌던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이다.
굴란트와 스랄스는 쥐고 있던 단검을 놓고 부리나케 바깥으로 뛰어갔다.
저택을 채 나서기도 전에 성벽 쪽의 마족병사 몇 명이 저택 안으로 들어오면서 두 마족과 마주쳤다.
마족병사들은 다급한 투로 그들이 본 것을 말했다.
“굴란트 님! 스랄스 님! 큰일입니다! 거대한 산이 렌던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산이 오고 있다고? 산에 발이라도 달렸다는 말이냐!”
“그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이, 일단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성벽으로 가시지요.”
굴란트와 스랄스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 성벽 위로 올라갔다.
병사의 말대로 거대한 산이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뒷산 크기의 커다란 무언가가 렌던을 향해 접근해오는 중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다가오는 것의 정체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스랄스는 산이 아니라 나무임을 알아차렸다.
“산이 아니라 나무로군. 저만한 크기의 나무는 뉴아츠의 라이프트리밖에 없어.”
“라이프트리가 원래 이동할 수 있는 나무였나?”
“전혀.”
“지금 움직이고 있잖아.”
“나도 모르니까 내게 묻지 말게.”
다가오던 라이프트리는 한참 후에야 렌던 성벽 앞까지 도달했다.
라이프트리의 압도적인 크기 앞에서 스랄스, 굴란트를 비롯한 렌던 주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렌던에 도착한 라이프트리는 렌던의 땅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곤 팔을 위로 뻗어 높은 나뭇가지 위에 있던 이를 성벽 위에 내려주었다.
라이프트리의 손을 타고 내려온 자는 다름 아닌 로엘이었다.
로엘은 멀뚱멀뚱 서있는 스랄스와 굴란트를 발견하곤 말을 붙였다.
“다녀왔어. 다들 표정이 왜 그래?”
스랄스가 라이프트리의 표면이 흰색인 것을 보곤 설마하는 마음에 말을 꺼냈다.
“설마 라이프트리를 시체나무로 만든 겁니까?”
“맞아. 시체나무로 변하니까 이동이 가능해지더라고. 그래서 통째로 데려왔어.”
“통째로라니......”
흑마법사라 시체술의 이론적인 부분을 잘 아는 스랄스다.
마을마다 하나씩은 있는 거목도 시체나무로 만드는데 상당한 마기가 필요하다.
거목 수준을 한참 넘어선 라이프트리는 얼마나 많은 마기가 필요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스랄스는 그랜드 마스터급이라는 말이 로엘을 얼마나 과소평가하는 단어인지 깨닫게 되었다.
‘전성기 아도로스 님보다 강한 정도가 아니야. 마검이 있던 시절과 비교해야 할지도 몰라.’
마왕의 전용 무기였던 마검.
그 마검을 쥔 아도로스는 용마전쟁 때 수많은 드래곤을 베어 넘겼었다.
아도로스가 무리하게 다른 차원과 마계를 융합하려다가 마검이 소멸되어 지금은 없는 물건이었다.
다만 비교를 한다면 마검이 있던 시절의 아도로스.
그러니까 에이션트 드래곤과 비등한 힘을 갖췄던 그 시절과 비교를 해야 할 것이다.
감탄에 젖어 있는 스랄스는 로엘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스랄스. 제대로 듣고 있어?”
“네? 아, 네! 말씀하십시오.”
“라이프트리 기둥 위쪽에 저택을 지을만한 넓은 구멍이 있었어. 거기에 새 보금자리를 만들고 거점을 옮길까 해.”
“훌륭한 판단이십니다. 이동하는 요새로서 라이프트리를 이용하자는 말씀이시군요.”
“상어섬 건과 더불어 이주 건도 진행해주지 않겠어?”
“물론입니다. 몸이 부셔지는 한이 있더라도 명령을 완수하겠습니다. 부서질 몸은 없지만요.”
로엘은 마왕군 간부들을 이끌고 저택으로 돌아가 세부적인 사항을 논하였다.
자금도 풍족하기에 마왕 저택 이주는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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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계의 하니온 왕국.
그 수도에 위치한 하니온 왕궁에 사신이 찾아들었다.
브리니아 왕국의 사신이었다.
울크는 브리니아 왕국이 은밀하게 할 이야기가 있음을 알고 몇몇 중역들만 데리고 사신을 맞이했다.
브리니아 왕국의 사신은 휑한 본궁 안에서 울크를 향해 예를 갖췄다.
“하니온의 국왕께 인사 올립니다. 영접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울크는 단상 위의 왕좌에 앉아 적대적인 눈빛으로 사신을 내려다보았다.
“본국과 브리니아 왕국 사이는 틀어질대로 틀어졌을 터. 이제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냐?”
“지난날의 일을 돌이켜 보면 노여워하시는 게 당연하나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브리니아의 하니온 침공은 어디까지나 선왕의 의지였으며 새로 즉위하신 스이켄 국왕께서는 하니온 왕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어림없는 소리! 이미 하니온 왕국은 빌로스 제국과 함께 그대의 나라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끝을 보기 전에 화해는 있을 수 없느니라!”
“물론 맨입으로 화해하자는 건 아닙니다. 브리니아 동북쪽의 섬 3개와 항구도시 하나를 내드리겠습니다. 거기에 전쟁보상금으로 20만 골드를 5년에 걸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브리니아 왕국이 하니온 왕국을 포섭하기 위해 작정하고 나온 모양이었다.
하니온 왕국 입장에선 동남쪽에 위치한 도시 및 영해 일부를 넘겨주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노기를 분출하던 울크가 경청하는 자세로 돌아섰다.
그를 확인한 사신은 제안이 먹혀들고 있음을 느끼곤 말을 이어나갔다.
“들은 바에 의하면 빌로스 제국은 하니온 왕국을 삼키려 한다 들었습니다. 그리할 바엔 차라리 브리니아와 손을 잡고 빌로스 제국을 치지 않겠습니까? 스이켄 전하께선 함께 하자는 증표로 레이아 공주님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으십니다.”
“레이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