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8 8-2. 착각은 민심을 싣고 =========================
뉴아츠에 라이프트리가 건재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뉴아츠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얼마 전, 라이프트리가 수명이 다해 죽어버렸고 라이프트리 위에 존재하는 도시인 뉴아츠는 고립되고 말았다.
라이프트리가 죽었다곤 하나 나뭇가지 위에 일구어놓은 경작지와 집은 건재했기에 먹고 사는데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삶의 터전이라 해도 볼일이 없어 내려가지 않는 것과 위험해서 내려갈 수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뉴아츠의 주민들은 달마다 마물들이 라이프트리 위로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살아야만 했다.
정작 병력을 파견해야 할 로드리고는 고르오스의 땅을 견제하기 위해 병력을 보낼 수 없었다.
불안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지배층에 대한 분노로 변했고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사정을 들은 로엘은 뉴아츠 방문이 순탄치 않음을 예감했다.
“로드리고 때부터 생겨난 분노가 그대로 내게 옮겨져 있겠군.”
“해결방법은 병력을 파견하는 것밖에 없어요. 하지만 렌던도 병력을 나눌 여력은 못 되죠.”
“그리 따지면 렌던 주민들은 정말 인내심 하난 끝내주는군. 몇 년 동안 계속 위험지대를 정지시키지 못했었잖아.”
“렌던의 주민들이야 원래부터 속편한 자들뿐이었거든요. 저도 그렇고 스랄스나 굴란트도 그렇고 괜히 렌던을 최후의 보루로 선택한 게 아니에요.”
“일단 뉴아츠로 가보는 수밖에 없겠군. 현지에 가면 뭐라도 방법이 나오지 않겠어?”
미리 걱정해서 뭐하겠는가.
가서 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직접 부딪쳐 보는 게 상책이다.
마차가 산을 벗어나 보라빛깔 땅으로 들어섰다.
벌판 멀찍한 곳에 산 하나 크기의 거대한 나무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수명이 다해 생기를 잃은 라이프트리였다.
///
막상 로엘이 라이프트리에 도착하자 열렬한 환영 인파가 마중 나와 있었다.
라이프트리 위에 살던 뉴아츠 주민들이 아래로 내려와 꽃잎을 뿌려대며 로엘을 환영하였다.
“뉴아츠는 마왕님을 환영합니다!”
“마왕님 만세! 마왕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차 안에 앉아 있던 로엘과 타유아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분명 여기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뉴아츠 주민들의 분노 어린 눈초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환영 인파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타유아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물음표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듣던 거랑 너무 다르네. 왜 이러지? 다들 무슨 생각이지?”
의아해하는 타유아와 달리 로엘은 금방 현재 상황에 적응했다.
“따로 방법을 취할 필요가 없으니 잘된 거지 뭐. 가만히 있지 말고 화답이나 해주자.”
로엘은 차창을 열고 창틀에 기대어 환한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그러자 서큐버스 퀸의 가호가 발동하면서 뉴아츠 주민들 중 여성진이 목청이 찢어져라 로엘을 연호했다.
“꺄악! 마왕님이 나한테 미소를 지어주셨어!”
“지지배야! 나 보고 웃으신 거거든?”
“무서운 분이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너무 멋지시다.”
여성진의 환호가 더해지면서 환영 인파에 열기가 한층 더 높아졌다.
타유아는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반응을 더 끌어내는 로엘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분은 몸 안이 배짱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 아닐까? 당황하긴 커녕 반응을 더 끌어내버리네.’
로엘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뉴아츠가 로엘을 환영하게 된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뉴아츠 북쪽에서 오던 마족 상인들이 태풍을 피해 산골 마을이 있는 산을 경유해서 오다가 클로버 도적단의 시신이 물에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했다.
마족 상인들은 로엘이 뉴아츠로 향한다는 정보를 미리 들어 알고 있었기에 로엘과 관련이 있는 일이 아닐까 여겼다.
그래서 그걸 뉴아츠에 전했더니 주민들은 이리 받아들였다.
‘신임 마왕이 오는 길에 클로버 도적단을 토벌하고 있다!’
‘드디어 그 죽일 놈들이 사라지는 구나!’
‘신임 마왕은 로드리고와는 달라! 방치해두지 않고 백성으로서 다스려주실 생각이신 가봐!’
‘뭣들 해! 그런 훌륭한 분을 맞이하러 가자! 마침 비활성화 기간이니까 라이프트리 아래로 내려가자고!’
주민들이 환영 인파를 이룬 직후에 로엘이 도착한 것이었다.
로엘은 환영인사를 받으며 라이프트리 아래에 도달했다.
코앞에서 본 라이프트리는 산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기둥은 한 바퀴를 돌려면 하루를 꼬박 걸어야 할 정도였으며, 나뭇가지는 가지마다 집과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죽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거뜬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로엘은 마차에서 내려 민둥맨둥한 나무기둥을 매만졌다.
“여긴 어떻게 올라가는 거래?”
환영 인파에 섞여 있던 가고일 몇 마리가 걸어 나오면서 인사를 올렸다.
“뉴아츠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왕님.”
“위로 올라가고 싶은데 어떻게 올라가지?”
“라이프트리가 살아있을 적만 하더라도 라이프트리의 손이 우리를 위로 운반해줬었습니다.”
가고일들이 힘없이 늘어져 있는 기다란 나뭇가지 두 개를 가리켰다.
라이프트리 나무기둥 중간 부분에 10미터짜리 나뭇가지가 축 늘어져 있었다. 나뭇가지 끝부분에 다섯 개의 기다란 나뭇가지가 돋아나 있어 인간의 팔과 흡사했다.
실제로 라이프트리가 살아있을 적만 하더라도 두 개의 팔을 이용해 이 부근 위험지대의 마물들을 쓸어버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위아래로 이동시켜주고, 물이 부족하면 이슬 맺힌 잎사귀를 털어 경작지에 물을 보급해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라이프트리가 죽은 지금은 가고일들이 짚으로 짠 거대 바구니에 사람을 태워 이동시켜주고 있었다.
로엘과 타유아는 거대 바구니를 타고 라이프트리 위로 올라갔다.
바구니의 각 모서리에는 밧줄이 달려 있었는데 가고일들이 그 밧줄을 팔에 휘감아 위를 향해 날아오르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서른 명은 족히 탈 수 있을 법한 바구니에 로엘과 타유아만 타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마왕인 로엘을 위해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구니 안에서 타유아가 로엘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속삭였다.
“마왕님이 가고일들이랑 얘기 나눌 때 따로 정보를 수집해봤어요.”
“뭐 색다른 정보라도 있었어?”
“그게 말이죠. 이 근방에 악명 높은 도적단이 하나 있었나 봐요. 오늘 새벽에 그 도적단의 시체가 발견됐는데 마왕님이 토벌한 걸로 착각한 모양이에요.”
“도적단은 만난 적이 없는데 뭔 소리래.”
“그러니까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잖아요. 아무튼 쓸데없이 기대치가 높아진 것 같은데 어쩌죠?”
뉴아츠 주민 전원이 로엘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로드리고와 달리 로엘은 뉴아츠를 방치해두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타유아는 렌던도 병력이 부족해 당장은 뉴아츠를 지원하지 못할 걸 알기에 걱정부터 하였다.
그러나 로엘은 뉴아츠에 도착하자마자 방책을 찾아낸 후였다.
“방법은 있어. 그것도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지.”
“벌써 방법을 찾아내셨어요? 무슨 방법인데요?”
“보고나 있으라고. 올라가서 보여줄 테니까.”
로엘은 바구니를 타고 올라가며 자신의 마나량을 확인했다.
마계에 도착한 후에도 지속흡수능력은 유지되고 있어서 계속 마나량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카넨, 베나티아 뿐만 아니라 레이아 쪽에서도 최근 들어오는 마냐량이 많아지고 있었다. 레이아도 급성장 중이라는 걸 의미했다.
마계에 도착한 직후에 가지고 있던 마나량이 700년 치였는데 지금은 850년 치까지 늘어나 있었다.
로엘을 실은 바구니는 라이프트리에서 가장 낮은 나뭇가지 위에 안착했다.
가장 낮은 나뭇가지라도 그 높이가 20미터에 달했다.
최고점이 300미터라고 하니 어지간한 마을 뒷산급이라 할 수 있었다.
가고일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로엘에게 말을 붙였다.
“마왕님. 대뜸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앞으로 뉴아츠를 어떻게 하실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뉴아츠는 계속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저희를 마물의 위협에서 구해주십시오.”
“부탁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
“오오! 그렇다면 병력은 얼마나 보내실 예정입니까?”
“병력은 보내지 않아.”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마물의 위협을 걷어내려면 병력을 지원하는 방법밖에 없다.
병력 지원 없이 마물의 위협을 어찌 걷어낸단 말인가.
뉴아츠 주민 입장에선 로엘이 장난을 치는 걸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로엘은 확신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이토록 거대한 나무가, 그것도 ‘죽은’ 나무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로엘은 라이프트리의 죽은 모습을 본 순간 시체나무부터 떠올렸다.
일반적으로 시체 나무는 언데드가 아닌 재료로 취급되는 편이었다.
동물과 달리 의사소통이 불가능한데다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라이프트리는 다르다.
주민을 운반해줄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움직이기도 한다.
그런 라이프트리에 시체술을 건다면?
시체 나무의 특징을 가진 거대한 언데드 트리가 완성되는 셈이다.
‘문제는 소모되는 마기량인데......’
850년 치의 마기량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허나 라이프트리의 덩치를 감안하면 850년 치로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로엘은 몸 안팎을 드나들고 있는 그랜드 마스터의 마나를 모두 마기로 전환하였다.
850년 치의 막대한 마나가 마기로 전환되면서 로엘의 몸 주변에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로엘은 피어오르는 마기를 손바닥에 집중하며 타유아와 가고일 무리를 물렸다.
“바로 작업에 들어갈 거니까 다들 물러나 있어.”
타유아가 의아해 하는 가고일 무리를 재촉하여 물러나게 하였다.
그녀 역시 로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해 듣지 못했지만 그의 행동에서 의도를 읽어냈다.
“전원 마왕님 명령에 따르도록 해. 괜히 가까이 있다가 다치지 말고.”
‘시체술을 쓰시려는 게 분명해. 그런데 이 큰 나무를 시체 나무로 변환시키는 게 가능할까? 아무리 마왕님이라도 이만한 덩치는 무리일 텐데.’
타유아는 기대 반 걱정 반의 감정을 품은 채로 가만히 로엘을 지켜보았다.
주변이 비워진 것을 확인한 로엘은 손바닥을 나뭇가지에 대었다.
로엘의 이마에서 오랜만에 구슬땀이 맺혔다.
850년 치 마기를 응축시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되는데 시체술까지 써야 한다.
나무에 시체술을 쓰는 건 동물의 시체에 쓰는 것보다 훨씬 섬세한 마기운용 센스가 필요하다.
로엘은 간만에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땅의 은총을 받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은 거목이여. 검은 기운을 먹고 하얀 껍질을 입어 그 굳건한 뿌리와 가지를 나를 위해 사용하라.”
시체술이 발동되면서 로엘의 마기가 메마른 나무껍질 사이로 스며들었다.
무려 850년 치의 마기를 쏟아부었건만 죽은 라이프트리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10초, 20초, 30초... 1분
슬슬 실패 했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라이프트리 아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너무 멀어서 무슨 소리인지 정확하게 구분이 안 가는 가운데 가고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맙소사! 라이프트리 기둥이 변색되고 있어!”
“시체나무가 되고 있잖아! 마왕님이 라이프트리에 시체술을 거셨어!”
라이프트리 뿌리부터 시작된 언데드화는 기둥을 타고 나뭇가지가 있는 부분까지 올라왔다.
곧 로엘이 밟고 있는 나뭇가지를 비롯하여 최고점까지 모두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시체술이 성공한 것이다.
더불어 라이프트리의 기둥 중앙에서 인자한 표정의 얼굴이 생겨났다.
죽었을 때 눈과 입을 닫은 탓에 나무 주름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얼굴이 있었던 거다.
로엘은 기분 좋은 달성감을 느끼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