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177화 (177/219)

00177 8-2. 착각은 민심을 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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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도적단은 로엘에게 독버섯의 마비효과가 퍼지길 기대하며 대기 중이었다.

붉은 달이 지고 푸른 달이 뜨자 오후 때보다 비바람의 기세가 약해졌다.

바람은 잠시 멎었지만 비는 여전히 장대비였다.

클로버 도적단은 바람이 멎었겠다 시간을 두고 번갈아가며 순찰을 돌았다.

로드리고의 땅에서 토벌대가 올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로엘을 지키기 위한 호위병 후발대가 올 수도 있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풍 속을 뚫으며 올 자는 없기 때문에 순찰을 나갔다가 돌아온 자마다 투덜거렸다.

“태풍 속에서 오면 누가 온다고. 왜 자꾸 순찰을 돌라고 하는지 모르겠네.”

“으으우, 찝찝해라. 바람 그쳐도 젖는 건 똑같구만.”

와이번의 뼈로 만든 검을 손질하던 트부기가 성질을 내듯 핀잔을 주었다.

“순찰 제대로 돌아 이것들아. 무려 10만 샤온이 걸린 일이라고.”

“예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두목.”

“대답 똑바로 안 해? 이것들이 기가 빠져가지곤.”

트부기가 한 번 더 성질을 내자 단원들이 흠칫하며 똑바로 대답하였다.

다음 순번인 단원 두 명이 그나마 덜 젖은 우비와 모자를 걸치며 바깥으로 나갔다.

집 안의 공기가 이완되어가는 와중에 순찰 나간 단원들이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왔다.

“두목! 웬 병사들이 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중입니다!”

“그것 봐라. 내 말 안 듣고 가만히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잖냐. 어디서 온 놈들이었어?”

“표식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일단 동쪽 능선을 타는 걸로 봐선 동쪽에서 온 것 같습니다.”

“동쪽이면 렌던 밖에 없잖아. 마왕 호위병 후발대겠군.”

“500명 정도 되던데 어떻게 할까요?”

“녀석들이 합류하면 10만 샤온이고 뭐고 없어. 독버섯 먹인 걸 들킨 순간 우리 모두 목이 날아갈 거라고.”

“으엑! 그럼 당장 도망치죠. 상대는 500명이고 우리는 50명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이깁니까?”

“멍청한 것들아 10만 샤온을 놔두고 도망치긴 어딜 도망쳐? 다 방법이 있으니까 전부 무기 챙겨서 날 따라와.”

아직 로엘은 마을에 있었고 그를 이용하면 마왕군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었다.

제 아무리 병력 차이가 10배라도 인질을 잡고 있는 이상 꿀릴 게 없다 이거다.

로엘에게 독버섯 효과가 퍼질 때까지 인질로 잡고 있는 척을 할 생각이었다. 시간만 끌 수 있다면 정말로 로엘을 인질로 잡은 형태가 되어 10만 샤온을 뜯어낼 수 있을 거다.

트부기는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10만 샤온을 포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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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라!”

능선을 타고 오르던 메멘터의 앞에 50명의 집단이 나타났다.

50명의 집단은 능선 곳곳에 퍼져 있는 바위와 나무를 엄폐물 삼아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메멘터는 호의를 품은 집단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며 머리털에 맺힌 물기를 털어냈다.

“네놈들은 누구냐. 빗물에 핏물을 섞어주기 전에 길을 터라.”

“그리 험하게 말해도 될까? 너희들의 주인을 인질로 잡고 있다.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너희들의 주인이 내일 붉은 달을 구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메멘터의 주인은 고르오스다.

고르오스는 지금 마계 대륙 중부지방에서 본대를 이끌고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나타난 이들의 진형이나 무기의 질을 살펴보니 일개 도적단으로 추정되었다.

태풍 속에서 화살로 위협하는 것부터가 군사훈련을 받지 못한 자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메멘터는 기둥에 삼베천을 감아놓은 기다란 해머를 꺼내들었다.

“시정잡배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군. 모조리 머리를 뭉개주마.”

반면 트부기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마왕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데도 이들은 어찌 이리도 당당한 건가.

당장이라도 해머를 휘두를 것 같은 기세에 트부기가 다급히 인질의 존재를 강조했다.

“이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도 못한 것들아! 개도 주인은 알아본단 말이다! 너희들 주인이라고? 주인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아까부터 자꾸 주인이라 지껄이는데 누굴 말하는 것이냐.”

“누구긴 누구야? 렌던의 마왕 말이다!”

이 정도로 확실하게 말하면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왕을 언급하자마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시정잡배들을 대하듯 설렁설렁 말하던 메멘터가 해머를 불끈 쥐며 정색했다.

메멘터의 해머에 마나 익스퍼트급임을 증명하는 마나 해머가 생겨났다.

“애송아, 지금 마왕이라 했더냐?”

이제야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한 트부기가 검을 뽑아들었다.

반사적으로 무기를 뽑긴 했는데 메멘터의 기세에 눌려 검을 쥔 손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네, 네 놈들은 누구냐? 마왕군이 아니었더냐?”

“크큭, 마왕이 이 앞에 있다 이거지? 처음부터 대어를 낚게 되었구나.”

상대가 마왕군이 아닌 이상 마왕을 인질로 잡았다는 허세는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 눈에 봐도 메멘터는 상당한 실력자인데다 병력 차이는 10배나 난다.

트부기는 궁여지책으로 한 가지 제안을 날렸다.

“잠깐 기다려. 너희가 어디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왕을 노리고 있다면 좋은 제안을 하지.”

마나 해머를 휘두르려던 메멘터는 움직임을 멈추며 귀를 열었다.

“무슨 제안인지 들어는 주마. 읊어봐라.”

“마왕은 그랜드 마스터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들었어. 너희들이 강하다 한들 마왕에게 이길 수 있을까?”

“흥, 웃기는 소리! 일개 도적 떼 따위의 인질이 되는 마왕이잖느냐. 그랜드 마스터라는 것도 허풍일 터!”

“미안하지만 너희가 마왕군인 줄 알고 허세를 부린 거였어.”

“뭐라고? 이놈이!”

“워워, 진정해. 어차피 너희들에겐 상관없는 얘기였잖아. 일단 내 얘기를 들어보라고.”

트부기는 로엘을 행동불능으로 만들기 위해 음식에 독을 섞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더하여 독버섯의 마비효과가 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였다.

트부기의 말을 들은 메멘터가 공격태세를 풀었다.

“확실히 좋은 제안이군. 우리로서도 피해 없이 마왕을 처리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지. 그래서 네놈이 원하는 건 무엇이냐.”

“도적단에게 필요한 게 달리 따로 있겠나?”

“돈인가. 얼마를 원하지?”

“10만 샤온.”

“훗, 일이 성공하면 그 이상을 주마. 너희들의 마을로 안내해라. 마왕 놈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바로 처리하도록 하지.”

“성질 급한 형씨로군. 지금 들어갔다가 마왕의 눈에 띄면 어쩌려고? 멀지 않은 곳에 예전에 쓰던 산채가 있으니 거기서 대기하라고. 그리로 안내할 테니 따라와.”

즉석에서 도적과 기습 부대의 협력관계가 맺어졌다.

허나 메멘터는 딱히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도적 떼 따위에게 10만 샤온이나 지불할까 보냐. 일만 끝나면 전부 처리해주마.’

트부기는 능선 위가 아닌 옆으로 빙둘러 이동하여 계곡으로 들어갔다.

산골 마을 부근에서 산채로 가려면 계곡의 좁은 길을 통과해야 했다.

트부기를 따라 걷던 메멘터는 문득 수상하단 느낌을 받았다.

어느샌가 트부기를 제외한 도적단 단원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메멘터는 등에 걸친 해머 손잡이를 잡으며 적의를 드러냈다.

“네놈의 부하들은 어디 갔느냐?”

앞서 걷던 트부기가 별안간 높은 바위 위로 펄쩍 뛰어 올라가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트부기의 입가에는 비릿한 조소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어이, 형씨. 우리를 단순한 도적 떼로 생각하면 곤란하지.”

“뭐?”

트부기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의 신호에 맞춰 사라졌던 단원들이 나타났다.

단원들이 나타난 곳은 좁은 길 양쪽으로 솟아나 있는 절벽 위였다.

절벽 위에서 단원들이 바위를 굴려 아래로 떨어뜨렸다.

구르르르! 쿵!

예전부터 클로버 도적단은 로드리고의 토벌대를 상대하기 위해 산 곳곳에 함정을 설치해뒀었다.

절벽 위의 바위도 그 중 하나였다.

트부기는 메멘터의 기습 부대를 안내하기로 한 후에 몰래 단원들에게 새로운 작전을 전했고, 그를 실행하기 위해 한두 명씩 몰래 이탈하여 절벽 위로 이동했던 것이다.

절벽 위에서 바위가 잇따라 굴러 떨어지면서 500명의 병사를 깔아뭉갰다.

병력의 절반 이상이 대응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바위에 깔려 비명횡사했다.

“끄아악!”

“크악!”

메멘터의 머리 위에도 집채만 한 바위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메멘터는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마나 해머를 휘둘렀다.

마나 해머가 바위 밑부분 정중앙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콰앙!

바위에 균열이 생기면서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메멘터는 해머를 위로 들어 쏟아지는 파편을 튕겨내곤 분노를 표출했다.

“이놈들! 죄다 죽여 버리겠다!”

함정으로 인해 얼추 숫자가 비슷해진 상태에서 두 집단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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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생각보다 태풍이 빨리 지나가면서 하늘이 개이고 붉은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로엘과 타유아는 바로 떠나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아침식사를 했다.

로엘은 식탁에 앉아 감자빵을 베어 물며 타유아에게도 음식을 권했다.

“바로 떠날 건데 한 술 뜨지 그래?”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타유아는 퀭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전 됐어요. 식욕이 없네요.”

“어제 일 때문이라면 난 전혀 신경 안 쓰고 있어.”

“으으, 기껏 잊은 참인데......”

“정말 안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예요!”

타유아가 부끄러움에 몸부림치며 바깥으로 나갔다.

로엘은 감자빵을 한 입 더 베어 물며 중얼거렸다.

“우물우물, 생각보다 맛있네.”

어젯밤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준 트부기에게 고맙단 말을 전하려 했으나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이상하게도 트부기뿐만 아니라 마을 안에 마족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로엘과 타유아는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갔나보다 싶어 고맙다는 쪽지를 남겨둔 채로 마차에 올라탔다.

로엘과 타유아를 태운 마차가 올라온 방향과 반대쪽인 능선을 타며 뉴아츠로 향했다.

반대편 능선을 타고 산을 내려가던 중.

저 멀리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이 바위 더미에 막혀 있는 것이 보였다.

로엘은 감흥 없는 투로 중얼거렸다.

“산사태라도 일어났나보군.”

“새벽에 꽤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어디서 나는 소린가 했는데 여기서 난 소리였나 보네요.”

“마을을 덮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구만.”

“어라? 저기 계곡 사이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요?”

타유아가 차창을 열어 계곡을 향해 검지를 치켜들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옅은 안개 사이로 마족 실루엣 몇 개가 보였다.

“다들 어디 갔나 했더니 산사태 때문에 막힌 길을 뚫고 있었나 보네.”

로엘은 차창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어 팔을 높이 들었다.

“어이! 트부기! 트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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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전투로 인해 기습 부대의 병력은 절반 이하로 줄어있었다.

500명이었던 병력은 180명만 남은 상태였다.

메멘터가 압도적인 힘으로 트부기를 비롯한 도적단 단원 일부를 뭉개지 않았다면 피해가 더 커졌을 거다.

메멘터는 일개 도적단 따위에게 병력을 이만큼이나 소진한 걸 치욕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 치욕을 만회하려면 반드시 로엘의 목을 따야만 했다.

그래서 지친 병사들을 재촉하여 무기를 들게 하였다.

“다들 움직여라. 당장 마을로 가서 마왕의 목을 따야만 한다.”

트부기가 독버섯을 먹였다고 했으니 지금쯤이면 마비효과가 퍼져있을 거다.

그런데 멀리서 트부기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옅은 안개 너머의 능선에서 마차를 탄 이가 트부기를 부르는 게 아닌가.

마차 위에 달려 있는 마왕군의 깃발로 보건데 마왕이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메멘터는 화들짝 놀라 들고 있는 해머를 놓칠 뻔했다.

“분명 마왕에게 독을 먹였다고 했거늘.”

그 순간 메멘터의 머릿속에 죽은 트부기가 했던 말이 스쳐지나갔다.

‘우리를 단순한 도적 떼로 생각하면 곤란하지.’

그 말은 도적 떼가 아니라 도적 떼인 척한 마왕군이었단 말인가.

즉, 마왕은 기습 부대가 올 것을 예상하고 도적 떼를 가장한 부대를 준비시켜놓은 셈이었다.

애당초 마을에 마왕은 없었고, 오늘 뒤늦게 마왕이 도착하여 상황을 보러 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마왕이 마을에 있었다면 마왕군이 기습을 할 때 가세하여 메멘터의 목을 쳤을 테니까.

지금도 트부기가 기습 부대를 처리했다 생각해서 트부기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메멘터는 로엘의 무서움에 몸서리를 쳤다.

“무서운 놈. 기습 부대의 도착을 알고 미리 함정을 파놓았단 말인가.”

“메멘터 대장, 마왕이 당장이라도 이곳에 올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죠?”

“크윽, 지금 상황에서 마왕을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다. 당장 해안으로 후퇴해라. 적어도 배만큼은 절대로 넘겨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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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바깥으로 손을 흔들던 로엘은 계곡의 마족들이 바쁘게 물러나는 것을 확인하였다.

메아리가 칠 정도로 크게 외쳤다.

분명 로엘의 목소리가 전달되었을 텐데도 마족들은 물러나기 바빴다.

로엘은 마차 안으로 몸을 들여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대접해서 영광이라고 하더니 사실은 내가 무서웠던 걸까?”

“원래 이쪽은 로드리고의 땅에 속했던 곳이니까 그럴 수도 있죠. 현지인들에게 새 지배자는 익숙하지 않은 존재니까요.”

“뉴아츠의 주민들도 비슷한 반응이려나.”

“뉴아츠는 훨씬 적대적일 수도 있어요. 로드리고가 방치해둔 것 때문에 지배층에 대한 반감이 심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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