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5 8-2. 착각은 민심을 싣고 =========================
8-2. 착각은 민심을 싣고
렌던으로 돌아온 로엘은 마왕군 간부들에게 상어섬에서 얻은 성과를 전해주었다.
굴란트와 타유아는 성과를 전해 듣자마자 입이 마르도록 로엘을 찬양했다.
“역시 마왕님이십니다. 폭스는 손도 못 대던 리바이어던 무리를 복종시키다니 미개한 몬스터도 마왕님의 위엄을 알아보는군요.”
“바다와 육지를 나누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곳에 위엄이 닿으시네요. 항상 마왕님을 섬길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로엘은 돌아오자마자 칭찬 일색인 두 마족이 수상했다.
의자 팔걸이에 턱을 괴고 앉아 굴란트와 타유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두 마족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무엇에 대한 기대인지는 뻔했다.
조만간 뉴아츠로 떠날 터인데 거기에 자신이 따라가고 싶은 것이다.
유력한 후보인 스랄스가 상어섬 관련 업무를 처리해야 해서 못 따라가기에 이번에야 말로 자신이 따라가려고 미리 판을 깔아두는 것이었다.
로엘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익살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뉴아츠에 누가 갈지 정하지 않았군. 누가 갈래?”
굴란트와 타유아는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이번 일에는 제가 적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요! 절 데려가주세요! 뉴아츠에 있는 위험지대 마물에겐 제 능력이 더 효과적이에요!”
“한 명이면 충분한데 지원자는 두 명이군. 어느 한 쪽만 데려가면 다른 한 쪽이 섭섭해 할 테니 아예 데킬라를 데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일부러 데킬라를 데려가려는 척하며 두 마족을 자극해보았다.
그러자 굴란트와 타유아가 억장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마구 휘저었다.
“데킬라는 안 됩니다. 발 냄새가 심해서 마차 안에 같이 있으면 마왕님께 폐를 끼칠 겁니다.”
“오랫동안 싸우지 않아서 폼이 많이 떨어졌을 거예요. 약골 아저씨라서 도움이 안 될 게 분명해요.”
평소 으르렁거리기만 하던 두 마족이 일단 제3자는 밀어내고보자는 식으로 합심하여 호박씨를 깠다.
로엘은 웃으면서 굴란트와 타유아가 번갈아가며 펄쩍펄쩍 뛰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아까부터 굴란트와 타유아 뒤에 서있는 데킬라와 함께 말이다.
식사 시간을 알리러 온 데킬라는 고양이 수염이 크게 휠 정도로 입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굴란트와 타유아의 어깨에 각각 손을 올리며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밌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나도 껴도 될까?”
“허억!”
“히익!”
굴란트와 타유아는 어깨를 크게 들썩거리며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두 마족은 고장난 마리오네트마냥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이내 곧 웃고 있는 데킬라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굴란트와 타유아의 목덜미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데, 데, 데킬라.”
“저, 저,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난 그냥 실언한 거야. 미안!”
“어? 이 배신자! 혼자만 살려고!”
“데킬라는 거짓말하면 안 봐준단 말이야!”
데킬라는 두 마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자신의 권한을 십분 활용했다.
“오늘 저녁식사 메뉴는 기대해도 좋아.”
두 마족은 데킬라가 건강식이란 이름의 미각파괴메뉴를 만들 것을 예감하곤 울상을 지었다.
너무 장난친 감이 있기에 이쯤에서 로엘이 말을 꺼냈다.
“뉴아츠로 갈 땐 타유아를 데리고 가겠어. 굴란트 넌 남아있도록 해.”
굴란트와 타유아 사이에 희비가 교차했다.
“감사합니다, 마왕님. 얼레리꼴레리~ 집이나 지키세요.”
“또 남아야 합니까?”
“조만간 스랄스가 시체나무를 구해서 뼈 모양으로 깎을 예정이야. 마기를 부여한 아디만티움 검으로 다듬어야 된다더라고. 단순 마기량은 네가 더 많으니까 남아서 도와줘. 작업이 빨리 끝날수록 자금수급이 빨라지니까.”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남아야 마땅합니다만......”
“불만 있어?”
“아뇨. 혹시 저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일 만드시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어?”
굴란트는 묘한 기분에 휩싸이면서도 로엘의 명령에 따르겠다 대답하였다.
여전히 로엘의 얼굴에는 익살스런 미소가 남아있었다.
아침 브리핑을 마친 로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타유아에게 명령을 내렸다.
“타유아.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니까 마차 점검해두고 데려갈 병사들 뽑아둬.”
“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
베네타 남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클레이모어 대묘지.
2만의 병력이 대묘지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고르오스가 이끄는 고르오스 군 본대였다.
고르오스 본대의 선두에는 9개의 머리를 가진 뱀이 움직이는 중이었다.
히드라라 불리는 뱀의 중앙 머리 위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의 외견은 드래곤을 축소시켜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마계의 용족이라 불리는 드래고나 일족의 수장이자 마계 7기둥 서열 1위 고르오스였다.
보랏빛 비늘이 덮여 있는 몸, 사람 몸통만한 크기에 근육이 꽉 차있는 팔뚝과 허벅지, 접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송아지 한 마리는 덮을 수 있을 법한 크기의 날개, 녹색눈과 날카로운 이빨을 지니고 있었다.
육체 타입이며 얼마 전까지는 마나 마스터급이었으나 현재는 그랜드 마스터급의 힘을 지닌 자였다.
히드라에 타있는 고르오스에게 박쥐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고르오스는 얼기설기 얽힌 이빨 사이로 굵직한 목소리를 내었다.
“페네르치. 양측의 움직임을 보고해라.”
날아들던 박쥐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며 페네르치가 되었다.
페네르치는 두 손을 모으며 지금껏 수집한 정보를 정리하여 보고했다.
“로드리고는 2만의 본대를 이끌고 남서쪽 경계를 향해 북상 중입니다. 선봉 라이트닝 부대는는 이미 경계를 넘어 서쪽 해안을 따라 이동 중인 걸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폭스는 1만 5천의 본대를 이끌고 남동쪽 경계 앞에서 대기 중입니다. 선봉 데스나이트 부대는 노이즈 산맥을 타고 움직이고 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고르오스는 보고를 듣자마자 입을 쩌억 벌리며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아폴로! 카잔!”
고르오스의 호출에 진영 안에서 두 장수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아폴로는 온 몸이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사내였다. 하체가 놀로 이루어져 있고 상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체의 앞부분은 놀의 머리가 그대로 달려 있고, 하체 뒷부분에 상체가 솟은 형태였다.
카잔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눈동자 전체가 유백색이었으며 양허리에 두 개의 검을 차고 있었다.
두 장수는 고르오스의 히드라에 올라타며 두 손을 모았다.
“부르셨습니까.”
“부르셨습니까.”
“아폴로, 서쪽 해안에서 로드리고의 라이트닝 부대가 올라오고 있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병력은 원하는 만큼 데려가라.”
“2천이면 충분합니다.”
“카잔, 폭스의 데스나이트 부대가 노이즈 산맥을 타고 올라오는 중이다.”
“전 1500이면 됩니다.”
“용의 깃발 아래서 패배는 곧 죽음이니 반드시 승전보를 들고 오도록.”
“네!”
아폴로와 카잔이 물러난 후에 페네르치가 입을 열었다.
“둘 다 전쟁은 처음일 텐데 너무 호기롭게 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급한 병력의 2배를 붙여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놔두어라. 본인이 내뱉은 말의 무게를 아는 놈이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슬슬 기습 부대가 서쪽 바다를 건너 로드리고의 땅 후방에 도착했을 겁니다.”
고르오스의 군대는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배를 몇 척 가지고 있었다.
페네르치는 그 배를 이용해 500명의 소수정예 부대를 서쪽 바다를 통해 우회시켜 로드리고의 땅 후방에 보낸 상태였다.
로드리고의 거점을 친다면 로드리고도 어쩔 수 없이 병력의 일부를 뒤로 물릴 수밖에 없다.
기습 작전은 오로지 페네르치의 간청으로 실시된 작전일 뿐이었다.
고르오스는 본인이 최강이라 생각하기에 잔재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페네르치의 작전은 통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었다.
고르오스는 페네르치의 작전과 상관없이 슬슬 전면전을 시작하려 하였다.
“출발지시를 내리도록. 로드리고가 명을 재촉하고 있으니 원하는대로 목을 치러 가자구나.”
///
“히이잉!”
쌍두마가 기운차게 울면서 마차를 이끌기 시작했다.
마차 안에는 로엘과 타유아가 타고 있었다.
타유아는 평소와 다르게 다소곳이 앉아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자꾸만 두리번거렸다.
로엘과 화해한 날 이후로 단 둘이 있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타유아는 괜히 옆이 파인 드레스를 아래로 잡아 내리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마차에 타는 건데 좀 더 차분한 옷을 입을 걸 그랬나. 모처럼 보너스 받아서 새 향수를 뿌렸는데 취향에 안 맞으시면 어떻게 하지? 일단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데......’
어색함을 풀기 위해 적당한 말을 골라 꺼내보았다.
“지금은 인간계 인간들도 전부 마왕님 같은가요?”
창밖을 바라보던 로엘이 고개를 돌렸다.
“마계랑 다를 것도 없어. 좋은 녀석도 있고 나쁜 녀석도 있고 그렇지 뭐.”
“마왕님 주변 사람들은 어땠나요?”
“다들 좋은 녀석들이지.”
대답 이후 로엘의 코에서 긴 숨이 뿜어져 나왔다.
타유아는 괜히 분위기만 더 어둡게 만든 것 같아 두 손을 무릎에 올린 채 파르르 떨었다.
‘이 멍청아! 분위기를 더 어둡게 만들면 어떻게 해! 밝은 얘기. 밝은 얘기가 필요해.’
“제가 다루는 소환 고양이 중에 새끼 고양이도 있는데 한 번 보실래요?”
“그런 것도 가능해?”
“기본적으로 명계에 있는 고양이 마을에서 소환하는 거니까요.”
타유아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뻗으며 소환주문을 영향했다.
그러자 마기가 흘러나오면서 소환진을 형성하더니 목에 방울을 걸고 있는 흰색 새끼고양이가 소환되었다.
새끼고양이는 테이머인 타유아에게 먼저 인사를 올렸다.
“냐~.”
타유아는 새끼고양이를 안아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던 중에 왔는지 기다란 하품을 하며 귀를 흔들어댔다.
로엘은 세상 모든 근심이 다 떨어져 나가는 기분에 휩싸이며 손을 뻗었다.
“나, 나도 안아 봐도 될까?”
로엘이 이리도 풀어진 표정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타유아는 분위기 환기에 성공했다 여기며 새끼고양이를 넘겨주었다.
새끼고양이가 로엘의 품에 안기면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로엘은 말랑말랑한 육구를 만져보았다.
웃으라는 용언을 들은 듯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와, 이거 너무 치사한데. 조금만 귀여워야지 왜 이렇게 많이 귀여워?”
로엘이 좋아해주니 다행이긴 했는데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새끼고양이만 쳐다보고 타유아는 안중에도 없어져버렸다.
타유아는 새끼고양이 소환 이후 한 번도 시선을 받지 못한 걸 깨달으며 슬며시 말을 걸었다.
“저기 마왕님?”
“쉿, 조용히 해. 애 자잖아.”
“마왕님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쉿!”
“히잉.”
타유아가 울상을 지으며 애꿎은 새벽의 사슬만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을 때.
마차를 몰던 마부가 마차 앞창을 열며 말을 전해왔다.
“마왕님. 구름의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조만간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데 쉴 곳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로엘은 차창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항상 보랏빛이었던 구름이 지금은 먹구름 일색이 되어 있었다.
먹구름이 끼여 있는데다 바람도 점점 그 세기를 더해가는 중이었다.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질 기세였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가도록 해.”
“근방에 산골 마을이 하나 있긴 합니다. 대신 그리로 가면 조금 돌아가는 길이 되는데 괜찮겠습니까?”
“허허벌판에서 비바람을 맞이하는 것보단 낫겠지. 그리해.”
마부는 앞창을 닫으며 큰길에서 벗어나 샛길로 빠졌다.
마차가 방향을 바꾸면서 산길로 들어섰다.
닦여져 있는 길이 아닌지라 돌부리를 넘을 때마다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놀란 새끼고양이가 잠에서 깨어 마차 안을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타유아는 얼른 소환해제를 하여 새끼고양이를 돌려보냈다.
“소환해제. 후우, 하마터면 다칠 뻔했네요.”
어떻게 하면 돌려보낼 구실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좋은 구실이 생긴 셈이었다.
이제 로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 여긴 타유아지만 정작 로엘은 흥이 식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차창 바깥을 바라볼 뿐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구만. 산골 마을에 도착할 수 있으려나.”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 로엘의 태도에 타유아가 볼을 크게 부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