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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174화 (174/219)

00174 8-1. 의외의 수확 =========================

유골은 워낙에 지저분하게 쌓여 있어 원래 어떤 형태였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각 두개골의 모양이 제각각인 걸로 보아 다양한 종류의 마족이 이곳에서 죽어나간 모양이었다.

그 숫자가 어림잡아도 수백에 달하는 것 같았다.

“어이, 스랄스. 마족은 시체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걸로 아는데 아니었나?”

“그렇죠. 어지간해선 시체를 확실하게 처리하는 편이죠.”

인간과 다르게 마족은 혼령술, 시체술을 다룰 줄 아는 자가 많았다.

흑마법에도 인간계의 마법처럼 항목이 나뉘어져 있는데 혼령술, 속성마법, 소환술 세 가지였다.

옛날에는 혼령술의 하위항목에 시체술이 포함되어 있는 형태였다. 혼령술은 단순히 시체를 부리거나 시체에 혼령을 깃들게 되어 생전의 기억을 가진 채로 부리거나 모두 가능했기 때문이다. 시체술은 단순히 시체를 일으켜 세워 강화시키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체술사도 대부분 혼령을 다룰 수 있게 되어 그 구분이 희미해졌다.

지금에 이르러선 혼령술이라 부르든 시체술이라 부르든 명칭만 다르지 의미는 똑같은 걸로 통일되었다. 언어의 합리성 때문에 시체술 쪽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며 옛날 마족들이나 부르는 명칭이 되었다.

속성마법의 경우는 마족들 중에 자연의 힘을 다루는 이가 워낙 많아 따로 배우는 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로드리고가 있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마나를 바로 번개로 전환시킬 수 있는 고유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계의 능력들은 대부분은 겹치는 부분이 많아 구분이 거의 의미가 없으며 결국 센스와 마기량, 상성에 따라 결판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본제로 돌아와 마계에선 시체를 활용하는 기술이 많기 때문에 시체를 확실하게 처리해두는 편이었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다른 이가 멋대로 시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전쟁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평상시에도 적의 병사로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몇몇 뛰어난 혼령술사들은 죽은 자를 일으켜 세워 정보까지 빼낼 수 있기에 시체 한 구를 방치해둔 것이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런 시체가 상어섬에 수백 구나 남아있는 게 아닌가.

누칸이 유골 더미를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폭스의 병사들인 것 같군요. 리바이어던 때문에 배가 난파된 이후에 파도에 밀려 이곳 해안에 쌓이게 된 것 같습니다.”

유골 더미는 상어섬에 상륙하려다가 실패한 폭스의 병사들이었다.

그 증거로 해안 곳곳에 모래에 파묻힌 철 조각이 드문드문 보였다.

갑옷의 파편으로 추정되는 철조각에는 폭스군 소속을 의미하는 여우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바다에서 죽은 자들이라 시체를 회수하지 못한 것이었다.

스랄스가 유골 더미를 보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만한 유골이면 스켈레톤 500마리는 나오겠군요. 시체술로 일으켜 세울 수만 있으면 좋은 인력이 될 겁니다.”

스켈레톤을 부릴 수만 있으면 365일 24시간 내내 광물을 캐낼 수 있었다. 거기에 먹지 않으니 일일이 식량을 보급할 필요가 없고, 자지 않으니 따로 숙소를 지을 필요도 없었다. 실제로 광산이나 벌목 등의 작업이 단순하고 작업환경이 좋지 않은 일들은 스켈레톤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체술이라면 로엘도 쓸 수 있었다.

아직 써본 적은 없지만 느낌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림자군단을 소환할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시체에 마기를 부여하면 되었다.

로엘은 유골 더미에 손을 대곤 대량의 마기를 불어넣었다.

“뼈만 남은 망자들아 일어나 나의 명령에 따르라.”

마기를 부여 받은 유골이 들썩거리면서 조립하듯 달각달각 스켈레톤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유골 더미 하나에서 약 50마리의 스켈레톤이 생겨났다.

걔 중에는 제 짝을 찾지 못하고 한 쪽 팔뼈나 한 쪽 다리뼈, 혹은 갈비뼈 몇 개가 없는 스켈레톤도 있었다.

바다에서 죽어 파도에 밀려온 시체였기 때문에 결손 부위가 많은 것이었다.

그래서 두개골 숫자는 50개였지만 실질적으로 광산 노동에 투입할만한 개체는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로엘은 연이어 다른 유골 더미도 스켈레톤으로 일으켜세웠다.

최종적으로 500마리 중 250마리만 온전하고 나머지는 반쪽짜리 스켈레톤 뿐이었다.

로엘은 반푼이 스켈레톤 무리를 보며 말했다.

“쟤들끼리 다시 조립해서 온전한 개체를 늘릴 수 있으려나.”

그때 자칭 해골전문가(?)인 스랄스가 나섰다.

“남의 뼈를 이용해봤자 오래 못 버팁니다. 균형이 안 맞아서 뼈가 자주 어긋나거나 금방 탈골을 일으키죠.”

“그럼 그냥 놔두는 게 낫겠군.”

“후훗, 이럴 때 쓰는 방법이 있지요. 시체나무를 뼈 모양으로 깎아서 붙이면 됩니다. 모양도 맞출 수 있고 거부반응이 없는데다 단단하기까지 하니 이만한 재료가 따로 없죠. 나중에 제가 따로 시체나무를 구해서 대대적으로 스켈레톤 보수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역시 해골에 대해선 빠삭하군. 본인의 뼈도 몇 번 교체 해봤나봐?”

“부끄러운 일이지만 힘이 모자라 몇 번이나 몸이 파손되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잔기술을 익히게 된 셈이지요.”

스켈레톤 무리를 나열시킨 로엘은 따로 명령이 있을 때까지 섬에 대기하라 일러두었다.

식량과 숙소가 필요 없다 해도 광산 작업에 필요한 기본 장비는 있어야 하니 장비를 가져올 때까지는 작업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스켈레톤 무리 사이에서 유달리 신장이 작은 스켈레톤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다른 스켈레톤과 달리 마기를 지닌 스켈레톤이었다.

더하여 말까지 할 수 있었다.

“저의 새로운 주인이시여. 전 폭스의 땅에서 흑마법사로 활동하던 보르뎅이라 합니다. 새로운 삶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죽은 자가 생에 대한 집념이 강하여 그 혼령이 아직 이승에 남아 있었을 경우.

그 경우에 시체술을 사용하면 리치나 데스나이트가 된다.

생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되살아나면 무조건 되살려낸 자를 따른다.

주인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깃들기 때문이다.

보르뎅이란 자도 폭스를 따르던 자이지만 로엘의 힘에 의해 되살아났기에 본능적으로 로엘을 따르게 되었다.

스랄스는 보르뎅이란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지 로엘에게 간략한 설명을 해주었다.

“보르뎅이면 폭스의 땅에서 3성급 부대의 부대장을 맡고 있던 자였습니다. 화염 마법 4써클에 달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인력부족이었는데 잘 됐군. 보르뎅이라 했나?”

보르뎅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서며 두 손을 모았다.

“네, 말씀하십시오.”

“네게 여기 있는 스켈레톤을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하지. 할 수 있겠나?”

“이 뼈가 부서져 가루가 된다한들 맡은 바 임무를 끝까지 달성해보이겠습니다.”

보르뎅은 로엘이 누구인지 전혀 묻지 않고 복종을 맹세했다.

스켈레톤이 주인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모습이었다.

누군가는 스켈레톤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는데 적임자인 스랄스는 렌던의 온갖 행정업무를 떠맡고 있어서 자주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굴란트도 평소에는 마족병사 훈련을 맡고 있고, 타유아는 배 멀미 때문에 두 말할 것도 없었다.

화염 마법 4써클이면 강하다 할 순 없었지만 어차피 상어섬은 리바이어던이 지키고 있으니 크게 상관없었다.

오색계와 상어섬.

두 가지 자금줄의 확보로 인해 렌던의 자금사정은 지금이 시간이 지날수록 풍족해질 것이다.

로엘은 상어섬에서의 볼일은 모두 마쳤기에 누칸으로 하여금 돌아갈 준비를 하라 일렀다.

누칸이 해안에 끌어올린 배를 수면 위에 띄웠고, 로엘이 먼저 조각배에 올라탔다.

스랄스는 조각배에 올라타기 전에 보르뎅을 불러 따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곳에서 널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보르뎅.”

“죄송합니다, 스랄스 님. 생전의 일은......”

“사과할 거 없네.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자네 가족 소식은 뒤늦게나마 들었다네. 안타깝게 되었군.”

보르뎅은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왕군 소속의 흑마법사로 스랄스의 흑마법 부대에 속했던 자였다. 그런데 딸이 병에 걸려 치료를 해야 하는데 렌던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 유일하게 치료가 가능한 곳이 폭스의 땅에 있어서 마왕군을 떠나 폭스에게 충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보르뎅이 폭스에게 투항했을 땐 이미 딸의 병세가 깊어져 치료하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부인마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한참 후에야 듣게 된 스랄스였다.

“이왕 이리된 거 새로운 마왕께 충성을 다해주게나.”

스랄스가 따르는 자는 한 명뿐이었다.

리치아노 일족이 마왕의 표식을 지닌 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걸 알기에 아도로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로엘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보르뎅은 로엘이 마왕임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놀랄 것 없이 현재 상황을 받아들였다.

“외진 곳의 별 볼일 없는 직책이지만 중책을 맡은 것처럼 행하겠습니다. 헌데 저 말고 다른 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데킬라가 복귀한 것 외에는 아무도 소식이 없네. 마왕님이 돌아오셨다 해도 아직은 최약체 세력일세. 다들 다른 땅에서 한 자리씩 꿰찼으니 돌아올 생각이 없는 거겠지.”

“역시 그렇군요.”

“난 이만 가보겠네. 장비가 도착할 때까지 리치의 몸에 익숙해지게나. 익숙해지려면 많이 움직여 봐야할 걸세.”

스랄스는 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조각배에 올라타려 했다.

그러나 그가 배에 올라타기 전에 보르뎅이 낮은 목소리로 불러세웠다.

“스랄스 님. 폭스의 땅에서 지내면서 한 가지 들은 소식이 있습니다. 스랄스 님의 원래 뼈가 있는 장소에 대한 정보입니다.”

스랄스가 걸음을 멈추며 등을 진 채로 물었다.

“말해보게.”

“정확한 정보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북쪽 바문의 땅에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군.”

“찾으러 가실 겁니까? 스랄스 님이 원래 뼈를 되찾으신다면 마왕군의 전력도......”

보르뎅이 스랄스의 원래 실력을 언급하기 직전.

스랄스가 팔을 옆으로 뻗어 휘저었다.

“마계 대륙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네. 마왕님의 보좌에 힘 써야 할 때일세. 지금은 거기에 집중하고 싶군.”

“아, 네. 스랄스 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게나. 이만 가보지.”

“살펴 가십시오.”

이내 곧 스랄스는 로엘을 따라 조각배에 올라탔다. 그리곤 방금까지 짓고 있던 진지한 표정을 풀고 평소의 경쾌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에고고, 보르뎅이 있어서 살았습니다. 행정업무에 상어섬까지 오가게 되면 등골이 휘도록 일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거든요.”

로엘은 피식 웃으면서 스랄스의 농담을 받아주었다.

“휘는 거야 지금도 잘 휘잖아. 어긋난다는 걸 잘못 말했겠지.”

상어섬에는 방문했으니 이제 로드리고에게 받은 뉴아츠라는 곳으로 갈 차례였다.

일단 렌던으로 돌아가 상어섬에 지급할 장비를 마련해야만 했다.

그 부분은 스랄스에게 맡긴 후 굴란트나 타유아 중 한 쪽을 골라 뉴아츠로 향하고자 한다.

육지로 돌아가는 조각배 위에서 로엘의 시선은 줄곧 북쪽 바다를 향해 있었다.

리바이어던에게 물려 보낸 서신이 카에라의 땅에 무사히 전달되길 바랐다.

‘제대로 전해져야 할 텐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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