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9 7-6. 뛰어난 선생은 뛰어난 제자를 알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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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정령술 첫 수업이 끝나고 보름이란 시간이 지났다.
연구실에서 수많은 연구자료에 둘러싸인 채로 나무 정령석을 조합던 마이트니가 기지개를 펴며 목 스트레칭을 하였다.
“후우, 목 아파라. 역시 이 나이에 철야는 무리였나. 뭐 그래도 이걸로 그 아이에게 줄 정령석 준비는 끝났네.”
마이트니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달력을 확인했다.
“이제 보름 지났네.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리려나.”
총 300페이지에 달하는 막대한 분량의 정보다.
암기하는데만 몇 달이 걸릴지 몰랐다.
마이트니는 메이아가 몇 달이 걸리든 몇 년이 걸리든 기다려줄 생각이었다.
물론 메이아가 찾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을 찾으면 인간계로 돌아가려 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이 없기에 자신의 이론을 행할 때까지는 마계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최소 몇 달은 잡고 있기에 느긋하게 기다려 줄 생각이었는데 그 생각은 금방 틀어졌다.
똑똑
“마이트니 교수님. 메이아예요.”
마이트니는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었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자 메이아가 두꺼운 종이뭉치를 내밀며 말했다.
“다 외웠는데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될까요?”
아직 보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 외웠다는 말에 마이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다 외웠다고?”
“네.”
설마 싶어서 무작위로 종이 몇 장을 뽑아 질문을 해보았는데 모든 걸 막힘없이 대답하는 메이아였다.
단순 암기 과제였다곤 해도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원래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암기 능력 자체는 남들 이상으로 뛰어난 메이아였다.
빌로스 제국 최고의 수완가와 최고의 수재로 불리는 레이아나 루엔의 전속 궁녀로서 업무 보조 역할을 맡을 정도였으니까.
여태껏 궁녀의 역할만 맡아왔기에 좀처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다음 단계였다.
메이아가 모든 속성 정령술의 기본지식을 익혔기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 나무 정령으로 정령화 시켜 정령계로 보냈는데 단 하루 만에 돌아왔다.
정령이 되면 무척 편안하고 항상 해방감에 젖어있기 때문에 벗어나려고 노력할 마음을 유지하는 게 무척 어려웠다.
허나 메이아는 편안함이 찾아들기도 전에 정령왕들을 설득해버렸다.
그것도 단 하루만에.
마이트니가 어떻게 설득했냐고 물으니 메이아가 이리 답하였다.
“최대 수치를 낮추고 조금씩만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주시던데요?”
정령왕의 정령 에너지 수준이 1000이라 치면 하급 정령은 40정도라 할 수 있었다.
메이아는 나무 하급정령이 되어 정령계로 갔으니 비율을 맞추려면 각 속성의 정령 에너지를 10씩 받아내야 했다.
본인들이 반신의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 정령왕들이 다짜고짜 찾아온 인간의 부탁을 쉬이 들어줄 리 없었다.
요구 하는 게 정말 별 거 아닌 요구라도 말이다.
그걸 메이아는 정말 간단하게 해결했다.
나무 정령왕에게 부탁해서 자신의 나무 정령 에너지를 4로 낮춰 달라 한 것이다. 그런 후에 남은 정령왕에게 1씩 받아내려 했다.
그리해도 비율은 맞출 수 있었으니까.
메이아가 원하는 건 정령술을 배울 수 있는 기틀을 닦는 거지 강해지는 게 아니었다.
기껏 정령계까지 찾아와 놓고 좁쌀만한 에너지만 요구하는 인간.
정령왕들로선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원래 가진 40을 유지해라며 각 속성의 정령 에너지를 10씩 넘겨주었다.
정령왕들도 기가 차서 그냥 준 것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원래 목적을 달성하고 정령화가 풀려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마이트니는 보름 전에 메이아가 했던 농담을 떠올리며 말했다.
“강해지는데 욕심 없다는 거 진심이었구나?”
메이아는 진심이었는지 농담이었는지 모를 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런 메이아를 보던 마이트니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바라지 않는 만큼 더 얻게 된다는 건가. 묘하군.’
솔직히 몇 년은 걸릴 거라 여겼는데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한순간에 메이아는 정령술 재능이 없는 자에서 모든 정령술을 익힐 수 있는 자가 되었다. 아직 정령어가 반응조차 못할 정도의 미약한 재능이지만 모든 정령술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가장 어려운 단계를 통과했으니 남은 건 다른 학생들처럼 각 속성에 대한 실습을 거치는 것뿐이었다.
마이트니는 메이아를 양쪽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메이아, 내일부터 당장 모든 속성 정령술 수업에 나가도록 해. 해당 교수들에겐 내가 말해두겠어. 알겠지?”
그리 말한 마이트니는 본인 역시 나무 정령술 실습 준비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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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연구동 휴게실에 정령술 수업 교수들이 모였다.
교수들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마이트니 교수의 요청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다들 들었소? 마이트니 교수가 자기 학생을 내 수업에 넣어 달라 하더구려.”
“저한테도 부탁을 해왔어요. 너무 간절하게 부탁해서 가르치겠다고는 했는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더군요.”
“학생 이름이 메이아라죠? 제가 알기로는 카에라 님이 거두어들이신 인간 아이라고 들었는데 정령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면서요?”
“그렇다네요. 또 마이트니 교수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겠죠. 저번 학회 때 말도 안 되는 이론을 제시하더니 결국 정신이 이상한 쪽으로 나가버린 것 같네요. 조만간 카에라 님께 퇴출을 요구하던지 해야겠어요.”
“샤미 교수. 듣자하니 메이아란 학생은 샤미 교수의 수업도 듣고 있다던데 어떤 학생인가요?”
교수들의 질문을 받은 샤미 교수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지난 보름 동안 메이아를 계속 주시했지만 흠 잡을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심지어 다른 학생보다 늦게 시작했는데도 다른 학생들보다 수업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기분이 나빴다.
샤미 교수가 아는 인간은 겉으로는 가식을, 속으로는 꿍꿍이가 가득한 이중적인 존재였다.
메이아 역시 그와 같을 거라 생각하고 있기에 퉁명스러운 투로 대답했다.
“우리가 아는 인간 그 자체랍니다. 말하는 것부터 하는 행동까지 전부 불량하죠. 카에라 님이 거둔 아이만 아니었다면 당장 쫓아내버리고 싶어요.”
“그럼 결정됐군요. 어차피 재능 없는 아이니까 실습에 들어가면 못 버티고 스스로 나갈 겁니다. 혹시 모르니까 그녀에 한해서는 실습 강도를 올리도록 하죠.”
“그러도록 합시다. 메이아란 학생이 스스로 뛰쳐나가면 그녀를 추천한 마이트니 교수의 표정이 볼만하겠군요.”
은근슬쩍 메이아의 수업 강도만 올리면 알아서 뛰쳐나갈 거라 여기는 교수들이었다.
하지만 정령술 교수들이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전 속성 정령술 습득 이론을 만들어낸 마이트니 교수조차도 모르는 부분이었다.
메이아가 받은 ‘정령왕’ 정령 에너지라는 게 그들이 아는 ‘일반’ 정령 에너지와는 차원이 다른 것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