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8 7-6. 뛰어난 선생은 뛰어난 제자를 알아본다 =========================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기에 메이아는 슬며시 손을 흘었다.
“나무의 정령술 수업 아니었나요?”
“맞아.”
“그런데 방금 전 속성 정령술이라고 하신 것 같아서요.”
“제대로 들었어. 너라면 모든 속성의 정령술을 익힐 수 있을 것 같아. 아차, 너무 비약해서 말했으려나. 처음부터 설명할게.”
마이트니는 몸을 돌려 칠판 쪽으로 걸어가 분필을 쥐었다. 그리곤 정령술 속성을 죄다 칠판에 적으며 크게 동그라미를 쳤다.
“따로 공부한 게 있을 테니 기본적인 것들은 알지?”
“네.”
“알다시피 정령술에는 총 7개의 속성이 있어. 4대 기본속성에 나무, 어둠, 번개가 더해진 형태지. 난 나무 정령술이 모든 속성의 근원이라 생각하고 있어.”
이어서 마이트니는 어째서 나무 정령술이 모든 속성의 근원인지 설명하였다.
주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더하여 각종 무기물을 만든 다음에 생명체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나무였다.
나무는 땅의 기운을, 하늘의 기운인 물을 먹고 자랐으며 하늘과 땅이 만들어낸 산물인 바람을 맞으며 굵기를 더해갔다.
시간이 흘러 주신의 손에 의해 모든 종족이 탄생했을 때.
아직 동굴생활을 하고 날 것을 먹던 종족들은 번개가 나무에 떨어지면서 생긴 불을 이용하게 된다. 불의 발견으로 어둠 속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고 길어진 생활시간으로 인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 시작했다.
마이트니는 기본적인 설명을 하면서 자신의 연구결과임을 강조했다.
“내가 나무 정령술 수업을 맡게 된 건 나무 정령술을 심도 있게 연구하기 위한 거였어. 연구비를 받으려면 관련 수업을 맡아야 하거든. 그리고 얼마 전에 새로운 이론이 완성단계에 이르렀지. 다른 전문가들에겐 호되게 욕만 먹었지만 말이야.”
얼마 전, 마이트니는 자신의 이론을 자연 타입 학회에 제출했는데 질타만 받았다고 한다.
모든 것은 나무에서 비롯되었으니 기본 4대 속성을 나무, 물, 땅, 바람으로 지정하고 불, 번개, 어둠을 파생속성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수 천 년간 정설로 받들어지고 있던 이론을 뒤집는 제안이었던 지라 검토는커녕 바로 미치광이로 몰리고 말았다.
메이아는 마이트니의 말을 일일이 필기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나무 정령술을 익히면 모든 정령술을 익힐 수 있다는 건가요? 속성검사에서 나무 정령술 재능만 발견된 경우에도요?”
“으음, 그 부분부터 설명하면 알아듣기 힘들 텐데.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무 정령술에 재능 있는 녀석에겐 내 이론을 적용시키지 못해. 내 이론은 어디까지나 욕심 없고 재능 없는 자에게만 적용되니까.”
마이트니가 칠판에 한가득 적혀 있던 내용을 지우고 새로운 내용을 적어나갔다.
지금까지 나무 정령술이 모든 정령술의 근간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그를 어떻게 응용할 수 있냐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었다.
“정령화에 대해선 알고 있지?”
“네, 정령술을 다룰 때 자신의 힘과 정령의 힘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생기는 현상으로 알고 있어요.”
“맞아, 정령을 소환하면 기본적으로 소환한 정령과 힘을 공유하게 되지. 정령을 부리면 정령의 힘이 소환자의 몸에 침투해서 소환자가 되러 정령이 되어버려.”
정령화란 말 그대로 정령사가 정령이 되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소환할 때는 정령사의 마나 혹은 마기를 소모해서 정령을 소환하는데 그 때 소모된 마나를 소환된 정령이 정령의 힘을 흘려보내주어 보충해준다.
정령의 힘을 받은 정령사는 속성에 따라 부가적인 능력을 취하게 된다.
몸의 일부를 해당 속성의 성질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말이다.
일반 테이머의 경우 소환수 소환 이후에는 테이머 본인이 약해진다는 결점이 있어서 그를 보충하기 위해 따로 호신술을 배워야 하는데 정령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단, 정령소환 이후 정령이 보충해주는 에너지가 본래 능력의 5할이 넘으면 정령화가 시작되고, 7할이 넘으면 의식을 잃으며 9할이 넘으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정령이 되어버린다.
정령술이 자신의 욕심을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는 건 바로 정령화 때문이었다.
정령화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욕심을 억제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니까.
마이트니의 설명은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한 가지 속성에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상극의 속성은 익힐 수가 없어. 상극의 속성을 누르려면 더 많은 정령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정령화가 이루어지기 쉽지. 여러 가지 속성에 재능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야. 모든 속성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모든 속성을 익히는 건 불가능해.”
“그러면 앞서 말한 재능 없는 자에게만 적용된다는 말과는 반대가 되어버려요.”
“잘 지적했어. 실제로 모든 속성에 재능이 있는 자는 없어. 하지만 상극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하나 더 있지. 모든 속성에 재능이 없는 자. 그 역시 상극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면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거네요.”
“아니지. 난 재능 없고 욕심 없는 자만이 가능하다 했어. 내 이론을 적용시키려면 먼저 모든 속성의 정령술 이론에 정통해야 해. 그리고 한 번은 나무의 정령이 되어야 하지.”
마이트니의 이론에 따른 전 속성 습득 방법은 이랬다.
먼저 모든 속성 정령술 이론을 익힌 다음 정령석을 써서 강제로 나무의 정령화를 진행시킨다. 정령이 되면 정령계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각 정령왕과 대면하여 정령 에너지를 얻어내야 한다. 그것도 많이 얻어내는 게 아니라 정확한 비율로 얻어내야 한다.
최종 비율은 ‘나무:땅:물:바람:불:어둠:번개=4:1:1:1:1:1:1’여야 했다.
그리 되면 나무 정령의 에너지가 모든 정령 에너지의 균형을 맞춰주면서 정령화가 풀린다.
더하여 정령왕들은 죄다 고집이 세기 때문에 쉽사리 정령 에너지를 나눠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다만 그 모든 걸 소화해낼 수만 있다면 모든 속성을 다룰 수 있는 기반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다소 위험은 있지만 해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메이아는 대답에 앞서 한 가지 의문을 내비쳤다.
“저기 여태까지 수강생들에게 많은 과제를 내준 건 전 속성 정령술 습득을 위한 거였던 거죠?”
“그런 셈이지.”
“다른 수강생들 중에선 한 명도 도전하려는 자가 없었던 건가요?”
모든 속성 정령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아무리 자연 타입 계열에서 이단으로 여겨진다 해도 이론 자체는 논리정연 했다.
한 명쯤은 공감하고 도전하려는 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3년 간 학생 하나 없었다는 게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마이트니는 기다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시 메이아 앞까지 다가왔다.
“당연한 일이야. 다른 수강생들에겐 미리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까. 여태껏 욕심이 없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거든.”
마이트니는 분명 정령술에 재능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론만 아는 괴짜 교수로 불려왔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다른 교수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다.
학생의 성향을 파악하는 능력.
그것 하나만큼은 뛰어났다.
여태까지 마이트니의 수업을 들으러 온 자 중에서 욕심이 없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좋은 성적으로 커리큘럼을 소화하고, 좋은 직장을 잡아 출세하고 싶어 하는 자들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좋은 성적을 원하고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마이트니는 일부러 많은 과제를 내주어 인내심부터 길러주려 하였다. 이미 가지고 있는 욕심을 억제하려면 인내심부터 길러야 하니까.
그 많은 과제를 풀어내도 점수에는 영향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니 아무도 그녀의 수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보상 없는 행위를 할 자는 없었던 것이다.
만약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미리 말하면 과제를 해오는 자는 많았을 거다. 하지만 그래서는 마이트니의 이론을 적용시킬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메이아가 수업에 참가했다.
마이트니는 메이아를 보자마자 그녀가 적격자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메이아에게만은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시작하리라 마음먹은 것이었다.
메이아는 납득하긴 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이해는 했지만 딱히 도전하고 싶진 않네요.”
거의 승낙하는 분위기였던지라 마이트니로선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너라면 가능하다니까? 왜 거절하려는 거야?”
“딱히 강해지고 싶은 욕심은 없거든요.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욕심 없는 사람에겐 강해지고 싶어 하는 욕심도 없다.
그걸 간과한 마이트니였다.
욕심 없는 사람이 필요한데 정작 해당되는 사람은 강해질 욕심조차 없어서 시도조차 시킬 수 없다니.
마이트니는 머리를 감싸 쥐며 한탄을 내뱉으려 했다.
그때 메이아가 방긋 웃으며 말하길.
“농담이에요. 저 같은 사람한테 기대를 해주셔서 감사해요.”
마이트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깜짝 놀랐네. 너 보기와는 다르게 사람 놀래키는 재주도 있네.”
“그런 소리 종종 들어요.”
“일단 본격적인 수행 전에 이론부터 확실히 익혀둬야 해. 여기 있는 자료를 외워와. 다 외우면 내 연구실로 오도록 해. 그때까지는 수업에 오지 않아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