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4 7-5. 선물이지만 선물이 아니다 =========================
7-5. 선물이지만 선물이 아니다
고르오스의 땅에선 페네르치의 명령을 받은 사절단이 남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고르오스의 사절단은 신임 마왕에게 전할 오색계 3마리를 데리고 있었다.
오색계는 다섯 빛깔의 깃털을 가진 닭으로 매일매일 보석으로 된 알을 낳는 희귀한 닭이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자금 생성기라 할 수 있었다.
고로 폭스와 로드리고가 신임 마왕에게 얼마를 제공했든 오색계 3마리가 그를 상회하고도 남을 터였다.
헌데 로드리고의 땅을 지나던 도중 문제가 발생했다.
황야지대를 지나가던 중 모래폭풍과 마주쳤는데 오색계를 가두고 있던 닭장이 부서지면서 오색계 3마리 모두가 도망쳐버렸다.
고르오스의 사절단은 막 황야지대를 빠져나와 저희들끼리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제 산 하나만 넘으면 렌던인데 이를 어쩐다......”
“오색계는 찾아봤나? 어디로 갔는지 본 사람 없어?”
“모래폭풍 때문에 눈도 못 뜨는 상황이었는데 그걸 누가 봤겠냐고.”
“젠장, 일 났구만.”
“만약 이대로 돌아가면 우리 모두 벌을 면하지 못할 거야.”
폭스와 로드리고가 신임 마왕을 포섭하려는 것을 저지하려고 준비한 오색계다.
포섭을 저지하기는커녕 렌던에 발조차 못 붙였다는 걸 들키면 불호령이 떨어질 게 틀림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사절단 전원이 직위를 박탈당할 지도 몰랐다.
고르오스의 사절단은 머리를 맞대고 살아남을 길을 모색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어.”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폭스와 로드리고가 강탈해간 것처럼 꾸미자고. 마침 둘이 합심해서 북쪽을 치려는 상황이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실 거야.”
“어차피 적대 관계니까 저쪽에서 뭐라 하든 변명으로만 들리겠군.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그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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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의 땅과 로드리고의 땅 경계에 위치한 어느 산골 마을.
거미의 몸에 인간의 상체가 달려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아라크네의 마을이었다.
아라크네의 마을답게 우거진 나무 사이로 거미집이 한가득 지어져 있었다.
얼기설기 얽힌 거미줄 때문에 새는커녕 날벌레조차 날아들길 꺼려하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산기슭 가득 펼쳐진 거미줄 사이로 아라크네 한 명이 8개의 다리를 바쁘게 놀리며 움직였다.
거미줄끼리 얽혀 있는 탓에 움직일 때마다 다른 아라크네들의 거미집이 마구 흔들렸다.
거미집을 해먹 삼아 누워 있던 아라크네들이 흔들림 때문에 잠에서 깨며 짜증을 냈다.
“야 임마 파라미노! 남의 집으로 다니지 말고 땅으로 다니라고 몇 번을 말해!”
파라미노라 불린 아라크네는 바쁘게 거미집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손을 흔들었다.
“죄송해요! 데킬라 아저씨한테 편지가 와서 빨리 전해줘야 해서요!”
파라미노는 소란스러운 아라크네들을 뒤로 하고 울창한 수풀 너머로 향했다.
얼마쯤 이동하자 공터가 나왔다. 공터 사이에는 집 하나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집은 황토로 벽을 바르고 지붕에는 구운 돌을 겹겹이 쌓아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집 앞 현관문까지 다가간 파라미노는 현관문 처마에 실로 매달아놓은 종을 흔들었다.
딸랑딸랑
“아저씨! 저예요!”
대답은 문 안쪽이 아닌 집 뒤쪽에서 들려왔다.
“지금 작업 중이니까 이리로 와!”
파라미노는 다리를 움직여 뒷마당으로 돌아들어갔다.
뒷마당에는 붉은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장발 사내가 서있었다.
마른 근육이 박혀 있는 균형 잡힌 몸과 고양이 코와 고양이 수염을 지니고 있는 중년 사내였다. 코에는 약간의 갈색빛이 감돌고 있었다.
사내는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닭장에 닭을 넣고 있는 중이었다.
일반 닭이랑은 다르게 깃털에 다섯 개의 빛깔이 깃들어 있는 닭이었다.
파라미노는 특이한 닭이라 여겨 질문을 날렸다.
“웬 닭이에요? 이 근처에 사는 종은 아닌 것 같은데.”
“오색계라는 귀한 닭이야. 알 대신 보석을 낳지.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이 놈들이 내가 따놓은 열매를 쪼아 먹고 있더라고.”
“보석을요? 와, 그거 대단한데요. 이 귀한 닭이 왜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나야 모르지. 근데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일이야?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잖아.”
파라미노가 손에 들고 있던 서신을 들어보였다.
“편지가 와서 전해주러 왔어요.”
“나한테 편지라니 별 일이네. 누가 보낸 거야?”
“일단 렌던에서라고 적혀 있긴 하네요. 누가 보낸 건지는 모르겠고요.”
“줘 봐.”
데킬라는 서신을 받아 봉인을 뜯고 안의 내용물을 쭈욱 읽어 내렸다.
편지를 읽는 동안 데킬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편지의 내용을 모두 읽고 난 후.
데킬라는 편지를 고이 접어 도로 봉투에 넣곤 팔에 붙은 깃털조각을 털어냈다.
“돌아갈 때가 왔구만.”
“떠나시게요?”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갈 뿐이야. 섭섭해 하지마.”
“아뇨, 섭섭한 건 없고 가실 거면 이 집 써도 되나 물어보려고요.”
“그 말 듣고 잘도 주겠다.”
“깨끗하게 쓸게요. 아저씨가 돌아올 때까지.”
파라미노의 말에서 아쉬움이 섞여 나왔다.
몇 년간 지내온 만큼 정이 들었기에 아쉬움이 없을 수가 없었다.
데킬라는 괜스레 파라미노의 볼록한 몸통을 두드리며 피식 웃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건데 뭘 또 이리로 오라고 하냐. 가서 잘 먹고 잘 지내서 다시는 여기 안 올 테니까 집은 아예 가져.”
파라미노는 아쉬워하면서도 데킬라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짐 싸는 것까지 도와준다 했지만 데킬라는 고개를 저으며 그를 돌려보냈다.
파라미노를 보낸 후, 데킬라는 오색계를 넣은 닭장과 그 외의 몇 가지 식재료, 요리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짐수레에 짐이 쌓일수록 가슴 속에 들어찼던 아쉬움이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5년 만에 렌던에 돌아간다.
편지에 의하면 아도로스 대신 그보다 더 뛰어난 신임 마왕이 왔다는데 어떤 자일지 궁금했다. 스랄스가 극찬할 정도면 필시 대단한 자이리라.
신임 마왕과 옛 동료들을 만날 생각에 기대감이 팽배했다.
“훗, 또 그 편식쟁이들이랑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겠군.”
///
폭스와 로드리고를 만난 이후.
로엘은 두 덩이의 땅을 얻게 되었다.
하나는 렌던 서쪽에 있는 뉴아츠란 곳으로 움직이는 나무인 라이프트리를 도시 삼아 나무 위에서 수많은 마족들이 사는 곳이었다. 인간계로 치면 엘프의 숲에 있는 세계수와 맞먹는 크기의 나무였다. 여태까지는 라이프트리가 가지를 뻗어 주변의 보라색 위험지대를 제압해줬었는데 얼마 전에 라이프트리의 수명이 다했다고 한다.
로드리고 입장에선 고르오스와 맞닿아 있는 북쪽 경계와 폭스와 맞닿아 있는 동쪽 경계에 대다수의 병력을 포진시켜놓은 상태라 뉴아츠에 지원군을 보낼만한 여력이 없었다.
결국 관리하기 힘든 땅을 선물이란 명목으로 떠넘긴 셈이었다.
또 하나는 렌던 동쪽 해안에서 북동쪽으로 30km쯤 가면 나오는 상어섬이었다. 섬에 상당량의 광물 자원이 있다고 하는데 섬 주변에 거대한 상어들이 서식하며 그 누구도 상륙하지 못하게 막는 터라 결국 방치된 섬이었다.
로엘은 뉴아츠와 상어섬을 정식으로 양도한다는 문서를 보며 검지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잘 처리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미 받은 시점에서 잘 처리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공식문서까지 넘어온 마당에 불평해서 뭐하겠는가.
마냥 비관적으로 생각할 게 없는 것이 마계 대륙 동쪽 바다만 이용할 수 있으면 카에라의 땅까지 갈 수 있었다. 마계 대륙의 바다는 대부분이 검은색 위험지대라서 항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상어섬의 상어들을 잘 설득할 수만 있다면 항상 바다에 사는 그들을 통해 안전한 항로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로엘이 홀로 서재에 앉아 여러 모로 궁리를 하는 가운데 스랄스가 찾아왔다.
똑똑
“마왕님, 식사 시간입니다. 서재에서 드시겠습니까?”
“내가 식사방으로 가지.”
로엘은 문을 열고나서며 식사방이 있는 층으로 내려갔다.
스랄스도 1층에 있는 주방으로 가야하는 터라 나란히 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형태가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샐러드 만찬일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입에서 풀 씹는 감촉이 감도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요리사를 부른다고 한 이후로 며칠이나 지났는데 별다른 보고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데킬라라고 했던가? 부른다던 요리사는 언제 오는 거야?”
“닷새 전에 돌아오겠다는 답장이 왔으니까 아마 그 전에 출발했을 겁니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됐군요.”
데킬라라는 요리사도 귀족은 못 되는 건지 말하기 무섭게 그의 복귀 소식이 들려왔다.
새벽의 사슬을 완전히 고치러 나갔던 타유아가 적발의 중년 사내와 함께 들어오며 로엘을 불렀다.
“마왕님! 데킬라가 왔어요!”
로엘은 스랄스와 함께 저택 홀로 내려가 데킬라를 맞이했다. 덩달아 1층 복도에 서있던 굴란트도 걸어 나왔다.
데킬라는 로엘의 인상에 대해 미리 전해 들었는지 보자마자 허리를 숙였다.
“데킬라가 마왕님을 뵙습니다. 인간이라 들었는데 이리 인사하는 게 맞나 모르겠군요.”
“마계식대로 인사해도 상관없어. 듣던 것과 다르게 인상이 좋은 걸?”
로엘이 본 데킬라의 첫 인상은 관록 있는 중년 사내의 그것이었다.
타유아나 굴란트가 하도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이길래 까칠한 성격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인간계의 예의범절까지 준비할 정도로 섬세하지 않은가.
데킬라는 로엘의 말에서 타유아와 굴란트가 자신에 대해 뭐라 했음을 감지하곤 넉살 좋게 웃었다.
“하하, 제가 많이 깐깐한 성격입니다. 요리사란 직업과 제 능력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능력이라면?”
“그리 능력한 능력은 아닙니다. 기껏해야 타인의 몸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감지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나마도 대략적인 정보밖에 들어오지 않지요.”
말로 하는 것보단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다 여겼는지 데킬라의 시선이 타유아와 굴란트에게 향했다.
먼저 굴란트를 보며 말하길.
“굴란트는 두피가 약해져 있군요. 여전히 발모에 좋은 거라면 머리에 바르나 봅니다. 술을 자주 마시는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힘들 텐데 말이죠.”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만물상에서 새로 들여왔다는 발모제를 사서 1시간이나 흡수시키고 나온 참이었다.
굴란트는 저도 모르게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어설프게 웃었다.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아뇨, 다들 오해 하지 하십시오. 정말 신경 쓰는 거 아니라니까요.”
데킬라는 굴란트가 뭐라 하든 신경 조차 쓰지 않으며 이번에는 타유아를 응시했다.
타유아는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보며 당황했다.
“저, 전 건강하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타유아는 여전히 우유 과다섭취 중인가 보죠? 그런다고 커질 단계가 아니라는 건 본인도 알 텐데요. 너무 과다섭취해서 오늘 아침에는 설......”
“와악! 와아악! 말하지 마요! 이 아저씨가 정말!”
마지막으로 스랄스에게는......
“뭐 스랄스야 뼈밖에 없으니 제가 뭐라 할 말은 없네요. 굳이 말하자면 여전히 골밀도 하나는 훌륭하군요.”
스랄스는 로엘이 온 이후 처음으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에헴, 제가 이 정도입니다.”
로엘은 왜 스랄스만 데킬라를 어려워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