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163화 (163/219)

00163 7-4. 내놓으라는 길은 안 내주고 =========================

로엘이 마계 패권에 관심 없다한 건 거짓말이었다.

인간계의 병력을 끌고 와 인간계와 마계 모두를 정벌할 생각이었던 거다.

로엘의 실력에 병력까지 갖춰지면 어떻게 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일이다.

게다가 마계의 규칙상 마왕에게 선공을 가하는 건 금지되어 있다.

마계 7기둥은 오로지 마왕이 공격해왔을 때만 마왕의 땅을 공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엘에게 병력이 생겨 로엘이 폭스의 땅을 공격했다 치자. 렌던이 텅텅 비어있다 한들 로엘에게 공격 받지 않은 로드리고는 로엘이 대놓고 등을 보여도 공격하지 못한다. 마왕은 마계 7기둥의 의무를 이용해 마계 7기둥을 하나씩 무너뜨릴 수 있다.

멋모르고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거다.

로엘의 진의(?)를 알게 된 폭스는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마왕의 계획을 저지해야해. 제안은 거절하도록 하지.”

그러나 폭스는 속으로 이리 생각하고 있었다.

‘차라리 마왕에게 붙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주면 마왕이 알아서 다른 마계 7기둥을 베어주겠지.’

로드리고에겐 제안을 거절하자고 해놓고 뒤로는 몰래 로엘에게 붙을 생각이었다.

호시탐탐 렌던을 노려 와서 마왕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있는 걸 만회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했다.

허나 로드리고는 금방 폭스의 속내를 간파해냈다.

“제안을 거절하자 해놓고 혼자만 마왕에게 붙을 생각은 아니겠지?”

“뭐? 함부로 넘겨짚지 마라.”

“뻔뻔하기가 수준급이구나.”

“그렇다면 네놈의 생각을 말해봐라.”

“제안을 거절하는 방법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야. 우리는 우리대로 계속 서로를 의심할 거고, 마왕의 머릿속에서도 우리는 아예 적으로 낙인찍히겠지. 그럴 바엔 차라리 마왕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낫지 않겠나? 각자 관리하기 힘든 땅이 한 군데씩은 있으니 그걸 마왕에게 넘겨주자고.”

현재 로드리고에겐 곧 3회룰이 적용되는 보라색 위험지대 하나가, 폭스에겐 자원은 많지만 통제가 어려워 방치하고 있는 섬 하나가 있었다.

그걸 로엘에게 주면 로엘은 받은 땅을 관리하느라 바쁠 거다.

인재와 병력이 적은 마왕 세력으로선 로엘이 직접 위험지대를 관리해야 할 테니 바쁠 수밖에 없다.

폭스와 로드리고로서도 골칫덩어리 땅을 다른 마계 7기둥에게 주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였다.

폭스는 좋은 생각이라 여기면서도 한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럼 제안 부분은 어떻게 할 거지? 결국 마왕의 제안을 거절해야 할 텐데?”

“제안이 아니라 보류라 해야겠지.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은 옛 수도에 있을 테니 우리 둘이 연합해서 고르오스를 치겠다고 하자고.”

“동맹을 맺자는 건가? 다른 이도 아니고 우리 둘이?”

“고르오스를 칠 때까지만 동맹을 맺도록 하지. 불리해지면 마왕에게 분쟁 판결을 요청하면 되.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한 전투니까 마왕도 우리 편을 들 수밖에 없을 게야.”

확실히 폭스와 로드리고 둘이서 수 싸움을 하며 힘을 빼는 것보단 나았다.

로드리고의 제안은 폭스에게도 이득이 되면 이득이 되었지 해가 될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차피 둘의 생각은 똑같았기에.

‘고르오스에게 덤비면서 폭스의 병력을 소모시켜야겠군.’

‘고르오스와 싸우면서 로드리고의 병력을 화살받이로 써야겠어.’

서로 자신의 병력을 아끼면서 상대방의 병력을 방패막으로 쓸 생각이었기에 자신에게 해가 될 게 없다 여기며 임시 동맹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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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달이 가라앉고 붉은 달이 떠올랐을 때.

로엘의 입가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폭스와 로드리고가 로엘의 제안을 거부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로엘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 입장에선 마왕의 자리를 도로 공석으로 만들 수 있었고, 로엘은 인간계로 돌아갈 수 있으니 상부상조 아니던가.

로엘은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그러나 로엘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였다.

“저와 폭스의 땅에서 위험지대 하나를 끼고 있는 땅을 하나씩 내드리겠습니다.”

인간계 복귀 방법을 찾아주겠다는 대답을 기대했던 로엘은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내가 제안한 건 인간계 복귀 방법을 찾는 거였어. 그런데 땅을 넘기겠다고?”

“복귀 방법은 아마 옛 수도에 있을 겁니다. 거기까지 도달하려면 고르오스를 쳐야 하지요. 폭스와 제가 동맹을 맺어 고르오스를 치겠습니다. 여차할 경우 마왕님의 권한으로 지원해주십시오. 고르오스를 치는 동안 저희가 감당하기 힘든 땅을 다루어주셨으면 합니다. 후방에 문제가 있으면 전방에 집중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너희들 말은 잘 알겠는데 옛 수도에 인간계 복귀 방법이 있다는 거 사실이야?”

“저희가 뭐하러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게다가 마왕님의 바람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귀중한 땅을 내드리는 겁니다. 그게 얼마나 중대한 결정인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졸지에 땅을 받게 생긴 로엘은 한사코 거부하였다.

“난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만 찾으면 충분해. 그러니까 땅은 필요 없어.”

“저희가 마음 놓고 전방에 집중하려면 마왕님께서 두 땅을 받아주셔야 합니다.”

“필요 없다니까!”

“받아주십시오!”

“그래, 카에라. 카에라의 땅에 사신 보내게 길을 내줘. 카에라가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것도 너희들 공으로 쳐주겠어.”

로엘로선 고르오스의 땅을 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니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로엘의 생각일 뿐이었다.

애당초 로엘이 인간계로 돌아가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두 마족이기에 결단코 거부했다.

“저희가 옛 수도를 점령하면 될 노릇입니다. 그러니 땅을 받아주십시오!”

로엘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니 내놓으라는 길은 안 내놓고 자꾸 왜 땅을 준다는 거야!”

“받아주십시오!”

“아 진짜 안 받는다고!”

마계를 떠나고 싶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렌던만한 땅, 렌던만한 섬을 억지로 쥐여 주는 두 마계 7기둥이었다.

로엘로선 저희들이 알아서 싸워주겠다는데 뭐라 하지도 못하고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그때 굴란트가 통역인이라도 된 양 앞으로 나서며 말하길.

“지금 마왕님께선 제안과 상관없이 단순한 충성의 증표로서 땅을 받길 원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이번 제안은 돌아갈 방법과 마왕 권한을 맞바꾸는 거래일 뿐, 거래에 땅을 주고받는 것까지 포함시키지 말란 뜻이지요.”

로엘이 말한 ‘내가 제안한 건 인간계 복귀 방법을 찾는 거였어.’를 ‘너희들이 땅을 주는 게 거래에 영향을 주기 위함이라면 난 필요없다.’로 해석한 굴란트였다.

그래서 나중에 혹시라도 인간계 복귀 방법을 찾지 못해놓고 땅을 빌미로 로엘을 귀찮게 할까봐 땅은 순전히 선물이라고 못 박아두는 것이었다.

로엘로선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었다.

폭스와 로드리고는 그걸 또 진담이랍시고 냉큼 굴란트의 말대로 하였다.

“거래와는 별개로 드리는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마왕님의 뜻대로 단순 선물로서 땅을 양도하겠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라고 이것들아!”

로엘이 아니라고 말할수록 폭스와 로드리고는 저자세를 취하며 땅을 넘긴다는 말만 할뿐이었다.

로엘의 옆에서 굴란트가 지원사격 한 번 제대로 했다는 듯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덕분에 로엘은 또 다시 두통을 느끼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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