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6 7-3. 잘못된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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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에 도착한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넘었다.
2개의 달과 땅의 색깔, 인간이 아닌 자들이 돌아다니는 환경, 초라한 저택.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져버렸다.
이대로 이곳에서 계속 지내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넓은 침대에 홀로 누워 있던 로엘은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렸다.
유크리드나라는 거미마족의 실을 엮어 만들었다는 이불은 비단으로 만든 양 표면이 매끈매끈했다.
침대 매트는 또 어찌나 푹신한지 외로운 몸을 포옥 감싸주고 있었다.
로엘은 아무 것도 없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인간계 쪽에서는 난리가 났겠지.’
물어보나마나 그란데 백작은 로엘을 찾는다고 난리일 거고, 엘로나나 카넨은 당황할 것이며, 브리니아 왕국의 스이켄은 궁지에서 벗어날 기회랍시고 수작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레이아는 혼란의 틈바구니에 끼여 고생 중일 거고 말이다.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날마다 스랄스가 창고를 뒤지며 아도로스가 남긴 자료들을 뒤지는데도 방법을 찾지 못하는 걸 보면 렌던에서 실마리를 잡는 건 무리일 거다.
최소한 지혜의 마녀라 불리는 카에라란 마족에게 연락을 취할 수만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으로선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번 더 대화를 시도해봐야겠군. 이번에는 내가 직접 폭스에게 가는 게 낫겠어.’
서신이란 소극적인 수단으론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 같으니 직접 가볼 생각이었다.
이번에 서쪽 위험지대, 남쪽 위험지대를 강제정지 시킨 후에 말이다.
로엘이 직접 가면 살짝(?) 거친 분위기로 흘러갈까봐 서신이란 수단을 취한 건데 조금은 귀찮음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할 일을 정리한 후 잠에 들려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눈을 감자마자 바깥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로엘은 침대에서 내려와 누구인지 물었다.
“누구야?”
스랄스나 굴란트일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이 아닌 타유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유아입니다.”
“타유아?”
로엘은 일단 문을 열어주었다.
문을 열자 새벽의 사슬을 손에 휘감고 있는 타유아의 모습이 보였다.
마계에 온 첫날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타유아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야심한 밤에 새벽의 사슬까지 들고 찾아왔다.
로엘은 언제든지 사슬을 뻗을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야습이라도 하러 온 거야?”
“네.”
“그럼 그냥 들어오지 왜 노크를 한 거야?”
“허락 없이 들어가면 반역이니까요.”
“공격하려는 것 자체가 이미 반역 아냐?”
타유아는 그 부분까진 생각하지 않았는지 뒤늦게 알아차린 표정을 지었다.
사슬을 쥔 채로 안절부절거리더니 애써 자세를 다시 잡으며 자신의 실수를 무마하려고 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로엘은 발끈하는 타유아를 보며 단박에 그녀의 성격을 파악해냈다.
‘덜렁대는 성격인가 보네. 덤으로 지기 싫어하는 것도 붙어 있는 것 같고.’
“내가 인간이라서 그래?”
“종족은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평... 평... 으으......”
“평평?”
타유아와 평평한 것이라고 할만한 건 하나밖에 없었다.
로엘의 시선이 타유아의 녹색 드레스 상체 부분에 꽂혔다.
조건반사로 인한 움직임이었다.
로엘은 금세 타유아가 화난 이유를 짐작해냈다.
눈치 빠른 게 독이 되는 것도 모르고.
“아~ 오늘 빈유라고 말한 거 들었구나? 그렇지?”
뚜욱!
로엘의 말로 인해 타유아의 안에서 무언가가 뚝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유아는 새벽의 사슬을 뻗어 로엘의 몸을 휘감았다.
지척에 있던 터라 피할 틈도 없이 새벽의 사슬이 로엘의 상체를 묶었다.
타유아는 새벽의 사슬을 강하게 잡아당겨 로엘을 옥죄었다.
그러면서 울상을 지으며 말하길.
“오늘 사과하려고 했는데... 끄윽, 그 마조 마초랑 그런 얘기나 하고... 끄윽, 문엘프라서 인간 싫어하는 거 아니었는데......”
타이밍을 못 잡아 계속 홀로 있다가 오늘 겨우 사과하려고 했는데 심한 소리 들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엘프가 인간을 증오한다는 것도 옛말인데 그거 가지고 오해하고 있어서 나 몰라라 내버려둔 것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로엘은 어색한 기분에 휩싸이며 멋쩍어하는 모양새로 사과를 하였다.
“아, 뭐... 미안.”
타유아도 막상 로엘에게서 사과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누그러지는지 화난 기색을 풀었다.
“알면 됐어요.”
“사과 받아준 거 맞지?”
“일단은요.”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네.”
“다 풀린 건 아니니까 끝났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저 아직 굴란트랑 한 얘기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니까요.”
“그것 외에는?”
“실력은 인정하고 있어요. 적어도 렌던을 지켜줄 수 있다고는 생각해요.”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와 벌써부터 마족들로부터 강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로엘에게 기대를 걸어보기에는 충분했다.
아도로스가 아니란 이유로 마계 7기둥의 누군가에게 충성하기엔 타유아는 렌던의 마족들을 너무 사랑하니까.
타유아의 말투에서 렌던에 대한 사랑을 느낀 로엘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로에 대한 오해도 풀었겠다 사슬을 풀어달라고 하려던 찰나.
로엘은 감각이 이상해지는 걸 느끼며 발이 꼬이고 말았다.
새벽의 사슬 효과인 감각반전이 적용된 것이다.
그로 인해 로엘의 몸이 타유아에게 부딪쳤고, 타유아가 벽으로 밀리면서 로엘이 그녀를 벽에 몰아세운 형태가 되었다.
“잠깐만. 고의가 아니야. 오른발을 움직이려 했는데 갑자기 왼발이 움직여서......”
“아차, 효과 깜빡했다. 지금 바로 풀어드릴게요.”
타유아가 로엘의 몸에 묶인 사슬을 풀어주려고 로엘의 몸을 더듬었다.
그 순간, 복도 너머에서 스랄스와 굴란트가 뛰어나왔다.
“마왕님! 고함소리가 들렸는데 무슨 일입니까?”
“누군가의 습격이라도......”
막상 도착한 스랄스와 굴란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로엘과 타유아가 서로 웃는 얼굴을 한 상태에서 엉겨 있었기에.
심지어 로엘은 묶여 있고, 타유아는 로엘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스랄스와 굴란트는 인과관계를 떠나 현재의 상황만으로 두 사람의 상태를 가늠했다.
두 마족은 헛기침을 하며 몸을 돌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팔자걸음으로 돌아갔다.
“흠흠, 마왕님과 타유아의 사이가 좋아진 모양이구먼.”
“그런 것 같군. 사이가 좋아졌으면 했지만 벌써 저런 단계까지 이르렀을 줄이야.”
“시간이 무슨 상관인가. 그보다 이왕 하실 거면 좀 더 정상적으로 진행했으면 하는데 말이지.”
“어허, 취향은 존중해드려야지.”
“자네 말이 맞네. 방해꾼은 물러납세.”
큰 오해가 빚어졌음을 감지한 로엘과 타유아는 아니라고 외쳐보았지만 이미 아재 분위기에 젖은 두 마족은 허허 웃으며 물러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