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4 7-3. 잘못된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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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이어, 토파즈, 루비, 에메랄드, 오팔, 금, 은 등......
보석으로 이루어진 장식품이 한가득 걸려 있는 넓은 방 안.
방에는 3개의 계단을 올려 높이를 올린 공간이 있었다.
계단 위의 공간에는 의자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고, 왕의 모습을 구현하여 앉아 있는 마족 한 명이 있었다.
의자에는 갈색 머리를 허리까지 치렁치렁하게 기른 남자가 앉아있었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 뒤로 남자의 꼬리가 가지런히 늘어져 있었다.
꼬리는 기본적으로 갈색이었으나 끝부분만 검은색 털이었다.
꼬리의 숫자는 9개였다.
혼령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유령여우 일족의 불세출 기재 폭스.
유령여우 일족은 꼬리의 숫자가 많을수록 강한 힘을 지니는데 폭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숫자인 9개의 꼬리를 지니고 있었다.
폭스는 폴레이츠를 앞에 두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마물들은 렌던을 뚫지 못했다 이거군.”
“웬 놈이 터줏대감을 베어버린 탓에 위험지대가 강제정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혼돈의 대지 출신인 줄 알았는데 알아보니 마왕의 표식을 지닌 자였습니다. 아도로스가 돌아왔다고 볼 수밖에......”
“그건 아니다.”
“네?”
폭스가 오늘 아침에 도착한 서신 한 장을 들어보였다.
아침에 렌던에서 굴란트가 찾아와 전해준 서신이었다.
이미 서신을 확인했는지 서신에 붙어 있던 봉인이 뜯어진 상태였다.
“새로운 마왕이 보낸 서신이다. 본인은 아도로스가 아닌 다른 자라고 하는군.”
“아도로스가 부활에 실패할 모양이군요.”
“그러니까 새로운 놈이 나타나 마왕을 자처하고 있는 거겠지. 서신에는 딱히 마계 7기둥과 다툴 생각은 없으니 앞으로 잘 지내자는 내용이 적혀 있더군.”
“진심일까요?”
“훗, 단순한 입발림이겠지. 그 뒤에 카에라의 땅에 볼일이 있으니 사신 한 명만 통과시켜달라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었으니까.”
“벌써 마계 7기둥의 성향을 파악한 모양이군요. 마계 7기둥 중에서 가장 유순한 성격인 카에라라면 포섭하기 쉬울 거라 생각하고 있는 게 훤히 보입니다.”
“서신에 대한 대답은 후에 보내기로 해뒀다. 렌던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후에 움직여도 늦지 않겠지. 마왕 직위를 얻자마자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걸 보면 놈도 나와 비슷한 부류일 가능성이 높아.”
렌던 북부의 위험지대를 강제로 활성화시킨 건 폭스였다.
어떤 경위로 위험지대를 강제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얻게 되었는데 그걸 이용해 남은 마왕의 땅을 전부 독차지할 생각이었던 거다.
성벽을 복구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렌던이기에 한 번 무너지면 그대로 3회차까지 전부 무너질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마왕의 등장으로 계획은 허사가 되었다.
폭스는 새로운 마왕이 자신처럼 음흉한 부류하고 확신하고 있었다.
폭스가 수작을 부린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비꼬기 위해 평화니 싸울 생각 없다는 서신을 보낸 거라 여기고 있었다.
“바로 터줏대감을 벨 정도면 어느 정도 실력은 있다는 거군.”
“특이한 게 마기 한 줌 없는 평범한 아디만티움 검으로 샤크 울프를 베어냈습니다. 검의 능력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군요. 검을 먹는 두꺼비를 투입했다가 역으로 당했습니다.”
“마기 없는 검으로 샤크 울프를 베어냈다? 흐음,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일지도.”
“가볍게 여길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경거망동해선 안 되겠군. 일단 좀 더 놈에 대한 정보를 모아오도록.”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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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엘은 이틀에 걸쳐 텔레파시 연습을 해보았다.
이틀을 꼬박 투자하니 서서히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복귀해.]
저택 동쪽 끝에서 저택 서쪽 끝에 있는 샤크 울프에게 명령을 내렸다.
샤크 울프에게 내릴 명령과, 샤크 울프가 취한 움직임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명령을 내리는 게 포인트였다.
잠시 후, 샤크 울프가 벽을 빙둘러서 로엘의 앞에 도달했다.
지금은 한 마리만 다루는 거라 크게 어려움이 없었지만 머릿수가 많아지면 명령을 내리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터줏대감을 다루는 자들은 항상 테이머 한 명쯤은 곁에 두는 편이었다.
테이머는 소환수를 다루는 기술을 익힌 자들인지라 그 능력에 따라 여러 마리의 터줏대감에게 동시에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상급 테이머의 경우 최대 10마리의 터줏대감에게 각기 다른 명령을 전달하는 게 가능했다.
보통은 마계 7기둥이나 각 지방의 고위마족들이 활성화의 핵을 얻어 소환하고, 테이머가 링크라는 마법을 걸어 일시적으로 소환수에게 텔레파시를 전달할 권한을 얻는 방식으로 터줏대감을 다루는 편이었다. 위험지대를 많이 보유한 자일수록 강한 터줏대감을 많이 얻게 되기 때문에 테이머가 배신하면 상당히 골치 아파졌다. 그래서 테이머는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두거나 배신하지 못할 정도로 후한 대우를 해주는 편이었다.
배신이 염려되어 테이머를 두는 걸 꺼려하는 성격일 경우 그냥 1~2마리만 다루면 되었다.
물론 여러 마리를 다루는 자들보단 뒤떨어지겠지만 말이다.
로엘로선 마계의 패권 싸움에 참가할 생각이 없으니 굳이 타유아를 붙잡아둘 이유가 없었다.
꼭 필요할 때 1~2마리만 쓰면 되니까.
로엘은 소환해제를 하여 샤크 울프를 활성화의 핵으로 되돌렸다.
내일이면 렌던 서쪽의 위험지대가 활성화되기에 스랄스, 굴란트와 함께 나가 강제정지를 시키고 올 예정이었다.
때마침 폭스의 땅에 다녀온 굴란트가 저택으로 돌아왔다.
굴란트는 쌍두마에서 내리며 로엘에게 다가왔다.
“명령대로 폭스의 땅에 서신을 전해주고 왔습니다.”
“대답은?”
“좀 더 생각해본 다음에 답변하겠다고 합니다. 무리도 아니죠. 폭스의 땅은 땅덩이로만 치면 마계 7기둥 내에서 3위입니다. 이곳 렌던만 차지하면 2위인 로드리고를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에 호시탐탐 렌던을 노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렌던 북쪽 위험지대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 것도 폭스의 짓이 아닐까 싶습니다.”
“폭스란 자에 대해 좀 더 말해봐.”
“유령여우 일족의 천재로 아도로스 님이 사라진 후에 마계 7기둥이 된 자입니다. 보석을 좋아하고 혼령술을 다루는데 힘만 따지면 마나 마스터급입니다. 마계 7기둥 내에서도 속내가 음흉한 자로 유명하죠. 명령만 내리신다면 폭스가 렌던 북쪽 위험지대를 비정상적으로 활성화시켰다는 증거를 찾아내보겠습니다.”
폭스가 렌던을 취하기 위해 수작을 부리고 있다면 응수해야 옳았다.
그러나 로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어. 다른 루트로 카에라의 땅과 접촉할 방법을 찾아보자고.”
현재 로엘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를 위해선 최대한 마계 7기둥과 부딪치지 않고 현상유지를 해야만 했다. 가장 적은 땅과 가장 적은 병력을 지닌 채로 마계 통일에 뛰어드는 귀찮은 짓을 하고 싶진 않았다.
굴란트는 로엘이 인간계의 병력을 끌어와 마계 통일을 노린다고 여기고 있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로엘의 명령에 따를 뿐이었다.
보고 이후에도 로엘과 굴란트의 대화는 계속 되었다.
한편 저택 정원 너머의 건물 모퉁이 너머에선 타유아가 숨어있었다.
타유아는 모퉁이 너머에서 슬그머니 얼굴 반쪽만 내민 채 로엘을 훔쳐보고 있었다.
로엘에게 사과할 타이밍을 엿보기 위함이었다.
타유아는 한 뼘 길이의 기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로엘과 굴란트의 대화를 엿들었다.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거지?’
두 남자는 폭스의 땅 이야기를 마치고 타유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먼저 타유아를 언급한 자는 굴란트였다.
“저... 외람된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뭔데? 말해봐.”
“혹시 마왕님께서 타유아를 남게 해두는 건 한 명의 여성으로서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까?”
“무슨 소리야?”
“이미 들어 알고 계시겠지만 타유아는 문엘프라 인간을 증오합니다. 마왕님께서 바라시는 마음에서 우러난 충성심은 바라기 힘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둔다는 건 외견이 마음에 들었다고 볼 수밖에......”
“아니지. 그건 절대 아니야. 이미 인간계에 사랑하는 여자들이 있어. 타유아에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진 않다고.”
“아, 그렇습니까? 하긴 타유아를 여자로 여기기엔 너무 큰 결점이 있긴 하죠.”
로엘은 굴란트의 말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부분이 있었다.
일말의 망설임 한 점 없이 그 부분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빈유인 거?”
굴란트도 부정하지 않았다.
“성격이랑은 정반대로 굴곡 하나 없죠.”
“솔직히 그 부분은 상관없어. 가슴 크기로 여자력이 결정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죠.”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군.”
몰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타유아는 귀 끝까지 새빨갛게 물들었다.
당연히 그녀의 주먹은 그 어느 때보다 불끈 쥐여 있었다.
‘이것들이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을......’
사과할 마음이 싹 가시면서 대신 분노가 들어찼다.
사람들이 왜 금기를 금기라 하겠는가?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이니까 금기라 하지 않는가!
타유아는 반쯤 울상이 된 얼굴로 씩씩거리며 몸을 돌렸다.
이렇게 된 이상 오기로라도 남아서 두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줄 거다.
그를 위해선 로엘이 처음 온 날 조각났던 새벽의 사슬부터 고쳐야 했다.
반드시... 반드시 혼을 내주고 말 테다.
화가 나서 강하게 발을 구르며 걷고 있는 타유아는 쪽문에서 나오던 스랄스와 마주쳤다.
스랄스는 드디어 타유아가 바깥에 나온 것이 반가워 해골손을 크게 흔들었다.
“어이~ 타유아. 드디어 나왔구먼. 이제 로엘 님을 따를 생각이 들었나?”
타유아는 씩씩거리면서 걷다가 스랄스의 턱을 손바닥을 후려치며 성질을 냈다.
“시끄러워!”
타유아의 손바닥에 맞은 스랄스의 두개골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눈구멍이 있는 방향이 로브 안쪽으로 들어간 탓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스랄스는 양손으로 어긋난 두개골을 붙잡으며 허둥지둥거렸다.
“앞이 안 보이잖아! 타유아! 왜 성질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긋난 뼈는 맞추고 가! 타유아? 타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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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유아는 새벽의 사슬 조각이 담긴 주머니를 들고 저택 바깥으로 나왔다.
새벽의 사슬에는 휘감은 대상에게 혼란의 표식을 남기는 효과가 있다.
새벽의 사슬을 통해 혼란의 표식에 마기를 불어넣으면 몇 초 동안 상대의 감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 있다.
로엘과 굴란트에게 평야의 분노를 보여주려면 새벽의 사슬부터 고쳐야 했다.
타유아는 대장간을 찾아가기 위해 렌던 시내로 향했다.
렌던 시내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는데 길가에서 양을 몰며 걷고 있던 양치기 한 명이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타유아 님.”
가는 방향이 같아 나란히 걷게 된 타유아는 대충 인사를 받아주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어, 그래. 안녕.”
“새로운 마왕님이 오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분이신가요?”
“그 녀석 얘긴 꺼내지도 마.”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일이 있었냐고? 최악의 일이 있었지. 으으, 생각하니까 더 열 받네.”
씩씩거리면서 양치기를 지나치는 타유아였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로엘과 굴란트를 혼내줌과 동시에 그를 빌미로 고자세를 유지한 채로 로엘 무리에 합류하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타유아는 쿵쿵거리는 발걸음으로 양치기를 지나쳐 렌던 시내로 들어갔다.
반면 길을 걷던 양치기는 박쥐의 것과 비슷한 날개를 펼치며 누런 눈동자를 반짝였다.
‘신생 마왕과 수하들 사이가 매우 좋지 않은 건가. 이걸 이용하면 되겠어. 폭스 님께 보고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