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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131화 (131/219)

00131 6-4. 귀환을 떠미는 순풍 =========================

6-4. 귀환을 떠미는 순풍

덱스터는 사망했고 남은 마족군 잔당도 모두 처리했다.

망자섬 토벌을 끝낸 빌로스 군은 동쪽 해안에서 하룻밤 묶고 가기로 하였다.

다들 전투로 지쳐 있는 상태에서 바로 배에 타면 없던 멀미도 날 테니 말이다.

전투를 벌이지 않아 깔끔한 동쪽 해안에서 야영준비를 했다.

기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천막을 세우고 불쏘시개와 장작을 긁어모았다.

안개 때문에 기름을 쓰지 않으면 불이 잘 붙지 않는데다 장작거리도 죄다 젖어있어 여기저기서 생나무 타는 연기에 기침을 해댔다.

“콜록콜록! 여기 기름 좀 가져다줘! 장작에 불이 안 붙어!”

“누가 부싯깃을 물에 담근 거야?”

“담그긴 누가 담가. 젖은 주머니에 넣고 왔으니까 물기 먹은 거겠지.”

평소 같으면 병사들을 시켰겠지만 병사 없이 온 탓에 저희들끼리 검댕을 묻히며 모닥불을 피워댔다.

야영지 곳곳에서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기사들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갑옷을 벗고 차례차례 숲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숲 안에 개울이 있는 걸 발견했기에 순서를 정해 씻고 왔다.

소금기 섞인 안개에 절어있던 몸을 씻고, 배에서 마른 옷을 가져와 입은 후 모닥불을 향해 맨발을 내민 후에야 하나둘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더프를 비롯한 로얄기사단은 또 낚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여기도 물 반 고기 반이구만.”

“단장님. 여기 바다가재도 있는데요?”

“잡아. 본스마에서 비싼 축에 속하는 거잖아.”

“크으, 이럴 때 술이 있어야 하는데.”

승전 이후의 술은 각별한 맛이 있다.

모두가 술 생각이 간절할 때 덱스터의 성에 다녀온 그란데 백작이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

“전하, 놈들의 성에서 좋은 걸 발견했습니다. 오늘 거하게 한 잔하시지요.”

그란데 백작이 이끌고 갔던 병사들이 짐수레를 끌고 왔다.

짐수레에는 술을 비롯하여 담뱃잎과 말린 고기, 상당량의 금은보화가 실려 있었다.

성의 창고에 있던 걸 죄다 가져온 것이었다.

로엘은 짐수레를 한 번 보곤 뒤를 돌아보았다.

야영지에 퍼져 있는 기사들이 전원 로엘을 주목하고 있었다.

내일 숙취를 안고 배에 타면 어찌될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시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로엘도 승전 이후까지 딱딱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그래 오늘은 거하게 마셔보자. 대신 내일 갑판 위에 토하는 놈은 바다에 던져버린다.”

“오오! 전하 만세!”

허락도 떨어졌겠다 각 부대마다 술을 한 아름씩 안고 들고 갔다.

안주 걱정은 필요 없었다.

로얄기사단이 쉴 새 없이 물고기를 낚아 올리고 있었기에 대충 나뭇잎에 싸서 진흙을 덮은 다음 불에 던져 넣어 찜요리를 해먹었다.

동쪽 해안에 놀자판이 벌어진 가운데 하늘 위에서 드래곤의 모습을 한 베나티아가 날아왔다.

베나티아의 발톱에는 바보삼형제가 쥐여 있었다.

오다가 헤엄을 치고 있는 바보삼형제를 발견하고 오는 김에 겸사겸사 데려온 것이었다.

바보삼형제 중 둘째와 셋째는 기력이 다한 첫째를 쉬게 하기 위해 배로 데려갔다.

반면 베나티아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며 로엘의 옆에 붙었다.

바실리스크의 싸움이 제법 고되었는지 스스로 어깨를 주무르며 로엘을 불렀다.

“야, 내가 고생하고 있는데 너희는 놀고 있어?”

“오셨습니까, 누님. 토벌은 끝났습니다. 누님도 잘 해결하신 것 같네요.”

“내가 돌뱀한테 질 리가 있겠어? 쬐끔, 아주아주 쬐끔 고전하긴 했지만 말이야.”

“하하, 어련하시겠습니까.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한 잔 하시죠.”

“그거 좋지.”

베나티아는 로엘과 단둘이서 술잔을 나눌 생각이었다.

그게 당연한 거라 여겼다.

그런데 로엘의 뒤에서 그란데 백작이 방긋방긋 웃으면서 따라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로엘과 한 잔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베나티아는 그란데 백작에게 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너는 왜 따라와?”

“전하와 축배를 올려야지요.”

“나랑 갈 건데?”

“저도 가면 안 되겠습니까?”

“어, 안 돼.”

단호하기 짝이 없는 말에 그란데 백작이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돌아갔다.

로엘은 그 모습을 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

다음날 아침해가 밝자마자 로엘이 천막에서 걸어 나왔다.

간밤에 베나티아가 고생시킨 걸 갚으라 갚으라 독촉하다가 그만 갚아도 된다고 말한 걸 빼면 평안한 밤이었다.

마지막 불침번을 서고 있는 기사들을 제외하곤 전부 골아 떨어져 있었다.

자정이 넘도록 마셨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귀족 중에서는 파스텔 공작이 일어나있었다.

그는 파도가 닿을 듯 말 듯한 위치에 서서 해가 떠오르고 있는 동쪽 바다를 보는 중이었다.

로엘은 자갈을 밟으며 파스텔 공작의 옆에 나란히 섰다.

똑같이 해를 바라보는 와중에 로엘이 말하길.

“파스텔 공작도 마나 마스터까지 올라갔었어?”

덱스터가 한때 마계정복을 꿈꿨다면 마나 마스터의 경지 정도는 되었을 터.

실제로 이번 싸움에서도 마나 마스터의 경지였고 말이다.

파스텔 공작의 육체로도 마나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었는지에 대해 물은 것이었다.

파스텔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죠. 파스텔 공작 가를 물려받으면서 모든 힘을 버렸지만요.”

로엘은 생각했다.

전생과 전전생에서도 파스텔 공작은 직접 전투엔 나서지 않다가 통일전쟁 후반기 때쯤에 서서히 경지를 끌어올리기 시작했었다.

아마 전생과 전전생에서도 조직은 존재했을 거고 로엘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조직의 계책을 무너뜨렸을 거다. 원래는 바보삼형제가 로엘을 습격했다가 역으로 죽음을 당했고, 루엔은 로엘의 첩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었으니까.

망자섬에서 병력을 모으던 덱스터가 대륙통일이 다되어가는 것을 보고 파스텔 공작의 육체를 도로 빼앗아 정권을 노렸던 것이리라.

정권장악 이후에 망자섬의 병력을 이용하려던 것일 거고.

그보다 이미 10년 전에 파스텔 공작에게 마나 마스터의 힘이 있었다는 게 중요했다.

10년 전이면 로엘이 어릴 때이고 가이아 대륙에 마나 익스퍼트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었다.

자신을 막을 자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힘을 버린 이유가 궁금했다.

“왜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은 거야?”

확실히 이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왕궁으로 오지 않겠냐고 제안했는데 거절했었다.

아무런 욕심이 없는 사람처럼.

이번에도 사실상 덱스터를 베는데 큰 공을 세웠건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겠다 하였다.

파스텔 공작은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를 열었다.

펜던트 안에 그려져 있는 얼굴 없는 초상화를 아련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무얼 하든 제가 가장 원하는 건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펜던트 안에는 은발의 여성이 그려져 있었다.

얼굴은 그려져 있지 않았지만 은발만 봐도 누군가가 떠올랐다.

가이아 대륙에서 은발은 그리 흔하지 않다.

더하여 로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은발의 아이가 있었다.

파스텔 공작이 마계로 떨어졌다던 20년 전에 태어난 아이가 말이다.

로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며시 말을 꺼냈다.

“설마 루엔과 관련된 사람은 아니겠지?”

루엔이라면 파스텔 공작도 본 적이 있었다.

올해 초에 벌어진 귀족회담 때 루엔이 동행했었으니까.

로엘의 질문을 받은 파스텔 공작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모습과 많이 닮았더군요.”

“알아차렸다면 어째서......”

“말을 걸지 않았냐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전하께서 함께해주시고 계시니까요.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버지가 있다는 걸 알면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

파스텔 공작도 몇 번이나 알려주고 싶었는지 고개를 위로 들며 눈을 감았다.

알려주는 건 루엔에게 악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강한 존재라면 아버지란 복잡한 존재다.

아버지의 침묵은 항상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이해 받지 못하더라도 분명 사랑이란 카테고리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고 있으리라.

잠시 후, 파스텔 공작이 침묵을 깼다.

“햇살 때문에 눈이 부시군요. 먼저 배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평범함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다준다.

생각에 여백이 생길 때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되새기고 있는 것이리라.

파스텔 공작의 평범함은 속죄의 마음을 담은 평범함이었다.

굳이 그걸 로엘에게 밝힌 건 루엔을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걸지도 몰랐다.

로엘은 괜스레 콧등을 매만지며 파스텔 공작의 말을 마음속에만 담아두기로 마음먹었다.

///

야영지 안에서 하나둘 기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숙취 때문에 앓는 소리를 내며 귀환준비를 하였다.

천막을 차곡차곡 접어 배로 옮겼다.

로엘도 베나티아를 깨워 배가 정박 중인 남쪽 해안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12척의 함선 앞에 도착하니 로엘이 탈 배의 아래에 있는 물속에서 셸리가 로엘을 쳐다보고 있었다.

셸리는 로엘이 온 것을 보자마자 냉큼 물 밖으로 나와 머리를 쏘옥 내밀었다.

장한 일이라도 한 아이마냥 칭찬을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로엘이 시킨대로 계속 배 지키고 있었어요. 잘했죠?”

망자섬에 도착하기 직전에 정박한 동안 배를 지키라고 했는데 토벌이 끝난 후에도 계속 그 명령을 따르고 있던 것이다.

토벌이 끝난 후에 끝났다고 말하려 했었는데 그만 깜빡하고 말았다.

날밤을 샌 듯 눈 밑에 그늘까지 생겨나 있었다.

거기에 상을 바라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으니 그냥 넘어가기 힘들 것 같았다.

로엘은 그녀 역시 고생했다 여기며 피식 웃었다.

“그래 아주 잘했어. 상이라도 줄까?”

“네!”

마침 기사들이 금은보화를 담은 상자를 들고 지나가기에 거기에 담긴 장신구 몇 개를 꺼내들었다.

“보석이라도 받을래?”

“보석 필요 없어요.”

“오르비르 산에서 치장하는 거 그리 좋아하더만.”

“에헤헤, 그런 옛날 일까지 기억하고 계시네요. 항상 내 생각만 하시나봐.”

“혼자 설레발치기는. 그럼 뭘 받고 싶은데? 참고로 후계자 수업 끝날 때까진 같은 방 못 쓰는 거 알지?”

이건 블라스크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셸리의 후계자 수업 의욕을 높이기 위한 방침의 일부로 미리 약속을 맺었었다.

셸리도 억지스러운 부탁을 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손을 가로저었다.

“그거 말고 다음 달 말일이 제 생일이니까 그때 본스마 항구에 나와 주세요.”

“나오기만 하면 돼? 생일선물은 따로 필요 없고?”

“네. 나와 주시기만 하면 되요.”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볼게.”

생일 때 로엘 얼굴 보는 게 소원이었던 건지 세상을 다 가진 듯 해맑게 웃는 셸리였다.

두 사람은 새끼손가락까지 걸어 약속을 하였다.

그 사이 귀환준비가 끝났다.

돌아갈 때는 바람을 타고 여유 있게 돌아가기로 했다.

숙취에 절어 있는 기사들을 고려해서 말이다.

배가 망자섬을 우회하여 본스마 항으로 향함과 동시에 순풍이 불어왔다.

빨리 가이아 대륙으로 보내주려는 것처럼.

///

하니온 왕국의 수도에 위치한 하니온 왕궁.

하니온 왕궁에 비둘기 한 마리가 바쁘게 날아들었다.

비둘기를 보내온 건 지저감옥이었다.

지저감옥에서 전해온 편지는 곧장 하니온 왕궁의회에 전해졌고, 편지에 담긴 내용으로 인해 왕궁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편지에는 단 한 줄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지저감옥의 모든 죄수들이 탈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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