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6 6-1. 각개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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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델 공작의 철갑기마대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었다.
숲으로 들어가다가 갑자기 늪지대가 나온 탓에 말발굽이 빠져버렸다.
철갑기마대의 절반이 늪지대에 빠져버렸는데 철갑을 두른 말인지라 무게가 무거워 삽시간에 말다리가 늪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케이델 공작은 궁여지책으로 말을 버리기로 하였다.
“늪에 빠진 자들은 말에서 내려라!”
케이델 공작을 비롯한 철갑기마대 기사 몇 명이 말을 발판 삼아 늪지대 바깥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헌데 갑자기 늪지대에서 슬라임에 가까운 모습을 한 진흙덩어리 마족이 튀어나와 케이델 공작을 덮쳤다.
푸엉!
케이델 공작을 삼킨 진흙덩어리는 늪지대 속으로 도로 들어갔다.
철갑기마대 기사들은 탈출하던 발걸음을 멈췄다.
“공작님!”
“어서 공작님을 구해라!”
“보이지 않아! 늪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갑옷을 벗어! 늪에 뛰어들어서라도 공작님만큼은 지켜야 한다!”
전원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사이 늪 바깥에 있던 로스트가 일갈을 내질렀다.
“당황하지마라! 우리가 당황하는 게 적이 노리는 것임을 모르겠느냐!”
로스트의 일갈에 기사들이 침착함을 되찾았다.
로스트는 등에 걸쳐둔 화살통에서 유달리 굵은 화살을 꺼내 동아줄을 묶었다.
화살에 마나유저 상급 수준의 마나가 부여되었다.
로스트는 늪을 바라보다가 기포가 올라오는 곳을 확인하곤 화살을 비스듬히 쏘았다.
쉬익!
마나 담긴 화살이 늪을 뚫으면서 진흙탕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잠시 후, 화살에 매단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로스트는 동아줄을 양손으로 잡아 힘껏 당기며 외쳤다.
“줄을 당겨라!”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줄다리기를 하듯 동아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진흙이 들썩거리면서 진흙범벅이 된 케이델 공작이 딸려나왔다.
케이델 공작은 진흙을 한 움큼 뱉어내었다.
“쿨럭! 제길, 성가신 놈한테 걸렸구만.”
케이델 공작이 늪에서 빠져나가는 걸 허락지 않으려는지 진흙덩어리 마족이 튀어나와 케이델 공작을 다시 집어삼키려 했다.
케이델 공작은 코를 풀어 진흙을 뿜어내며 한 손으로 검을 뽑았다.
검을 뽑음과 동시에 휘두르며 마나 블레이드를 생성해냈다.
파앗!
마나 블레이드에 베인 부분에서 진흙이 마구 튀어나가나 싶더니 이내 곧 원상복구 되었다.
케이델 공작의 공격은 저지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위로 돌아갔다.
진흙 마족은 한 번 더 케이델 공작을 삼켰다.
게다가 힘이 어찌나 센지 동아줄을 잡고 있는 기사들이 되러 조금씩 늪쪽으로 빨려 들어갈 정도였다.
로스트는 건틀릿 사이로 동아줄이 미끄러지는 걸 느끼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더 세게 잡아당겨라! 이러다 공작님 돌아가시겠다!”
“영차! 영차!”
진흙 마족은 동아줄을 잡고 있는 기사들마저 조금씩 늪 쪽으로 잡아당겼다.
진흙 마족의 진흙 윗부분에 사람의 얼굴이 생겨났다.
얼굴 형태는 점점 더 선명해지더니 안간힘을 쓰고 있는 기사들을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용쓰는구나 인간 놈들아. 네깟 것들의 힘으로는 무리란다.”
진흙 마족의 정체는 머드 아크였다.
늪 자체가 머드 아크의 본체이며 늪에 빠진 자를 집어삼키는 방식으로 사냥을 행하는 부류였다.
머드 아크와 철갑기마대의 힘겨루기가 한창인 가운데 진흙에 삼켜진 케이델 공작은 동아줄을 놓치지 않도록 온힘을 다하는 중이었다.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인 동아줄을 놓친다면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소화가 시작되었는지 케이델 공작의 갑옷 신발 표면이 조금씩 부식되기 시작했다.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소화가 시작된 것이다.
케이델 공작은 기사들의 도움에만 목을 매달 때가 아님을 직감했다.
‘줄만 붙잡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떻게든 이 녀석을 처리할 방법을......’
진흙이 투구 안쪽으로 가득 밀려와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그래도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케이델 공작은 동아줄을 허리에 묶은 후 양팔로 진흙을 비집으며 몸을 반 바퀴 돌렸다. 단순히 허릿심만을 이용해 검을 휘둘러서 진흙을 크게 걷어냈다.
파파팟!
마나 블레이드에 베인 진흙이 크게 걷혀지면서 빠져나갈 공간에 생겨났다.
케이델 공작은 머드 아크가 몸을 원상복구하기 전에 검을 늪에 꽂아 단숨에 진흙더미 속에서 빠져나갔다.
늪 위로 케이델 공작의 모습이 드러나자마자 기사들이 케이델 공작을 힘껏 잡아당겼다.
머드 아크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케이델 공작의 몸이 공중에 붕 뜨면서 늪 바깥의 단단한 지대에 떨어졌다.
머드 아크는 늪 바깥으로 진흙을 뻗어냈다.
“어딜 도망가려고!”
진흙이 뭉쳐 손 모양의 형태를 띠더니 케이델 공작의 발목을 낚아채려 했다.
철갑기마대 기사들은 즉시 방패를 들어 날아드는 진흙을 튕겨냈다.
그 사이 로스트는 케이델 공작을 데리고 늪에서 떨어졌다.
케이델 공작은 또 다시 진흙을 한 움큼 뱉어내며 갑옷을 벗었다.
건틀릿이나 부츠를 벗을 때마다 사이사이에서 진흙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악취는 또 얼마나 나는지 케이델 공작의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쿨럭쿨럭! 젠장 앞으로 한동안 몸에서 썩은 내가 진동하겠군.”
“아무래도 퇴각해서 다른 길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놈과 싸우기엔 상성이 좋지 않습니다.”
“로스트, 내가 적을 앞에 두고 퇴각하는 것을 봤나? 등을 돌리는 건 승리했을 때뿐일세.”
“공작님의 성향이야 잘 알고 있습니다만 늪을 상대로 싸울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흐음, 늪 자체가 놈의 본체라 치면......”
케이델 공작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각 기마마다 매달고 있는 작은 나무통에 시선을 주었다.
나무통 안에는 검과 갑옷을 손질할 때 쓰는 기름이 담겨 있었다.
“불을 피우는 게 좋겠군.”
케이델 공작의 말을 들은 철갑기마대 기사들이 전원 기름통을 한데 모았다. 뿐만 아니라 검을 빼어들어 주변에 있는 나무를 향해 휘둘렀다. 검에 의해 나뭇가지가 우수수 떨어지면서 삽시간에 나뭇가지가 수북하게 쌓였다.
케이델 공작군의 행동을 보고 있던 머드 아크는 그들의 작전을 알아차렸다.
‘불을 이용해서 공격할 속셈이군. 화공에 대한 대비는 확실하게 해뒀지.’
머드 아크의 유일한 약점은 바로 불이었다.
머금고 있는 수분을 날려버릴 정도의 불이 붙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빠짝 말라버린다.
그래서 약점을 보완하고자 버블 임프들을 대기시켜놓았다.
버블 임프를 자폭시키면 그들이 머금고 있는 물기가 퍼지면서 물의 장막을 형성한다.
케이델 공작군이 기름 먹인 횃불을 던지면 수풀에 숨어있는 버블 임프들을 자폭시킬 생각이었다.
케이델 공작군은 나뭇가지를 한데 모아 기름을 붓고 불을 피웠다.
기름에 불이 붙으면서 나뭇가지가 활활 타올랐다.
기사들은 각자 굵은 장작을 집어 들어 그 끝에 동아줄을 감은 후 기름통에 푸욱 담갔다. 그리곤 모닥불에 장작을 가져다대어 횃불을 만들었다.
기사 중 한 명이 횃불을 들고 있다가 뜨거운 기름이 건틀릿 사이로 떨어진 탓에 무심코 횃불을 던졌다.
“앗 뜨거!”
머드 아크는 화공이 시작되는 건가 싶어 수풀 너머의 버블 임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자폭해라! 놈들의 화공을 무력화시키는 거다!”
수풀 사이에서 임프 모양의 비눗방울들이 둥실둥실 튀어나와 머드 아크의 앞에서 자폭했다.
빠방! 팡! 팡!
버블 임프의 자폭으로 공기 중에 수분이 더해지나 싶더니 물의 장막이 생겨났다.
공중을 날던 횃불은 물의 장막에 닿으며 삽시간에 꺼져버렸다.
머드 아크는 의기양양하게 웃어댔다.
“크하하! 안 됐구나. 이럴 줄 알고 약점을 철저하게 보완해놓았지.”
허나 머드 아크의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물의 장막 너머로 케이델 공작군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케이델 공작군의 시선은 마치 ‘쟤 혼자 뭐한데?’라고 말하는 듯 어리둥절함이 가득했다.
케이델 공작은 손으로 이마를 치며 탄성을 자아냈다.
“아! 저 녀석 약점이 불이었구나!”
“그랬군요. 화공을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휴식은 취소다! 전원 검과 횃불을 들어라!”
머드 아크를 공략할 방법을 찾지 못해 휴식이라도 하며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횃불을 던진 기사도 단순히 기름이 떨어져 놀라 횃불을 놓친 것일 뿐이고 말이다.
머드 아크는 제 스스로 약점을 밝힌 꼴이 되어버렸다.
공격 의도도 없었는데 버플 임프를 대량으로 소모해버린 것이다.
머드 아크는 검과 횃불을 들고 물의 장막 속으로 뛰어드는 케이델 공작군을 보며 당황을 금치 못했다.
“어? 어어?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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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길 중 가장 오른쪽에 있는 길을 택한 그란데 백작은 말을 타고 전력질주 중이었다.
“이랴! 속도를 높여라! 가장 먼저 전하께 승전보를 알리는 건 우리가 되어야 한다!”
“백작님 너무 빠릅니다! 좀 더 주의를 하면서 가야합니다!”
“괜찮다! 매복이 있으면 뛰어넘고 적이 나타나면 뚫어버리면 되느니라!”
“말이야 쉽죠!”
“기합이다 기합! 충성심으로 극복해라!”
앞서 가던 그란데 백작은 안개 사이에서 흉흉한 기운이 풍겨옴을 느꼈다.
그란데 백작은 말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가 탄 말이 앞다리를 크게 들며 간신히 멈추었다.
그란데 백작이 멈춘 자리 코앞에 머리 없는 말을 탄 검은 갑옷의 기사가 있었다.
안개 때문에 확인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란데 백작과 검은 갑옷의 기사 사이의 거리는 팔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갑옷의 기사는 그란데 백작을 공격하지 않았다.
검은 갑옷의 기사는 철투구 사이로 그란데 백작을 바라보며 굵직한 목소리를 내었다.
“태세를 갖추지 않은 자를 기습하는 건 내 기사도에 어긋나는 것. 자세를 갖추어라.”
긍지가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머리 없는 말을 타고 다니는 죽음의 기사.
데스나이트였다.
생전에 기사였던 자가 죽어서 언데드화 되면 만들어지는 기사로 생전의 실력보다 한 수 위의 무력을 지니게 된다. 기사 중에서도 긍지 높은 기사여야만 만들 수 있다는 언데드이기도 했다.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은 사라지지만 기사였던 긍지는 그대로 남아있기에 기습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란데 백작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거리를 두었다. 그리곤 데스나이트 혼자 있는 걸 확인한 후 병사들을 뒤로 물렸다.
“이 자와는 일기토로 승부를 내겠다. 다들 물러나거라.”
기사들은 뒤로 물러나며 두 사람이 싸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주었다.
데스나이트는 검을 세운 채로 자신의 가슴에 대며 예를 갖췄다.
“기사의 대결을 받아주어 감사를 표한다. 그대 역시 명예를 아는 자이니 이름을 밝히는 게 도리일 터. 나의 주군에게 충성의 검을 바친 제로라고 한다.”
“빌로스 왕국의 그란데이니라. 로엘 전하께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의 검이 될 것을 맹세했느니라.”
“서로 충성으로 빚어진 자로구나.”
“감히 나의 충성심을 가늠하려 들지 말거라. 그 누구보다도 진한 농도를 지닌 충성심이니라.”
“난 충성심이 아니면 존재할 수조차 없는 몸이다.”
“허허, 이건 서로의 충성심을 겨루는 대결이 되겠구나.”
“충성심이 모자란 쪽이 바닥에 누울 터.”
“두 말할 것도 없지.”
물러나 있던 기사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충성심을 겨룬다니... 이 사람들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