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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122화 (122/219)

00122 5-9. 시작의 불씨 =========================

5-9. 시작의 불씨

망자섬과의 전쟁이 확정된 이후 빌로스 왕궁 안은 굉장히 분주해졌다.

먼저 망자섬 공략을 위해 세 무리가 출발하기로 하였다.

로엘이 직접 이끄는 국왕군, 케이델 공작이 이끄는 철갑기마대, 드리안 공작이 이끄는 백마부대가 최종적으로 망자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 중 로엘의 국왕군은 소수정예 300명으로 구성되었다.

로얄기사단 150명, 그란데 백작 가 소속 크라잉 기사단 80명, 각 지방에서 올려 보낸 기사 70명.

각 지방에서 올려 보낸 기사들은 그란데 백작이 맡기로 하였다.

일반병사들은 전사하면 언데드가 되어 적군의 전력만 불려줄 수도 있기에 병력구성에서 제외하였다.

그 외에는 베나티아와 삼형제 중 둘째, 셋째가 함께 가기로 했다.

소수정예로 구성된 만큼 이동시간은 매우 빨랐다.

로엘은 300기의 기사단을 이끌고 말을 갈아타며 이동한 끝에 닷새 만에 본스마에 도달했다.

본스마를 다스리는 귀족이 미리 연락을 받고 함선을 준비했기에 로엘의 국왕군은 바로 6척의 함선에 나눠 탔다.

데리고 온 말과 모우, 기사들이 6척의 배에 나눠 탔다. 그리고 갈 때와 올 때 먹을 식량, 전투 때 쓸 병구를 선박 창고에 채워 넣었다.

함선이 본스마 항에서 출항하자마자 로엘은 갑판에 서서 이마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로엘의 이마에 박혀 있던 블루오션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용왕의 권능이 발휘되었다.

로엘은 바다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대양에서 가장 빠른 자들이여. 나의 권능을 인정한다면 부름에 응해라.”

바다몬스터인 하이퍼돌핀을 부른 것이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블루오션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잠시 기다리자 반응이 왔다.

바다에서 거품이 뽀글뽀글 솟아오르나 싶더니 노란색 피부를 가진 돌고래 떼가 튀어올랐다.

말이 돌고래지 크기는 백상아리에 준하였고, 등지느러미는 바다거북의 등껍질 정도는 가볍게 갈라버릴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 숫자만 하더라도 수백에 달하여 한 폭의 장관이 펼쳐졌다.

누가 뭍에서 사는 사람들 아니라고 기사, 귀족 할 것 없이 갑판 난간에 기대어 하이퍼돌핀을 구경하였다.

바다에 처음 오는 자도 있는 터라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오오! 생선 크기가 어마어마하구나!”

“어후, 등지느러미 날카로운 것 좀 봐. 배에 부딪치면 큰일 나는 거 아냐?”

“어디 나도 한 번 보... 우웩!”

“이 녀석 멀미하잖아! 얼른 배 뒤로 데려가!”

싸우러 가는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모두가 들떠 있었다.

싸우기 전에는 딱 이 정도가 좋았다.

하이퍼돌핀이 배를 끌어준다 해도 사흘은 걸린다.

항해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통상적인 적과는 다르기 때문에 긴장하면 적을 멋대로 상상해버려서 자기 안의 공포심만 키울 뿐이다.

전투 전에는 살짝 들뜬 정도가 딱 좋았다.

하이퍼돌핀 사이마다 인어들이 나타났다.

하이퍼돌핀에게 질긴 해초를 감아 배에 연결한 후 배를 끌게 하기 위함이었다.

상반신을 훤히 드러낸 미녀들이 물속에서 나타나자 기사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우오오!”

“인어다!”

“어느 쪽이 머메이드고, 어느 쪽이 세이렌인 거야?”

“무슨 상관이야. 예쁘면 장땡이지.”

미인 유랑시인을 만난 주점 아저씨들마냥 굵은 환호성을 질러대는 기사들이었다.

몇몇 기사들은 멀미 때문에 배 뒤에서 계속 속을 게워내고 있었고, 그게 뭐 별미랍시고 물고기 떼가 모여들어 수면에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헨젤이 떨어뜨린 빵조각을 쪼아 먹는 비둘기들마냥 배가 지나가는 길마다 물고기 떼가 모여들었다.

더프를 비롯한 몇몇 기사들은 언제 낚싯대를 챙겼는지 줄을 늘어뜨려 신나게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크헤헤, 물 반 고기 반이구나!”

“단장님! 이거 보십쇼. 돌돔입니다.”

“당장 회 떠. 향신료 잔뜩 가져왔지? 매운 스프도 끓여. 내장은 모우들 먹이에 섞어주고.”

“넵!”

훈련한답시고 남쪽이며 서쪽이며 가리지 않고 다니더니 쉴 때마다 낚시한 한 모양이다.

순식간에 배 위에 먹자판이 벌어졌다.

술을 챙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왁자지껄 떠들며 시간을 보내었다.

평화를 가장 실감할 때가 전투 전의 평화라 했던가.

로엘은 난간에 기대며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정도의 주의만 주었다.

“식중독 걸리지 않게 주의하면서 먹도록 해.”

“네!”

하이퍼돌핀 덕에 한층 더 속도가 붙으면서 배가 빠르게 서남쪽으로 향하였다.

흩어지는 물보라를 가만히 쳐다보던 중 세이렌 한 마리가 빠르게 배 쪽으로 다가왔다.

저러다 선체에 부딪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깝게 붙었다.

로엘은 괜찮은 건가 싶어 아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는데 문득 물속의 세이렌이 높이 뛰어오르더니 난간을 넘어 로엘에게로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세이렌을 받아 들어주었다.

찾아온 세이렌은 로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셸리였다.

셸리는 공주님 안기를 하듯 로엘에게 안긴 채로 배시시 웃었다.

“기다렸어요, 로엘.”

“셸리?”

“네, 셸리랍니다~.”

셸리이긴 했는데 이전에 본 셸리와는 사뭇 달랐다.

이전의 셸리는 요염함이 있긴 했어도 살짝 덜 익은 과실 같았었다.

그런데 겨우 두 달 사이에 베나티아에 비견될 정도로 몸이 더 성숙해져 있었다.

정신 쪽은 아직 여전히 어린 편이었지만 말이다.

로엘이 알기로 아직 후계자 수업 중이라 들었는데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후계자 수업 중 아니었어?”

“수업 중이었는데 아바마마께서 보냈어요. 몇 가지 소식을 전하래요.”

바보삼형제가 망자섬의 위치를 알아낸 후에 블라스크가 따로 듀공을 파견하여 몇 가지 정보를 더 수집한 모양이었다.

로엘은 일단 웃옷을 벗어 셸리의 상체를 덮어주었다.

“올 거면 최소한 웃옷 정돈 챙기라고.”

“헤헤, 상냥해라. 역시 로엘이 제일 좋아요. 아참, 저 좀 내려주세요.”

셸리는 웃옷 단추를 잠궜고, 그 사이 로엘이 그녀를 갑판 바닥에 내려주었다.

갑판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유리병 뚜껑을 열더니 안에 있던 오일을 다리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셸리의 하체가 인간의 다리로 변했다.

해저섬에서 떠나기 전에 루엔이 선물로 마법 오일 한 병을 준 모양이었다.

지느러미가 다리로 변했는데 옷이 입혀져 있을 리 없었다.

로엘은 자연스럽게 몸으로 그녀를 가려주며 더프로 하여금 남는 하의를 가져오라 시켰다.

하의까지 모두 챙겨준 후 뒤를 돌아보니 기사들이 전부 로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있던 더프가 옷을 다 입은 걸 보곤 헛기침을 하며 질문을 던졌다.

“흠흠, 해저섬의 인어공주님이신 겁니까?”

“맞아.”

“역시 그랬군요. 밤까지 선실 쪽엔 아무도 얼씬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로엘이 해저섬의 공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배려를 해주려는 것이었다.

로엘은 한쪽 팔을 휘저으며 부정했다.

“그런 거 아니니까 다들 하던대로 해.”

셸리도 그쪽으로는 눈치가 빠른지라 로엘과 팔짱을 끼며 교태를 부렸다.

“전 상관없어요.”

“까불고 앉았네. 전투 앞두고 그러는 거 아냐. 일단 셸리 너 선실에 들어가 있어. 그리고 더프.”

“네.”

“베나티아 누님, 그란데 백작 보고 이리로 넘어오라 해. 그 뒤에 너도 선실로 오고.”

“알겠습니다.”

///

다른 배에 있던 베나티아와 그란데 백작이 로엘의 배로 넘어왔다.

베나티아, 그란데 백작과 더프가 로엘이 있는 선실로 들어왔다.

로엘은 계속 들러붙으려는 셸리를 떼어내며 들어온 세 사람에게 앉으라고 명했다.

“세 명 다 앉아.”

베나티아는 계속 로엘에게 팔짱을 끼려 하는 셸리를 가리켰다.

“저 애는 누구야?”

“셸리라고 저번에 말씀드린 해저섬 공주예요. 셸리, 인사드려. 블루 드래곤 베나티아 누님이야.”

셸리가 갑자기 바들바들 떨며 무릎을 꿇었다.

“미천한 인어가 베나티아 님을 뵙습니다. 잡아먹지 마세요. 저 착한 인어예요.”

베나티아에 대해 알고 있는지 위대한 존재라는 호칭 대신 베나티아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고 있었다.

로엘은 해저섬과 베나티아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음을 알고 베나티아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무슨 짓 했었어요?”

“별 건 아니고 옛날에 해저섬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술에 취해서 장난 좀 쳤었거든. 그거 때문에 그런가봐.”

대체 어떤 장난을 쳤기에 애가 이리 트라우마가 생겨 벌벌 떠는 건가.

묻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로엘은 셸리를 달래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로엘이 잘해주는 게 좋은지 진정한 후에도 어리광부리다 베나티아의 눈총을 받고 다시 떠는 걸 반복했다.

한참 동안 두 여자 사이에 끼인 로엘을 바라보던 그란데 백작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몇날며칠이고 기다릴 태세를 취하였다.

로엘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 싶어 분위기를 환기하였다.

“이쯤 해두고 일 얘기로 넘어가자고. 용왕님이 정보를 보내왔어. 셸리, 전해라는 말을 읊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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