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0 5-8. 전력 강화 =========================
예전에야 전쟁을 막기 위해 고대병기를 만들지 말라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반영구 회로만 전부 모으면 통일해도 회귀하지 않게 되니까 힘은 있을수록 좋았다.
그래서 로엘이 두통을 받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베나티아가 먼저 초코쿠키가 담긴 철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네. 어디 맛 좀 볼까?”
베나티아의 손이 철판에 닿기 전에 루엔이 그녀의 손을 옆으로 밀어냈다.
“안 돼. 로엘부터야.”
“야, 너 내가 마력의 결정 만들어준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러기야?”
“그래도 로엘부터 줄래.”
베나티아는 장난기가 도져 빠르게 초코쿠키 하나를 낚아채곤 로엘의 입에 쏘옥 집어넣었다.
“내가 먼저 넣었지롱.”
초코쿠키를 집어 천천히 로엘의 입을 향해 내밀고 있던 루엔이 하늘이라도 무너진 양 굳어버렸다.
루엔의 입에서 울적한 기분이 담긴 코맹맹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먼저 주려고 했는데... 내가 먼저 주려고 했는데......”
루엔의 눈가에 물기가 일발장전 되었다.
브레스보다 더 강력한 한 방이 쏘아지기 직전이었다.
당황하는 베나티아를 대신하여 로엘이 입 안에 있던 초코쿠키를 빼내곤 고개를 숙여 루엔의 것부터 먹어주었다.
“자, 이제 루엔이 첫 번째네.”
그 다음에 베나티아의 것을 도로 넣어 우적우적 씹었다.
로엘의 임기응변 덕분에 루엔이 울먹이는 사태까진 가지 않게 되었다.
루엔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베나티아와 도디에게도 초코쿠키를 먹여주기 시작했다.
그 동안 로엘은 골렘 앞으로 다가가 그 구조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전전생에서 보았던 골렘과는 조금 달랐다.
전전생의 골렘은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최소 하루 이상 냉각기간을 가져야 했는데 지금 만든 골렘은 순식간에 열이 식어 내리고 있었다.
“열이 바로 식고 있잖아. 냉각 마법진까지 넣은 거야?”
루엔도 거기까진 하지 않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 손뼉을 쳤다.
“마력의 결정에 베나티아 마나 많이 들어갔어.”
여태껏 베나티아가 도와줬다는 게 마력의 결정 제조 작업이었단 말인가.
제조과정에 들어간 마나 중 7할 정도가 베나티아의 마나이기에 그녀가 가진 냉기 마나가 냉각효과까지 내고 있는 것이었다.
골렘의 유일한 약점인 냉각기간까지 없어진 셈이었다.
골렘의 위력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전투에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루엔의 말에 의하면 골렘 첫 가동 때 피를 흘려 넣어야 하고, 그 피의 주인만 따르게 되어있다 한다.
전투에서 사용하려면 루엔까지 전장에 대동해야 한다는 소리다.
로엘은 골렘을 공격용으로 쓰기 보단 수비용으로 쓰는 게 낫다고 판단하였다.
“루엔, 이 골렘 왕궁 뒷산에 순찰용으로 쓰자. 그래도 되지?”
“응.”
“공방에 불러들이기 없기야. 공방 안에 밀가루랑 초콜릿 쌓아두는 것도 금지고.”
이대로 공방에 놔뒀다간 밀가루와 초콜릿을 한가득 쌓아놓고 밤낮으로 만들어 먹을 거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루엔은 속셈이 들통나버렸단 걸 알곤 아깝다는 듯 짧은 소리를 내었다.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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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소가 끝나갈 즈음, 오르비르 산의 드워프들이 만든 아디만티움 갑옷이 도착했다.
여태껏 아디만티움 갑옷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물건들은 여럿 전해 받았지만 원래 의뢰였던 아디만티움 갑옷 제조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 했었다.
몇 달 간의 제작기간 끝에 완성이 된 것이었다.
도착한 아디만티움 갑옷은 딱 로얄기사단 기사들의 수만큼 도착했다.
처음부터 로얄기사단을 무장하기 위해 의뢰를 맡긴 것이었던 지라 로얄기사단 전원이 아디만티움 갑옷을 착용하게 되었다.
로엘은 검은색 갑옷을 입은 채로 열을 맞추어 서있는 로얄기사단 앞에 섰다.
흑색 일색의 두터운 갑옷을 입은 무리가 서있는 모습은 마치 데스나이트들이 주르륵 서있는 듯했다.
상대방이 저절로 움츠러들 법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로얄기사단을 둘러보던 로엘이 투구마다 뿔이 달려 있는 걸 보고 옆에 있던 더프에게 말을 붙였다.
“저건 누가 기획한 거야? 꽤나 살벌하게 만들었네.”
“콘라드 남작님이 오르비르 산에 남아 디자인 작업에도 참여하신 모양입니다.”
“그 인간은 싸움도 할 줄 모르면서 이상한데서 힘을 낸단 말이지.”
“저는 꽤 마음에 듭니다. 저 정도는 되어야지 상대의 기세를 꺾을 수 있지요. 전하께선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뿔을 떼내라 하겠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해. 다들 무게를 견딜 정도는 되겠지?”
“물론입니다. 이때를 위해 훈련강도를 3배로 높였었습니다.”
아디만티움은 갑옷으로 만들면 마법면역효과를 지니는데다 마나 오러급 공격이 아니면 잘 뚫리지도 않는다.
다만 같은 부피의 철보다 훨씬 무거워서 풀 플레이트 갑옷으로 만들면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아디만티움 갑옷 제작 의뢰를 맡겼을 때부터 계속 단련해온 로얄기사단이었다.
기사들은 움직이는데 영향이 없으나 다른 문제가 생겼다.
더프가 곤란해진 점을 보고하였다.
“저희는 괜찮으나 말이 문제입니다. 아디만티움 갑옷을 입고 올라타면 말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금방 지쳐버립니다.”
“얼마 전에 들여온 케이델 공작령 산 종마들도?”
“네, 철갑기마대 현역 종마들도 하루 단위로 갈아타야 될 것 같더군요.”
“그럼 아예 말없이 뛰어다는 건 어때?”
“...”
“농담이야.”
“후우, 놀랬잖습니까.”
기껏 아디만티움 갑옷을 만들었는데 이동수단 때문에 못 쓰게 되는 건 아쉬웠다.
로엘은 발상을 달리 하여 강한 말을 찾는 것보다 아예 강한 탈 것을 구하는 쪽으로 생각해보았다.
“3공국에 서식하는 모우를 써보는 건 어때?”
구 겐크 왕국이 겐크 왕가만이 부릴 수 있었다는 힘 센 소 모우.
보통 소보다 3배나 몸집이 크며 놀 정도는 단번에 꿰뚫어버릴 수 있는 강인한 뿔을 지닌 소이다.
게다가 속도도 말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더프는 명안이라 여겨 로엘을 추켜세웠다.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왜 저는 전하처럼 좋은 생각이 번뜩이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그리폰 태우고 있네. 됐고, 크레인 공국에서 모우 20마리 보내왔었지? 그거 조련 가능하겠어?”
“수송용으로는 조련이 끝났습니다.”
“전투용으로 조련할 때까진 얼마나 걸리지?”
“일주일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쁘지 않군. 조련 끝나면 보고서 올리도록.”
“네.”
///
대청소 마지막 날.
이미 대청소는 끝난 지 오래였고 로엘도 충분히 루엔이나 베나티아와 시간을 가진 후였다.
남은 시간 동안 로엘이 할 거라곤 수련밖에 없었다.
로엘은 오늘도 검황의 호흡법을 행한 후 명상에 잠겼다.
‘구분은 무의미하다. 구분 짓지 않는다는 건 무엇이냐. 그렇다면 구분 짓지 않으려함 역시 부자연스러운 것일 터. 나 또한 자연의 일부라면 내 행위가 곧 자연의 행위인 거 아닌가. 뒤집는다면 자연의 행위가 내 행위, 자연의 의도가 내 의도라는 건데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난 내 의지대로 움직여. 아니, 애당초 내 의지라는 게 실존하는 건가? 모든 행위가 시간이 지난 후에 인식된다면 결국 우리의 의지라는 건 과거의 산물 아닌가?’
검황의 책자를 읽고, 명상하고, 읽고, 명상하길 반복하는 사이 검술을 넘어 무에 대한 로엘의 인식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었다.
명상을 마친 후, 검을 휘두를 때도 로엘의 생각은 계속되었다.
‘그럼 내가 원하는 것도 자연이 원한다는 게 되는 건가. 애당초 내가 원하는 게 뭐지? 당장의 목표는 회귀를 하지 않는 거잖아. 난 회귀만 막으면 대륙통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역시 나는 대륙통일을 원하는 거겠지. 잠깐, 이 책을 쓴 자 역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원했으니까 수련을 해왔던 거잖아.’
책에는 욕심을 버리라고 적혀 있었다.
모든 걸 놓았더니 깨달음이 스스로 찾아오더라... 라고 했던가.
원하지 않았기에 의식 밖으로 밀려난다.
나의 의식 바깥의 것.
그것이 바로 구분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닌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원하던 것은 내 안에 있더라.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순간 로엘은 망치라도 맞은 양 머리가 띵해졌다.
왔다.
드디어 왔다.
전전생에 마나유저 상급에서 마나 익스퍼트로 가는 길을 스스로 찾았을 때 이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