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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118화 (11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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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망자섬 정찰

새들조차 날아들지 않는 죽은 자의 섬.

1년 365일 내내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으며 시체 썩은 내가 진동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지간한 대형 도시급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섬엔 언데드 군단 및 용마전쟁의 잔재세력이 거주하고 있었다.

안개 낀 섬의 중앙에 위치한 산 정상에는 조잡하게 지어올린 성 하나가 있었다.

문조차 없어 성 안까지 안개가 끼어 있는 가운데 뼈로 만든 검을 찬 인간 한 명이 서있었다.

외견상 나이는 30대 초반쯤 되었을까.

안개가 끼어 햇볕조차 들지 않건만 몸 전체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원래는 대륙 쪽에 살던 인간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내는, 아니 사내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마족이 눈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두 뱀파이어를 내려다보았다.

조직을 이끌던 수장 아메카와 그의 보좌역인 고우트였다.

사내는 아메카와 고우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시간을 더 주면 뭘 할 수 있느냐?”

아메카가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간청하듯 말했다.

“대륙침공에 도움 될 무엇이든 이뤄내겠습니다.”

“몇 년간 준비해온 계획조차도 전부 실패했는데 지금부터 준비한다고 뭘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사내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 거칠어져 있었다.

아메카는 사내의 분노를 예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시간을 좀 더 주십시오.”

“이미 병력은 충분히 모였다. 네놈들에겐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으니 조직을 해체하고 모든 병력을 망자섬으로 돌리도록.”

아메카로선 한 번 더 간청하고 싶었지만 이미 사내의 손은 해골검에 올라간 후였다.

여기서 한 번 더 말하면 검이 휘둘러질 게 분명하기에 이를 악물며 명을 받들어야 했다.

사내는 아메카와 고우트를 지나치며 가이아 대륙이 있는 북쪽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번에야 말로 대륙정벌을 이뤄내고야 말겠다. 마왕도 이루지 못한 것을 이 몸이 이루겠노라.”

안개로 자욱한 북쪽 바다를 보고 있던 중.

사내의 시선이 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입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웬 쥐새끼 몇 마리가 숨어들었군.”

///

한편 고우트를 쫓아 망자섬까지 오게 된 바보삼형제는 성벽 위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망자섬의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에 둘째가 연신 다리를 떨어댔다.

그걸 본 첫째가 둘째에게 주의를 주었다.

“다리 떨지마라. 복 나간다.”

“형님, 이만 돌아가죠. 너무 깊숙이 들어왔어요. 전하께서 섬 위치만 알아내라고 하셨잖습니까.”

“어허,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좀 더 알아보자구나. 최소한 적 수장이 어떤 녀석인지 정도는 알아내야지 전하께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안개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데요?”

“눈 크게 뜨고 찾아봐. 셋째야, 너는 뭣 좀 보이느냐?”

눈을 가늘게 뜨며 성 안쪽을 바라보던 셋째가 무언가 발견한 듯 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성 안쪽에서 누가 우리 쳐다보네요.”

“어디어디? 아, 저기 있네. 누구지?”

“글쎄요. 쟤가 수장 같은데요.”

첫째와 셋째의 대화를 듣던 둘째가 안력을 돋워 성 안을 바라보았다.

성 안쪽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기다란 척추뼈를 든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둘째는 첫째와 셋째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성질을 냈다.

“들켰어요! 얼른 달려요!”

척추뼈를 든 사내가 한달음에 성벽까지 접근해왔다.

위험을 느낀 삼형제는 성벽 너머로 뛰어내리며 거친 자갈밭을 내달렸다.

삼형제는 마나를 끌어올려 전력을 다해 해안가로 달렸다.

달리는 기술 하나만큼은 그란데 백작이나 여타 마나 익스퍼트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순식간에 섬을 주파하였다.

헌데 척추뼈를 든 사내는 여유 있게 삼형제를 따라잡으며 경고의 말을 날렸다.

“쥐새끼 녀석들아. 갈갈이 찢어버리기 전에 멈추거라.”

맨 뒤에서 달리던 셋째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멈춰도 찢을 거면서 약 팔지 마십쇼.”

“큭큭, 잘 알고 있구나. 하지만 그쪽은 지옥의 문턱이란다.”

이미 망자섬 안에 있는 마족들도 불청객의 침입을 감지했는지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삼형제는 달리면서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첫째는 손도끼를, 둘째는 레이피어를, 셋째는 단검을 꺼냈다.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날아드는 공격을 쳐내거나 길을 열 의도로 무기를 든 것이었다.

그 와중에 선두에서 달리던 첫째가 모여드는 마족들의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양옆에서 크고 작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데 그 숫자가 가히 가늠이 안 되었다.

게다가 척추뼈를 든 사내가 셋째와의 거리를 점점 좁혀가는 중이었다.

둘째는 전후좌우에서 압박해 들어오는 마족 무리를 확인하며 첫째를 탓했다.

“아이고 형님! 그러게 내가 뭐랬습니까! 섬 위치만 확인하고 가자했잖아요!”

“도망칠 수 있으니까 진정해.”

“죽으면 천당 가서 형님 지박령으로 만들어 달라고 할 겁니다!”

“지박령은 안 돼! 높은 곳에 못 올려가잖아!”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아보시라고요!”

어느새 척추뼈를 든 사내가 셋째를 완전히 따라잡은 상태였다.

사내가 들고 있는 척추뼈에 검은 마기가 스며들었다.

한 눈에 봐도 불길함이 가득한 기운이었다.

게다가 마나 오러와 비슷한 실오라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셋째의 몸이 두 동강 날 게 분명했다.

첫째는 표정을 굳히며 펄쩍 뛰어 전방에 있던 바위를 디딤대 삼아 뒤로 뛰었다. 그리곤 몸을 반 바퀴 돌리면서 손도끼로 사내의 척추뼈를 옆으로 밀어냈다.

차캉!

“어디서 우리 막내를 건드려?”

첫째가 뒤로 가면서 셋째의 안전이 확보되었다.

다만 첫째 혼자 후방에 남는 형태가 되었다.

둘째와 셋째가 당황하며 속도를 늦추려 했으나 그 전에 첫째의 외침이 먼저 울려퍼졌다.

“신경 쓰지 말고 가!”

“형님!”

“속도 늦추면 포위망에 갇혀! 얼른 가! 나 기다리지 말고 바로 출발해!”

포위망이 형성되기 직전에 둘째와 셋째가 바다에 도달했다.

해안 구석의 물속에 루엔에게서 얻어온 해저함선이 있었다.

루엔이 잉어 해저함선을 빌려주었고, 블라스크가 미행하기 좋으라고 붙여준 물고기 떼가 잉어 해저함선을 둘러싸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잉어 해저함선에 타자마자 셋째가 다급히 말을 꺼냈다.

“형님, 큰형님이 안 오십니다.”

첫째가 오지 않았지만 둘째는 곧바로 운전대를 잡고 출발준비를 하였다.

설마 못 들었나 싶어 다급하게 다시 외치는 셋째였다.

“형님! 큰형님이 안 오셨다니까요!”

“큰형님 말 못 들었어? 기다리지 말고 바로 출발하라고 했잖아!”

“그래도 기다려야죠!”

“우리 삼형제에게 큰형님의 말을 절대적이야! 큰형님을 믿어!”

둘째가 호통을 치긴 했으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 역시 첫째를 놔두고 가긴 싫은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삼형제만 있을 때 첫째의 지시는 절대적이다.

더하여 지금 해야 할 일은 얼른 빌로스 왕국으로 돌아가 보고를 올리는 일이었다.

망자섬의 위치와 적 수장이 마나 마스터의 경지라는 것.

특히 적 수장이 마나 마스터의 경지라는 정보는 정말로 귀중한 정보였다.

첫째가 위험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얻어낸 정보를 헛되이 할 수 없었다.

셋째는 앞좌석 머리받침대에 이마를 대며 미안함에 물들었다.

“내가... 내가 조금만 더 빨랐어도......”

“탓하면 밑도 끝도 없어. 큰형님은 무사할 테니 얼른 소식을 전하자.”

“...”

둘째는 물고기 떼에 숨은 채로 가이아 대륙을 향해 잉어 해저함선을 몰았다.

///

한편 망자섬에 남은 첫째는 반 토막 난 손도끼를 들고 있었다.

셋째를 구한다고 휘둘렀다가 반 토막 난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자욱한 안개 속에서 마족들이 나타나 첫째를 완전히 둘러쌌다.

척추뼈를 든 사내가 마나 오러를 첫째의 목 언저리에 대며 말했다.

“눈물나는 우정이군. 제 목숨보다 귀한 것을 없거늘.”

“빵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스프부터 마시는군.”

“건방진 놈. 네 처지를 알고 지껄이는 것이냐?”

“죽일 거면 진작 죽였어야지.”

“뭐?”

첫째가 소매를 살짝 흔들자 소매 안쪽에서 작은 구슬 하나가 나왔다.

작은 구슬을 땅에 던지자 매캐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단박에 척추뼈를 세로로 휘둘렀다.

후웅!

마나 오러가 사방으로 뻗으면서 그 후폭풍이 연기를 걷어냈다.

척추뼈에 손맛은 없었다.

연기가 걷히자 첫째가 서있던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도망간 것이다.

사내는 농락당했다는 기분이 들어 강하게 발을 굴렀다. 그리곤 신경질을 내듯 마족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느냐! 당장 놈을 찾지 않고!”

마족들이 사내의 명령에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여전히 사내의 곁에 남아있던 아메카가 눈치를 살피며 말을 붙였다.

“나머지 두 명은 섬을 벗어난 걸로 추정됩니다. 아무래도 빌로스 왕국의 첩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째 때문에 쌓인 사내의 분노가 아메카와 고우트에게로 돌아갔다.

사내는 지체할 것 없이 몸을 돌리며 그대로 척추뼈를 아메카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아메카는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우그극!

아메카의 목이 거칠게 뜯겨나가며 공중에 머리 하나와 대량 핏방울이 치솟았다.

옆에 있던 고우트는 무슨 일이 일어난지 모른 채로 피를 뒤집어썼다.

뒤늦게 아메카가 죽었음을 깨달은 고우트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님 어째서......”

“네놈들이 쓸모없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까지 쓸모가 없었을 줄은 몰랐구나. 혹을 달고 온 것도 모자라 감히 내게 이딴 수치를 겪게 해?”

죽은 자는 죽은 자고 고우트는 살기 위해 피를 뒤집어 쓴 채로 바닥에 엎드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사내는 척추뼈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몸을 돌렸다.

“네놈은 돌아가서 조직을 정리하고 모든 병력을 망자섬으로 데려와라.”

“아! 네! 알겠습니다! 당장 그리 하겠습니다!”

고우트가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그림자로 변하며 헐레벌떡 해안가로 가버렸다.

때마침 수색에 나섰던 마족 몇몇이 돌아왔다.

“찾지 못했습니다. 이미 도망친 모양입니다.”

“쳇, 하는 수 없군. 수색을 중지해라. 그리고 계획변경이다. 섬 전체에 방벽을 세우도록.”

“수비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놈들이 섬의 위치를 알아갔으니 조만간 선제공격을 해올 거다. 싸울 준비가 끝난 지금에 와서 우리 안마당으로 와준다면 오히려 환영이지. 곧 비밀병기가 겨울잠에서 깰 것이고 말이야.”

한편 사라진 첫째는 사내가 디디로 있는 땅 밑에 있었다.

1레벨 땅 속성 마법 디그가 새겨진 팔찌로 땅을 파고, 1레벨 땅 속성 마법 어스 커버로 땅을 덮어 땅속에 숨은 것이었다.

그 속도가 워낙에 빨라 상대방 입장에선 사라진 것처럼 보인 것이다.

커버로 땅을 덮기 전에 빨대 하나를 입에 물어 숨을 쉴 수 있게 해두었다.

로엘의 수하가 된 후 계속 수련해온 덕에 안 먹고 안 마시고도 열흘 이상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인내 요소가 많긴 하다만 목이 날아가는 것보단 나았다.

첫째는 땅속에 숨은 채로 사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비밀병기?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거지?’

이왕이면 비밀병기에 대해 주절주절 말해줬으면 했으나 안타깝게도 사내와 마족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해산하였다.

첫째는 갈대로 만든 빨대 하나에 의지한 채로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로엘이 최대한 빨리 군대를 몰고 와주길 바라며 말이다.

땅 속에 숨는 방법이 다른 건 괜찮은데 딱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다.

‘낮은 곳에 있으니까 기분이 별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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